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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창의적 에너지가 넘치는 생각하는 정원
창의적 에너지가 넘치는 생각하는 정원
  • 박상대 기자
  • 승인 2018.02.02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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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 제주
생각하는 정원은 1만2천 평에 조성되었으며, 정원수와 분재 2천여 그루가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여행스케치=제주] 황무지를 개간하여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정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제주 ‘생각하는 정원’. 정원수와 분재가 서로 의지하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1만 2천 평에 담겨 있는 창의적인 예술성과 감수성을 소개한다. 

현무암 담장 안에 펼쳐진 나무 예술촌
중세 사상가 데카르트나 파스칼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생각을 하는 동안 성장하고, 행복을 영위한다. 슬픔도 생각이고, 기쁨도 생각이다. 미움도 생각이고, 사랑도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숲에 들어가서 힐링하는 것도 생각하는 일이고, 바닷가에서 산책하는 것도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제주에는 ‘생각하는 정원’이란 이름표를 달고 있는 정원이 있다. 정원으로 가는 차안에서 기사 아저씨에게는 정원에 대해 묻지 않았다. '이전에는 분재예술원이었기에 정원에 분재가 많이 있다'는 정보만 손에 쥐고 정문 앞에 섰다.

현무암이 담장을 이루는 생각하는 정원 정문. 사진 / 박상대 기자
나무는 예술품이 되고, 돌은 생명체가 된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찻길을 따라 가지런히 깎인 현무암으로 담장이 쳐져 있고, 중간지점에 웅장한 대문이 보인다. 대문 맞은편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내고 대문을 들어서니 한 사나이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화살표를 따라 정원을 산책하면서 관람하시면 됩니다. 관람하는 도중에 안내판을 읽으면서 구경하시면 더 좋습니다.”

안내원이 말한 대로 설명문을 읽는데 ‘생각하는 정원’이 들어선 초창기 이야기가 눈에 띈다. 1968년부터 돌밭과 가시덤불에 덮여 있던 황무지를 개간하여 정원으로 꾸몄다고 한다.

이웃 사람들은 미친 짓을 한다고 혀를 찼다. 첫 괭이질을 시작한 지 10년만에 정원을 개장했고, 외부인들에게 선을 보였다. 그 이후로 생각하는 정원은 해가 갈수록 더 세련된 모습으로 변신하고 있다.

여행객들은 정원 안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검정색 현무암이 작은 담장을 이루고, 그 담장 위에 분재들이 앉아 있다. 가장 먼저 침엽수와 활엽수가 구별된다. 소나무나 주목, 향나무 등은 가지마다 잎사귀를 달고 있고, 모과나무, 소사나무 등은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다.

모과나무. 사진 / 박상대 기자

모과나무 한 그루가 시선을 끌어간다. 노랗게 익은 모과 때문이다. 키가 1미터도 안 되는 모과나무에 탐스럽게 익은 과실이라니! 경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하는 정원은 많은 나무들이 지키고 있다. 2천여 정원수와 분재들이 저마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서 있다. 야자수는 듬직하게 서 있고, 향나무는 인고의 세월을 보듬고 있다. 소나무는 위엄을 자랑한다.

분재를 제대로 감상하는 사람들은 그 앞에 서면 숙연해진다. 몸통이 썩고, 껍질이 벗겨지고, 마디가 굵어지고, 가지가 비틀어지는 동안 나무가 감내해야 할 고통과 인내는 상상할 수 없다. 얼마나 오랜 세월 자신의 몸을 비틀어 예술품으로 승화했는지 묻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분재에게 나이를 묻거나 몸값을 따지면 안 된다.

폭포, 그리고 연못에서 황금잉어들이 유영하고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어느 유명 식물학자는 분재나 고목의 수령을 묻는 것은 넌센스라고 말했다. 사람의 수명보다 몇 배나 더 산 나무의 나이를 감히 어떻게 입에 답을 수 있단 말인가! 

정원에는 작은 폭포가 있고, 연못이 있다. 연못에는 황금잉어들이 노닐고 있다. 연못은 이 정원을 한결 더 평화롭게 연출한다.  

