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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시간을 달리는 철도박물관
시간을 달리는 철도박물관
  • 홍리윤 기자
  • 승인 2017.10.13 1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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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추억여행
높고 커다란 입간판은 멀리서도 눈에 들어온다. 사진 / 홍리윤 기자

[여행스케치=의왕] 경인선이 첫 기적을 울린 1899년 이후 쉼 없이 달려온 우리나라 철도의 역사. 그 옛날 증기기관차부터 추억의 통일호까지, 고고(高古)한 기차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마다 시대의 모습이 묻어난다.

인천~수원~여주를 운행했던 수인선 협궤동차. 사진 / 홍리윤 기자

“춘천 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오월의 내 사랑이 숨 쉬는 곳….”

1989년에 발표된 김현철의 노래 <춘천 가는 기차>에 담긴 그 시절 기차 여행의 낭만. 이 노래를 들으며 어떤 이는 경춘선을 타고 강촌이나 대성리로 MT를 갔던 추억을 떠올릴 테고, 누군가는 연인과 함께 떠났던 여행의 설렘을 기억할 것이다. 청춘의 시기를 지나온 세대라면 누구나 기차에 관한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지금은 사라진 옛 기차에 대한 추억 말이다.

기차박물관 중앙홀에 있는 파시1-4288 스팀기관차. 사진 / 홍리윤 기자

어디부터 볼까?

1호선 의왕역에 내려 10분 정도 걷다 보면 커다란 간판 하나가 눈에 잡힌다. 1988년에 문을 연 ‘철도박물관’이다. 우리나라 철도 역사가 살아 있는 이곳은 국내 최대 규모의 철도 관련 박물관이다.

정문에 들어서면 언뜻 놀이공원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수 있는데 2만8000여m²의 너른 부지 곳곳에 서 있는 수십 량의 열차가 먼저 보이기 때문이다. 철도박물관에 있는 5000여 점의 전시품 중, 실물 열차는 모두 야외전시장에 있고 나머지는 본관 실내전시장에 있다. 관람은 실내외 어디서나 시작해도 상관없고 시간제한도 없어 발길 닿는 대로 자유롭게 구경하면 된다. 좀 더 효율적으로 관람하고 싶다면 실내전시장에서 철도의 역사를 한눈에 담은 뒤에 실외전시장의 열차들을 관람하길 권한다.

정문에서 멀리 앞쪽에 보이는 건물 한 동이 본관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높다란 천장과 커다란 흑백 사진을 배경으로 홀 중앙에 당당히 서 있는 꼬마 기차에 시선 집중. 1930년 ‘파시1-4288 스팀기관차’의 국내 첫 생산을 기념해 축소 제작한 것인데 실제 운행이 가능했다고 한다. 사람은 탈 수 없는 크기지만 이 꼬마 기차가 전시된 곳은 인기 포토존이라고 한다.

“꼬마 기차 뒤에 걸린 흑백 사진을 유심히 보면 조선인은 모두 상복을 입고 있어요. 저 사진은 1897년 3월 22일에 인천 우각동역 터에서 열린 경인선 기공식 기념사진이에요. 명성황후는 1895년 10월 8일에 시해됐는데 약 2년이 지나서야 장례가 치러졌거든요. 저 사진을 찍을 당시는 국상이 채 끝나지 않은 시기였죠.”

임향희 철도박물관 매니저의 설명을 들으며 잊고 있던 역사를 되새겨본다.

철도모형 디오라마실. 사진 / 홍리윤 기자

한눈에 보는 철도의 역사

실내전시실의 각 코너에서는 NFC와 QR코드를 이용해 음성해설을 들을 수 있다. 둘 중 편한 것을 선택해 안내된 위치에 스마트폰을 갖다 대면 된다.

1층에서는 동선을 따라 ‘역사실’을 먼저 관람한다. 이곳은 철도 관련 유물과 모형을 시대별로 나눠 전시하는데 최초로 경인선을 달렸던 ‘모갈탱크형 증기기관차’에 이어 경부선과 경의선, 호남선, 충북선, 중앙선 등 철도의 발자취를 따라 전시물이 이어진다.

첫 기찻길인 경인선 개통 당시 일반 백성에게는 기차가 ‘그림의 떡’이었다. 서울서 인천 한 번 다녀오자면 쌀 반 가마니가 날아갈 판이었다고. 승객이 없자 독립신문에는 광고문이 실렸는데 QR코드의 고운 음성이 전해주는 그 내용이 참 재미있다. “속도가 빨라 시간을 절약하고, 기차 안에서 대소변을 볼 수 있으며 의자에 앉아 경치를 구경할 수 있다.” 당시 백성들은 기차를 처음 보고는 크게 충격을 받기도 했다는데 ‘동력’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철도의 이면에는 뼈아픈 역사도 있다. 이 철도들은 모두 일제가 우리나라를 약탈하기 위한 도구로써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진 길을 따라 6·25 전쟁 당시 피난민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보며 새삼 느낀 건 철도의 역사는 우리네 삶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열차운전체험실에서 운전 체험을 해보는 어린이. 사진 / 홍리윤 기자

디젤전기기관차 등 각종 모형과 실제 차량의 부품을 보며 기차의 원리와 변천 과정을 알아보는 ‘차량실’을 둘러본 후엔 기관실을 재현해놓은 ‘열차운전체험실’에서 운행을 체험할 수 있다.

