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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신세대가 된 천년고도, 재밌게 즐기기
신세대가 된 천년고도, 재밌게 즐기기
  • 노규엽 기자
  • 승인 2017.07.31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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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리단길과 책방투어
대릉원과 맞닿아있는 황남동의 한 거리가 '황리단길'로 불리며 새로운 여행지로 변모하고 있다. 사진 노규엽 기자

[여행스케치=경주] 경주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첨성대, 불국사, 석굴암 등 신라와 불교에 관련된 이미지다. 이와 같은 문화재들은 찬란한 우리 역사의 중요 사적들이지만, 그에 가려 경주가 일궈내고 있는 현대적 감성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21세기 경주의 새 얼굴을 만나러 가보자.

서울 경리단길과 비슷하지만 다른 분위기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들에서 형성되고 있는 트렌드가 경주에서도 활성화되고 있다. 덕분에 최근 들어 부쩍 검색어 순위에 급상승한 ‘황리단길’과 서울 홍대, 연남동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던 독립서점 같은 작은 책방들을 이제 경주 여행의 키워드로 삼을 수 있게 되었다.

황리단길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서울의 경리단길과 망리단길을 뒤따라 형성되고 있는 트렌디한 거리이다. 상권의 분위기도 닮아서 브런치를 판매하는 식당과 아기자기한 소품과 인테리어로 멋을 낸 카페, 한국적이어서 더 친근한 가정식 백반 레스토랑 등으로 경주를 여행하는 젊은이들의 발걸음을 끌어당기고 있다. 인기의 비결은 인터넷, SNS, TV프로그램 등을 들 수 있겠지만, 이 길의 역사가 만들어낸 독특한 분위기도 한몫을 하는 것 같다.

tvN 프로그램 <알쓸신잡>에 나오며 더욱 유명해진 카페 '캐들앤비'. 2층 좌석에서 황남동 고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 노규엽 기자

경주고속터미널에서 불과 500여 미터 떨어진 내남사거리부터 경주오릉 방면으로 이어지는 황리단길은 행정구역 상 거의 황남동에 속해있다. 천마총을 보유하고 있는 대릉원이 있어 원래부터 관광객들이 자주 지나다니던 곳이지만, 바로 옆에 붙은 이 길은 점집이나 실비집들이 늘어서 있어 현지인들 외엔 올 일이 없던 동네였다고 한다. 그 속에서 갑자기 최신 트렌드의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들어서며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신기할 법하다. 혹자는 그 이유로 7~80년대 분위기가 나는 동네 골목과 신식 상점들이 공존하는 오묘한 매력 덕분이라고도 평한다.

인도가 없는 왕복 2차선 도로로 보행이 불편한 점이 있지만, 7~80년대 골목 분위기와 현재의 여행객들이 어우러지며 묘한 매력이 만들어진다. 사진 노규엽 기자

황리단길은 비슷한 명칭을 지닌 서울의 거리와는 차이가 있다. 마땅히 인도도 설치되지 않은 왕복 2차선 도로로, 버스며 차량이 쉴 새 없이 지나다니니 보행에 불편을 주기도 한다. 규모도 크지 않다. 내남사거리부터 황남파출소 인근까지 이어지는 상점 거리는 약 500m에 불과하고, tvN 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잡학박사들의 수다 장소로 촬영되며 눈길을 끈 카페 ‘캐틀앤비’가 있는 곳까지도 1km가 채 되지 않는다. 거리 구경을 나선다면 불과 30분~1시간이면 족할 곳에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것은 바로 그 안에 이곳만의 정체성을 담은 가게들이 있기 때문이다.

경주스러운 감성이 모인 황리단길
먼저 20세기의 감성과 21세기의 풍경을 공존시키고 있는 황리단길의 감성을 대변하는 곳은 ‘삼덕마켓.’ 들어서는 순간 온통 장난감 세상으로 빠져드는 이곳에서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놀았던 공기나 제기 등 추억의 놀이기구들과 추억의 과자들을 만나볼 수 있다. 레트로 감성으로 가득 찬 곳에서 사장님이 직접 수집한 피규어를 구경해볼 수 있고, 90년대의 비디오 게임기도 있어 시간당 이용요금을 내고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레트로 감성이 잔뜩 모인 추억의 장소, 삼덕마켓. 사진 노규엽 기자
배리삼릉공원 내부에 적힌 문구. 우리 삶 속에 경주가 있다는 말이 감성을 자극한다. 사진 노규엽 기자

경주선물가게 ‘배리삼릉공원’은 경주의, 경주인을 위한, 경주인에 의한 장소. 경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이 만든 작품을 모아놓았다. 처음엔 공방으로 시작했다는 배리삼릉공원의 이형진 대표는 “경주에 여행을 오면 살만한 물건이 없다며 황남빵만 사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며 “경주를 찾은 여행자들이 좀 더 경주스럽고 한국적인 물건을 만날 수 있도록 선물가게로 문을 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런 만큼 경주를 모티프로 삼은 소품들을 판매하고 있어 남다른 기념품을 얻어가기 좋다.

