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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명주길 주민들의 삶이 모이다, 골목을 읽다
명주길 주민들의 삶이 모이다, 골목을 읽다
  • 김샛별 기자
  • 승인 2018.01.19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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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만나는 마을 아카이브 '명주동 문화마을'
햇살박물관의 소장품들은 모두 마을 주민들이 사용했던 물건들이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여행스케치=강릉]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그 물건에 담긴 기억과 추억이다. 필요에 의한 물건과 달라진 쓸모.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들이 누군가에게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일. 더 나아가 후세에 이 시대를 반영하는 역사적 자료가 된다. 명주동의 기억이 담긴 물건들이 보관된 기억저장소가 햇살박물관이다.

강릉 최초의 마을박물관인 햇살박물관. 사진 / 김샛별 기자

내 곁에 있던 물건들이 우리를 기억해주는 일

햇살박물관은 1층과 2층으로 나누어져 있다. 1층엔 1920년대부터 명주동의 연대기를 볼 수 있는 사진들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고, 기증한 물건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남대천 물길이 골목까지 흘렀던 옛 명주동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햇살박물관 내부. 사진 / 김샛별 기자

자명종 시계, 오르간, 오래된 잡지, 곰방대, 모시한복, 절구, 키, 한때 동네를 주름 잡았던 교복, 오래된 강원도 도민증도 눈에 띈다.

20년 동안 꾸준히 모은 주택복권과 기술복권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이쯤 되면 한 번도 당첨된 적은 없는지 궁금해지기까지 한다.

시선을 잡아끄는 건 담뱃값과 성냥갑. 예쁜 디자인과 그 시절 추억 속 다방들의 이름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성냥갑을 모으게 된 사연에 마음이 동한다.

그 시절 담배와 성냥갑들. 사진 / 김샛별 기자

“그 시절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취미라고는 우표수집 정도였다. 형은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새로운 취미생활로 성냥갑 모으기를 시작했다. 하얀섬, 섬보래, 겨울나그네... 당구장, 레스토랑, 카페 가는 곳마다 모아 놓은 형형색색의 성냥갑들을 꺼내 볼 때마다 그 시절의 형이 떠오른다.”

그 시절의 형이 담겨 있는 성냥갑은 누군가에게는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다방이 생소한 누군가에게는 색다른 사연으로 다가온다.

2층으로 올라가면 방과 거실들이 있는데, 숯다리미와 인두, 다듬이판, 됫박 등 마을 주민의 손때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물건들이 방에 놓여 있다. 그 옆방엔 자개장 위에 오래된 텔레비전이 있고, 할머니 할아버지 사진이 놓여 있어서 꼭 시골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최정숙 명주동 문화마을주민해설사는 “햇살박물관은 2016년 문을 연 강릉 최초의 마을박물관”이라며 “명주동 문화마을해설사 중 한 분인 김운수 해설사의 집을 개조했다”고 설명한다.

이사를 하며 마을박물관을 만들 때 흔쾌히 저렴한 가격에 임대를 해주었다고. 덕분에 가정집에서 추억 어린 물건들을 살펴보는 정감 어린 분위기를 자아낸다.

옥상에선 마을 전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 딱 옥상에서 보이는 그만큼. 작은 동네지만 구석구석 사진 속 장소를 누벼 숨은 이야기를 만날 시간이다.

담에 뿅뿅다리를 놓았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는 담. 사진 / 김샛별 기자

길보다 낮은 집과 더 오랜 역사의 흔적

햇살박물관 앞 도로는 차 하나가 지날 만한 도로지만, 옛 사진 속 서울 가는 버스가 다녔던 길이라고 한다. 이 길보다는, 지금은 평범한 골목처럼 보이는 햇살박물관 뒷길로 걸음을 옮겨보자.

이 골목길은 평범한 주택가 길처럼 보이지만, 원래는 남대천에서부터 이어지는 물길이었다. 햇살박물관 안의 사진에서 유독 집 앞으로 흐르는 개천에서 빨래를 하는 여인들이 많은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공사장에서 쓰는 철판으로 만든 뿅뿅다리가 군데군데 놓이고, 그 위에 서서 집을 오가고 빨래를 하던 이 동네 사람들의 추억은 천이 복개되며 함께 묻힐 뻔 했지만, 사진으로 남아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길보다 낮게 나있는 대문, 담벼락에 난 대문 옆 작은 수문의 흔적이 도랑이 흐르고, 다리를 놓아 건너갔다는 시절을 증명해준다. 빨래를 할 땐 문을 열고, 끝나면 다시 문을 닫았던 문은 원래는 집집마다 있었다지만 이제는 하나만 남아 아쉬움을 남긴다.

