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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문인들이 남긴 흔적을 찾아가는 길
문인들이 남긴 흔적을 찾아가는 길
  • 노규엽 기자
  • 승인 2017.02.07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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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예술가의 길 - 문학지도
동피랑에서 내려다 본 강구안 전경. <문학지도> 코스는 강구안 주변을 돌며 통영 예술인들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는 길이다. 사진 노규엽 기자

[여행스케치=통영] 항구이면서 통영의 원도심이었던 강구안은 예로부터 주민들의 생활거점이자 외지 사람들이 드나드는 통로였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이야기가 만들어지듯이, 강구안에는 통영을 배경으로 피어난 문학의 향기가 흐르고 있다.

강구안을 중심으로 이미 벽화마을로 유명한 동피랑과 새롭게 공원으로 조성되고 있는 서피랑 사이에는 음악, 공예,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있다. 통영의 작은 출판사 ‘남해의봄날’과 ‘통영길문화연대’에서 이들을 엮어 통영 예술기행 코스를 만들었는데, <공방지도>, <문학지도>, <공연지도>가 그것이다. 그 중 통영과 교감했던 문인들의 발자취를 쫓아가는 <문학지도>의 길을 걷는다.

조선군선을 관람할 수 있는 거북선과 어민의 고깃배가 공존하는 강구안 모습. 사진 노규엽 기자

한때 그들이 먹고 자며 살았던 길
박경리 작가는 “통영사람에게는 예술의 DNA가 흐른다”고 말했다. 스스로도 그랬듯이 다수의 문인들이 통영의 자연과 문화에 영향을 받아 남긴 작품들이 많음을 일컬은 것이다. 통영 태생인 유치환, 김상옥, 김용익, 김춘수 등은 물론이고, 정지용, 이영도, 백석처럼 외지에서 통영을 찾아왔던 문인들의 작품에도 통영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래서 김용재 통영길문화연대 대표는 “<문학지도> 코스는 문인들이 당시 이 길에서 밥을 먹거나 걸어 다녔을 모습들을 상상해보며 걸으면 더욱 재미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문학지도>는 ‘박경리 길’과 ‘문학의 길’이라 이름 붙여진 두 개의 코스로 나뉘어 있다.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르게 이어지는 두 코스는 강구안 주변의 명소들을 두루 둘러볼 수 있으면서, 모두 걸어도 약 4시간이면 충분해 강구안 탐방여행으로도 안성맞춤이다.

통영 문인들이 산책을 하며 영감을 얻곤 했다는 남망산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 사진 노규엽 기자

문인들을 떠올리며 걷는 ‘문학의 길’
조선군선 관람소인 거북선과 작은 고깃배들이 떠있는 강구안을 빙~ 돌아 남망산조각공원으로 향한다. 통영성이 있던 조선시대에 남망산은 왜구의 침입을 감시하는 망루 중 한 곳이었다. 통영성에는 4개의 망루가 있었는데, 남망산을 포함해 동ㆍ서피랑의 동ㆍ서포루와 통제영 뒤편 여황산에 있는 북포루에서 적의 침입을 감시했다고 한다. 근대에는 통영 문인들이 산책을 하며 영감을 얻었던 곳이라 하니, 천천히 거닐며 그들의 행적을 따라가 보기 좋다.

조각공원을 돌고 나오면 김춘수 시인의 생가로 길이 이어지지만, 현재는 일반시민이 살고 있어 관람의 요소는 없다. 그대로 동피랑을 향해 길을 잇는다. 철거 예정인 마을을 살리기 위해 민관이 나서서 재생사업을 하며 ‘우리나라 제1호 벽화마을’로 되살아난 이곳은 동피랑 꼭대기의 동포루를 찾아가는 길에 구경거리를 더해준다.

<문학지도> 길의 볼거리를 더해주는 동피랑 벽화마을. 사진 노규엽 기자

동피랑을 넘어서면 김용식ㆍ김용익 기념관으로 갈 차례. 통영 읍장을 지낸 아버지 아래 태어난 두 형제는 형 김용식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이 되었고, 동생 김용익은 한국인의 서정을 주제로 영어 소설을 집필하여 시대를 앞선 소설가가 되었다. 후손들의 기증을 받아 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기념관에서는 두 형제의 이력을 가볍게 훑어볼 수 있다.

