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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아이와 손잡고 걷는 '경주 파도소리 길'
아이와 손잡고 걷는 '경주 파도소리 길'
  • 이동미 여행작가
  • 승인 2017.03.31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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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신비 속으로 걸어가다
해파랑길 구간 중 하나인 경주의 파도소리길. 사진제공 / 이동미 여행작가

[여행스케치=경주] 징검다리 휴일이 이어지는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디로 갈까, 어떤 것을 할까 고민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온가족이 맑은 햇살 받으며 도란도란 걷는 것이 어떨까?

가족과의 걷기는 일반적인 트레킹과 다르다. 단순히 걷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이런 저런 이야기와 시간을 나누며 마음을 함께하는 추억 쌓기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자녀의 연령대에 따라 속도를 달리 해야 하며 마음에 드는 장소가 있으면 좀 더 머무르는 여유도 있어야한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추억을 쌓는 것은 속도에 반비례함을 염두에 두자.  

경주 파도소리 길에 있는 몽돌 해변. 사진제공 / 이동미 여행작가

파도소리와 발맞추어 걸어가다

가족과의 걷기 길을 찾는다면, 바다도 보고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경주 파도소리길을 추천한다. 파도소리길이 어디일까? 파도소리길을 이야기하려면 해파랑길을 먼저 언급해야한다.

해파랑길은 부산에서부터 강원도 고성까지 동해안을 따라 걷는 770km의 도보길이다. 부산-울산-경주-포항-영덕-울진-삼척-동해-강릉-양양-속초-고성까지를 10개 구간 50개 코스로 연결했다. 한반도가 호랑이 형상이니 해파랑길은 호랑이 등을 타고 오르는 길이며, 그 옛날 화랑들이 호연지기를 기르기 위해 수련하던 길이다.

여러 주상절리를 볼 수 있는 파도소리 길. 사진제공 / 이동미 여행작가

해파랑길 중 경주 구간은 10코스부터 12코스에 해당한다. 그 중 경주시에서는 양남면 하서항에서 읍천항까지의 약 2㎞ 해안길을 ‘경주 양남 주상절리 파도소리길’로 명명했으니 해파랑길 10코스 중 일부다. 이름처럼 파도소리길을 걸을 때면 멋진 동해의 풍광과 더불어 시원한 파도소리가 발걸음과 함께한다.

어느 방향이든 상관없지만 하서항에서 읍천항으로 걷기를 권한다. 도보길에도 기승전결의 느낌이 있으니 하서항 출발, 읍천항 도착이 더욱 드라마틱하며 해파랑길 코스의 순방향이라 이정표 찾기가 좋다. 

파도소리 길은 걷는 동안 다양한 주상절리를 볼 수 있다. 사진제공 / 이동미 여행작가

5천만 년 전 태고의 신비 속으로 걸어가다

파도소리 길 여행은 ‘살아있는 교과서’를 걷는 것이다. 이제 하서항에서 본격적인 출발을 해보자. 오른쪽에 바다를 끼고 걸으면 왼쪽 벽에 주상절리 길임을 알려주는 벽화가 반긴다. 

이어 파도치는 바닷가에 커다란 돌덩이가 보인다. 그냥 돌덩이가 아니라 사람 키의 몇 배가 되는 거대한 돌기둥이 켜켜이 쌓여있어, 순간 감탄이 터져 나온다. 이것이 바로 파도소리길의 가장 큰 볼거리인 ‘주상절리’다. 주상(柱狀)은 기둥모양을, 절리(節理)는 돌에 생긴 틈을 뜻한다.

화산이 분출하면 1천℃ 이상의 뜨거운 용암이 밖으로 흘러나온다. 이 용암이 공기 중에 노출되면 빠르게 냉각되며 미세한 균열과 틈이 생긴다. 오랜 시간이 지나며 풍화와 침식을 겪으면 그 틈과 균열은 더욱 선명해지며 사각형 혹은 육각형의 돌기둥 모양이 된다.

이것이 ‘주상절리’로 아이들이 학교에서 화산활동에 관해 배우는 교과내용 중 하나. 이처럼 파도소리길을 걸으면 과학 공부가 절로 된다. 

파도소리길의 주상절리는 신생대 제3기의 에오세(5400만 년 전)에서 마이오세(460만 년 전) 사이, 경주와 울산 지역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한반도의 화산활동 중 신생대 제3기 마이오세 시기에 태백산맥을 축으로 동쪽은 높고 서쪽은 낮은 ‘한반도 동고서저형(東高西低型)’을 직접 걸으며 느낄 수 있으니 이게 바로 실제로 부딪치고 만나는 ‘사회’ 과목이 아닌가. 

