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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옛 제주가 흐르는 원도심 도보여행
옛 제주가 흐르는 원도심 도보여행
  • 양수복 기자
  • 승인 2018.03.30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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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바다•올레 말고 탐라 신화 따라 추억 따라
삼성혈 입구. 사진 / 양수복 기자

[여행스케치=제주] 제주의 자연은 사시사철 좋다. 그렇지만 지천에서 여행자를 부르는 오름과 바다, 올레를 찾다 보면 간과되는 곳이 제주의 도심이다.

제주시 원도심을 걷고 나면 제주의 거리마다 장소마다 이렇게 매력적인 역사와 이야기가 층층이 쌓여왔다는 사실에 놀랄지도 모른다.

제주 원도심 도보여행은 삼성혈에서 첫 걸음을 뗀다. 원도심은 탐라국 탄생부터 제주의 중심이었고 제주가 시시각각 변하는 와중에도 옛 모습을 군데군데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혈은 그중에서도 탐라가 시작된 역사적인 장소이기에 제주 탄생의 흐름을 이해하고 원도심을 걷는 여정에 나서는 출발점으로 제격이다. 

Info 제주 원도심 도보여행
코스 삼성혈~중앙로 한짓골 상점가~칠성로 쇼핑거리~산지천 산책로~산지천갤러리 (약 1.8km)
소요시간 약 1시간

탐라의 시조 고•양•부을라, 삼성혈에 솟다

‘삼성혈(三姓穴)’은 문자 그대로 세 개의 성씨가 솟아난 구멍이다. 먼 옛날 탐라국을 세운 제주의 시조 고을라, 양을라, 부을라가 땅 아래서 우뚝 솟아났고 농경 생활에 접어들면서 탐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삼성혈은 단순히 혈자리만 있는 건 아니다. 신화를 설명하는 전시관과 후손들이 세 선인에 제를 지내는 삼성전, 세 개의 혈인 삼성혈을 모두 둘러볼 수 있다. 

삼성혈 전시관에는 제사 때 사용하는 의복과 집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 / 양수복 기자
지금도 춘기, 추기, 건기대제의 세 차례 제를 지내는 삼성전. 사진 / 양수복 기자

먼저 전시관 영상실에서 신화를 애니메이션으로 꾸민 14분짜리 영상을 시청한다. 땅에서 솟아난 세 사람이 사냥하고 살던 어느 날, 한라산에 올라 먼 바다를 내다보니 자주색 목함이 떠내려오고 있었다. 급히 달려가 열어 본 함 안에는 오곡의 종자, 가축들과 함께 전설 속 나라 벽랑국의 세 공주가 들어있었다. 세 선인은 세 공주를 부인으로 맞이해 농경 생활로 접어들었고 탐라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전시관 한켠에는 이 이야기를 표현한 모형과 함께 고풍스러운 의복과 의례용 집기들도 자리한다. 삼성전과 관련한 물건들이다. 

삼성전은 고•양•부 세 성씨의 후손들이 봄, 가을, 겨울마다 세 차례 선인에게 제를 지내는 곳으로 제단 세 개가 나란하다. 문득 세 선인 사이에도 우열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양동현 삼성혈 관리부장은 “세 성씨 후손들 사이에서도 서로 먼저라고 말이 많지만, 순서를 따지기는 어렵다”며 멋쩍게 웃는다. 

세 선인이 솟아난 전설의 현장, 삼성혈의 모습. 사진 / 양수복 기자
삼성혈 오른편 전망대에 오르면 세 구멍을 조금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사진 / 양수복 기자
제주 원조 돌하르방. 삼성혈 입구에 자리한다. 사진 / 양수복 기자

삼성전을 지나 울창한 나무들 사이를 걷다 보면 드디어 ‘삼성혈’이 나타난다. 움푹 들어간 지대가 보이는데 펜스부터 거리가 조금 있어 구멍이 또렷이 보이지는 않는다. 신성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또한, 삼성혈에는 신화가 엿보이는 두 가지 부분이 있다. 주변 나무들이 혈을 향해 고개를 숙이듯 가지를 뻗고 있다. 양 관리부장이 “경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느냐”고 묻는다. 게다가 “아무리 비가 오고 눈이 많이 내려도 구멍에는 비나 눈이 고이거나 쌓이지 않는 것도 특징”이라고 이야기한다. 

삼성혈을 나서는데 입구의 돌하르방 두 쌍이 배웅해준다. 이들은 ‘원조’ 돌하르방들이다. 지금은 제주 전역에 흔하고 기념품 디자인으로도 활용되는 돌하르방이지만 먼 옛날부터 전해져오는 ‘원조’ 돌하르방은 제주에 단 45기 남아있다.

부리부리한 눈, 주먹코에 벙거지를 쓴 돌하르방은 친근해보여도 사실 누가, 언제, 어떻게, 왜 만들었는지 모두 알려지지 않은 미스테리한 존재이다. 

Info 삼성혈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연중무휴, 매표마감 오후 5시 30분)
관람요금 성인 2500원, 청소년•군인 1700원, 어린이 1000원
주소 제주시 삼성로 22

원도심의 전성기를 관통하는 중앙로  

아담한 건물들 위로 푸른 하늘이 보이는 중앙로를 따라 걸어 내려간다. 중앙로는 제주 원도심을 관통하는 길로, 제주시의 중심 상권이었던 동문시장과 한짓골도 모두 이 길 위에서 발전했다.

지금은 사람이 많이 빠져 썰렁한 와중에도 제주의 근대를 지탱했던 오래된 가게들을 발견할 수 있는 귀중한 장소다. 

