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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6월호
그 시절, 우리민족은 헐벗고 굶주려야 했다
그 시절, 우리민족은 헐벗고 굶주려야 했다
  • 노규엽 기자
  • 승인 2017.11.30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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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전라북도 쌀 수탈 루트
군산세관 전경. / 사진 노규엽 기자

[여행스케치=군산] 서해안 쪽으로 드넓은 평야가 발달한 전라도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곡창지대이다. 우리 민족을 짓밟던 일제는 호남의 풍부한 쌀에 눈독을 들였고, 군산항을 이용해 수많은 쌀을 일본 열도로 실어 날랐다. 호남평야의 쌀을 옮기기 위해 일제는 철도와 도로를 이용했는데, 완주에서는 철도, 김제에서는 도로로 쌀 수탈이 이루어졌다.

호남의 쌀은 삼례에서 기차를 탔다

철도를 이용한 쌀 수탈 루트의 첫 번째 방문지는 완주군 삼례읍에 있는 삼례문화예술촌이다. 지금은 삼례문화예술촌으로 거듭나 아트갤러리, 카페, 책공방, 책박물관, 목공소 등이 있는 문화공간이지만, 그 건물들이 일제강점기에 양곡창고로 사용됐던 곳이다. 김영광 전라북도 문화관광해설사는 1916년 전라선 철길이 놓이면서 삼례역 인근에 창고를 지으면 쌀을 가져가기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라 말한다.

삼례문화예술촌에는 1920년대 지어진 양곡창고가 남아있다. / 사진 노규엽 기자

“일본인들이 처음에는 쌀을 사서 가져갔지만, 몇 년이 지나자 호남 지주들을 불러 ‘농지세를 높이면 너희들이 힘들어진다. 우리가 땅을 사줄테니 팔아라’고 했죠. 이에 더해 시라세이라는 일본인이 6년에 걸쳐 양곡창고 5동을 지은 것이 지금 남아있는 건물들입니다.”

삼례문화예술촌에 있는 건물들은 지금 봐도 규모가 어마어마하니, 일제가 우리 땅에서 얼마나 많은 쌀을 착취했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은 열차뿐 아니라 물길로도 쌀을 실어 날랐다고 한다. 삼례를 지나는 만경강이 군산 바다까지 닿는 점을 이용했던 것. 김영광 해설사는 “밀물 때 비비정이라는 정자 근처에 배를 정박시키고 쌀을 실어서 썰물을 이용해 군산까지 이동시켰다”고 말한다.

현재와 과거의 만경강철도를 볼 수 있는 비비정. / 사진 노규엽 기자

당시의 비비정은 아니지만 새롭게 지어진 비비정에 가보면 삼례에서 쌀이 이동했던 역사를 풍경으로 볼 수 있다. 아래로 흐르는 만경강 양옆으로 나란히 놓인 철교 2개. 왼편의 철교는 현재 열차가 다니는 만경강철교이고, 오른편에 보이는 철교가 쌀 수탈이 이루어졌던 옛 만경강철교이다.

지금은 폐선로이지만 레스토랑, 특산품 판매장, 갤러리, 카페 등이 모인 비비정예술열차가 세워져 있어 느낌을 더해준다. 강에 가까이 붙은 카페 테라스에서 차를 한 잔 마시며 만경강을 가로지르는 철교를 감상하기도 좋다. 보이는 방향은 쌀 수탈이 진행된 익산-군산 방면이 아닌 반대 방향이지만, 해질 무렵 풍경이 아름답다고 소문난 자리다.

옛 만경강철교를 통해 쌀 수탈이 진행되었다. / 사진 노규엽 기자

한편, 비비정이 자리한 언덕 아래 마을에 정자와 같은 이름인 ‘농가레스토랑 비비정’에도 들러볼 만하다. 입구에 남아있는 옛 삼례양수장은 1920년대에 지어져 삼례와 익산 지역에 상수원을 공급했던 건축물로, 호남지역의 쌀 재배와 연관이 있었다.

Tip 네비게이션에 비비정을 검색하면 ‘농가레스토랑 비비정’으로 안내해준다. 정자 비비정에 가려면 ‘비비정예술열차’또는 ‘비비정이야기’를 검색. 전망 좋은 카페인 ‘비비정이야기’옆으로 공용 주차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농가레스토랑 비비정’에서 산책을 겸해 비비정으로 오르는 것도 가능하다.

소설 <아리랑>을 배경으로 조성된 아리랑문학마을. / 사진 노규엽 기자

만경평야의 쌀이 군산으로 갔던 길

완주에서 철도를 이용한 쌀 수탈이 진행될 때, 김제에서는 도로를 이용해 쌀을 옮겼다. 실제 현장을 찾아가보기에 앞서 들르면 좋은 곳은 아리랑문학마을. 일제강점기의 민족 수난과 투쟁을 그린 조정래 작가의 소설 <아리랑>을 배경으로 꾸며놓아 당시 시대상을 느껴보기 좋다.

조정래 작가는 심도 있는 취재를 통해 사실에 입각한 일제의 쌀 수탈 과정을 소설로 써냈다. <아리랑>에 적혀있는 ‘물 좋고 산 좋은 데 일본놈 살고 논 좋고 밭 좋은 데 신작로 난다’는 말이 일제 수탈을 단편적으로 표현해낸 것이다. 

소설 <아리랑>을 배경으로 조성된 아리랑문학마을. / 사진 노규엽 기자
죽산면사무소에서 일제의 쌀 수탈 과정을 체험해볼 수 있다. / 사진 노규엽 기자

조윤정 김제시 문화관광해설사는 “아리랑문학마을은 일제가 우리에게 얼마나 잔인한 일을 했는지 느껴볼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하며, “전시관 앞의 면사무소, 정미소 등 재현된 근대기관 건물에서 일제의 쌀 수탈 과정을 생생하게 체험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있다”고 소개한다.

