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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몸 값 높으신 대게를 만나는 곳
몸 값 높으신 대게를 만나는 곳
  • 노규엽 기자
  • 승인 2018.02.07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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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군 강구항 위판장
지금 영덕에는 제철을 맞은 대게들이 올라오고 있다. 사진 노규엽 기자

[여행스케치=영덕] 겨울바다는 다른 계절에 비해 다양한 어종이 어획되는 수산물 천국이다. 특히 동해에서는 아주 귀한 몸들도 올라오니 그 이름도 유명한 대게다. 눈이 오는 계절이나 눈 오는 지역에서 곧잘 잡혀 영어로는 snow crab이라 불리는 대게는 남다른 맛을 지녀 ‘게 중의 게’란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니들이 게맛을 알아?”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지금도 여기저기에서 패러디되며 쓰이고 있지만, 이 말이 처음 쓰일 때 지칭했던 게가 대게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싶다. 약 20년 전 방영되었던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에서 대게잡이 어부를 연기한 배우 최불암씨가 이 말을 쓰며 대게를 전국적으로 알렸던 것. 이 드라마를 촬영한 장소가 바로 강구항이다.

‘영덕대게’는 왜 대게의 대명사가 되었을까?
대게는 동해 북부인 강원도 속초부터 경북 울진과 포항, 그리고 경남, 울산, 부산에서까지 어획될 만큼 동해 전체적으로 어획되는 어종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대게를 이야기할 때 십중팔구 ‘영덕대게’를 먼저 떠올린다. 이는 드라마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덕의 대게가 각인된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앞서 영덕이 대게의 원조라는 설이 전해온 때문이기도 하다.

영덕대게의 유래는 고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태조 왕건이 지금의 영덕군 영해면 지역을 순시할 때 임금님의 주안상에 특별식으로 대게가 올랐다는 것. 그리고 오랜 시간 후인 고려 29대 충목왕 때 새로 부임한 영해부사 정방필이 대게 산지 마을을 순시하며, 죽도산(竹島山)이 보이는 마을에서 잡은 게의 다리가 대나무와 흡사하여 대게라고 부르게 됐다는 이야기다.

영덕군 축산면에 있는 차유마을에는 대게원조마을 표석이 있다. 사진 노규엽 기자
강구항 인근에 늠름하게 서있는 대형 대게 조형물. 사진 노규엽 기자

크다는 뜻이 아닌 다리가 대나무를 닮아 대게라는 이야기는 이제 익숙해질 때가 되었지만, 실제로 대게를 눈앞에서 보면 그 늠름한 자태로 인해 ‘크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고 만다. 강구항에는 특별한 대게와의 만남이 준비되어 있다.

영덕대게의 브랜드 상품, 박달대게
강구항으로 향하다보면 건물 벽면을 장식한 크고 작은 대게 조형물들이 먼저 눈에 띄기 시작한다. 대게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식당들이 무려 3km나 이어지는 일명 ‘대게 거리’다. 그 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식당 맞은편 바닷가 쪽에 강구수협 위판장이 있다.

대게 위판이 진행되는 강구항의 아침 8시경. 위판장에는 인적이 드물고 조용하기만 하다. TAC 어종인 대게 조사를 위해 항구에 나온 신숙희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조사원은 “대게 어선은 이미 정박해 있지만 위판이 시작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라며, “대게는 신선도가 생명이기 때문에 위판하기 전에 미리 꺼내놓지 않는다”고 알려준다.

어마어마한 양을 진열해놓고 시작하는 대게 위판 모습. 사진 노규엽 기자

기다림도 잠시. 강구수협에서 대게 위판을 시작한다는 방송이 나오자 어딘가에서 추위를 피하고 있던 경매사들과 중매인들이 위판장을 가득 채운다. 어선 갑판에도 어느새 어부들이 자리를 잡고 대게들이 담긴 박스(가구)를 내릴 채비를 한다. 이때 박스를 넘겨주며 “이건 모두 박달”, “이건 박달 섞인 것”이라고 하는 말이 들린다.

