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4월호
파도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채우는 여행
파도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채우는 여행
  • 노규엽 기자
  • 승인 2017.11.14 09: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해파랑길 34코스 동해 구간
해파랑길 34코스 동해 구간은 바다를 가까이 보며 파도소리와 함께 걷는 길이다. 사진 노규엽 기자

[여행스케치=동해] 강원도 동해시에서 강릉시로 넘어가는 해파랑길 34코스는 호젓한 겨울바다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길이다. 동해시의 크고 작은 항구를 지나는 동안 깊고 푸른 동해의 파도소리로 심신이 정화되는 기분. 묵호에서 망상까지 동해 구간을 걷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해파랑길 34코스의 출발지는 묵호역으로 잡아야 한다. 동해 시내를 지나오는 33코스가 묵호역 뒤편으로 연결되기 때문. 그러나 묵호항 인근에 무료 주차장이 있고, 묵호등대 등 주요 지점에 무료 주차가 가능한 곳이 많아 출발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다양한 수산물을 만날 수 있는 묵호항
묵호역에서 걷기를 시작한다면 역 앞 사거리에서 기차역을 끼고 오른쪽으로 향하면 해파랑길 표식을 찾을 수 있다. 이후 약 1km 가량 도로를 따라가는 동안 별다른 길표식을 찾기 어려운데, 묵호항을 향해 계속 직진만 하면 되므로 길을 놓칠 염려는 없다.

묵호항은 동해를 대표하는 수산물들이 모이는 곳. 아침 일찍 어선들이 입항하는 시간과 맞는다면 어시장에서 금방 잡은 싱싱한 횟감을 구할 수 있으며, 묵호시장을 비롯한 곳곳에 횟집이며 건어물 판매점들이 늘어서 쇼핑을 즐기기에도 최적이다. 특히 들러볼만한 곳은 묵호항 활어판매센터. 어시장이 열리는 새벽 시간 이후부터 저녁까지 싱싱한 활어를 구입할 수 있는 곳이다. 해파랑길 34코스를 동해 구간만 걷는다면 반나절이면 충분하니 출발지에서부터 든든히 배를 채우고 이동하기에도 좋다.

묵호 수변공원에는 묵호항에서 포장한 회를 먹으며 망망대해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사진 노규엽 기자

계속 도로를 따라 걸으면 동해시수협수산물유통센터 뒤편에서 묵호 수변공원을 만난다. 묵호항 인근에서 회를 포장해 온다면 바다를 보며 망중한을 즐기기에 좋은 장소를 제공한다.

Tip 묵호항 활어판매센터
묵호항 활어판매센터의 영업시간은 하절기(4~10월) 오전 5시부터 오후 8시 30분까지, 동절기(11~3월) 오전 6시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이다.

묵호의 옛 생활상이 엿보이는 논골담길
묵호 수변공원에서 도로 맞은편을 보면 ‘등대오름길’ 입간판이 보인다. 묵호등대로 오르는 길이자 묵호항에 기대어 살던 사람들의 흔적을 볼 수 있는 논골담길 입구다. 산비탈을 따라 형성된 논골마을은 우리가 흔히 ‘달동네’라 불렀던 곳. 이곳 마을 주민들은 묵호항을 중심으로 살아갔지만, 가진 것이 없어서 땅값이 싼 언덕빼기에 터전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묵호항이 석탄을 실어 나르던 무역항이던 시절에도, 오징어며 명태를 무수히 잡아오던 어항이던 시절에도 가난한 사람들은 산비탈 마을에서 삶을 영위해왔다. 세월이 흘러 석탄산업과 오징어ㆍ명태잡이가 시들해지면서 항구도 쇠락해갔고, 논골마을 사람들도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어딘가로 떠나며 산동네 마을도 썰렁해졌다.

논골마을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건 ‘논골담길 프로젝트’로 인해 좁은 골목들을 벽화길로 재단장한 이후. 주민들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옮겨 놓았다 하여 ‘이야기 담(談)’을 사용한 논골담길에는 옛날 어부들의 하루를 위안해주었던 주막의 모습과 고기를 손질하는 아낙네들, 좁은 골목을 뛰어다니며 놀던 아이들의 모습 등이 되살아났다. 좁은 골목, 계단을 따라 오르며 숨이 차는 길이지만, 이야기가 담긴 그림을 보며 항구 인근 어촌의 생활상을 떠올려보기 좋은 길이다.

논골담길에는 묵호항에 기대어 살던 산동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벽화로 그려져 있다. 사진 노규엽 기자
바람의 언덕에서 아비를 기다리고 있는 아내와 아이의 동상을 만날 수 있다. 사진 노규엽 기자

계단이 끝나는 무렵에는 묵호등대와 출렁다리로 가는 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걷기꾼을 유혹한다. 그러나 논골마을 꼭대기까지 거의 오른 마당에 ‘바람의 언덕’을 가보지 않을 수 없다. ‘바람의 언덕’은 묵호등대를 잠시 뒤로 미루고, 등대 반대 방향으로 골목을 이어가면 끄트머리에서 만날 수 있다.

