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양소희의 섬여행] 역사 따라 걷는 인문학 여행, 백령도 ②
[양소희의 섬여행] 역사 따라 걷는 인문학 여행, 백령도 ②
  • 양소희 여행작가
  • 승인 2018.04.03 09: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청이 설화부터 북녘 철책까지… 역사의 섬
용트림바위와 바위 위에 앉아 있는 갈매기의 모습. 사진 / 양소희 여행작가

[여행스케치=옹진] 백령도 장촌포구 근처에 위치한 용트림바위는 마치 용이 승천하는 모습과 같아 용트림바위로 불린다. 바위 스스로 하늘을 향해 나선처럼 꼬며 오르는 형상이 매우 인상적이다. 

용트림바위는 가마우지와 갈매기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지질학에서는 용트림바위와 같은 현상을 시스택이라고 한다. 시스택은 해식애가 파랑의 침식을 받아 파식대 위에 단단한 부분이 가늘게 솟은 채로 남아 있는 현상을 말한다.

용트림바위 건너편 해안절벽에 위치한 천연기념물 제507호인 남포리 습곡구조는 고생대말~중생대 초의 지각변동으로 형성되었다. 규모는 높이 약 50m, 길이 약 80m이다. 한반도 지각 발달사에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지질학적 가치가 높은 백령도는 10~25억년 전 지구의 역사와 더불어 이곳에 터를 잡고 산 우리네 역사 역시 깊은 섬이다.

인당수와 연봉바위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한 심청각. 사진 / 양소희 여행작가

심청전의 세계에 들어온 듯... 심청각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심청전>의 스토리를 살펴보면 주인공 심청이는 장님인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삼백 섬에 몸을 팔아 인당수에 뛰어든다.

이야기로만 알고 있는 심청전의 인당수(印堂水)는 백령도와 장산곶 사이에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다. 백령도는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과 왕래하는 중간 기착지로 중국인 왕래가 빈번했던 곳이다.

광해군 때, 백령도에 귀양 왔던 이대기(李大期)가 쓴 백령도지(白翎島誌)를 살펴보면 백령도와 장산곶 사이에는 북쪽과 서쪽에서 흐르는 조류가 만나 서로 부딪쳐 소용돌이를 이루어 물살이 매우 세고 험한 곳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이곳을 지날 때 물살에 휘몰려 침몰되기 일쑤였다고 한다. 고기잡이 하는 어부들은 항해의 안전을 위해 항시 주의를 했고 목숨을 걸고 바닷길을 오가며 무역을 했던 중국 상인들은 두려움에 사람을 제물로 바치기도 했다고 한다.

한편 삼국유사를 살펴보면 백령도에 관한 자료로 진성여왕과 거타지 설화가 있는데 ‘배가 곡도(백령도의 옛 이름)에 이르니 풍랑이 크게 일어 10여일을 묵게 되었다.

양패공(良貝公)이 이를 근심하여 점을 치게 했는데 섬에는 신지(神池)가 있으니 제사를 지내면 좋겠다 하여 못물에 제물을 차려 놓으니 못물이 한길도 넘게 치솟았다’고 한다.

문헌의 신지는 바로 연화리의 연지(蓮池, 연꽃이 피는 연못)로 과거에는 그 넓이가 수만 평이었으나 지금은 농지로 변하였고 자투리 땅에 미꾸라지 양식장을 만들었는데 1996년 8월 연꽃들이 탐스럽게 피어나 심청이의 연꽃 환생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심청 동상과 심청각 내 전시물. 사진 / 양소희 여행작가

또한 심청이가 인당수에 몸을 던진 후 환생하여 연꽃을 타고 오다가 조류에 떠밀려 오는 이야기가 있다. 이를 증명하듯 백령도와 대청도 사이에 한 송이 연꽃처럼 떠 있는 연봉(連峰)바위가 있는데 인당수 조류의 흐름이 신기하게도 연봉바위 쪽으로 흐르고 있다.

백령도에 가면 심청각을 비롯하여 연화리, 연봉바위, 연꽃마을 등 심청전과 관련한 장소들이 있어 마치 심청전의 세계에 들어온 듯하다.

사백여년의 역사를 가진 화동염전
백령도의 제염장은 선조26년(1593년)부터 설치되어 사백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이항복이 백령도 염장이 황해도에서 제일 간다고 추천한 기록으로 보아 우수한 소금 생산지였음을 알 수 있다.

백령도는 바다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어 순수한 바닷물로 소금을 만들었기 때문에 육지 연안에서 만든 소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좋은 품질이었다. 과거에는 생산량도 많아 소금이 백령도의 특산물이었다.

그러나 심은포 입구에 제방을 축조하여 백령호를 만든 다음부터 가을리에서는 바닷물을 공급할 수 없어 소금생산을 할 수 없게 되었고 화동염전만이 외로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참고로 옹진군에서 시판용 소금을 생산하는 곳은 북도면의 시도염전 그리고 백령도의 화동염전 단 두 곳뿐이다. 4월부터 10월까지 염부들이 소금을 만들어 내느라 분주한 모습은 귀한 풍경이다.