한중수교 20주년 기념식수. 사진 / 박상대 기자

분재는 고통 아닌 생명예술이다

이 정원을 일구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땀이 필요했을까? 돌을 파내고, 그들을 다시 담장을 만들거나 탑을 만들고, 나무를 심기 위한 언덕을 만드는데 사용했다. 돌도 나무와 마찬가지로 살아서 작품이 되어 있다. 땅 속에 묻혀 있던 돌들이 햇볕을 만나고 비바람을 맞으면서 생명체로 변신한 것이다. 

정원을 걸을수록 생각이 깊어진다. 수백 종 분재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분재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자태에 감탄하다가 한편으로는 나무를 이렇게 비틀어서 살게 하는 것이 나무학대가 아닌가? 바로 그런 생각을 할 때 분재에 대한 해설이 눈에 들어온다.

분재는 생명예술이다. 한 나무가 숲에 있었다면 평범한 나무였을 테고, 이미 수명을 다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재예술인을 만나 근사한 생명예술품으로 거듭난 것이다. 하나의 나무에서 예술품으로 신분이 바뀌는 동안 분재는 사람들이 고정관념을 버리게 한다.

나무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면 몸집만 큰 나무였을 텐데 몸에 꼭 필요한 엑기스만 남기고 군더더기를 잘라냄으로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사람들이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분재를 가꾸는 일은 예술가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나무를 사랑하고, 무한한 인내심을 가진 사람이면 된다. 분재를 가꾸는 동안 나무는 성실함과 정직성을 가지라고 일러준다.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아 부어야 더 아름다운 결과물을 마주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황무지를 개간하여 정원을 일군 성범영 원장. 사진 / 박상대 기자
국내외 유명인사들이 다녀간 흔적들. 사진 / 박상대 기자

중국 공위공직자들의 단골 방문코스

정원 안에는 정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와 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 기념품이나 책을 파는 매점도 있다. 그리고 그동안 이 정원을 다녀간 국내외 유명 인사들이 남기고 간 사진과 방명록이 전시되고 있다. 

실제로 이 정원은 국내보다 중국 사람들에게 더 유명하다. 1995년 11월 중국 장쩌민 주석이 이 정원을 다녀갔다. 당초에는 30분 정도 구경할 예정이었는데, 현장을 찾은 장 주석이 성 원장을 만나 이것저것 질문을 하고, 답을 하면서 예정 시간보다 40분을 더 머무르다 돌아갔다. 장 주석은 분재에 대한 관심도 많았지만 황무지를 개간하여 정원으로 가꾼 창조적인 업적을 더 높이 평가했다. 

장 주석은 중국에 돌아가 고위 간부들에게 제주도의 ‘생각하는 정원’을 이야기했다. 한 농부가 황무지를 개간하여 세계적인 정원으로 가꾼 이야기, 중국이 원조인 분재예술을 한국에서 꽃피운 이야기 등을 들려주면서 고위공직자들이 이곳을 방문하여 창조적인 개척정신을 배우라고 주문했다는 것이다.   

성범영 원장은 “그날 이후 후진타오 당서기도 방문했고, 수많은 부장들과 주한 대사, 고위 공직자 6만여 명이 다녀갔다”고 말한다. 생각하는 정원은 그 후 중국 인민일보에 소개되었고, 성원장은 100여 차례 초청을 받아 중국에 다녀왔다. 한중수교20주년 행사를 이 정원에서 열기도 했다.

정원을 관람하는 동안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성 원장이 직원들과 나무를 손질하는 모습을 참관할 수 있다. 아주 바쁜 때가 아니면 관람객들에게 직접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기념사진도 찍어준다. 

성 원장은 분재를 감상하는 동안 주변에 써놓은 해설을 함께 읽으라고 권유한다. 한,중,일,영어로 표기해 놓은 설명문을 한국 관람객들이 가장 안 챙겨본다면서 아쉬움을 토로했다.

기자는 방명록에 ‘수십 년 가꾸어온 정원을 두 시간에 다 둘러보고 나서려니 송구스럽다. 머릿속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고 썼다. 그리고 그에게 봄이 되면 꼭 다시 찾겠다는 약속을 하고 대문을 나섰다. 

Info 생각하는 정원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녹차분재로 6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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