게다가 이 곳 주상절리가 5천만 년 전에 생긴 바위라 하니 마음이 경건해지고 걸음이 조심스러워진다. 인간이 있기 훨씬 전인 한반도 태초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화산의 용암 분출로 생기는 이 같은 주상절리는 한탄강과 임진강, 광주 서석대와 제주의 중문 그리고 금강산과 백두산 등지에서 만날 수 있다. 

부채꼴 모양의 주상절리를 관찰할 수 있다. 사진제공 / 이동미 여행작가

동해에 한 송이 바위 꽃을 피우다

흙길과 나무 데크길을 따라 걸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산책하듯 천천히 걷다보면 마음에 여유가 생겨 주위의 경관이 눈에 들어오고 생각도 맑아진다.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BC384~BC322)는 틈만 나면 제자들과 걸으며 토론하는 방식으로 철학을 가르쳤다. 걸으면 발의 자극이 신경과 두뇌를 깨치게 하고, 오감이 열리며, 사고와 철학의 깊이를 더하게 된다. 몸과 마음이 모두 열리는 걷기는 아이들의 건강과 정서, 두뇌개발에 매우 좋다.

자연이 전하는 메시지를 들으며 걷다보면 청명한 동해의 흰 파도를 온몸에 받고 있는 ‘기울어진 주상절리’가 보이고, 조금 더 걸으면 돌기둥을 포개 놓은 듯 ‘누워 있는 주상절리’가 나타난다.

곧이어 몽돌해변을 따라 몽돌 길을 지나게 된다. 아이가 어리다면 몽돌해안에서 조금 더 시간을 가져보자. 오랜 세월 바닷물에 씻기고 깎인 몽돌을 만져보고 부드러운 감촉을 통해 아이는 부드러움이 주는 심성을 손으로 느끼게 된다. 바닷물의 짠맛도 확인해보자.

몽돌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가 어떤 소리로 들리는지도 이야기를 나눠보자. 몽돌해안에 바닷물이 스쳐 사그락 사그락 부딪히는 소리는 인간이 만들어내기 어려운 자연의 음악이다.

다시 흙길을 따라가면 ‘위로 솟은 주상절리’가 보이고 여기에서 다시 500여 미터를 가면 파도소리길의 하이라이트인 ‘부채꼴 주상절리’가 기다린다. 10m가 넘는 주상절리가 마치 부채를 활짝 펴 놓은 듯한데, 그 모양이 동해에 핀 한 떨기 꽃과 같아 ‘동해의 꽃’이라 부른다.

파도소리길의 주상절리는 경관이 수려할 뿐만 아니라 지질학적으로도 그 가치가 높다. 짧은 구간에 다양한 형태의 주상절리가 밀집분포하며 국내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형태라 학계의 관심이 매우 높다. 

파도소리 길을 걸었다면 '느린 우체통'에 여행의 추억을 보내보는 건 어떨까? 사진제공 / 이동미 여행작가

한 달 후의 나에게 소식을 전하다

부채꼴 주상절리 전망대에서 보면 빨간 우체통과 더불어 멀리 읍천항이 보인다. 한 달 후의 나에게 혹은 가족에게 엽서 한 장을 써보자. 경주 감포우체국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수거해가는 ‘느린 우체통’이다.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아이들과 함께라면 색연필을 준비해 그림을 그려도 좋다. 갯바람 맞고 파도소리 들으며 쓰고 그린 엽서는 한 달 뒤쯤 짭쪼롬한 바다 내음을 풍기며 추억을 배달할 것이다.

파도소리 길의 종착점인 읍천항의 벽화. 사진제공 / 이동미 여행작가

이제 출렁다리만 건너면 목적지인 읍천항이다. 출렁다리는 제법 스릴 있어 어린 아이들이 좋아하는 구간이다. 읍천항에서는 다양한 벽화를 배경으로 가족사진과 셀카 찍기가 즐겁다. 해마다 벽화 그리기 대회를 하고 수상작에 작품명과 출품자 표시를 붙여놓아 노천 갤러리 역할을 한다.

이제 읍천항의 빨간 등대 아래에서 간식을 먹으며 천연기념물 제536호인 파도소리길의 주상절리를 되뇌어 보자. 길지 않지만 쉬엄쉬엄 걸으며 자연과 가족과 시간을 생각하게 하는 훌륭한 도보코스다. 

Info 경주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코스 하서항 → 누워있는 주상절리 → 위로 솟은 주상절리 → 몽돌해변 → 부채꼴 주상절리 → 빨간 우체통 → 출렁다리 → 읍천항 (편도 약 2km)
주소 경북 경주시 양남면 동해안로 494
문의 http://haeparang.org

※ 이 기사는 하이미디어피앤아이가 발행하는 월간 '여행스케치' 2017년 5월호 [5! 즐거운 가족여행]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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