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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가락국의 마지막 왕, 이곳에 잠들다
가락국의 마지막 왕, 이곳에 잠들다
  • 조아영 기자
  • 승인 2017.12.27 17: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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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전(傳) 구형왕릉
정면에서 바라본 구형왕릉은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여행스케치=산청] 가락국의 마지막 왕 구형왕은 산청의 왕산에 은거하다 세상을 떠났다. 삼국 통일의 주역이었던 김유신 장군의 증조부이기도 한 구형왕. 옛 왕국의 마지막 왕이 잠들어 있는 곳을 찾았다.

가락국을 기억하고 마지막 왕을 기리다

구형왕릉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 덕양전은 가락국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과 그의 부인 계화왕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자 영정을 봉안한 곳이다.

덕양전 외부 전경. 사진 / 조아영 기자

‘가락국’이라는 이름은 다소 생소하다. 그렇기 때문에 구형왕릉으로 향하기 전 덕양전부터 둘러보는 것을 권한다. 덕양전 옆에 자리한 가락국역사관에서는 가락국 관련 자료를 볼 수 있고, 전문가로부터 가락국과 구형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단, 관계자가 부재중일수 있기에 설명을 듣고 싶다면 유선으로 문의 후 방문하는 것이 좋다.

덕양전에 자리한 가락국역사관 외부. 사진 / 조아영 기자

김은주 가락국역사관 관장은 “가락국은 철이라는 강점을 바탕으로 발전한 나라이며, 다른 가야들 중 주도적인 위치에 있던 금관가야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가락국의 마지막 흔적이 산청에 남아있는 이유에 대해 김은주 관장은 “가야를 개국한 김수로 왕이 김해에서 지리산 끝자락(남원)까지를 자신의 영토로 선언하였고, 그에 따라 산청은 지리적 중심이 되는 지역이었으며 경제적ㆍ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 추측한다”고 설명한다. 지금도 산청에는 수철마을, 둔철마을 등 가락국을 상징하는 철과 관련된 지명이 쓰이고 있다.

Info 덕양전
주소 경남 산청군 금서면 동의보감로 995
문의 055-973-0049

투박한 돌무덤에 얽힌 이야기들

덕양전에서 1km쯤 떨어진 산청 왕산 자락에 자리한 구형왕릉은 홍살문에서부터 보이는 거대한 규모가 인상적이다. 평지가 아닌 경사진 산기슭을 따라 수많은 검회색 암석이 맞물려 쌓여있는 것 또한 색다르다. 구형왕릉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돌로 쌓은 피라미드식 왕릉이기 때문이다.

구형왕릉으로 가는 길. 사진 / 조아영 기자
이어지는 돌길을 따라 걸으면 구형왕릉이 보인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주변엔 낮은 돌담이 왕릉을 둥글게 감싸고 있으며, 무덤 앞에는 비석과 들짐승을 본떠 만든 석물이 서있어 귀인이 잠들어 있는 무덤임을 알 수 있다.

산청에서 가야의 유물이 출토됨과 동시에 당시 이 지역이 금관가야의 세력권이 확실하며, 이 왕릉은 가야 왕실의 무덤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에 따라 이 무덤의 주인은 산청에서 여생을 보낸 구형왕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왕릉에 관한 정확한 사료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구형왕릉 이름 앞에는 ‘전할 전(傳)’이 붙게 되었다.

왼쪽에서 바라본 구형왕릉. 사진 / 조아영 기자

전설에 따르면 구형왕은 나라를 지키지 못했으니 흙이 아닌 돌로 무덤을 만들라고 유언했다. 신라에 나라를 내어주고 말았다는 죄책감에 따뜻한 흙이 아닌, 차가운 돌덩이 속에 자신의 몸을 묻고자 한 것이다.

김은주 관장은 “전쟁 중에 전사하여 군사들이 돌을 하나하나 옮겨 지금의 돌무덤을 갖추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일반 백성들도 합세하여 정성껏 돌을 쌓았다고도 전해진다”고 말하며 “왕의 시신을 흙으로 묻을 여유가 없어 보호하기 위해 우선 돌로 덮어놓았다가 그대로 굳어진 것이라는 설도 있다”고 덧붙인다.

구형왕과 그에 얽힌 사연을 들은 후에 왕릉을 다시 바라보면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영원히 잠든 왕의 돌무덤에는 번성했던 옛 왕국의 흔적이 서려있다.

Info 구형왕릉
주소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산 16
문의 055-970-6443

왕산사지에 남아있는 부도탑. 사진 / 조아영 기자

TIP
구형왕릉에서 산 중턱으로 1km여 오르면 ‘왕산사지’라는 절터를 만날 수 있다. 구형왕의 손자 김서현이 묘당을 세우고 승려를 두어 조상을 수호하게 한 곳이다. 김서현의 아들인 김유신 장군이 활쏘기 등 무술을 익힌 곳이기도 하다.

왕산사의 내력이 쓰여있는 왕산사 부도탑 연기비. 사진 / 조아영 기자

지금은 비석과 네 개의 부도탑, 산을 깎아낸 평평한 터만이 이곳에 그들이 존재했음을 말하고 있다. 볼거리가 풍성하지는 않지만 가벼운 산행 겸 함께 둘러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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