또한, 근대기관 건물 앞쪽에 세워져 있는 공적비도 중요한 역사의 기록. 구마모토 리헤이라는 일본인이 흉년에 선행을 베풀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쌀 수탈을 위한 방편이었음을 알려주는 비석이라고 한다.

일제의 강제 수탈에 대해 의미를 남기고 있는 공적비. / 사진 노규엽 기자

한편, 문학마을 전시관 뒤편으로 향하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를 기념하는 하얼빈역도 재현되어 있으니,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장소로 제격이다.

문학마을에서 전체적인 쌀 수탈 배경을 머리에 담았다면 쌀 수탈이 자행되었던 실제 건물을 볼 차례. 문학마을과 가까운 죽산리에 하시모토라는 일본인 대지주가 운영했던 일본인농장 사무실이 남아있다. <아리랑>의 무대로도 쓰인 건물로, 토지 수탈의 역사를 보여주는 산 증거이다.

김제 죽산리에 쌀 수탈을 지휘했던 일본인의 농장 사무소 건물이 보전되어 있다. / 사진 노규엽 기자

만경평야의 쌀이 지나다녔던 새창이다리도 빠질 수 없는 코스. 정식 명칭은 구 만경대교로, 1933년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콘크리트 다리라고 한다. 엄청난 양의 쌀을 운반하기 위해 튼튼한 콘크리트 다리를 새로 지었을 정도로 일제는 치밀했던 것이다.

지금은 차량이 다니지 않는 기념물적인 존재로 남아, 낚시꾼들이 만경강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세월의 무상함도 느껴진다.

Info 아리랑문학마을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6시(11월~2월은 오후 5시까지)
주소 전북 김제시 죽산면 화초로 180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에서 군산의 역사를 요약해볼 수 있다. / 사진 노규엽 기자

군산근대유적들에 남은 쌀 수탈 역사

철도, 도로 등으로 옮겨진 호남의 양곡들은 군산항을 거쳐 일본 열도로 이동했다. 군산항에 쌀 수탈의 현장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것. 특히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는 군산의 해양역사와 호남에서 활동했던 항일항쟁의 모습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특히, 근대생활관에서는 일제강점기의 군산 거리 풍경과 쌀 수탈과 관련된 뜬다리 부두(부잔교), 임피역 등을 재현해놓아 한 공간에서 당시 모습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 내 근대생활관. / 사진 노규엽 기자

박물관 밖에서는 구 군산세관을 먼저 보는 것이 좋다. 옛 건물 그대로 남은 구 군산세관은 고종황제가 군산항 개항에 맞춰 준비했던 곳. 강압에 의해 개항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득을 취해보려 했던 노력이 엿보이는 장소다.

그러나 일본에 의해 고종황제가 강제 폐위된 후인 1908년에야 완공되어 대한국민을 위한 용도로는 쓰이지 못했던 아픈 역사가 남아있다.

고종 황제의 아픔을 엿볼 수 있는 구 군산세관. / 사진 노규엽 기자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과 조선은행 군산지점도 우리 민족을 착취하기 위해 일제가 세운 건물들. 일본 제18은행은 군산항을 개항하면서 조선으로 들어오는 일본인들의 금전적 편의를 봐주기 위한 건물이었으며, 조선은행은 경술국치 이후 조선총독부가 설치하여 마찬가지로 일본인 상공업자들에게 자금을 공급해줬던 곳이다.

각 건물 내부에는 근대 건축양식이 고스란히 남아있으며, 조선은행 내부에 금고를 재현해놓은 공간에서는 ‘이 금고가 채워지기까지 우리 민족은 헐벗고 굶주려야만 했다’는 문구가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이 금고가 채워지기까지 우리민족은 헐벗고 굶주려야만 했다. / 사진 노규엽 기자

항구 쪽으로 가까이 가면 뜬다리 부두를 실물로 볼 수 있다. 조석간만의 차가 큰 군산항에서 언제든 쌀을 가져갈 수 있게 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밀물과 썰물에 맞춰 부두에 배를 댈 수 있도록 높이를 맞추는 기능을 지닌 구조물이다. 일정에 여유가 있다면 밀물과 썰물 때 각각 찾아와 뜬다리 부두의 달라진 높이를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군산항 뜬다리 부두. / 사진 노규엽 기자

군산항 외에도 근대문화거리를 걸어 다니며 쌀 수탈 역사가 간직된 조선식량영단 군산출장소 건물, 한반도에서 재산을 축적한 히로쓰가 오래 살 목적으로 어마어마하게 지은 신흥동 일본식 가옥, 일본 양식의 절을 볼 수 있는 동국사 등 일제강점기의 흔적도 둘러보면 좋다.

일본인들은 우리 땅에 오래 살기 위해 일본식 가옥도 지었다. / 사진 노규엽 기자
일본식 절 양식을 볼 수 있는 동국사. / 사진 노규엽 기자

Info 구석구석 찾아가는 역사교실

군산대학교 산학협력단과 전북역사문화교육연구소에서는 전라도 일제 쌀 수탈에 대해 정확하게 알리기 위해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초ㆍ중ㆍ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현장탐방학습 프로그램은 반일형, 종일형, 1박2일형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군산ㆍ완주ㆍ김제를 대상지로 일정에 맞게 프로그램을 만들어 진행해준다. 30명 내외의 단체는 무료로 신청할 수 있으며, 간식 및 중식 비용만 부담하면 된다.

※ 이 기사는 하이미디어피앤아이가 발행하는 월간 '여행스케치' 2017년 12월호 [역사문화기행]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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