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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지금은, 과메기가 말라가는 시간
지금은, 과메기가 말라가는 시간
  • 노규엽 기자
  • 승인 2017.12.11 13: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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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 구룡포

[여행스케치=포항] 찬바람이 불면 포항의 바닷가에는 꽁치며 청어들이 장대에 내걸린다. 바닷바람에 몸을 말리는 동안 짭조름한 맛과 향이 깊이 배어들고, 이내 담백하고 쫀득한 과메기로 변신한다. 바야흐로 우리의 식탁에 과메기를 올릴 계절이다.

청어의 눈을 꼬챙이로 꿰어 말렸다는 관목(貫目)에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과메기는 여행지에서 식도락을 찾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아주 높은 음식이다.

특히 애주가들은 초장을 찍은 과메기를 알배추와 마늘, 고추, 미역, 김 등과 싸서 소주와 함께 한 입에 털어 넣는 과메기 쌈을 겨울 별미로 추켜세운다. 그런데 이 과메기가, 이제는 겨울 한정 음식이 아니라는 얘기가 있다. 전통적으로 겨울의 찬바람을 이용해 말려야 생선을 썩히지 않고 만들 수 있었던 과메기에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우리 역사와 기억 속의 과메기

지금은 주로 꽁치로 과메기를 만들지만, 과메기의 시초는 청어가 원조라고 말한다. 국내 여러 문헌을 보면 오래 전부터 청어를 말리거나 절여서 먹었다는 기록이 있어, 지금의 과메기처럼은 아니더라도 청어를 저장음식으로 먹은 역사는 꽤나 오래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과메기의 유래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1918년에 발행한 <소천소지(笑天笑地)>라는 이야기책에는 동해안의 한 선비가 한양으로 가던 길에 배가 고파 바닷가 나뭇가지에 눈이 꿰인 채로 말려진 청어를 먹었는데, 그 맛이 아주 좋아서 이후로도 겨울마다 청어를 말려먹은 것이 과메기의 기원이 되었다고 적혀있다. 또 청어가 흔하게 잡히던 시절에 뱃사람들이 배에서 먹을 반찬을 할 요량으로 지붕 위에 청어를 던져놓았더니 바닷바람에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여 저절로 과메기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산업화를 겪으며 냉풍시설에서 생산되고 있는 과메기들. 사진 / 노규엽 기자

한편, 구룡포에서 과메기를 생산하고 있는 남양수산의 김성호 대표는 어린 시절 기억을 들추어 근대의 과메기에 대한 설을 풀었다.

“청어가 하도 많이 잡히니까 아무리 먹어도 남아돌았어요. 버릴 수는 없고, 여러 마리를 새끼줄에 꿰어서 부엌 처마에 매달아 놓기 시작했죠. 며칠 정도 지나니 아궁이 연기에 훈제된 청어들이 아주 맛있어 온통 처마에 매달아 놓고는 과메기를 말려 먹은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이야 당연한 듯이 과메기를 술안주로 떠올리지만, 그 시절만 해도 반찬으로서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요즘 먹는 방식과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과메기처럼 겨울이 제철인 미역에 싸서 한 입 먹고, 갓 담군 김장김치를 쭉쭉 찢어 과메기 살점에 둘둘 말아서 따뜻한 밥 한 술과 먹으면 아주 꿀맛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현대에 들어 술안주로의 이미지가 커진 이유는 아마도 외지 사람들이 과메기 맛을 알게 된 시기와 맞물린 것으로 보인다. 포항에 놀러 온 사람들이 과메기 맛에 반해 집으로 사갔을 것이고, 당시로서는 구하기 어려운 귀한 음식이었으니 반찬보다는 친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에 내어놓는 음식으로 먹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전통음식 과메기, 산업화를 겪다

덕장에서 생산된 과메기는 위생적으로 포장되어 시장 등지로 옮겨진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지금은 굳이 포항을 찾아가지 않아도 택배를 이용해 과메기를 주문해 먹을 수 있다. 특히 구룡포의 과메기는 인기가 높아 주문량이 갈수록 늘었고, 때문에 생산량이 부족한 일도 생겨났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과메기는 바닷가에 늘어놓고 최소 2~3일을 둬야 만들어지는데, 습기가 많거나 비가 오는 날은 과메기가 잘 마르지 않아 작업을 하지 못하니 전국의 주문량을 감당하기에는 벅찰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에 구룡포의 과메기 생산자들은 포항구룡포과메기사업협동조합을 만들고 생산량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10년 넘게 연구를 해왔다. 야외에서 말려야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냉풍건조시설을 갖추고, 진공포장하여 냉동보관하는 방법도 개발해 과메기를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것이다.

