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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한옥에서 즐기는 이국적인 ‘맛’
한옥에서 즐기는 이국적인 ‘맛’
  • 김샛별 기자
  • 승인 2017.12.04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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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서울] 고풍스럽고 단아한 한옥에서 파는 음식이 모두 한정식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우리의 한옥에서 이국적인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 있다. 그 속에 숨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어보자.
 
제철 로컬 재료로 빚어낸 이탈리안의 맛
丹亞 단아
 
마치 갤러리 같은 느낌을 주는 단아의 내부. 사진 / 김샛별 기자
가리비에 올라간 간장 양념이 밴 당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세로결대로 쭉쭉 길게 찢어져 쫄깃한 식감을 내는 반건조 가오리, 바다의 맛이 느껴지는 미역 보리 리조또… 분명 이탈리안 음식이지만 한국적인 재료와 맛으로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맛을 선사하는 단아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식당임에 틀림없다.

포항 성게알, 동해안 생 골뱅이, 제주 은갈치, 시래기 등이 들어간 파스타, 미역 보리를 이용한 리소토와 목포 전어구이, 반건조 우럭, 반건조 장어, 완도산 반건조 가오리 등 우리로서도 낯선 재료들이 메뉴판을 가득 채운다.

그렇다고 해서 이탈리안의 기본도 놓치지 않는다. 야채는 살짝 숨만 죽여 고기의 느끼한 맛을 잡아주고, 굵은 소금을 성글게 뿌려 고기와 야채 본연의 맛을 살린 스테이크의 정석을 보여준다.
 
다년간의 셰프 경력과 요리작가이기도 한 안충훈 단아 대표. 사진 / 김샛별 기자

단아는 계절마다 메뉴가 바뀌고, 간절기에는 간절기에 어울리는 메뉴를 준비한다. 철마다 찾는 즐거움을 주기 위해 안창훈 단아 대표는 “메뉴 개발을 하고, 새로운 재료를 찾다 보니 제사 음식들까지 찾게 됐다”고 말할 정도다. 그는 <레스토랑 요리 따라하기>, <맛있는 소스백과> 등을 포함해 5권의 요리책을 내기도 한 요리작가이기도 하다.
 
Info 단아
메뉴 목포 전어 구이를 얹은 오일소스 리소토 1만7000원, 런치코스 2만9000원~
주소 서울 종로구 경희궁길 41-1
 
“한옥에서 이탈리안 음식을 팔면 재밌겠다 싶었죠“
특별한 메뉴만큼이나 한옥에서 이탈리안 음식을 파는 것도 심상치 않다. 요즘에야 한옥에서 이탈리안 음식을 파는 곳이 많아졌지만 처음 단아가 생겼을 때만 해도 한옥에서 양식을 파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주거용 한옥이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변신한 이유이다.
 
성곡미술관 앞 종로구 신문로는 유독 한정식집이 많은 곳이다. ‘단아’는 그런 한정식집 사이에서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8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는 “미국대사관을 비롯해 대사관이 많은 이 쪽에서 이들에게 익숙한 양식을 즐길 수 있는, 그러나 한국적인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싶어 ‘단아’를 오픈하게 됐다“고.
 
반건조 가오리를 곁들인 미역 보리 리조또. 사진 / 김샛별 기자

그러나 외국인들이 많이 찾을 것이라는 그의 예상과 달리 오히려 한국인들이 더 단아에서의 식사를 더 신기해한다는 것이 그의 전언. 한옥의 분위기, 싱싱한 제철 재료,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이탈리안 음식의 재해석… 이 모든 것이 ‘단아의 맛’의 비결이다.

베트남 셰프의 진짜 베트남 가정식
라 꾸르 1912
 
한옥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라 꾸르 1912의 내부. 사진 / 김샛별 기자


라 꾸르 1912의 오픈 키친에서 풍겨오는 숯불향이 발길을 잡아끈다. 우리나라의 숯불 돼지갈비와 비슷한 ‘분짜’를 요리중이다. 분짜는 숯불에 구운 고기와 완자를 새콤달콤하고 차가운 국물에 쌀국수를 풀어 함께 먹는 음식. 언뜻 생각하면 찬 국물에 돼지갈비를 담갔다 먹는 것이 이상하다 생각되지만, 막상 먹어보면 입에 착 감기는 맛이다. 찰진 면발과 곁들인 고기는 냉면을 고기로 싸먹는 느낌이랄까.

진짜 숯불로 조리하는 라 꾸르 1912의 오픈 키친. 사진 / 김샛별 기자

라 꾸르 1912의 분짜가 더욱 맛있는 비결은 토치로 숯불 향만 내는 게 아니라 진짜 숯불에 달궈 굽기 때문. 그만큼 라 꾸르 1912는 제대로 된 베트남 음식을 선보이기 위해 공을 들였다.

그중에서 라 꾸르 1912에서 가장 특별한 메뉴는 ‘하노이 가정식 덮밥’. 라 꾸르 1912의 초대 셰프였던 리엔이 집에서 자주 먹었던 간단한 음식이라며 스태프들에게 해준 것이 너무 맛있어 메뉴에 올라간 것이 이제는 대표 메뉴가 됐다. 이 외에도 다진 새우와 닭고리를 뭉쳐 숯불에 구워낸 베트남식 어묵인 차오돔, 통째로 튀긴 생선에 베트남식 간장 소스를 올린 덮밥, 베트남 전통 야채찜 요리, 통오징어 찜과 토마토 코코넛 스튜 등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들을 먹기 위해 찾는 이들이 많다.
 