제주시 중앙로 한짓골상점가 입구. 사진 / 양수복 기자
1969년 설립된 인천문화당 외관. 사진 / 양수복 기자
1945년 생겨난 제주 우생당서점. 사진 / 양수복 기자

10분 정도 걷다보면 중앙로를 사이에 두고 오른편은 동문시장으로, 왼편은 한짓골 상점가로 통한다. ‘한짓골’은 ‘큰 길’의 제주 방언인 ‘한질’에서 유래해 원도심 일대를 가리킨다. 

지금은 빛바랜 페인트칠과 촌스러운 간판이 눈에 먼저 들어오는 이곳도 수백 점포에 오가는 사람이 가득했던 전성기가 있었다. 한짓골 상점가에는 여전히 그 시대를 풍미했던 오랜 가게들이 몇 남아있어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당시 문구계와 서점계의 대표 주자였던 인천문화당과 우생당서점은 원도심의 기억을 가장 많이 품은 곳이다. 2대째 운영 중인 인천문화당과 3대째인 우생당서점은 신학기만 되면 학생들이 줄을 서서 공책이며 필기구, 참고서 등을 사곤 했다.

고색창연한 문방구와 서점을 살피며 펜 몇 개를 집어 들고 책을 펼쳐보는 동안 신학기를 준비하던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마음이 설렐지도 모른다. 

카페 '사생활'에서는 시그니처 음료인 밀크티와 함께 LP 음악을 즐길 수 있다. 사진 / 양수복 기자

한짓골 상점가를 한가로이 걷다가 개성 있는 가게들에 들러 봐도 좋다. 작은 부지를 알뜰살뜰 감각 있게 꾸민 빈티지 옷가게 ‘모퉁이옷장’, 쌀가게를 리모델링한 카페 ‘쌀다방’, LP로 음악을 틀어줘 잔잔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카페 ‘사생활’ 등 작은 가게들이 길 따라 자리해 잠시 구경하며 쉬어가기 좋다.  

유유히 흐르는 산지천 따라 제주 문화 엿보기  

저마다의 소박한 감성을 담은 작은 가게들은 칠성로까지 이어진다. 학생들이 소풍날만을 손꼽으며 새 옷을 사러 가던 추억을 간직한 칠성로 쇼핑거리에서 한 걸음만 더 들어가면 조금 다른 결의 가게 몇 개를 발견할 수 있다.

하얀 백열등 일색인 거리에 따뜻한 주황빛 조명을 켜놓은 기념품숍 ‘더 아일랜더’와 독립책방 ‘라이킷’이 대표적이다. 

기념품숍 '더 아일랜더'에서 가장 인기있는 한라봉 모양 향초. 사진 / 양수복 기자
아늑한 독립서점 '라이킷'의 외관. 사진 / 양수복 기자

제주의 바다 빛을 닮은 파란 가게 ‘더아일랜더’에 들어서면 조개껍데기로 만든 장신구, 한라봉 모양의 향초, 돌하르방이 빙긋이 웃는 표지의 성냥갑, 제주의 자연을 그린 일러스트와 사진엽서 등이 작은 가게에 빼곡하다.

요즘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기념품은 무엇일까. 현지연 더아일랜더 대표는 “한라봉과 동백 모양을 본뜨거나 조개껍데기를 향초 안에 넣는 등 다양한 향초가 가장 인기 있다”고 말한다.

바로 맞은편 ‘라이킷’은 제주 관련 도서와 그림책의 비중이 높은 곳. 라이킷에서 제주를 기억할 수 있는 책 한 권을 발견하면 소중한 추억거리가 하나 더 생길 것 같다. 

제주 원도심을 유유히 흐르는 산지천. 사진 / 양수복 기자
산지천 산책로에는 제주 문화 상징물이 꾸며져 있다. 사진 / 양수복 기자

칠성로 오른편으로는 원도심의 젖줄 산지천이 흐른다. 천변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제주의 문화를 속속들이 알 수 있다.

산지천 산책로에는 치마폭에 흙을 담아 날라서 한라산을 빚은 설문대할망 설화와 한라산, 해녀, 제주어, 제주 4•3 등 제주 문화 10가지 상징물이 벽화로 꾸며져 있다. 도보 여행의 첫 걸음을 뗀 삼성혈의 탐라 개벽 설화를 되새겨볼 수 있는 그림도 있다.

지금은 푸르게 흘러 옛 모습을 짐작하기 어려운 산지천이지만 지난 2002년 복원되기 전만해도 오염 일색에 주변엔 낡은 건물들이 많았다. 새로 단장하는 과정에서 건물들은 대부분 철거되었지만 몇몇 건물은 원도심 풍경을 간직한 가치를 인정받아 보존되었다.

산지천갤러리의 외관. 우뚝 솟은 옛 목욕탕 굴뚝이 이 건물의 역사를 말해준다. 사진 / 양수복 기자
산지천갤러리의 내부는 옛 건물 골조와 새로 칠한 벽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사진 / 양수복 기자

30년 된 목욕탕과 여관을 재생한 공간, ‘산지천갤러리’가 바로 그렇다. 갤러리 위로 삐죽 튀어나온 옛 목욕탕 굴뚝이 이 사실을 말해준다.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면 하얗게 새로 칠한 벽과 옛 건물의 투박한 골조가 대비된다.

김해숙 제주도 문화관광해설사는 “산지천갤러리에서는 제주 출신이거나 제주에 살면서 활동하는 사진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한다”며 “이 갤러리를 통해 쇠퇴한 원도심의 문화가 다시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말했다. 

Info 산지천갤러리
관람시간 오전 11시~오후 7시 (※ 월요일 휴무, 입장마감 오후 6시)
관람요금 무료
주소 제주시 중앙로3길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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