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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바다향 가득 담은 속이 꽉 찬 붉은대게
바다향 가득 담은 속이 꽉 찬 붉은대게
  • 노규엽 기자
  • 승인 2017.11.14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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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 후포 위판장
겨울부터 살이 차오르기 시작하는 붉은대게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사진 노규엽 기자

[여행스케치=울진] 동쪽 바다의 겨울은 대게들의 살이 차오르는 계절. 그 중, 홍게라는 이름으로도 익숙한 붉은대게들이 가장 먼저 딱딱한 껍질 속 부드러운 살을 채우기 시작한다. 겨울을 대표하는 TAC(총허용어획량) 어종 중 하나인 진홍빛으로 제철을 알리는 붉은대게를 만난다.

붉은대게는 집게발을 포함한 10개의 다리를 늠름하게 펼친 모습이 워낙 크게 보여 대(大)게로 오해하기 십상이지만, 실은 다리들이 대나무와 같이 곧아서 대게라 불린다. 강원도 속초와 경상북도 울진, 영덕 등 동해 전역에 넓게 분포하는 어종이지만, 전국의 절반가량이 울진 후포항으로 모인다.

깊은 바다에서 온 붉은대게
새벽 6시 무렵부터 후포여객선터미널 방면 항구에 뱃고동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어 선상을 환하게 비추는 불빛과 항구를 오가는 자동차 불빛들이 번잡하게 섞인다. 지난밤에 들여온 붉은대게들을 하역하는 분주한 모습. 그 속에 후포항의 붉은대게 조사를 담당하는 이보형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조사원이 그날 어획된 붉은대게 생산량을 파악하기 시작한다.

“위판은 9시 이후에야 시작되지만 공장으로 옮겨갈 물량은 이른 새벽에 하역을 하기도 해요. 어획 중에 몸통이나 다리가 상한 붉은대게들은 곧장 공장으로 이동하는 거죠. 공장으로 가는 양이 전체의 90% 이상일 정도로 많습니다.”

붉은대게를 하역하는 불빛으로 분주한 후포항의 이른 새벽. 사진 노규엽 기자
붉은대게 생산량을 조사하고 있는 이보형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조사원. 사진 노규엽 기자

이보형 조사원의 말처럼 노란 박스(가구)에 가득 담긴 붉은대게들이 트럭에 차곡차곡 실려 항구 밖을 빠져나간다. 공장으로 가는 붉은대게들은 몸통과 다리를 분리하여 각각 냉동제품으로 만들기도 하고, 살을 빼낸 껍데기는 키토산 등을 만드는 용도로 쓴다. 후포항 인근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냉동 게살들은 국내보다는 주로 해외에 수출된다고 한다.

“7~8월 금어기를 제외한 사철 내내 붉은대게를 어획할 수 있지만, 살이 꽉 차서 제 맛을 내기 시작하는 건 겨울이죠. 붉은대게는 12월말부터 살이 차올라 1~2월에 최고의 맛을 내기에 2~3월이 최고인 대게와는 달라요.”

붉은대게는 바다 깊은 곳의 진흙이나 모래 바닥에 서식하기 때문에 통발을 이용해 어획한다. 통발 속에 청어나 오징어 등의 미끼를 넣고 바다 깊숙이 가라 앉혀 유인하는 것. 붉은대게는 수심 2000미터까지 잠수하는 어종인데, 성체가 될수록 위로 올라와 주 서식지는 1000미터 내외라고 한다. 수심 400미터를 전후해 주로 서식하는 대게와는 다른 생태학적 특징이다. 엄연히 다른 어종이지만 대게보다 가격이 싸서 혹자들은 붉은대게를 대게로 속여서 파는 일도 흔히 있었다.

깊은 바다 바닥에 사는 붉은대게는 통발로 어획한다. 사진 노규엽 기자
붉은대게와 대게를 구분하는 방법은 몸통 옆면을 보는 것이다. 사진 노규엽 기자

“대게와 붉은대게는 색도 모양도 비슷해서 나란히 보지 않고는 구분하기가 쉽지 않지만, 몸통의 옆면을 살피면 구분할 수 있어요. 마지막 다리에서 집게발로 이어지는 두 가닥 선이 하나로 붙으면 붉은대게입니다. 그리고 붉은대게는 두 선이 합쳐지는 지점 위쪽에 가시처럼 튀어나온 뿔이 하나 더 보여요.”