이제 세병관으로 향한다. 세병관은 삼도수군통제영 안에 있는 객사건물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제1호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며 한산도에 처음 설치된 통제영은 1604년 제6대 통제사 이경준이 지금 자리로 옮기며 전라ㆍ충청ㆍ경상의 3도 수군을 지휘해온 곳이다. 통제영은 통영의 이름에 기인했는데, 그럼에도 <문학지도>에 세병관을 표기한 이유는 일제시대에 세병관 건물을 통영제일공립보통학교로 사용했기 때문. 유치환ㆍ박경리 작가 등이 이 학교를 다녔으며, 박경리 작가가 <토지> 집필을 마치고 통영을 방문했을 때 옛날에 공부하고 뛰놀던 곳이라며 기둥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도 남아있다.

통영이라는 도시 이름에 기인한 삼도수군통제영. 사진 노규엽 기자

Info 삼도수군통제영
주소 경남 통영시 세병로27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6시(3~10월), 오전 9시~오후 5시(11~2월) ※매주 월요일 휴무
입장료 성인 3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000원
문의 055-645-3805 http://tjy.ttdc.kr

통영중앙우체국 인근에 있는 유치환 흉상과 <향수> 시비. 사진 노규엽 기자
김상옥 시인의 생가가 있어 초정거리라고 불리는 항남1번가. 사진 노규엽 기자

통영 시인들의 모습을 떠올리다
다음 코스는 옛 통영여중이었던 충무고등공민학교. 유치환ㆍ김상옥ㆍ이영도 시인 등이 이곳에서 교직 생활을 했으며, 현재는 (사)통영사연구소 사무실로 쓰이고 있다. 한편, 세병관과 충무고등공민학교는 ‘박경리 길’에도 포함되어 있다. 두 코스를 모두 걸을 시간적 여유가 없는 사람은 이곳에서 곧장 서피랑으로 이동할 수 있다.

‘문학의 길’로 돌아오면 유치환 시인의 부인 권재순 여사가 운영하던 문화유치원 자리인 충무교회를 지나 ‘청마우체국’이라 별칭을 붙인 통영중앙우체국과 길 끄트머리에서 청마 유치환 시인의 흉상을 볼 수 있다. 청마우체국 맞은편은 이영도 시인이 언니의 수예점에서 일을 돕던 곳. 한때 유치환 시인은 그녀에게 수천 통의 연서를 보냈고, 그의 시 <행복>도 우체국에서 이영도 시인을 보며 썼다는 일화가 있다.

다음 코스는 작은 번화가인 항남1번가. 초정 김상옥 시인의 생가가 있던 곳이라 초정거리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생가터에 남은 안내문을 보고 초정거리를 빠져나와 길 건너편에 있는 김춘수 시인 동상과 현재는 게스트하우스로 운영되고 있는 새미(우물을 뜻하는 사투리)집까지 둘러보면 ‘문학의 길’ 코스는 끝이 난다.

'박경리 길'이 시작되는 강구안 골목 입구의 물고기 조형물. 사진 노규엽 기자

<김약국의 딸들>에 바치는 ‘박경리 길’
‘문학의 길’을 돌고 강구안 문화마당으로 돌아오면 이번에는 남망산 반대 방향인 강구안 골목에 들어서며 ‘박경리 길’을 시작한다. 과거 통영의 명동이었던 강구안 골목에는 곳곳에 근현대 문화와 역사가 남아있어, 지금도 수 십년된 맛집, 통영에서 가장 오래된 여관 등을 볼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수많은 이야기와 추억을 만들어내고 소통의 장으로 활기 넘치는 곳이다.