논골담길 초행이라면 ‘바람의 언덕’에 도착해서야 알게 되는 사실 하나. ‘wind’의 바람이 아닌, ‘wish’의 바람인 것이다. 산동네 마을의 가장 꼭대기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바다 빛이 유난히 짙어, ‘검을 묵’에 ‘호수 호’를 사용한 묵호항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자리. 이 언덕에서 어부의 아내와 아이는 아비가 탄 고깃배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논골담길의 변신과 함께 ‘바람의 언덕’에는 아비를 기다리는 가족 대신 관광객들을 위한 전망데크와 카페 등이 들어서며 휴식과 낭만의 공간으로 거듭났다. 바다 전망이 좋은 논골카페 앞에는 1년 후에 배달되는 행복우체통이 있으니, 자신 또는 친지들에게 새로운 추억을 보내볼 수 있다.

바람의 언덕에서 추억 쌓기가 끝나면 묵호등대로 향한다. 등대 내부는 공개되지 않지만,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있어 묵호항 반대편의 바다를 시원하게 내려다볼 수 있다. 등대를 지나 내려가는 길에는 출렁다리도 있어, 작은 언덕빼기 하나를 오르내리는 동안 여러 가지를 즐겨볼 수 있는 논골담길이다.

작은 공원으로 꾸며진 묵호등대 앞. 시원한 조망을 즐기며 쉬어갈 수 있다. 사진 노규엽 기자
바람의 언덕과 묵호등대 앞에 행복우체통이 하나씩 있다. 엽서를 적어 넣으면 1년 뒤 추억을 되새겨볼 수 있다. 사진 노규엽 기자

까막바위에서 망상까지, 바다 그리고 바다
논골담길에서 내려오면 동해의 전설을 담고 있는 기암괴석 중 하나인 까막바위가 있다. 조선 중엽, 이 지역에 외적이 침입했을 때 그에 맞서 용감히 싸우던 호장(지금의 지역 유지)이 힘에 부쳐 잡혀가다 바다에 빠져 죽었고, 이내 큰 문어로 현신하여 마을을 침입한 배들을 몰살했다는 내용. 그리고 해안에 가까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 얼굴인 듯 유난히 큰 까막바위에는 호장의 영혼이 살고 있다고 전해진다. 전설과 함께 이곳에는 까막바위 회마을이 있어 바다를 바라보며 싱싱한 횟감을 즐기는 즐거움도 마련해준다.

까막바위부터 도로를 걸으며 해파랑길을 이어나간다. 간간히 차가 지나는 도로이지만 동해안 종주 자전거길이 지나는 구간이기도 해 걷기에 썩 나쁘지 않다. 도로 옆을 지난다는 단점을 상쇄하는 것은 바다와 바짝 붙어 파도소리를 들으며 걷기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점. 어달항을 거쳐 대진항까지 동해의 작은 항구마을을 지나치며 내내 바다를 바라보는 길이 썩 나쁘지 않다. 각 항구마다 작은 해수욕장들이 붙어있으니 천천히 걸으며 겨울바다의 정취도 즐기기 좋다.

까막바위부터 도로를 따라 걸으며 마주치는 동해시의 동해 풍경. 사진 노규엽 기자
작은 해수욕장을 지나치며 겨울바다의 정취를 느끼기도 좋다. 사진 노규엽 기자

대진항마저 지나면 망상으로 길이 이어진다. 우리나라 최초의 오토캠핑장으로 익히 알려진 망상해수욕장은 여름철 최고의 피서지임에 틀림없지만, 사계절 내내 다른 정취를 느껴보기에 좋은 넓은 백사장이 있는 곳. 오토캠핑장에는 카라반 캠핑과 텐트 숙박 등이 가능하고, 해수욕장이 끝나는 지점에는 오토캠핑리조트도 생겨, 바다를 보러 온 여행자만이 아닌 캠핑족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 중 하나이다.

망상오토캠핑리조트 이후로는 망운산 자락을 걸어 강릉시 옥계면으로 넘어가도록 길이 이어진다. 묵호항으로 돌아가는 대중교통이 마땅치 않아 택시를 불러야 하므로, 동해 구간의 짧음이 아쉬우면 심곡약천마을까지 걷기를 연장하는 방법도 있다.

사계절 언제나 탁 트인 정경에 취할 수 있는 망상해변. 사진 노규엽 기자

※ 이 기사는 하이미디어피앤아이가 발행하는 월간 '여행스케치' 2017년 12월호 [slow travel]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