전주 한옥마을에서처럼 한복을 입고 멋을 뽐내는 일도 가능하다. 황리단길 메인 거리에 있는 ‘경주 한복판’에서 알록달록한 한복을 대여할 수 있으며, 메인 거리를 약간 벗어나 있는 ‘MIN9’s골목가게&마실’을 찾아가면 아들과 어머니가 함께 운영하는 가게에서 다양한 생활한복들을 만나볼 수 있다.

한복 대여 및 생활한복 구매, 한국적인 액세서리 등이 모여 있는 민9스 카페 내부. 사진 노규엽 기자
황리단길에는 가정식 백반 레스토랑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은 '어썸'의 오징어새우덮밥. 사진 노규엽 기자

이외에도 흑백사진으로 황리단길 여행의 추억을 남겨볼 수 있는 대릉원사진관, 빵이 금세 팔려 구경하기도 어렵다는 데네브 베이커리와 기와양과점 등 황리단길의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즐기다보면 한나절이 훌쩍 지나간다.

경주에서 즐기는 책의 향기
경주에 왔다고 바쁘게 돌아다니며 명승지를 쫓고 사진을 찍고 맛난 음식을 찾아먹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여행지에서 책을 읽는 여유로움에 파묻혀보는 일도 경주를 즐기는 새로운 여행방식이 될 수 있다. 황리단길과 인근 황오동에서 만날 수 있는 서점들이 이를 가능케 해준다.

먼저 황리단길 메인 거리에는 ‘지나가다’와 ‘어서어서’라는 책방이 눈에 띈다. 경주 토박이 자매가 운영하는 ‘지나가다’는 정말로 지나가다가 눈에 들어 문을 열만한 곳. 경주 출신 작가들의 작품을 소량 출판한 서적이나 직접 그린 엽서, 책갈피 등을 만나볼 수 있다.

황리단길에 있는 문학서점 '어서어서'에서 책 구매를 하면 책갈피에 직접 스탬프를 찍어 나만의 책갈피를 만들 수 있다. 사진 노규엽 기자
아이, 어른을 가리지 않고 마음에 드는 그림책을 만날 수 있는 '소소밀밀'. 사진 노규엽 기자

‘어디에나 있는 서점, 어디에도 없는 서점’이라는 풀네임을 가진 문학 전문 서점 ‘어서어서’도 책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곳. 책을 사면 ‘읽는 약’이라고 적힌 약국봉투에 포장을 해주는 센스와 백지 책갈피에 원하는 스탬프를 찍어 나만의 책갈피를 만들 수 있는 재미가 있어 책을 사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황리단길 메인 거리에서 조금 벗어나 첨성대 방면으로 가는 길에는 그림책 서점 ‘소소밀밀’이 기다리고 있다. 느긋한 글작가 소소아줌마와 꼼꼼한 그림작가 밀밀아저씨가 운영하는 작은 책방에는 아이와 어른이 모두 동심을 느낄 수 있는 국내외의 그림책들을 만나볼 수 있다.

황리단길을 완전히 벗어나 황오동으로 향하면 현역 한의사가 운영하는 작은 책방 겸 게스트하우스 ‘사랑방서재’가 있다. 책방 투어를 주제로 잡아 숙소 이용객들도 이를 원하는 사람 위주로 받는다는 이곳은 맛집이나 관광지 등도 경주 사람들이 즐겨가는 곳으로 추천해준다. 숙소에는 방이 3개 있지만 한 명이 오든, 한 가족이 오든 매주 단 한 팀만 받는다고. 돈보다는 경주 알리기에 더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스스로를 ‘일벌리는 한의사’라고 칭하는 이상우 원장은 “숙소가 작아 많은 사람이 오지는 못하지만 한 번 온 사람은 기억에 남는 곳이길 원한다”며 “경주에 여행 와서도 나만의 장소로 남을 수 있는 곳을 추천해주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랑방서재를 운영하고 있는 이상우 원장은 "수학여행으로의 경주와 다른 경주만의 모습을 담으려 여행을 오셨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사진 노규엽 기자

이외에도 사랑방서재와 가까이 있는 ‘오늘은책방’과 거리는 좀 떨어져 있지만 경주 내 시민운동을 함께 하고 있는 ‘노닐다’도 책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장소. 경주를 찾으며 이곳의 역사적인 관광지를 아니 갈 수는 없지만, 어쩌다 한 번쯤은 책의 향기를 맡고 돌아오는 여행이 가을의 낭만을 채워주는 방법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 이 기사는 하이미디어피앤아이가 발행하는 월간 '여행스케치' 2017년 9월호 [특집]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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