Info TAC란?
총 허용 어획량(Total Allowable Catch)을 뜻하는 말로, 수산자원의 과도한 어획을 막기 위해 11개 어종을 정해 1년간 어획할 수 있는 총량을 정해놓은 것이다.

구경만 해도 장관인 붉은대게 위판 풍경
해가 뜨기 시작하면 주 무대는 위판장으로 옮겨간다. 위판장 앞 선상에서는 수작업으로 붉은대게를 분류하고 차곡차곡 쌓는 작업이 한창이다. 상품성이 떨어지지 않도록 공장으로 갈 물량보다는 조심스럽게 하역하는 모습이다. 위판장에서는 주로 활어 위판이 이루어지는데, 흔치 않게 선어 위판이 진행되는 날도 있다고. 운 좋게 이런 날에 후포항에 방문한다면 붉은대게를 아주 싸게 살 수도 있다고 하나, 확률은 높지 않다고 한다.

활어로 판매할 붉은대게를 분류하고 있는 어민들의 모습이 사뭇 조심스럽다. 사진 노규엽 기자
붉은대게 활어 위판은 아주 빠르게 진행되어 순식간에 끝난다. 사진 노규엽 기자

선어 위판까지 진행되고 나면 후포항 아침 풍경의 하이라이트인 활어 위판이 시작된다. 다리를 옴지락거리며 살아있음을 알리는 붉은대게들이 하늘로 배를 드러낸 채 위판장에 나열되고, 크기 별로 분류된 붉은대게들이 일렬종대로 자리 잡는 장면은 가히 장관. 아침 햇살에 비쳐지는 껍질의 색도 영롱하다.

그러나 이 장면을 볼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짧다. 붉은대게들이 자리를 잡기 무섭게 위판이 진행되어 팔려나가기 때문. 한 무리의 붉은대게가 나열되면서 위판을 시작하고 값을 정한 뒤 마무리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5분. 위판장을 가득 채울 것 같이 많아 보이던 붉은대게들은 불과 1시간 정도 만에 스쳐지나가듯 사라진다.

한편, 후포항 위판장에서 위판 장면을 구경하면서 즐길 수 있는 별미가 있다. 바로 붉은대게로 국물을 낸 어묵을 판매하는 포차가 두 군데 있는 것. 새벽부터 움직이는 어민들의 허기를 달래주는 곳이지만, 누구라도 저렴하고 맛난 어묵으로 추위를 달랠 수 있다.

붉은대게는 뭐니뭐니해도 찜이 최고
후포항은 붉은대게의 최대 집산지인 만큼 항구 주변으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식당들도 넉넉히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라면에 붉은대게를 넣거나 버터구이, 비빔국수, 짬뽕 등 붉은대게를 맛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개발되었다. 그래도 이보형 조사원이 말하는 가장 맛있게 즐기는 방법은 전통적인 찜이다.

“붉은대게의 맛은 씹을 때 느껴지는 탄력이죠. 식감이 좋아서 대게보다 붉은대게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꽤 있어요. 그 식감을 느끼기에는 역시 찜이 최고입니다.”

우리가 먹는 붉은대게는 몸통 세로길이가 9cm 이상인 개체이다. 사진 노규엽 기자

그렇다면 크기가 클수록 맛도 좋을까? 대답은 NO다. 위판장에서는 크기에 따라 값이 정해지지만, 먹을 때 맛의 기준은 살이 얼마나 차있냐는 것. 붉은대게의 살이 알차게 들어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으로는 다리를 직접 눌러보거나 불빛에 비춰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수조 속에 잠겨있는 붉은대게를 이리저리 만져보기는 어려운 일. 그래서 이보형 조사원은 “껍질이 확실하게 붉은 걸 고르면 실패를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어느 식당에서든 붉은대게를 고르기만 하면 찜통에 잘 쪄서 손질까지 한 후 내어준다. 몸통과 다리를 잘라 서빙 된 붉은대게 앞에서는 달리 말이 필요 없이 이쑤시개처럼 생긴 ‘게 포크’로 살을 쏙쏙 빼내 먹으면 된다. 달디 단 게살에 바다향이 가득 담긴 붉은대게 찜은 겨울여행의 시작을 제대로 실감케 해주는 맛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여행길에 깊은 바다의 향을 품은 붉은대게는 좋은 길동무가 되어줄 수 있다.

※ 이 기사는 하이미디어피앤아이가 발행하는 월간 '여행스케치' 2017년 12월호 [위판장 따라가는 수산자원 사계절]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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