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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12월호
개발도 피해간 골목, 여행자에겐 새로운 풍경...대전 소제동 철도관사촌
개발도 피해간 골목, 여행자에겐 새로운 풍경...대전 소제동 철도관사촌
  • 김샛별 기자
  • 승인 2018.03.13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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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머문 곳... 그 시절 시간도 함께 머물러
시간이 멈춘 좁은 골목길이 있는 대전 소제동은 근대에는 전국 최대 규모의 철도관사촌이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여행스케치=대전] 경부선과 호남선이 갈라지는 대전은 철도도시이자 철도로 말미암아 근대가 시작된 도시. 시장이 성업하는 대전역 서쪽과 달리 동쪽 출구 바깥은 조용하기만 하다.

대전역 원도심이 쇠퇴했다고는 해도 유난히 더 변화의 물결이 동쪽은 못본 채 지나친 것만 같다. 192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시간이 멈춰선 이곳, 소제동 철도관사촌이다.

호국철도 광장으로 조성된 대전역 동광장에는 철도인을 형상화한 기념동상이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대전역 앞에는 철도 물자를 이동·보관을 위해 1956년 지어진 나무 창고가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대전역 동광장은 호국철도 광장으로 대전 전투에서 행방불명된 미 육군 윌리엄 F.딘 소장을 구출하기 위해 사선을 뚫고 달려간 세 철도인의 모습이 형상화 된 기념동상이 있다. 6·25 한국전쟁 때 군 수송작전에 투입 돼 1만 9천여 명의 철도인이 순직한 것을 기리는 기념 조형물도 함께하고 있다.

이곳에서 몇 걸음만 지나면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 한가운데는 가로로 긴 나무 건물이 보인다. 구 철도청 대전 지역 사무소 보급 창고 3호다. 맞은편의 1호와 2호는 시멘트로 새로 지어졌지만, 3호는 여전히 옛 모습 그대로다.

짙은 고동색 나무창고는 철도청에서 필요로 하는 물자를 이동·보관하던 창고로 건립되었기 때문에 건물 내부에 기둥이 없다.

또한 보관중인 물건들이 상하지 않도록 목재 널판으로 외부를 마감해 통풍이 잘 된다고 한다. 트러스 목구조로 만들어진 지붕으로 보아 일제강점기 때 건축기법으로 보이지만, 지어진 것은 1956년이다. 

김진희 대전시 문화관광해설사 회장은 “일제가 대전을 내륙 거점으로 사용하기 위해 공을 들였지만, 기반을 닦아놓은 뒤 해방돼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국전쟁부터 제대로 써먹은 셈”이라고 첨언한다. 이러한 특징들로 희소가치가 높은 이 건물은 현재는 닫혀 있지만, 전시회가 잡히면 문화 예술 공간으로 변신한다.

이 부근부터 대동천까지 구역이 과거부터 지금까지도 철도인들이 머무는 관사촌이다. 김진희 해설사는 “1927년 대전역 뒤의 소제호를 매립하고 대동천을 만들면서 천변에 철도관사를 지었다”고 설명한다.

현재도 대전역 인근에는 철도 관사로 사용되는 기숙사가 자리한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소제동 골목 곳곳에 황폐한 빈 집이 된 적산가옥을 보는 건 어렵지 않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지붕에는 '제00호' 관등이 적힌 현판을 더럿 볼 수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그래서인지 지대가 낮고, 걷다 보면 움푹 패인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지금도 대전은 주요한 철도도시 중 하나이기 때문에, 기숙사와 관사로 사용되는 7~80년대 지어진 낮은 5층짜리 아파트부터 깔끔하게 페인팅 된 신축 아파트가 사이사이 보인다.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건 어렵지 않다. 솔랑시울길을 기점으로 양옆으로 솔랑길과 시울길이 맞닿아 있다. 약 40여 채의 가구들이 있으며, 옛 적산가옥의 목조 지붕에 ‘제 00호’라는 관등이 적혀 있는 나무 현판이 여전히 몇몇 집 지붕에 걸려 있다. 김진희 해설사는 “주민들이 관심도 없을뿐더러 가난해 개발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중요한 근대문화 유산이 되었다”고 말한다.

40년이 넘도록 마을 터줏대감 역할을 하는 청양슈퍼 주인이 소제동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낡은 선양 간판에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나무전봇대가 세워져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개발도 피해간 오래된 골목은 여행자에겐 새로운 풍경으로 남는다. 요새는 찾아보기 힘든 나무 전봇대, 고래 모양의 로고로 유명했던 대전·충남 지역 소주인 ‘선양’의 빛바랜 옛 간판이 벽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풍경 덕분에 근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꽤 소문이 났다.

40년이 넘게 한 자리를 지켜온 청양수퍼 주인 역시 “이 동네는 옛날이랑 변한 게 하나도 없다”며 “몇 년 전부터 예술하는 사람들이 들어와 수퍼 앞 공터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그의 말처럼, 청양수퍼는 이른바 솔랑시울길의 메인 무대다. 장독대들이 마치 건반처럼 제각각의 키높이로 모여 있고, 그 옆으로는 가늘고 키작은 나무 한 그루가 벤치와 함께 자리한다.

나무 하나를 심은 것처럼, 시가 나부끼는 현수막으로, 마치 버려진 것처럼 보이는 창문 한 짝에 새겨져 감성을 더한다. 수퍼 주인은 ‘선양’ 표지판이 붙은 오른쪽을 가리키며 “이 골목으로 가면 소제창작촌이 있다”고 일러준다.

'시'를 주제로 소제동을 풀어낸 예술가들의 작품이 길 곳곳에 놓여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소제예술촌과 솔랑시울길 거리 풍경. 사진 / 김샛별 기자
일제가 소제호를 메워 마는 대동천에서는 마을 벽화가 그려져 있어 산책의 즐거움을 준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사실 과거로의 시간여행이나 오랜 역사의 향취라 포장하기에 골목의 모습은 무법지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밝은 벽화를 그리고, 버려진 집들에 예술가들이 들어와 ‘소제창작촌’을 만들며 옛 시간에 현재를 덧붙이려는 시도를 꿰하고 있다. 빈집에 모여 함께 시를 읽기도 하고, 기수별로 돌아가며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오래된 골목 끝엔 대동천이 흐른다. 천변 양옆으로 철도와 관련된 그림, 송시열, 소제동과 관련한 그림이 그려져 있어 천변 따라 풍경 따라 걷는 맛을 선사한다.

김진희 해설사는 “작년 재개발이 확정돼 어느 도로를 남겨놓느냐 주민들 간에 이야기 중”이라며 “재개발이 시작되기 전, 전국 최대 규모의 철도관사촌도 돌아보고 이 분위기를 느껴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Info 철도문화유산 투어
대전역~구철도청대전지역사무소 보급창고 3호~솔랑시울길~철도관사촌~대동천 철갑교 벽화거리 (약 1.5km/9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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