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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동학혁명의 '불씨'된 마애불 비결록
동학혁명의 '불씨'된 마애불 비결록
  • 조용식 기자
  • 승인 2017.09.06 1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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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신앙, 이상세계를 구현하리라
전북 고창 선운사에는 동학혁명과 관련된 비결록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사진 조용식 기자

[여행스케치=고창]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마애불상 중의 하나인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선운사를 창건한 검단선사의 비결록이 감실(신주를 모셔두는 장)에 있다고 전해지면서 두 번의 상처를 받는다. 한 번은 전라도 감찰사로 부임한 이서구의 호기심으로 또 한번은 그로부터 70여 년 후인 19세기 말 동학의 정읍대접주인 손화중에 의해서다.

예언서인 ‘비결록’, 동학운동의 불씨 되어
마애불과 관련된 설화는 생각보다 가까운 시대에 있다. 김경태 선운사 문화재 담당자는 “전라도 감찰사인 이서구가 1820년에, 동학운동을 이끈 손화중이 1892년에 비결록을 가져갔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며 “그런데도 불구하고 비결록에 어떤 내용이 적혀 있었는지는 구설로만 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안내판에는 ‘이서구가 감실을 열자 갑자기 풍우와 뇌성이 일어 그대로 닫았는데, 책 첫머리에 “전라감사 이서구가 열어 본다”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끝에 ‘비결록은 19세기 말 동학의 접주 손화중이 가져갔다’고 적힌 문구에 더욱 관심이 끌리는 대목이다.

선운사에서 2.6km 떨어진 도솔암. 사진 조용식 기자

손화중의 고향은 전북 정읍이다. 지리산 청학동에 들어가 수도생활을 했던 그는 동학에 입교한다. 그 후 고향인 정읍과 그 주변으로 거처를 옮기며 포교활동에 정진한다. 동학운동이 한창일 무렵 전북 정읍의 고부를 중심으로 “미륵부처님의 배꼽에 신기한 비결이 들어있는데 그 비결이 나오는 날 한양이 망한다”라는 말이 나돌았다고 한다. (출처 문화콘텐츠닷컴)

1892년 정읍대접주인 손화중이 민중을 구원할 이상세계를 만들기 위해 비결록이 필요하다고 결의하고, 동학도 300여 명이 도솔암으로 올라간다. 이들은 도솔암 바위의 마애불이 지상 3.3m, 불상의 높이 15.6m에 있기에 청죽 수백 개와 새끼줄 수천 다발로 임시가교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손화중은 비결록을 자신의 품에 넣게 된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경전을 넣는 윤장대. 사진 조용식 기자

손화중은 형장의 이슬로...500년 조선도 무너져
손화중이 비결록을 손에 쥐었다는 소문이 돌면서 무장, 고창, 영광, 흥덕, 고부, 정읍, 태인, 전주 등 전북 일대에서 동학도를 지원한 사람이 수만 명에 이르게 된다. 당시 ‘비결록이 세상에 나오는 날 한양이 망한다’라는 유언비어가 돌았다고 한다. 이는 조선말 부패한 관료들에 의해 썩은 나라가 빨리 망하기를 바라는 민심의 만든 이야기라는 설도 있다.

“이조 500년 후에 미륵석불의 복장을 여는 자가 있을 것이며, 그 비기가 세상에 나오면 나라가 망할 것이요. 그런 후에 다시 새롭게 흥할 것이다”라는 내용이 적혔다는 소문도 같은 맥락이다.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사진 조용식 기자

동학교도였던 오지영은 자신이 쓴 <동학사>에서 ‘결국 동학도교들은 석불의 배꼽을 깨고 비결을 꺼냈고, 이 일로 각지의 동학도 수백 명이 잡혀 들어가 문초를 받았고, 결국 주모자 세 명(전봉준, 김개남, 손화중)은 사형을 당했다’라고 적고 있다. 손화중은 1895년 4월 전봉준과 함께 사형에 처한다.

마애불 오른쪽으로 ‘도솔천 내원궁’이라는 현판의 일주문이 있다. 이 일주문을 지나 200개의 계단을 오르면 천인암이라는 기암절벽과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사이에 내원궁이라는 암자를 만날 수 있다. 이 암자는 고통받는 중생을 구원한다는 지장보살을 모신 곳으로 상도솔암이라도 부른다.

진흥왕이 머물던 진흥굴과 도솔천이 검은 이유
도솔암에서 내려오면 왼쪽으로 천연기념물 제354호인 장사송이 세워져 있다. 이 소나무는 지상 1.5m 되는 높이에서 8개의 가지가 사방으로 펼쳐져 큰 우산 모양을 하고 있다. 이 소나무는 이곳의 옛 지명인 장사현 이름을 따서 장사송이라 불린다. 또한 옆의 진흥굴과 관련하여 진흥송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200개의 계단이 시작되는 도솔천 내원궁의 일주문. 사진 조용식 기자

장사공 뒤로 보이는 선운산 진흥굴은 신라 24대 왕인 진흥왕이 말년에 왕위를 버리고 머물렀던 곳이다.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어두컴컴한 굴의 내부를 만나게 된다. 이 굴은 암석의 풍화작용을 받아 갈라진 틈(절리)이 계속 성장하면서 천정과 옆면의 암석표면이 양파 껍질처럼 층상으로 벗겨지는 박리작용 때문에 형성된 자연 동굴에 진흥왕이 머물면서 인공적인 모습도 갖추고 있다.

선운사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옆으로 도솔천이 흐른다. 도솔천을 자세히 보면 다른 계곡물과는 다르게 물이 검게 보인다. 이는 도솔천 주변으로 자생하고 있는 도토리와 상수리 등 참나무류와 떡갈나무 열매, 낙엽류 등에 포함된 타닌 성분이 바닥에 침착되어서 생기는 현상이다. 미관상으로는 검게 보여 수질 오염을 염려하지만, 실제로 도솔 계곡의 물은 절대 오염된 것이 아니다.

선운사 도솔천 약수터. 사진 조용식 기자

유유히 흐르는 도솔천 옆으로 세워진 탑돌이가 멀리 도솔천 마애불을 바라보는 듯하다. 큰 덩어리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돌멩이는 120여 년 전 마애블의 비결록의 행방을 알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며, 선운사를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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