이어지는 ‘철도모형 디오라마’실은 실내전시의 하이라이트. 증기기관차에서 KTX까지 13개 열차의 모형을 컴퓨터로 조작해 움직이는데 우리나라 열차의 변천사를 알기 쉽도록 직원의 안내 멘트가 곁들여진다. 기차 하나가 출발할 때마다 관람객이 함께 “출발!”이라고 외치는데, 특히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라고. 관람 중인 유치원생들이 신나게 구호를 외치고, 연신 “우와”하며 탄성을 지른다.

2층에서는 신호의 변천과 철도의 원리 그리고 옛 철도 직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전시품을 만난다. 특히 ‘운수운전실’에서는 철도 직원의 제복과 소지품을 비롯해 연도별 승차권 등 추억 어린 소품이 즐비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비둘기호 객차의 내부. 사진 / 홍리윤 기자

응답하라! 통일호와 비둘기호

본관 밖으로는 공원처럼 꾸며진 야외전시장이 있다. 이곳에서는 일제강점기 특급 여객열차였던 ‘파시형 증기기관차 23호’부터 추억 돋는 ‘비둘기호’와 ‘통일호’까지 총 23점의 실물 기차가 관람객을 맞는다.

이중에서도 특히 통일호와 비둘기호에는 많은 이들의 추억이 서려 있지 않을까. 1955년에 운행을 시작해 2004년을 마지막으로 역사에 남은 통일호는 개통 당시엔 급행을 압도하는 초특급 열차였다고 한다. 이후 새마을호가 등장하면서는 급행으로, 비둘기호가 사라지면서는 완행으로 바뀌며 직급(?)이 낮아졌다. 전시된 통일호는 1965년에 제작되어 급행열차로 사용된 것. 천장에는 선풍기가 달려 있고 의자는 에메랄드 빛깔의 2인용이다.

통일호와 나란히 서 있는 ‘비둘기호’는 지나는 모든 역마다 정차하며 가장 느린 속도를 자랑(?)했던 열차. 이 느림보 열차는 1967년부터 30여 년을 충직하게 달리고 2000년에 퇴역했다. 딱딱한 고정식 의자와 천장에 매달려 힘겹게 돌아갔을 선풍기의 모습에 시간의 더께가 느껴진다. 게다가 비지정 자유석으로 발권되었던지라 좌석에 앉기 위해서는 뛰어야만 했단다. 그 속엔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있었을까.

'메기특동'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대통령특별동차. 사진 / 홍리윤 기자

대통령은 뭘 타고 다녔나

임향희 매니저에게 대표유물은 뭐냐고 물었더니 등록문화재 제419호인 대통령전용객차는 꼭 보라고 일러준다.

“대통령전용객차 내부에는 봉황 문장이 새겨진 대통령 전용의자와 책상, 침실, 식당, 샤워실까지 작은 공간에 있을 건 다 갖췄어요. 특히 회의실이 눈길을 끄는데 금색 의자가 6석 있고 붉은 카펫에 천장엔 고급 장식이 달렸어요. 꼭 호텔 같아요.”

자주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외관이 무척 고급스러운 대통령전용객차는 1927년에 일본에서 만든 승객용 객차를 1955년에 서울로 가져와 대통령 전용으로 개조한 것. 이승만 대통령부터 박정희 대통령까지 사용했는데 전직 대통령 유물인 만큼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한다.

또 다른 대통령 열차가 있다. 밝은 초록빛의 쌍둥이 열차로 이름하여 ‘대통령특별동차’다. 빼다 박은 두 개의 동차가 의좋게 서 있는데 이름과 안 어울리게 귀여운 자태를 뽐낸다.

“철도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게 ‘메기특동’이에요. 아, 대통령특별동차요. 꼭 맹꽁이같이 생기지 않았나요? 직원들 사이에서는 ‘맹꽁이’, ‘메기특동’이라고 불러요. 예전부터 불렸던 유명한 별명이래요.”

임향희 매니저의 말을 듣고 보니, 맹꽁이보다는 메기에 더 가까운 듯하다. 자세히 보면 왼쪽 동차에는 휘장이 붙어 있고 오른쪽 것에는 붙어 있지 않다. 왼쪽이 대통령특별동차고 오른쪽은 대통령 경호원들이 타던 차다.

“메기특동은 박정희 대통령부터 김대중 대통령까지 사용했어요. 휘장을 빼고는 두 개의 외관이 똑같아요. 경호를 위해 대통령이 어느 차에 탔는지 알 수 없도록 똑같이 만들었대요.”

야외전시장을 둘러보며 본관 뒤쪽에 놓인 철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철길 주변은 포토존으로도 인기 만점인데 배경이 좋아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박물관을 둘러보며 철도 역사에 담긴 슬프거나 유쾌한, 때로는 웃픈 이야기를 사진처럼 가슴에 담았더니 추억 하나가 또 생겼다.

Info 철도박물관
입장료 성인 2000원, 아동·청소년 1000원
입장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월요일·공휴일 다음날 휴무)
주소 경기 의왕시 철도박물관로 142
문의 031-461-3610

※ 이 기사는 하이미디어피앤아이가 발행하는 월간 '여행스케치' 2017년 11월호 [특집]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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