Info 라 꾸르 1912

메뉴 하노이 가정식 덮밥 9000원, 베트남식 야채찜 덮밥 1만원, 동남아식 가지볶음 1만5000원
주소 서울 마포구 백범로26길 6

코토를 지원하는 사람들(코토당)의 멤버이기도 한 박영아 라 꾸르 1912 대표. 사진 / 김샛별 기자
“베트남 최초 사회적 기업이자 최고의 요리학교 출신들의 따뜻한 맛을 전해요”
한옥에서 전통 베트남 음식을 파는 것이 신기한지 ‘어떻게 한옥에서 베트남 음식을 팔 생각을 했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는 박영아 라 꾸르 1912 대표는 “원래 식당을 하려던 것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누군가를 도우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베트남 최초 사회적 기업인 코토(KOTO)를 알게 된 것이 계기였다고 한다. “코토는 취약계층의 청소년들이 전문 요리사와 매니저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돕는 트레이닝 센터로 시작해 지금은 베트남 최고의 요리학교예요. 식당 수익금을 기부해 식(食)문화의 선순환을 이끄는 사회적 기업의 철학을 서포트 하고 싶었어요.”
 
이곳의 대표메뉴인 프레쉬 스프링롤, 하노이 가정식 덮밥, 분짜 그리고 칼라만시 주스. 사진 / 김샛별 기자
라 꾸르 1912가 한옥에서 베트남 음식을 팔게 된 것도 우연이었다. 처음 이 집은 외부는 양옥처럼 일자 벽돌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옆으로 돌아보니 서까래가 보였다고. “이 집을 뜯으면 한옥이 숨어 있겠다 싶었죠.” 그의 생각대로 양옥 안엔 한옥이 숨어 있었다. 100년이 넘은 한옥의 골조를 그대로 살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곳에서 베트남의 따뜻한 맛에 함께 해보는 건 어떨까.

좋은 재료를 푸짐하고 맛있게
청향일식
 
기둥과 서까래 등 대부분 국산 소나무로 지어져 정갈하고 고풍스런 매력이 있는 청향일식의 내부. 사진 / 김샛별 기자
좋은 회는 특유의 단맛이 있다. 단맛이 감도는 감칠맛이 바로 ‘회맛’이라고 할 수 있다. 청향일식은 그런 회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느껴지고, 생선 특유의 쫄깃한 식감을 즐길 수 있는 곳. 흰살 생선의 담백한 단맛을 즐겼다면, 이제는 참치를 즐길 차례. 참치 윗배살부터 대뱃살, 배꼽살부분까지 순서대로 맛보면 참치를 먹은 것인지 고기를 먹은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잘 숙성된 참치 속살은 마치 고기를 씹는 듯 고유한 맛이 있다. 참기름에 찍어 먹지 않아도 고소한 맛은 생와사비와 무순을 살짝 올려 먹으면 금상첨화다. 사르르 녹는 식감에 재미를 더하는 것이 전복이다. 오독오독 씹으면 느끼하지 않게 다른 회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주문하면 바로 회를 썰어 제공. 사진 / 김샛별 기자
최승준 청향일식 대표는 겸손하게 “재료를 속일 수가 없는 것이 일식”이라며 맛의 비결을 재료로 돌린다. 그래서 이곳은 따로 대표메뉴, 추천메뉴도 없다. 그날그날 싱싱한 생선이 가장 맛있는 메뉴이기 때문에 추천 메뉴가 매일 바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청향일식의 또 다른 특징은 푸짐함이다. 점심, 저녁 코스는 다양한 전채와 죽, 바지락국으로 입맛을 돌게 한 뒤 전복, 광어, 참치, 도미 등 생선회가 나오고 먹는 시간과 속도에 맞춰 각종 튀김과 찜, 구이들이 뒤를 잇는다. 여기에 매운탕으로 매콤하게 마무리하면 한 상, 거하게 잘 먹었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Info 청향일식
메뉴 점심특선 1만9000원, 청향정식 2만5000원, 회덮밥 1만5000원, 갈낙탕 1만8000원
주소 세종 조치원읍 장안1길 97
 
“목수의 손맛과 일식 주방장의 손맛이 우리집의 자랑이죠”
청향일식은 멀리서도 눈에 띌 정도로 고풍스럽고 정갈한 느낌을 주는 전통 한옥이다. 문화재청에서 실시하는 2006년 문화재 수리기능 대목장 4075호에 선정된 최승호 대목장이 시공한 건물이다. 겉은 물론 내부까지 전통 한옥 그대로의 멋과 결이 살아 있다. 그래서 이곳은 한정식집인 줄 알고 방문하는 이들이 많다고.
 
최승준 청향일식 대표. 사진 / 김샛별 기자

최승준 대표는 원래 일식집이니 일본식 건물을 지으려 했다. 그런데 어떻게 한옥에서 일식을 팔게 되었냐는 물음에 “최승호 대목장이 사실 우리 형이다”라고 답한다. 최승호 씨는 “일본식 건물을 짓는 돈이나 한옥을 짓는 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한옥에서 일식을 파는 것도 괜찮지 않냐”고 했고 최승준 대표 역시 동의했다고. 일반 건물을 짓는 것보다 한옥으로 짓는 것이 돈은 더 들지만, 형이 시공하며 편의를 많이 봐주었다고 웃는다.

전복, 광어, 참치 배꼽과 뱃살이 일품이다. 사진 / 김샛별 기자
그러면서 그는 한옥이 어떻게 지어지는지부터 전통 한옥의 디테일을 살려낸 부분들을 꼼꼼히 짚어준다. 우물반자(반자틀을 '井'자로 짜고 그 칸에 넓은 널로 덮어 꾸민 천장)만 봐도 손품이 얼마나 들었는지 상상해보라고. 목수의 손맛이 오롯이 느껴지는 한옥에서 주방장의 손맛을 즐길 수 있는 곳, 청향일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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