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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해안단구 위를 걷다, 정동심곡 바다부채길
해안단구 위를 걷다, 정동심곡 바다부채길
  • 김샛별 기자
  • 승인 2017.09.05 1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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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층층이 솟아 있는 이야기를 따라
정동심곡 바다부채길 탐방로 끝에 부채바위를 볼 수 있다. 사진제공 / 강릉관광개발공사

[여행스케치=강릉] 정동항부터 심곡항까지를 잇는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이하 바다부채길)’은 대표적인 드라이브 코스인 헌화로에 추가된 명소다.

바다와 가장 가까운 도로인 헌화로지만 바다 위를 걸으며 좀 더 가까이 볼 수 있게 된 것은 특히나 트레킹을 사랑하는 이들에겐 반가운 소식. 특히 바다부채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해안단구 아래 절벽을 따라 걷는 길로, 군시설물로 인해 그간 개방되지 않았던 길이다.

다양한 식생들을 관찰할 수 있는 정동심곡 바다부채길. 사진제공 / 강릉시청 해양수산과

깎아지를 듯한 해안 절벽에 피어난 꽃

우뚝 솟은 해안절벽과 펼쳐진 바다, 그 속에서 솟아난 국내 최대 규모의 해안단구. 천혜의 자연을 경탄해서일까. 정동과 심곡은 유난히 설화가 많은 지역이다. 그 중 바다부채길이 난 헌화로는 <헌화가>의 배경이었을 것이라 추측하는 곳이다.

신라시대 33대 성덕왕(聖德王) 때 강릉 태수로 부임한 순정공과 수로부인이 천 길 높이의 바위 봉우리가 있어 병풍과 같이 바다를 두른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석봉 꼭대기에 핀 철쭉꽃을 보곤 꽃을 꺾어다 바칠 이를 찾았으나 위험해 불가능하다며 다들 손을 내저었다.

그때 곁으로 암소를 끌고 지나던 노인이 수로부인을 위해 꽃을 꺾어 바치며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가 바로 <헌화가>다.

바다부채길은 한 편으로는 산을, 한 편으로는 바다를 끼고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수로부인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절벽 위 철쭉꽃처럼, 가파른 산세엔 해식애(해안 절벽)가 이어진다.

흙 한줌 제대로 나기 어려울 것 같은 절벽에 철쭉은 물론 바위틈 여기저기에 향나무가 뿌리내리고 있고, 소나무들이 분재처럼 자란다. 절벽 위, 단구의 위로 갈수록 상수리, 떡갈, 신갈, 졸참, 갈참나무 등을 ‘참나무과’의 나무들이 바닷가를 마주본 기슭에 군락을 이룬다.

아래에서는 잘 확인이 안 되지만, 절벽 위로는 뾰족한 산이 아니라 평탄한 대지가 드넓게 펼쳐 있다. 이를 파식 대지라 한다.

송지용 강릉관광개발공사 바다부채길 운영TF팀 주임은 “파식대지는 파도에 의해 깎여 평평해진 것을 뜻한다”며 “정동진에서 남쪽으로 금진항까지 다섯 계단의 대지가 차례로 쌓여 있는데, 예전엔 모두 해저에 있었다는 증거”라고 설명한다.

투구를 쓴 장수의 모습을 닮았다 하여 '투구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 사진제공 / 강릉관광개발공사

기암괴석과 이야기

지각 변동과 파식으로 인한 기암괴석이 즐비한 바다부채길이지만 특히나 눈에 띄는 두 개의 바위가 있다. 먼저 발견하게 되는 것은 투구바위다. 정동에서 출발했다면 커다란 바위가 보이는데 심곡 방향으로 조금 더 걸으면 바위 안쪽이 꼭 사람 얼굴만큼 깎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생김새가 투구를 쓴 장수의 모습을 했다 하여 지역 주민들은 ‘투구바위’라 부른다. 이 바위에는 고려시대 명장인 강감찬 장군과 관련된 ‘육발호랑이의 내기두기’ 설화가 어려 있다.

발가락이 여섯 개인 무서운 육발호랑이가 밤재를 넘어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스님으로 변해 내기 바둑을 두자고 했다. 열십자의 바둑판을 그려놓고 호랑이가 이기면 사람들을 잡아먹었는데, 당시 강릉으로 넘어가는 길이 밤재 길 뿐이라 많은 사람들이 호랑이에게 죽임을 당했다.

