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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고택에서의 하룻밤, 칠곡 매원마을
고택에서의 하룻밤, 칠곡 매원마을
  • 김샛별 기자
  • 승인 2017.12.07 1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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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집까지 동네 한 바퀴
칠곡 매원마을에서 고택 체험을 할 수 있는 진주댁. 사진 / 김샛별 기자

[여행스케치=칠곡] 칠곡군 왜관은 유명한 여행지는 아니다. 미군기지가 있는 이곳은 여행지라기보다는 치열했던 다부동 전투를 중심으로 한국전쟁의 낙동강 방어선 정도로 역사의 한 페이지로 인상에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전투로 인해 많은 가옥이 소실된 한 마을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과 더불어 영남 3대 반촌 중 하나였던 칠곡 매원마을이다. 

마을 초입에 있는 감호당. 사진 / 김샛별 기자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

시골길을 많이 걸어본 사람은 안다. 노인이 혼자 산다 해도, 사람이 살지 않는 집과 사는 집은 확연히 다르다. 마찬가지로 관광지화(化)된 한옥마을과 집집들이 모여 있는 진짜 마을의 느낌도 다르다.

작은 실개천이 흐르고, 그 위로 놓인 다리를 걸으며 보이는 들판 뒤로 기와집들이 보인다. 버스정류장 옆 삼거리슈퍼가 매원마을의 대문 역할을 한다. 그 뒤로 오래된 고택이 보인다. 절로 발길이 향해 가보니 그곳이 ‘감호당’이다.

감호당은 1623년 석담 이윤우가 경치를 즐기고 쉴 수 있는 작은 공간으로 지었으나, 그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어 하는 이들이 전국에서 모여 들어 교육의 장소이자 후학을 가르치는 강학소가 되었다. 대과에 장원급제한 사람이 22명이나 되어 ‘장원방’으로 불리던 매원마을의 역사적ㆍ상징적 의미가 있는 곳이다.

여전히 사람들이 머물고, 이용하는 감호당 내부. 사진 / 김샛별 기자

17세기에 지어진 것에 비해 깔끔한 까닭은 바로 뒤편에 살며 여전히 집을 돌보는 이가 있기 때문이리라. 신을 벗고 마루에 올라 문을 열어보니, 옥빛 한복이 걸려 있고 그 밑으로는 바둑판이 자리한다. 한쪽에는 커다란 상도 있다.

여전히 지금도 이곳에 앉아 문을 열어두고 자연 풍경을 감상하며 바둑 한 수에 시 한 수라도 짓는 걸까. 창을 열자 그 밑으로 대추를 말려놓은 소쿠리가 눈에 들어온다. 매서운 겨울바람, 잘 말린 따뜻한 대추차를 함께 마시는 풍경을 상상하며 마을 안쪽으로 향한다.

호젓한 칠곡 매원마을 풍경. 사진 / 김샛별 기자

고택에서 머무른다는 것

크고 작은 고택들을 지나 마을길을 따라 걷는다. 왼쪽으론 집들이, 오른쪽으로는 얼어붙은 연밭 가운데에 그리 오래 되어 보이진 않으나 정자가 호젓한 멋을 더한다.

휑한 들판 너머로 겹겹이 쌓인 산자락을 향해 남동쪽으로 대문이 난 집이 진주댁이다. 진주댁은 매원마을의 상매에 있는 고택으로 약 130년 전에 지어져 마을 내에선 비교적 젊은(?) 집이다.

마을길에 면해 있는 대문에 비해 집은 멀찍이 안쪽에 있다. 열린 대문을 밀고 들어가도 되는지, 소리쳐 주인장을 불러야 하는지 고민할 무렵 인기척을 들은 이수욱 매원마을 보존회장이 옆집에서 나와 반겨준다.

그를 따라 들어가자 오래된 고택보다 고택 뒤편의 대숲이 눈으로, 귀로 반겨준다. 청명하게 푸른 하늘에 초록 댓잎이 흔들리는 색에 싸락싸락 댓잎이 자아내는 소리가 도시의 먼지를 털어내준다.

마루에 앉으면 옛 토담으로 쌓은 담장이 보이고, 터져 있는 공간을 살짝 막도록 기와를 쌓아 낮은 담처럼 해두었다. 조금 더 멀리로 시선을 돌리면, 전면의 농경지와 동정천, 못안들 안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멍하니 앉아 바람이 불면 대나무가 흔들리는 소리를 듣고, 떨어진 모과도 구경해본다. 

이수욱 회장은 “고택 체험을 하러 왔으면 이 집이 지어진 때를 상상해보라”일컬으며 대뜸 대문을 열고 닫는다. 삐거덕거리며 요란한 소리를 내는 대문을 가리키며 오늘이 130년 전 아침이라고 생각해보라 말을 잇는다. 

"130년 전이면 농경사회였겠죠? 삐그덕 거리는 대문이 있는 건 농경사회에 맞는 겁니다. 지금은 아침이고 밤이고, 이런 소리가 나면 시끄러워서 잠을 못자겠죠? 하지만 농경사회에서는 이 삐그덕 소리가 기상나팔입니다. 노비가 문을 열고, 싸리빗자루로 마당을 쓸면 그때부터 아침이 시작되는 거죠. 여명을 여는 소리인 셈입니다. 이 소리를 듣고 기상해서 일터로 가야 하니 거기에 맞는 대문이죠. 그러니 이 삐그덕 하는 소리가 나는 게 맞습니까, 아닙니까?”

