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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제주 4.3 70주년] 평화의 섬 제주, 동백꽃 따라 4.3을 걷다
[제주 4.3 70주년] 평화의 섬 제주, 동백꽃 따라 4.3을 걷다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 승인 2018.03.29 16: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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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평화공원 / 남원 의귀마을 4.3길 / 광치기해변 터진목
4.3유적지 중 하나인 광치기해변 터진목.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여행스케치=제주] 한동안 ‘제주 4.3’은 금기어였다. 지금도 입에 올리기에 송구스런 마음이 들지만, 잊힐까 염려하여 4.3을 떠올린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다짐이자 감사의 마음이다.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었지만 영영 스러지지 않았고, 강인한 삶의 회복으로 ‘평화의 섬, 제주’의 씨앗이 되었다.

제주는 부침이 많았던 섬이다. 일제강점기 동안 제주섬은 성한 곳이 없었다. 오름마다 파 놓은 진지굴이 700여 개나 되고, 1945년 광복까지도 6만6780명의 일본인이 잔존하였다고 한다. 5년 후인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하는데, 제주 4.3은 1948년의 일이다.

해방의 기쁨과 희망이 넘쳤어야 할 것 같은 시기에 제주는 전쟁보다 끔찍한 소용돌이에 빠져 있었다. 1948년 4월 3일은 학살에 항거하여 봉기가 시작된 날이고, 그로부터 1년 전인 1947년 ‘3.1절 발포사건’이 비극의 전조가 되었다.

민중의 시위와 경찰의 진압, 고문, 폭행이 지속적으로 자행되었고, 그 해 11월에 서북청년회가 결성되며 양민학살이 조직화되었다. 문제는 이때부터 죄 없는 양민들이 무참히 희생되었다는 점이다. 1954년까지 제주의 중산간마을 95%가 불에 타 없어졌고, 신고 된 희생자만 1만4028명에 이른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그 몇 배에 달하는 미신고, 미확인 희생자가 있다. 당연히 제주 전역에 4.3의 흔적이 있고, 매년 4월 3일에는 제사를 지내는 집이 두 집 걸러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4.3 평화공원에서 슬픔 속 희망을 보다
실내 전시실로 들어가는 복도는 축축하고 어두운 기운이 가득하다. 양민들이 숨어 지내던 동굴을 형상화하였는데, 한 발 뗄 때마다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동굴로 들어가면 하얀 관이 놓여있다. 아니, 이것은 백비이다. ‘4.3의 진정한 해결이 이루어지는 날 비로소 비문이 새겨질 것’이라 한다. 백비는 하늘로 뚫린 창으로 빛을 내려 받고 있다. 다행이다. 희망이 있구나.

4.3평화공원 전시실 입구.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전시실을 둘러보다 보면 희생자들의 고통이 전해져오는 것만 같다.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2관에서 4관까지는 4.3의 경위이다. 해방 후부터 휴전 후까지 장장 8년 동안 이어진 지난하고 끔찍한 역사는 해가 갈수록 강도를 더한다. 갈등과 대립으로 시작하여 무장봉기와 무차별 학살까지, 초기에는 한 자리 숫자의 희생자가 기록되어 있지만 후기에는 수 백 명의 양민들이 이유도 없이 스러져 갔다.

4.3은 오랜 시간동안 말하지 못하는 상처였다. 2000년이 되어서야 ‘4.3특별법’이 제정되었고, 2003년에 처음으로 故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부차원에서 4.3사건을 사과하였다. 물론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실내 전시실은 대통령의 사과로 끝이 나지만 ‘해원의 폭낭(팽나무)’을 세워 관람자들의 위로와 평화를 향한 소원을 듣는다.

평화공원의 야외공간은 그 자체가 마음을 울린다. 위령탑을 둘러싼 각명비에는 희생자의 이름, 성별, 당시 나이, 사망일시와 장소가 기록되어 있다. 자그마치 1만3903기이다. 그 이름을 하나하나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 진다.

추념광장을 지나면 위령제단이 있는데 이곳에서 희생자에게 제를 지낸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넓은 들판에 또 다른 검은 비석들이 줄을 섰다. 행방불명인 표석이다. 시신을 찾지 못해 묘가 없는 이들을 위로하는 공간으로 총 3806기나 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이유 없이, 이름도 없이 어딘가에서 생을 마감했을 이들에게 어떤 위로를 해야 할까? 지금까지 꾹꾹 눌러왔던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Info 4.3 평화공원
관람료 무료
주소 제주 제주시 명림로430

4.3이 바꾸어버린 한 마을의 운명
제주 남원 의귀리는 따스하고 풍요로운 동네였다. 봄이면 동백이 툭툭 떨어져 꽃길을 만들고 들판에 말이 노는 곳, 조선시대에는 나라에 많은 말을 진상하여 영조 임금에게 상까지 받은 곳이다. 그러나 4.3은 모든 걸 바꿔 놓았다.

하나의 공동체였던 의귀, 수망, 한남리는 한순간에 삶터를 잃었고 주민들은 오름, 숲 등에 흩어져 숨어 살았다. 이때 의귀마을의 희생자는 250여 명에 이르고 ‘의귀마을 4.3길’에는 그 흔적들이 남아 있다.

