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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부천의 '대지'에 꽃피운 박애를 기억하다, 펄벅기념관
부천의 '대지'에 꽃피운 박애를 기억하다, 펄벅기념관
  • 김샛별 기자
  • 승인 2018.03.19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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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성 최초 노벨문학상, 퓰리처상 수상자 펄벅여사
옛 (한국)지부대표사택과 동일한 디자인으로 재건축된 펄벅기념관 외부. 사진 / 김샛별 기자

[여행스케치=부천] 가난한 농부가 재산을 모아 대지주가 되는 왕룽과 그 일가의 역사를 그린 <대지>라는 소설로 1938년 미국 여성 최초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을 동시에 수상한 펄벅의 흔적이 경기도 부천에 남아 있다.

부천역에서 15분 정도 걷다 보면, 아파트와 원룸촌 사이에 작고 아담한 이층 주택이 보인다. 작은 박물관이지만 펄벅과 한국의 인연에 대해 알기엔 무리가 없다. 

전누리 펄벅기념관 팀원은 “현재 펄벅기념관이 있는 자리는 1964년부터 9년 정도 소사희망원이 있던 자리”라고 소개한다. 왜 펄벅이 한국에 소사희망원을 짓고, 펄벅재단을 만들어 한국지부를 최초로 세웠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연대기부터 살피는 것이 좋다.

펄벅기념관에서는 1만평 규모의 옛 소사희망원을 미니어쳐로 복원해두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누리 팀원은 “생후 3개월 만에 중국으로 가 자랐기 때문에 겉은 미국인이었지만 언어도, 생활방식도 중국인과 같았다”며 “펄벅은 자기 자신을 가리켜 정신적 혼혈아라고 이야기 했다”고.

그는 소설을 쓰기 위해 한국에 왔지만, 도착해 목격한 것은 6·25 한국전쟁으로 인한 수많은 전쟁고아들과 미군과 한국여성들의 혼혈아동들의 차별받는 모습이었다.

그는 “펄벅은 자신 역시 ‘정신적 혼혈아’로 생각했기에 그들의 의식주 해결은 기본,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의 이름을 딴 펄벅재단을 설립하고, 최초의 지부인 한국지부를 만들어 소사희망원을 지었다”며 “가수 인순이를 비롯해 함중아, 정동권 등도 펄벅재단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설명한다.

옛 소사희망원의 규모는 모형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소사희망원은 펄벅재단사무동, 남·여 기숙사를 포함해 총 9개의 건물이 1만평 대지에 세워져 있었으나 1973년 펄벅이 죽은 뒤, 1975년 문을 닫았다. 

현재의 펄벅기념관은 2006년 지어진 것으로, 지부대표사택과 동일하게 다시 지어졌다. 이는 유일한 유한양행 대표가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준 것으로, 그의 부인이 중국인이어서 중국에서 오래 살았던 펄벅과의 교류가 인연이 된 것이다.

이는 펄벅이 한국을 배경으로 쓴 <살아 있는 갈대>로도 이어지는데, 소설 속 주인공 이름인 ‘김일한’은 그에게서 따온 것이기도 하다.

전시관 내부에서는 다양한 유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중국인이 좋아하는 붉은색과 금색으로 된 투피스는 생전 그가 즐겨 입었던 옷. 펄벅은 자신의 이름 때문이었는지 진주를 무척 좋아했는데, 그 중 자주 착용하던 진주 악세사리도 전시되어 있다.

펄벅의 대표작 <대지>의 초판본부터 그의 책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펄벅기념관에는 펄벅이 자주 입던 옷부터 그가 사용했던 책상, 타자기 등 다양한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실제 펄벅이 사용하던 책상 위에는 <대지>를 비롯한 그의 소설 초판본 등이 펼쳐져 있으며, 시간 순서대로 두 대의 타자기 역시 눈여겨볼만 하다. 30년대 그녀가 사용하던 타자기는 쇠로 된 타자기였으나 한국에서 사용했던 67년도 타자기는 플라스틱이 개발된 후 생산된 타자기로 시대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펄벅은 친딸 외에 7명의 자녀를 입양하기도 했는데, 그 중 한국인 구순이도 있었다. 그는 펄벅기념관 개관을 축하하며 직접 한국을 오갈 때 펄벅이 사용하던 캐리어를 기증했다.

그 외에 ‘최진주’라는 이름으로 받은 명예서울시민증, 펄벅재단 옛 현판, 2000년 영부인 이희호 여사의 펄벅여사상 수상 기념 접시 등도 의미 있는 기증품들이다.

(좌) 펄벅이 소설 집필시 사용하던 책상과 그의 초상화 (우) <대지>로 잘 알려진 소설가, 펄벅의 모습. 사진 / 김샛별 기자
펄벅의 80세 생일선물인 산수화 뒤편에는 소사희망원 출신 1030명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특히 전누리 팀원이 의미 있게 생각하는 것은 전시관 가운데에 있는 산수화다. 그는 “펄벅의 80세 생일에 선물로 주었던 것”이라며 “앞면은 평범한 산수화지만, 뒷면에 빼곡하게 소사희망원 출신 1030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고 설명한다.

펄벅기념관 밖으로는 작은 기념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3~4년 전까지만 해도 고아원 건물 한 채가 주변에 남아 있었으나 그마저도 사라져 펄벅에 관한 다른 역사적 흔적은 따로 찾기 힘들지만 그 의의만큼은 부천이라는 ‘대지’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Info 펄벅기념관
주소
경기 부천시 성주로214번길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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