마침 그 당시 강감찬 장군이 강릉에 부임해와 마을 주민들이 밤재의 육발호랑이를 없애달라 간청하였다. 장군은 ‘이 편지를 받은 즉시 그 곳에서 떠나거라. 만약 떠나지 않으면 일족을 전멸시킬 것이다’라는 편지를 써 관리의 편에 보냈다고. 육발호랑이가 강감찬 장군임을 알아보고 백두산으로 도망갔다는 설화다.

바다를 향해 부채처럼 펼쳐져 있다고 해 '부채바위'라는 별명이 붙었다. 사진제공 / 홍원문

투구바위에서 약 800m 정도를 걸으면 모습을 드러내는 바다를 향해 넓게 펼쳐진 부채 모양의 바위에도 설화가 깃들어 있다. 심곡의 서낭당에는 여서낭 세 분이 모셔져 있는데, 옛날 어떤 사람이 바닷가에 나가보라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나가보니 여서낭 세 분이 그려진 그림이 떠내려 오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서낭당을 짓고 거기에 모시게 되었는데, 아직까지도 그림의 색이 변하지 않고 있다. 송지용 주임은 “이곳 사람들은 서낭신이 몹시 영험이 있다고 믿는다”며 “지금도 풍어제는 물론 크고 작은 제(第)가 행해진다”고 말한다.  

해안단구의 층을 살펴볼 수 있으며(좌), 탐방로 처음과 끝엔 몽돌해변(우)을 만날 수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동해 탄생의 비밀을 간직한 해안단구

천연기념물 제437호인 정동진 해안단구는 한반도 지형이 형성된 지질학적 가치를 드러낸다. 2300만년 전 지각변동으로 일본이 떨어져 나가고 동해가 열리며 ‘동고서저’의 한반도 지형이 형성되었다는 증거이기 때문.

하지만 그 옛날, 사람들은 지질구조나 퇴적환경, 해수의 침식작용, 해수면 변동에 대한 연구보다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궁금증으로 이곳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깎아지른 듯한 해안절벽, 투구와 부채 모양을 닮은 커다란 바위, 45도 각도로 기울어진 층이 드러나는 해안단구… 왜 저 바위들은 저런 모양을 하고 있었을까? 왜 이곳은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하고 있을까? 이런 궁금증들에 대한 답이 이야기를 만들어낸 게 아닐까.

그 이야기를 품고 더 아름다워진 비경을 가만 감상하다 보면 파도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부채길 시작과 끝에 있는 작은 몽돌해변에서 들려오는 소리. 파도가 밀려왔다 쓸려가며 물결이 자글자글 몽돌 사이를 빠져나가는 소리가 마치 이야기를 숙덕이는 소리처럼 들린다.

Info 정동심곡 바다부채길
코스
정동 안내소(썬크루즈 리조트)~해안 단구 입구~몽돌 해변~해식애 데크~거북바위~투구바위~해식애 데크~부채바위~식물관찰로~작은 부채바위~전망대(약 2.86km, 약 1시간 20분 소요)
입장료 일반 3000원, 청소년·군인 2500원, 어린이 2000원
입장시간 오전 9시~오후 4시 30분 (매표시간 3시 30분까지)
주소 강원 강릉시 강동면 심곡리 114-3 (심곡매표소) 강원 강릉시 강동면 헌화로 950-39 (정동매표소)
문의 033-641-9445 (심곡매표소), 033-641-9444 (정동매표소)

Tip
1. 정동 방향에서 심곡 방향으로 내려가는 코스이기 때문에, 정동 방향에서 시작하는 것이 수월하게 걸을 수 있다. 주말에는 정동-심곡 간 셔틀버스가 운행하지만 평일에는 운행하지 않으므로 택시를 타고 돌아오거나 길을 되돌아 걸어야 한다. 또한 약 1시간 20분 가량이 소요되는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은 중간에 화장실이 없다. 매표소 근처의 화장실 이용 후 출입하길 권한다.
2. 풍랑주의보, 풍랑경보 등의 기상특보 발령시 바다부채길 입장이 통제된다. 개/폐장여부는 당일 오전 8시 30분 홈페이지(http://searoad.gtdc.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3. 바다부채길 탐방로 내 군부대 시설물은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에 따라 사진 촬영과 인터넷 노출이 금지되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 이 기사는 하이미디어피앤아이가 발행하는 월간 '여행스케치' 2017년 10월호 [특집]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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