4.3사건 당시 무장대 진압군이 주둔했던 의귀초등학교.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남원 의귀마을 4.3길을 알리는 붉은 띠.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당시 의귀국민학교에는 무장대 진압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1949년 1월 12일에 무장대가 습격하여 전투가 벌어졌는데, 이때 군인 4명, 무장대 51명이 사망하였다. 그런데 희생자 4명을 낸 진압군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의귀초등학교에 수용중이던 80여 명의 주민들을 학교 동녘 밭에 데려가 학살해 버렸다. 

무장대의 시신은 학교 뒤에 대충 흙만 덮어 두었다가 후에 송령이골로 옮겨 매장했고, 희생된 양민은 학살터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가 현의합장묘 옛터에 3개의 구덩이를 파고 매장하였다.

지금의 현의합장묘는 학살되었던 80여 명의 주민을 이장하여 매장한 곳이다. 2003년의 발굴 사진을 보면, 유해마저도 심하게 엉클어져 있어 그때의 참혹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2004년에는 현재의 자리로 옮겨 안장하고 해마다 음력 8월 24일에 위령제를 봉행하고 있다.

학살되었던 주민들을 이장하여 매장한 현의합장묘.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동백꽃은 제주 4.3사건을 기억하는 또 다른 매개다.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송령이골 가는 길에도 동백나무가 보인다. 통꽃으로 떨어지는 동백은 아쉬움이 묻어 있다. 나무 위에서 조금 더 활짝 피어 더 오래 화려함을 누려도 좋았을 텐데 뭐가 급해서 이렇게 낙화했을까? 못 다 이룬 꿈, 더 누리지 못한 생명… 붉게 물든 동백길은 안타까운 4.3의 현장으로 여행자를 안내한다.

Info 남원 의귀마을 4.3길
신산마루 가는 길
 의귀마을 복지회관~의귀초등학교~장판거리~4.3 당시 의귀초등학교 동녘밭(양민학살 장소)~현의합장묘 옛터~제주 4.3 남원 희생자 위령비~현의합장묘~송령이골
주소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한신로207

아름다운 제주 풍경 속에도 4.3은 남아있다
광치기해변은 성산일출봉의 뷰포인트이다. 일출봉의 떠오르는 해를 사진으로 담으려는 작가들이 때마다 이곳을 찾는다. 게다가 독특한 용암 지형 때문에 물이 빠지면 어디서도 보지 못한 절경을 선사한다.

봄에는 유채가 만발하는 광치기해변, 그런데 광치기라는 이름에서부터 슬픔이 담겨있다. 예전에 고기잡이배가 돌아오지 않으면 가족들은 이곳에 와서 기다렸다고 한다. 골이 파인 독특한 모양의 바위 사이로 밀물 때 시신이 밀려와 걸리고, 물이 빠지면 그것이 드러났다고 한다.

수습된 시신은 주민들이 관을 짜서 묻어줬다고 한다. 그러한 이유로 ‘관치기’라고 부르던 것이 ‘광치기’가 되었다는 설이다.

그런데 광치기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4.3때 대량 학살이 일어난 곳이다. 광치기해변에서 성산일출봉으로 연결되는 50m 정도의 목은 물때에 따라 길이 열리고 닫혔다고 해서 ‘터진목’이라 하는데, 이곳이 정확히 4.3 현장이다.

성산읍 온평리, 난산리, 고성리 주민들은 인근 감자공장 창고에 수감되었다가, 폭행과 고문을 견디지 못해 죽거나 터진목에서 총살당하였다. 또 구좌면의 세화, 하도, 종달리의 양민도 이곳으로 끌려왔다. 자그마치 450여 명이었다고 한다.

아픈 이야기가 담겨있는 광치기해변.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소위 '다이너마이트 사건'이 벌어진 우뭇개동산.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성산일출봉으로 오르는 우뭇개동산 또한 4.3유적이다. 이곳은 1949년 1월 9일 소위 ‘다이너마이트사건’의 현장이다. 당시 일본군들이 버리고 간 다이너마이트를 고기 잡는 데 쓰곤 했는데, 이것을 가지고 있던 주민을 끌고 와 토벌군을 죽이려 했다는 이유를 들어 집단 총살한 곳이다. 그 인원이 오조리 주민 30여 명이었다.

4.3을 더듬다 보면 엄청난 희생자 수에 경악하게 된다. 더 놀라운 것은 제주 전역 그 흔적이 없는 곳이 없다. 봄날의 제주는 이토록 아름다운데 70년 전 이곳에선 믿기 힘든 희생과 아픔이 있었다.

이 계절에 제주를 찾는다면 한번쯤 제주의 역사를 찾아보고, 이 섬을 위로해 주길 바란다. 그것이 이 아름다운 제주를 누리는 데 대한 작은 감사일 수도 있겠다.

Info 성산일출봉 우뭇개동산
입장료
성인 2000원, 청소년·어린이 1000원
주소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일출로 284-12

Info 광치기해변 터진목
주소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224-33

TIP 제주 4.3 70주년 기념사업회에서는 4.3의 상징인 동백배지와 자료, 4.3지도를 배포하고 있다. 시청, 제주대학교, 오일장 등에서 배포 행사를 진행하고, 전국 시도민원실을 통해서도 배지와 자료를 구할 수 있다(4.3 평화공원에서도 배지를 배포한다. 소진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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