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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다순구미, 조금새끼… 그 시절의 흔적들이 시화(詩畵)로
다순구미, 조금새끼… 그 시절의 흔적들이 시화(詩畵)로
  • 김샛별 기자
  • 승인 2017.12.28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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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목포 서산동·온금동 시화골목
골목 사이로 빼꼼히 바다가 보이는 서산동·온금동 시화골목의 풍경. 사진 / 김샛별 기자

[여행스케치=목포] 뒤로는 유달산 자락이, 앞으로는 마치 나아가야 할 방향이 목포 앞바다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골목 사이로 바다가 빼꼼히 보이는 동네. 서산동과 온금동은 뱃사람들이 살던 마을이다.

‘따숩다’의 ‘다순’과 바닷가나 강가의 ‘후미진 곳’을 뜻하는 ‘구미’가 합쳐져 ‘다순구미’라 불린다. 어부들의 삶이 담긴 오래된 동네는 그것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두었다.

할머니들의 유머러스하고 진솔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터미널에서 33년간 일했제. 일 끝나고 어울려 논 것이 제일 재밌었제.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목포의 눈물>, <완행 열차> 불렀제. 팔자에 타고난 고생. 그래도 그 때가 즐거웠제.” - 김정순(84세), <고생>

“해녀걸하던 흑산도 아가씨 흑산도 남자 만나 결혼했제. 목포로 나와 서산동에서 살았제. 7남매 낳아 새끼들 갈치느라 고생한 남편 나는 한 것이 없는디 돈 잘 벌어준다준께 편안하게 살았제. 겁나게 잘해준 영감이 고맙당게.” - 한성섬(86세), <남편>

화려하고 능숙한 미문(美文)은 아니나 진솔한 삶의 지문이 묻어나는 문장들, 투박한 그림들이 벽을 가득 메우고 있는 다순구미는 진작 헐렸을 달동네였다.

2015년만 해도 곧 헐릴 동네라고 했지만, 달동네가 헐린다고 그들이 아파트에 살 수 있는 게 아님을, 삶의 셈법을 조금이라도 계산해보면 알 것이다.

마을은 기록을 허물고, 아파트를 세우는 개발 대신 유달산 노적봉 아래 보리마당에서부터 수협이 있는 평지까지 내려가는 골목길 사이사이 사는 이들의 목소리를 새기기로 했다. 그렇게 시화골목이 만들어졌다.

따닥따닥 붙어 있는 달동네인 서산동·온금동. 사진 / 김샛별 기자

어부들의 삶이 담긴 오래된 동네

비좁은 골목에 낡은 의자 하나 / 햇살이 앉았다 갔는지 / 따스한 온기가 남아 있다 / 붉은 고무통에 심어진 파꽃에 / 붕붕 벌들이 날고 / 빨랫줄에 걸린 꽃무늬 몸빼바지 깃발처럼 나부낀다 / 알겠다 / 문패가 없어도 / 바다에 나간 지아비 기다리며 / 늙어가는 지어미가 사는 집인 걸 - 김수진, <다순구미 풍경>

서산동, 온금동, 다순구미, 조금새끼… 풍경을 문장으로 그려낸 시구들에는 어촌의 정서가 묻어 있다. ‘다순구미’처럼 외지에서 온 이들에겐 ‘조금새끼’라는 말 역시 낯설다.

조수경 골목길 해설사는 “가난한 뱃사람들은 몇날 며칠을 배를 타야 했고, 바닷물이 조금밖에 나지 않아 선원들이 출어를 포기하고 겨우 쉬는 때가 조금”이라며 “모처럼 집에 들어온 선원들이 부부간의 정을 쌓아 조금 물때에 밴 새끼라는 뜻이 조금새끼”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한꺼번에 태어난 아이들이 훗날 아비의 업을 이어 풍랑과 싸우고, 생일이 같은 이들이 다시 한꺼번에 바다에 묻히기도 한다.

배가 침몰되어 제삿날이 같은 사람도 많은 이 동네엔 산제당이 있어 함께 제사를 지낸다. 소금기가 묻어 있는 이 한 마디 말 속에 서산동 어촌 사람들의 삶과 운명이 배어 있다.

(좌) 가래떡을 썰어주시던 김연엽 할머니, (우) 조수경 목포 골목길 해설사와 김순심 할머니. 사진 / 김샛별 기자

좁은 골목길 사이, 따순 정이 말을 걸다

그림과 글들에 웃음과 눈물이 절로 지어지는 동네엔 삶의 풍경들도 소담하고 귀엽다. 생선을 말려두는 것이 무엇이 특별하랴 싶지만, 귀여운 벽화 위 절묘하게 걸린 장대가 눈길을 잡아끈다.

한참 사진을 찍고 있는데, 웬 할머니가 한 짐을 머리에 이고 계단을 올라온다. 가만 보고 있기도 뭐해 도와드리겠다 말하자 “여기가 내 집인디”하고 퉁명하게 말하면서도 방금 뽑아왔으니 떡이나 먹고 가란다.

“추운날 뭣한다고 이까지 왔냐” 타박하는 김연엽 할머니는 손으론 숭덩숭덩 가위로 잘라낸 가래떡에 설탕을 뿌려 입에 넣어주신다. 벽이 귀엽다는 말에 “이게 또 뭐시가 귀엽단” 하면서도 “장대를 저렇게 걸어두면 궹??고양이)들이 못 가져간다”고 웃는다.

떡뿐인가. 몇 번인가 문을 열어 살피던 김순심 할머니 역시 “추운데 믹스커피나 한 잔 하라”며 컵을 내민다. 할머니도 직접 적으신 게 있냐 물으니 한글을 모른다고 손을 내젓는다.

“근디 저어기로 올라가면 내 것도 써있다”란다. 글을 모르는 할머니들이 말하면, 그걸 대학생들이 받아 적어주었다고. “학생들이 늦게까지 막 그려대대. 짠항께, 글서 커피 많이 타줬제.”하며 그때 일을 회상한다.

(좌) 박화성의 <목포의 찬가>, (우) 좁은 골목길 사이를 지나는 매력이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시화골목을 조성하며 학생 봉사자들 외에 목포의 시인을 비롯한 화가들 역시 손을 보탰다. ‘목포’를 대표하는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나 박화성의 <목포의 찬가>, 아동문학과 최일환의 <남쪽 섬들>의 구절도 보인다.

이곳을 찾을 이들을 위한 것 외에 낡은 지붕을 교체하고, 좁고 가파른 골목길을 오르내리기 힘든 할머니들을 위해 초록색 보조 손잡이를 만들었다는 이 동네.

여행자들이 몰려들어 그럴듯한 카페들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여행자들이 늘어 후미진 곳의 고인 따뜻함을 조금 더 많이 알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동네.

“몸만 건강하믄 산 데로 살제. 자식들이 성가시게 안 한게 내 몸만 건강하믄 쓰것어”하고 흰 벽에 적힌 김순자 할머니의 <바램>이 이뤄졌으면, 다순구미 연가 역시 오래 이어지길 바라본다.

TIP
서산동·온금동 시화골목은 따로 주소가 없다. 서산초등학교에서 계단을 오르면 가장 윗자락의 너른 공터인 보리마당이 나온다. 이곳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3개의 골목길이 시화골목으로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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