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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3·1운동, 그날의 기억속으로
3·1운동, 그날의 기억속으로
  • 김샛별
  • 승인 2017.02.21 1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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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대로에서 서대문형무소까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걸린 태극기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이들. 사진 / 김샛별 기자
조금싹 봄이 오는 계절, 3월. 조국의 '봄'을 열망하던 이들의 마음도 함께 찾아온다. 3월 1일,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98년 전 그날의 기억 속 발자취를 따라가본다. <편집자 주>

[여행스케치=서울] 안국역 4번 출구와 5번 출구 사이, 인사동과 운현궁 사이를 지나 낙원상가가 보이는 이 길의 이름은 ‘삼일대로’다.

종로구 재동에서 용산구 한남고가차도까지 이어지는 삼일대로는 명칭 그대로 3·1 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 1966년 11월 26일 ‘삼일로’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래 도로명주소로 변경하며 ‘삼일대로’로 바뀐 것이다. 

각종 정치집회와 강연회가 열렸던 천도교중앙대교당. 사진 / 김샛별 기자

근대사를 대표하는 두 개의 건물이 마주한 삼일대로

삼일대로의 시작이 되는 지점에는 근대사를 대표하는 두 개의 건물이 마주하고 있다.

안국역 4번 출구 방향에는 흥선대원군의 사가이자 고종이 태어난 운현궁이, 5번 출구 쪽에는 동학농민운동을 주도했던 천도교의 중앙대교당이 있다.

동학농민운동을 지지하기도, 최제우를 사형시키기도 했던 흥선대원군과 천도교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지금은 운현궁의 유명세에 밀려 지나치기 쉽지만, 천도교중앙대교당은 명동성당, 조선총독부 건물과 함께 서울의 근대 3대 건축으로 꼽힐 만큼 건축미가 높은 건물이다.

천도교중앙대교당을 설계한 나카무라 요시헤이가 다채로운 건축 양식을 수용해 지어 독특한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좋지만, 역사를 알면 더 새로이 보인다. 건물의 몸체에 내부 기둥이 없는 단층으로 지어진 게 가장 눈에 띈다.

박길수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친위원회 사무처장은 “종교 집회뿐 아니라 대중 집회를 염두에 두고 설계한 건물이기 때문”이라며 “물산장려운동이 이곳에서 이뤄지기도 했다”고 전한다. 

3·1운동기념탑과 부조가 있는 탑골공원. 사진 / 김샛별 기자

3·1운동 만세시위의 출발지, 탑골공원

발길을 조금 더 옮겨보자. 낙원상가 방향으로 내려가 왼편으로 돌면 나오는 탑골공원은 익숙한 듯 익숙지 않은 공간.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공원인 탑골공원은 ‘노인들의 천국’이라 불리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면 의미 있는 구경거리가 많이 있다.

탑골공원은 3·1운동 당시 시민과 학생들이 집결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곳.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이 집결지라고 알려지자 학생들과 시민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유혈사태를 우려한 민족대표들은 탑골공원 대신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지만, 탑골공원에 모인 시민들 앞에서 학생대표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공원에서 나와 시가행진을 시작했다. 그러니 탑골공원은 3·1운동의 출발지인 셈이다.

지금 탑골공원에는 의암 손병희 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공원 입구에는 3·1운동 부조가 세워져 있다.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팔각정 뒤로 다보탑이 세워져 있다. 천천히 둘러보면 그날의 함성이 들려온다.

순서대로 김상옥 의거 터, 서북학회 터, 종로YMCA 기념비. 사진 / 김샛별 기자

표지석 발견하며 걷는 재미

과거의 역사를 따라 걷는 길은 이제는 남아 있지 않은 건물의 흔적을 밧줄처럼 잡고 걷는 것과도 비슷하다. 모르면 보이지 않고, 알아야만 보이는 것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탑골공원에서 YMCA 건물을 지나 광화문역 방향으로 가는 길엔 종로경찰서 터, 보신각, 비각 등이 차례로 있다. 크기가 작으니 의식하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태화관 터에 세워진 삼일독립선언유적지비. 사진 / 김샛별 기자

그 중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 태화관 터에 지어진 태화빌딩은 꼭 들르자. 일제시기 유명 요릿집 명월관의 분점이었던 태화관은 민족대표 33인이 모여 독립을 선언했다. 유서 깊은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삼일독립선언유적지비와 기미 독립선언문이 쇠벽에 새겨져 있다.

건물 안에 있는 카페에는 ‘조선이 독립국이며 조선인은 자주민’임을 선언했던 순간을 그린 민족대표 삼일독립선언도가 걸려 있다. 잠시 앉아 목을 축이며 그날의 풍경을 그려보는 것도 좋다.

태화빌딩 1층 로비에 걸려 있는 민족대표33인 기록화. 사진 / 김샛별 기자

이곳에서 종로구청 방향의 큰길(우정국로)로 향하면 조계사가 보이는데, 뒤편으로 독립선언서와 조선독립신문을 인쇄했던 보성사 터가 작게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박길수 사무처장은 “보성사는 3·1운동이 한창이던 6월 누군가의 방화로 소실되었다”며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제의 소행임을 눈치채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이곳을 지키고 있던 회화나무는 여전히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 남아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입구. 사진 / 김샛별 기자

역사적 아픔이 서린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안국역에서 독립문역까지는 지하철 두 정거장 거리. 경복궁과 사직공원을 지나며 산책 삼아 걷거나 버스나 지하철을 타도 금방이다.

독립선언문을 발표한 민족대표들은 태화관에서 직접 전화를 걸어 자신들을 수감하라고 한다. 이들은 왜성대 경무총감부로 연행되었다가 심문을 받은 후 3월 3일, 서대문감옥에 수감된다. 3월 1일 이후 33인을 비롯한 독립투사와 운동가들, 무고한 시민들까지 수감자가 폭증해 당시 삼천여 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 고통스러운 역사를 품은 건물. 경성감옥에서 서대문감옥, 서대문형무소에서 서울교도소, 서울구치소로 여러번 이름이 바뀌는 동안 근현대 우리 민족의 수난과 고통을 상징한 이곳이 이제는 독립정신과 자유·평화 정신을 기리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되었다.

당시 취조실을 재현해놓았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서대문형무소역사전시관 1층에는 형무소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해두었고, 2층에는 시대별로 나누어 3개의 전시실로 민족저항의 역사를 구분해두었다. 마지막으로 전시관 지하에는 일제강점기 지하 취조실을 재현해놓아 각종 고문의 실상을 전시하고 있으며, 생존 독립운동가의 육성 증언을 들어볼 수도 있다.

특히 벽관 고문이라 하여 옴짝달싹할 수도 없이 좁은 공간에 사람을 감금해놓는 고문도구엔 직접 들어가볼 수도 있어 호기심에 들어가본 이들이 혀를 내두르며 나오는 걸 볼 수 있다. 

형무소 감옥 내부에선 전시도 펼쳐진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전시관을 빠져나와 실제 감옥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에선 여전히 겨울의 냄새가 난다. 차가운 시멘트벽과 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 옥사 감옥 한 칸 한 칸 각각의 내부에는 이달의 독립운동가를 선정해 작은 전시가 마련되어 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한 켠에 적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물었던 이상화 시인의 시 구절이 뼈아프다. 독립 98주년이 된 2017년의 봄은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봄이었을까. 서대문형무소 주변으로 조성된 공원에는 벌써 꽃봉오리가 움을 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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