강구안 골목을 둘러보고 나면 ‘문학의 길’ 코스와 겹치는 세병관과 충무고등공민학교로 길을 잇는다. 이미 ‘문학의 길’을 걸었다면 다시 들를 필요는 없으니 통영문화원 아래 골목을 따라 들어가 간창골 새미를 본 후 서문고개로 향하면 된다.

서문고개는 통영성 서문이 있던 자리로, 박경리 작가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에서 김약국의 아내 한실댁이 도망 온 용란의 손을 잡아끌며 넘어가던 그 고개다. 서문고개를 넘기 전 왼쪽으로 박경리 생가로 갈 수 있는 좁은 골목길에 표지판이 세워져있는데, 관련 구절을 육필원고로 새긴 표석도 있어 소설 내용을 되짚어볼 수 있다.

박경리 생가 가는 길목에 있는 박경리 육필 원고 표지석. 사진 노규엽 기자

골목길을 따라 조금만 직진하면 박경리 작가의 생가가 있으나, 이곳도 일반시민이 살고 있어 내부는 공개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도 남아있는 좁은 골목길에서 박경리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내며 지나다녔다는 생각을 하면 감회가 남다르다.

골목을 빠져나오면 둥근 언덕 위로 서포루의 모습이 명확히 보이는 서피랑공원이다. 서피랑도 동피랑과 마찬가지로 예부터 사람들이 집을 지어 살던 곳. 그러나 산사태로 인해 벼랑이 무너지며 집들이 쓸려나갔고, 십 수년 간 재해위험지역으로 방치되어 있던 자리에 공원을 만들며 새로운 모습으로 재단장되고 있다. 동피랑 벽화마을처럼 아기자기한 맛은 없지만 강구안의 풍경을 내려다보기 좋은 장소다.

서피랑에서는 강구안의 옛 모습 사진과 현재의 모습을 교차하며 볼 수 있다. 사진 노규엽 기자

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 돌층계에 앉아서

충렬사 교차로 옆에서 볼 수 있는 정당새미. 사진 노규엽 기자

서피랑을 돌아 나오면 <김약국의 딸들>의 배경인 하동집과 정당새미, 그리고 충렬사로 이어진다. 현재 하동집은 세월의 부침에 따라 규모가 작아져 한옥체험공간과 카페로 운영되는 두 채만 남아있다. 이곳을 지나 충렬사 교차로로 가면 정당새미를 볼 수 있다. 일정과 월정이라 부르는 두 개의 우물은 일(日)과 월(月)을 합쳐 명정(明井)새미라고도 부르는데, 햇빛을 받지 않으면 물이 흐려지고 동네에 전염병이 도는 등 이변이 생겨 지붕을 세우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는 것이라 한다.

충렬사는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사당으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장군의 영정 앞에서 향을 한 자루 올릴 수 있는 곳이다. 한편, 김용재 대표는 “충렬사를 가거든 돌계단 중간에 잠시 앉아보시라”고 권하기도 했다. 백석 시인이 시를 지은 자리로 추정되기 때문. 백 시인은 짝사랑했던 여인을 만나러 통영에 찾아왔으나 만나지 못했고, 결국 낮술을 마시고는 ‘??장수 모신 날근사당의 돌층게에 주저안저서’라는 시구가 담긴 <통영 2>를 지었다고 한다.

박경리 작가의 소설과 백석 시인의 흔적을 충분히 느꼈다면 이제 ‘박경리 길’이 끝나는 서호시장으로 갈 차례. 서호시장은 통영의 인구가 갈수록 늘어나자 일제강점기 때 매립한 지역으로, 새로 터를 마련했다고 하여 새터라고도 불렀던 곳이다. 통영시민들이 애용하는 새벽시장이자 각종 수산물과 건어물 등이 풍부한 곳이니, 문학으로 충만 시킨 가슴 속을 현대시장의 활기로 마무리해보자.

이순신 장군의 사당이자 백석 시인이 <통영 2>를 지었다는 충렬사. 사진 노규엽 기자

Info 충렬사
주소 경남 통영시 여황로 251
입장료 성인 1000원, 청소년ㆍ군인 700원, 어린이 500원
문의 055-645-3229 http://tyc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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