신라 시대의 양식과 비슷하다고 전해지는 성벽 잔해. 사진 / 김샛별 기자

이 길이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걷는 중간중간 보이는 얼기설기 쌓은 것 같은 담이 실은 옛 성벽이었다. 성벽이 있는 이 골목길을 기준으로 성 안팎이 갈린 셈. 성벽은 학자들에 의하면 신라시대의 양식과 비슷하다고 하지만,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다.

최정숙 해설사는 “원래는 집이 있던 이 자리를 주차장으로 만들려 헐기 전만 해도 우리 시댁에 성벽 돌을 보러 교수들이 자주 오곤 했다”고 회고한다. 성벽의 동북 벽은 천주교임당성당, 남벽과 서벽의 일부는 명주초등학교와 강릉여자중학교 근처까지로 마름모 모양이다. 이 중앙에 강릉 대도호부가 있는 것.

지금은 거의 콘크리트 담벽으로 바뀌어 확인이 힘들지만, 햇살박물관 뒷길 집들의 담장 하부에 사용된 석재 일부가 당시 읍성 성벽에 사용된 석재로 오랜 역사를 깊이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명주사랑채 입구 기준 오른쪽 벽은 여전히 불에 탄 벽의 흔적이 남아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터는 여전히 기억을 품고 있다

최정숙 해설사는 “명주동이 원도심인만큼 ‘최초’의 타이틀을 가진 것이 많다”며 골목길에 난 작은 사거리에 멈춰 선다. “저 집은 강릉 최초의 치과, 저 건물은 최초의 외과, 저 기와집은 아직도 살아계시는데 최초의 여경이 사는 집…” 최초의 타이틀이 멈추질 않는다.

드립커피는 물론 다양한 도구들로 커피 추출을 해볼 수 있는 명주사랑채. 사진 / 김샛별 기자

드립커피 체험을 할 수 있는 명주사랑채는 몇 년 전에 화재가 난 뒤 버려져 있던 나무집이었다. 흉물에 가까웠던 집을 시가 매입해 커피 도시, 강릉에서 커피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새단장 했다.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모카포트는 물론, 사이폰, 이브릭 등의 추출도구로 직접 커피를 내려볼 수 있다.

명주사랑채에서 대도호부 방향으로 조금만 걸으면 단층 건물치고는 꽤 큰 회색 건물이 보인다. 1958년에 지어진 근대 건축물인 만민교회는 이제 ‘작은공연장 단’이 되었다. 규모는 아담하지만, 동물원, 멜로망스 등 가수들의 공연과 아라, 해랑 등 지역 연극단의 공연이 펼쳐진다.

강릉의 대표 행사 중 하나인 '강릉 단오제'와 관련한 벽화를 보며 걸을 수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공연장 주변으로는 강릉 단오제와 관련한 벽화들이 있고, 그 벽화 아래로 크고 작은 정원들이 꾸며져 있다. 정원들은 실명제(?)로 누가 관리하는지 팻말이 꽂혀 있다. 누가 누가 더 예쁜 꽃을 피워낼까. 다가오는 봄, 심은 이의 취향을 확인해보고 싶어진다.

명주예술마당 앞으로 펼쳐져 있는 임만혁 갤러리 로드. 사진 / 김샛별 기자

세월 스며든 공간, 예술을 만나다

다시 강릉대도호부로 빠져나오면, 명주예술마당으로 가는 길은 임만혁 갤러리로 조성되어 있다. 임만혁은 대표적인 강릉 지역 화가다.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쉽게 만날 수 있도록 10여 점의 벽화와 아크릴을 활용한 작품, 새․닭․강아지 등의 조형물들을 벽 위에 설치했다.

이 길 끝에 명주예술마당이 나온다. 옛 명주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한 이곳에서는 도예를 비롯한 유리공예 등 생활 속에서 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명주예술마당은 폐교를 리모델링 해 공연장 및 전시관, 체험실 등의 공간으로 꾸몄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안지용 강릉문화재단 대리는 “명주동, 성남동, 남문동 등 열두개 마을이 행정구역상 중앙동으로 묶여 있다”며 “고려시대 때 강릉의 지명이 ‘명주’여서 그 상징성을 살려 ‘명주동 문화마을’로 칭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동네가 땅을 파면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유물들이 자꾸 나와 개발을 할래도 할 수가 없다”며 “옛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한 오래된 동네가 되었고, 계속 이야기가 쌓이다보니 하나의 역사적 자원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그의 말대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뚜벅뚜벅 동네길을 걷다 보면 역사적인 아카이브를 걷는 기분이다.

Info 햇살박물관
이용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 (월·화요일 휴무)
주소 강원 강릉시 남문길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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