중화동 교회와 연화리 무궁화
백령면 중화길 230-13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중화동 교회는 우리나라에서 서울의 새문안교회 설립(1885년) 다음으로 1896년에 두 번째로 세워진 장로교회이다. 중화동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중국과 외국 배들이 많이 드나들던 곳이라 하여 중화동이 되었다고 한다.

기독교 역사가 어린 중화동 교회. 사진 / 양소희 여행작가

구전에 의하면 1816년 기독교 최초의 한문성경이 영국해군 함선 Alcester호와 Lyra호에 의해서 백령도에 전해졌고 1832년 우리나라 최초의 선교사인 키슬라프 목사와 1865년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인 토마스 선교사가 두무진을 통해 상륙했다고 한다.

또한 1846년 김대건 신부가 마지막으로 백령도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붙잡혀 순교를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백령천주교회 성당 내부에는 김대건신부의 유해 일부가 모셔져 있어 천주교 신자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백령도는 한국 기독교와 천주교 역사의 관문이 되었던 지역이었다. 현재 백령도 내에는 10개의 교회가 있으며 주민 대부분이 기독교 신자이다.

중화동 교회 내 백령기독교역사관에서는 한국기독교 100년사를 살펴 볼 수 있으며 교회 앞에 위치한 연화리 무궁화는 높이가 6.3m로 현재 알려진 무궁화 중 가장 크며 꽃이 순수 재래종의 원형을 보유하고 있어 천연기념물 제521호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호하고 있다.

한적한 용기포 구선착장의 풍경. 사진 / 양소희 여행작가

통일을 염원하는 용기포 맞이길
백령도에서 사곶해변을 지나 용기포 구선착장 방향으로 가면 돌 하나에 소망을 정성껏 담은 통일염원탑을 볼 수 있다. 탑에서 마을 뒷산 언덕 너머로는 썰물 때만 갈 수 있는 해식동굴이 있고 목책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정상에는 1960년대 사용하던 용기포 등대가 나온다.

과거 백령도 인근을 항해하는 선박들을 인도하던 옛 등대로, 멋진 바위들과 어울려 여전히 절경을 이루고 있다. 걷기를 즐겨한다면 도로변 해안길을 따라 끝섬전망대까지 가는 트래킹 코스 용기포 맞이길을 권한다.

용기포 맞이길을 걸으며 만날 수 있는 해식동굴과 통일염원탑. 사진 / 양소희 여행작가

용기포에는 우뚝 솟은 돌탑이 있는데, 통일을 염원하는 소망을 담아 정성으로 쌓아 올린 통일염원탑이다. 백령도 이곳은 하늘 끝, 바다의 섬, 그리고 깊이 묻어둔 고향의 끝동네이다.

넓고 푸른 서해 바다와 백령도를 수호하며 풍요한 삶을 위해 화합, 단결하고 노력하는 섬주민들의 염원을 표현하고 있는 탑인 셈이다.

북녘의 산하를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에서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을 적어 희망의 철책에 매달아 보자. 이렇게 최북단 끝섬 백령도의 일정을 마무리한다면 민족 분단의 아픔을 조금은 달래볼 수 있지 않을까.

끝섬전망대에 붙은 통일을 염원하는 포스트잇들이 마음을 울린다. 사진 / 양소희 여행작가

Info 백령도
1. 백령도는 우리나라 섬 중에서 8번째로 큰 섬이다. 섬 전체를 걸어서 다 돌아보기 어렵다. 물론 다음을 기약하고 발 닿는 곳만 천천히 걸어보는 여행도 나쁘지 않다. 걸어서 여행하기가 벅차다면 백령도 내 버스와 택시를 이용해 다닐 수 있다는 것을 참고해 두자.

2. 백령도 여행은 배편, 숙박, 식사, 섬내 교통, 두무진 유람까지 1박2일 프로그램으로 오랫동안 진행하는 백령여행사(032-836-6662)를 추천한다. 백령도에 간다면 하루 더 시간을 내어 남쪽으로 마주하고 있는 섬, 대청도까지 알뜰하게 돌아 볼 수 있는 2박3일 코스를 추천한다.

2. 백령도 여행의 하이라이트, 두무진 유람선(032-836-8088)은 하루에 두 번 운영되며 기상이나 인원미달이면 운행하지 않으니 미리 전화해 보고 출발해야 한다.

3. 백령도는 서해바다에 우뚝 솟아 우리나라의 영토를 사수하는 최북단 끝섬이다. 그러므로 해가 진후에는 바닷가에 나갈 수 없다. ‘밤에는 뭐하나?’ 걱정할 수도 있지만 도깨비같이 24시간 환한 도시에서는 만날 수 없는 칠흑 같은 까만 밤에 조용히 사색해 보는 시간 또한 백령도 여행이 주는 선물 중 하나이다. 군사시설은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것도 알아두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