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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골목길여행] 철공소 골목 예술가들 만나는, 문래 창작촌
[골목길여행] 철공소 골목 예술가들 만나는, 문래 창작촌
  • 김샛별 기자
  • 승인 2018.03.30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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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건물에 입혀진 벽화, 철공소와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공존하는 곳
낡은 건물에 입혀진 독특한 벽화가 눈길을 사로잡는 문래 창작촌. 사진 / 김샛별 기자

[여행스케치=서울] 문래역 7번 출구에서 문래 공원을 마주보며 5분 남짓 걸었을까. 버려진 철재로 만든 조형물과 ‘문래 창작촌’이라는 이름이 적힌 인포메이션 부스가 보인다.

기린을 닮은 이 조형물은 천근성 작가의 <기린>으로 문래동의 첫 공공예술작품으로 의미가 있다. 이 뒤로 커다란 용접면과 망치가 문래동에 어떤 동네인지 말해주는 듯하다. 

용접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떵떵 망치질을 하는 철공소들이 즐비한 동네. 문래 창작촌은 이를 예술로 담아내려는 이들이 모이며 형성됐다.

문래 창작촌 초입에 설치된 공공조형물은 철강소가 즐비한 문래동의 특성을 잘 나타낸다. 사진 / 김샛별 기자
문래동의 한 철공소의 모습. 사진 / 김샛별 기자

낡은 기계소리, 멜로디가 되다
용접면과 망치 조형물이 아니더라도 눈으로, 코로, 귀로 문래동은 자신이 어떤 얼굴인지 말해준다.

'지잉 지잉' 쇠 자르는 소리와 '철커덩' 소리를 내며 철강 재료들이 부딪치고 바쁘게 옮겨지는 소리, 쇠를 자르고 붙이며 주위에 튀는 용접 불똥, 무겁고 탁한 철가루 냄새, 금속이 녹는 매캐한 냄새, 철공소에서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이 섞여 있는 곳. 이 사이사이에 ‘철철’한 예술작품을 만나보기란 어렵지 않다.

특히 기업은행 앞에 양철꽃을 쥐고 있는 양철로봇은 문래창작촌의 마스코트. 철로 만든 다양한 조형물 외에도 골목골목 <환상의 조형>, <문래동 수호신>, <사유적 공간>, <우주 고양이>, <울렁울렁 통통배>, <풍경과 TV> 등의 벽화와 소위 ‘기리바시’라고 한 자투리 철근으로 만든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볼 수 있다.

자투리 철근으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본따 만든 작품. 사진 / 김샛별 기자
(좌) 주물집에 관련한 벽화 / (우) 철공소 골목에 그려진 색색의 벽화. 사진 / 김샛별 기자

그 중 난데없이 돌과 거북이가 그려진 바닷가 풍경이 그려진 골목길이 눈에 띤다.

공공 미술활동을 지원하고, 예술 체험 교육 및 ‘올래? 문래’투어를 진행하는 사회적기업 ‘보노보C'의 임채휘 이사는 “바로 앞 주물집에서 주물이 튀면 흙이 꼭 거북이 등처럼 동그랗게 뭉쳐서 올라왔었는데 그걸 보고 그려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은 흙길이 아닌 시멘트로 길을 만들어 놓아 볼 수 없는 풍경이 벽화로 남았다”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문래 캠퍼스를 알리는 신호등을 연상시키는 간판(우)이 달린 곳은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공방(좌)이다. 사진 / 김샛별 기자

똑똑, 간판 보고 찾아왔습니다
문래창작촌을 돌아다니면 세 종류의 간판이 있다. 하나는 철공소에서 자주 사용하는 재료들로 만들어진 간판, 다른 하나는 간판에 뱃지처럼 달려 있는 사람 모양의 목공예, 마지막 하나는 신호등처럼 빨간불, 초록볼, 노란불의 집모양 간판이다.

전자는 문래창작촌 작가들이 철공소의 특성을 반영하는 간판을 달아주는 프로젝트 중 하나로 시작된 것.

전파와 관련한 가게는 페인트칠을 한 안테나로 간판을 만들고, 금형 자동화부품을 만드는 공사는 해당 설비들로, 컷팅과 가공을 하는 곳은 페이퍼커팅과 같은 예술적인 간판을 달아두었다.

문래 창작촌 예술가들에게 얼굴 형상을 한 나무 간판을 선물하는 '숲' 공방. 사진 / 김샛별 기자

두 번째 간판에 붙은 목공예 작품은 자세히 살펴보면 공방마다 붙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임채휘 이사는 “간판에 이렇게 주인의 얼굴을 나무로 형상화한 게 붙어 있는 곳이 있다”며 “‘숲’공방을 운영하는 작가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우스갯소리로 이 선물을 받으면, 비공식적으로 문래작가인증마크가 붙은 것이라 보면 된단다.

마지막으로 신호등 같은 간판은 ‘문래 캠퍼스’로 활동하는 곳들을 알리는 표시다. 철공소 속 예술촌으로 알려진 문래동에 다양한 공방과 작업실을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배울 수 있는 곳.

가죽공예, 실버쥬얼리, 도자기, 목공은 물론 우쿨렐레 연주, 일러스트 그리기, 커피 볶는 법, 재봉틀 다루기 등 30여개의 체험거리가 가득하다.