과연 그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의 말대로 고택에서의 하룻밤은 단순히 잠자리가 바뀌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 집이 몇 년이 되었는가’하는 것은 단순히 오래된 시간에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 구석구석 들여다보며 여행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집을 그렇게 설명한다. 집이 곧 문화이고, 문화는 사람이 사는 방식을 뜻한다고. 그러면 고택에서는 그때 당시 살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진짜 체험이라고 말이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20호로 지정된 지경당. 사진 / 김샛별 기자

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집까지 마을 한 바퀴

그는 안채와 별채만 남은 진주댁이 아닌 옆집을 가리키며 지경당을 구경시켜 주겠다고 했다. 䴱년에는 400여 채의 가옥이 있었던 매원마을은 6.25한국전쟁 당시 대부분 소실되었다”며, “그나마 윗마을인 상매마을은 북한군 야전병원으로 이용되어 일부 남았다”고.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지경당은 진주댁의 조부가 살던 집이다.

이수옥 회장은 마루가 벽이 아닌 널문으로 되어 있는 것을 짚어준다. 위쪽 지방과 달리 여름이 길고, 비가 많이 오는 지방의 특성에 맞춰 사랑채 외벽에 커다란 널문을 단 것이라 한다. 널문이 될 만큼 커다랬을 나무의 나이테를 짐작하고, 고개를 들어보면 사랑대청에 흔치 않은 천장 형식이 눈길을 끈다. 그런데 마루에 나있는 구멍이 심상치 않다. 이것도 수리중이냐 묻자 널문 뒤편을 가리킨다. “구멍들은 모두 6.25한국전쟁 때 난 총탄의 흔적”이라고 설명한다.

(좌) 독특한 사랑대청 마무리. (우) 널문의 총탄 자국. 사진 / 김샛별 기자

그가 짚어준 대로 오래된 우물도 기웃거려 보고, 대문채의 팔작지붕을 지었을 만큼의 상류 가문 위세를 짐작도 해본다. 그럼에도 여전히 놓치는 것 투성이다. 사랑채에서 안채로 가기 위해 중문을 넘어 서는데 이수옥 회장이 문 아래쪽을 가리킨다.

부목을 덧대 만든 둔체가 아니라 통으로 깎아 꾸며놓은 둔체다. 지금은 비록 시간에 바랬지만, 안채 역시 눈썹지붕을 달아놓고 뒤편으론 꽤 커다란 화단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지경당 옆으로는 해은고택이 있다. 이수욱 회장은 “지금은 담으로 막혔지만 저 기와가 있는 자리에 중문이 나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지경당과 해은고택뿐 아니라 매원마을 대부분의 집들이 서로 편히 드나들 수 있도록 해두었다고 말한다. “아버지 집에 가고, 손자집에 가고, 제사 지내러 사당에 가야 하니 문을 내둔 것”이라고 설명한다.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275호로 지정된 해은고택은 이동유가 세웠다고 알려져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해은고택은 조선 정조 12년(1788)에 지어진 가옥으로 남부지역 특징인 ‘ㄷ’자형의 개방적인 배치형태다. 현재 노부부가 살고 있는 해은고택은 넓은 사랑마당에 크고 작은 장독대들이 모여 있고, 세월을 짐작하기 힘들 정도로 큰 고목이 든든하게 집 한 켠을 지키고 있다.

사랑채와 곳간채, 정침을 조심스레 둘러볼 때까지 주인은 옛날에는 냉장고로 사용했던 창고를 정리하느라 바쁠 뿐이다.

해은고택을 나와서도 오래된 토담을 따라 마을 한 바퀴를 돌아본다. 작은 마을이라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일부러 서로 다른 크기의 돌을 삐뚤빼뚤하게 박아놓아 시선을 머물게 한다. 안에 박혀 있는 돌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비바람에 조금씩 깎여 이제는 울퉁불퉁 튀어나온 모양새가 되었다.

담이 높아 안쪽이 잘 보이지 않아 기웃거리자 “양반댁 살림살이가 밖에서 보여서 되겠습니까?”라면서도 “언제나 대문은 열려 있다”고 웃는다. 진짜 사람들이 사는 마을. 그 사람 냄새를 풍기며 우리를 반기는 마을, 매원마을이다.

하얀 눈을 맞은 진주댁의 모습. 사진 / 김샛별 기자

깊어진 까만 밤을 밀어내는 하얀 아침

도시와 달리 매원마을의 밤은 일찍 찾아오고, 길기만 하다.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없는 방. 혼자서 사색에 젖고, 책을 읽거나 같이 온 이와 이야기를 나누기 좋은 시간이다.

진주댁 담 안에 있는 전통찻집인 ‘그대와 꽃’에서 뜨끈한 한방차 한 잔을 놓고 도란도란 말을 주고받아도 정겹다. 따뜻하게 몸과 마음을 덮이고 방으로 돌아가는 그 짧은 거리도 지나치지 말자. 고개를 들면 도시의 불빛에 가려 눈에 띄지 않던 별들이 수놓은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긴긴밤 이야기를 나누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른 채 까무룩 잠이 들고 눈을 떴을 때, 마을을 떠나기 전 마지막 선물이 조용히 내려앉아 있었다. 새벽녘 싸락눈이 내려 누구의 발자국도 찍히지 않은 마당과 하얀 눈을 맞은 고택의 풍경이었다. 

※ 이 기사는 하이미디어피앤아이가 발행하는 월간 '여행스케치' 2018년 1월호 [특집 도시에서 멀어지다]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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