“영덕에서는 살이 꽉 찬 대게를 박달대게라는 이름으로 브랜드화 했거든요. 박달나무처럼 단단하다고 해서 붙인 명칭이죠. 크기와 상관없이 살이 7~80% 이상으로 단단하게 들어있으면 박달대게로 분류된답니다.”

그렇게 먼저 위판장에 나열되기 시작하는 박달대게들은 오른쪽 집게 다리에 하얀색 표식을 매단다. 강구항에 모인 영덕대게 중에서도 최상품이라는 의미이고, 위판 가격이 높은 것은 물론 인근 식당에서도 기본 10만원 이상을 호가하는 귀한 몸들이다. 신숙희 조사원은 박달대게 외에도 대게를 부르는 명칭이 다양하다고 말해준다.

“박달대게와 반대로 살이 부족한 대게들은 물게 또는 한자어로 수(水)게라고 불러요. 갓바리라 불리는 대게는 발음상 안 좋게 들릴 수도 있지만 가까운 바다에서 잡아왔다는 뜻이죠. 이걸 알고 있으면 강구항에서 대게를 구입할 때 도움이 될 겁니다.”

껍질 속에 살이 꽉 찬 박달대게는 집게다리에 하얀 표식을 달고 있다. 사진 노규엽 기자

위판장에는 박달대게부터 크기순으로 나열되고, 나머지 대게들도 살이 찬 기준으로 줄을 세우고 나면 경매사의 타령조 소리와 중매인들의 손짓으로 위판이 진행된다. 한 번 깔린 대게들이 모두 거래되고 나면, 어선에서 새로 대게들을 내려놓는 작업의 반복. 신 조사원은 “배가 한 번 나갈 때 1주일 정도 조업을 하고 오기 때문에 양이 많다”며 “한 배에서만도 위판이 4~5차례 반복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화려한 대게 거리, 풍족한 대게 요리
대게 위판이 끝나면 위판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한 항구로 돌아오고, 이제는 도로 맞은편 식당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찜통에 증기를 뿜어대며 대게를 먹고픈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추운 날씨에도 식당 앞에 나온 직원들이 지나는 관광객들에게 대게를 홍보한다.

“대게를 먹는 것도, 구입하는 것도 대게 거리에서 다 할 수 있어요. 강구항에 있는 동광어시장이나 그 앞 난전시장, 식당들에서도 가격은 비슷하답니다.”

강구항에 3km가량 늘어선 대게거리의 모습. 사진 노규엽 기자

대게 거리에는 대게뿐 아니라 붉은대게(홍게)와 러시아 대게, 킹크랩도 눈에 띈다. 특히 수입산인 러시아 대게들이 꽤 많이 보이는데, 수입산이 싼 것도 아니라고. 신 조사원은 “맛은 취향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이니 살이 꽉 찬 대게를 고르는 게 관건”이라고 말한다.

“박달대게를 고르면 확실하겠지만 높은 가격이 부담일 수 있죠. 그렇다면 일반 대게 중에서 살이 많이 찬 것을 고르면 된답니다. 대게 다리나 배를 만져 단단할수록 살이 차있죠. 색으로는 배 부분이 노르스름하게 보이면 살이 차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면서도 “대게는 클수록 값이 비싸지니 1인당 1~2마리 정도 넉넉하게 먹을 계획이라면 9~9.5cm 정도의 기본치수를 먹는 것이 정답”이라고 덧붙인다.

대게 거리에는 대게회니 대게 코스 요리니 하며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메뉴들도 흔히 보이지만, 역시 찜으로 맛보는 게 최고. 담백함과 크리미한 향을 갖춘 대게는 겨울철 동해안의 보물 같은 맛이다.

대게는 찜으로 맛보는 게 최고의 방법이다. 사진 노규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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