택배 주문으로 맛볼 수 있는 과메기 세트. 사진 / 노규엽 기자

덕분에 날이 어느 정도 추워야 할 수 있었던 과메기 작업을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2~3월까지 할 수 있게 되었고, 생산량을 충분히 끌어올릴 수 있었다. 김성호 대표는 “이제는 여름에 과메기를 주문해도 보낼 수 있을 정도”라고 말하면서도, “아직은 계절음식이라는 인식이 강해 소비는 많지않은 편”이라고 이야기한다.

과메기 생산자로서 그는 본인이 어린 시절 김치에 과메기를 싸먹었던 기억처럼, 우리들의 식탁에도 과메기 반찬이 일상화될 수 있기를 꿈꾼다.

전국에서 구룡포 과메기가 단연 으뜸

과메기는 포항 내에서도 구룡포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고 가장 유명하다. 최근 들어 중국 어선들과의 어획 경쟁으로 인해 북쪽의 러시아해까지 올라가 꽁치를 잡아오지만, 냉동된 꽁치를 가져와 과메기로 만드는 작업은 구룡포 곳곳의 덕장에서 이루어진다.

근래에는 가까운 연안에서 청어들도 잡히고 있어 한동안 어획량이 적어 사라졌던 청어 과메기도 부활했다. 한때는 꽁치 가격이 오르며 과메기가 사라질 위기도 겪었으나, 과메기 생산자들은 마진을 줄이더라도 과메기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과메기 문화거리로 지정된 구룡포항의 모습. 사진 / 노규엽 기자

이에 맞춰 포항시는 구룡포항 지역을 과메기 문화거리로 지정하여, 매년 11월이면 구룡포과메기축제를 열고 본격적인 과메기철의 시작을 알린다. 구룡포항 맞은편에는 옛날부터 상인들이 과메기를 만들어 팔아왔던 구룡포시장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고, 최근에는 구룡포과메기문화관도 개관했다. 일본식 가옥들이 남아있는 구룡포근대문화역사거리 뒤편 언덕에 자리 잡은 과메기문화관에서는 과메기와 구룡포의 역사를 알리는 동시에 아이들을 위한 체험관을 갖춰놓고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려 노력하고 있다.

과메기를 더욱 널리 알리기 위해 과메기문화관도 개관했다. 사진 / 노규엽 기자
과메기문화관 내의 옛 구룡포 모습을 재현한 디오라마. 사진 / 노규엽 기자

이처럼 포항의 과메기가 구룡포에 집대성되는 이유는 겨울에 부는 북서계절풍과 호미곶의 맞바람이 와류현상을 일으키는 곳이라 과메기를 말리기에 가장 적합해서다. 구룡포 과메기가 유명해져 불티나게 팔리자 구룡포 인근의 바닷가에서도 과메기 생산에 나섰지만, 맛과 질이 확연히 차이난다는 게 구룡포 상인들의 말이다.

만드는 과정은 그저 야외에 널어놓고 얼렸다 녹이기를 반복하는 게 전부이지만, 기후 조건에 따라 과메기 내에서는 무수한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구룡포시장을 찾으면 현지에서 생산한 청어·꽁치 과메기를 구할 수 있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적절한 온도의 바람과 햇볕이 동반되어야 비타민D와 DHA가 만들어지고, 2~3일간 숙성건조 되면서 아스파라긴산이 최고조로 함유된다. 3일의 시간은 아주 중요하다. 품질검사를 해보니 3일이 지난 이후로는 좋은 성분이 줄어들면서 나쁜 성분도 생성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과학의 힘이 없던 옛날에는 어찌 이런 사실을 알고 딱 맞는 시기에 과메기를 먹었을지, 바닷가 어민들의 경험과 지혜에 감탄이 절로 나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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