옛 벽돌건물을 심심치 않게 살펴볼 수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적산가옥과 영단주택… 빼곡한 세월이 이곳에
작가들이 군데군데 그려놓은 벽화와 작품들도 매력적이지만, 동네를 이루는 집들은 그 자체로 건축박물관처럼 보인다. 걷다 보면 의외로 골목이 반듯하게 구획이 지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계획 단지였기 때문이다.

임채휘 이사는 “지금은 철공소 골목이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문래동은 방림방적공장을 포함해 커다란 방직공장 3~4개가 있었다”며 “공장 노동자들을 위해 공장 옆에 조선인 노동자들이 머무는 숙소인 영단주택을 지었다”고 설명한다.

영단주택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다. 갑을병정 순으로 크기가 줄어들었는데 25평 갑과 20평 을은 일본인 간부들이 머물던 숙소고, 병정을은 15평, 10평, 5평… 순으로 조선인 노동자들이 기숙사 형태로 묵었었다.

지금 문래동 5-8번지는 갑과 을이 사용했던 집들이 있던 자리. 해방 이후엔 군부대가 주둔했다. 일본식 다다미방이 딸리고, 화장실이 안에 있는 부유한 단독주택단지가 있어 70년대까지 문래동은 부자 동네였다.

임 이사는 “문래동에는 영단주택만 500채가 있었다”며 “동네에 있는 ‘영단슈퍼’와 식당 ‘오백채’는 문래동4가 일대를 ‘오백채’라 불렀던 것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70년대 역사의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 있음을 상기시킨다.

영화 <어벤저스>의 촬영지 중 하나였던 문래동 철강소 골목 풍경. 사진 / 김샛별 기자

70년대 중반부터 90년대까지, 화려했던 지난날
일본이 세계 2차 대전을 일으키고, 군수물자를 보급하는 노량진~인천 사이에 문래동이 있었기 때문에, 철공소들이 군데군데 있었지만 문래동에 본격적인 철공소가 밀집하고, 산업의 중심지가 된 것은 70년대 중후반이었다.

청계천이 덮이면서 스테인레스 관련한 공장들이 문래동으로 옮겨왔다. IMF가 터지면서 철강소들이 많이 문을 닫고, 2000년대 초반 예술가들이 들어오면서 창작촌의 모습이 된 것이다.

지금은 조용해진 이곳의 정취는 또 그만의 매력이 있다. 철강단지에서는 영화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촬영되었고, 원빈이 전당포 주인으로 나왔던 영화 <아저씨>도 이곳에서 촬영 됐다. 영화 <특별시민>과 현재 방송되는 KBS2 드라마 <추리의 여왕 시즌2>의 배경 역시 문래동이다.

각종 카메라와 예술가들을 사로잡는 문래동 철강단지 특유의 분위기는 걷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낡은 철공소를 풍경으로만 감상하기엔 아깝다. 철공소 위층과 지하엔 소규모 갤러리, 공연장을 포함해 사진관, 공방, 작업실이 쏙쏙 숨어 있으니 겁내지 말고 오래된 계단을 밟아보자.

(좌) 문재인 대통령이 다녀간 바로바로전집, (우) 문래문화살롱이 있는 골목. 사진 / 김샛별 기자
정갈한 가정식을 맛볼 수 있는 쉼표말랑의 대표메뉴인 돼지고기 생강조림 밥상. 사진 / 김샛별 기자

골목골목 개성 강한 맛집들
문래동은 큰 건물 없이 작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기 때문에 대로에 눈에 띄는 가게보다는 골목 골목 발품을 팔아가며 숨어 있는 맛집을 찾아야 한다.

‘카페 수다’와 ‘치포리’처럼 작가들이 직접 열었던 문래동 터줏대감 카페는 카페 대신 다른 대안공간으로 3월, 문을 열었다.

치포리는 아트 스테이 형태로 돌아왔고, 카페 수다는 카페가 아닌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파는 예술상점의 역할을 맡았다.

‘칸칸에인연’과 ‘쉼표말랑’은 가장 처음 문래동에 생겼던 밥집. 특히나 ‘쉼표말랑’은 여자대목수가 옛 목구조를 그대로 살린 인테리어로 가정식을 판매해 맛과 분위기를 둘 다 잡았다고 평가 받는다.

또하나 유명한 집은 ‘바로바로전집’이다. 아들인 문준용 작가가 문래동 작업실이 있어서 일까? 문재인 대통령이 두 번이나 왔다간 곳이다.

줄 서서 먹는 ‘올드문래’와 매일밤 8시 공연이 이뤄지고, 오직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수제맥주 ‘문래’를 판매하는 문래문화살롱, 줄 서서 먹는 ‘양키스버거’등은 빼놓으면 섭섭한 문래동의 핫플레이스다.

Info 문래 창작촌
문래역에서 영등포 초등학교가 있는 문래동 사거리까지 골목마다 다양한 작품들이 있다. 이를 알려면 인포메이션 센터에 있는 ‘올래? 문래!’지도를 참고하면 좋다. 또한 진회색 아스팔트 도로 위에 지금은 군데군데 벗겨진 노란색 동그라미에는 번호와 함께 작품명이 표시되어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이정표가 되어준다.
주소 서울 영등포구 도림로128가길 13-8

일하는 이들의 초상권 보호를 위한 안내판이 곳곳에 붙어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TIP
문래 창작촌은 관광지가 아니라 일터다. 문래 투어를 진행하는 ‘보노보C’역시 투어를 진행할 때 1조당 10명~12명이 넘어가지 않도록 하고, 총 35명이 넘어가지 않도록 규칙을 정했다. 사진을 찍을 때도 초상권을 지켜달라는 푯말을 많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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