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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보령 대천항에서 만난 알 품은 주꾸미
보령 대천항에서 만난 알 품은 주꾸미
  • 노규엽 기자
  • 승인 2018.04.04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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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월에만 만날 수 있는 별미 중의 별미
매년 3~4월에는 알 품은 주꾸미가 어획되며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서해로 이끈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여행스케치=보령] 평소에는 흔하게 생각되다가 봄이 오면 특별해지는 손님이 있다. 고슬고슬한 쌀밥처럼 생긴 알을 품은 주꾸미다. 봄에만 만날 수 있는 별미를 찾아 전국에서 관광객이 모여드니 서해 어민들에게 주꾸미는 효자 수산물이라 할 수 있다.

주꾸미는 문어과의 연체동물 중 하나다. 문어ㆍ낙지와 마찬가지로 8개의 다리를 가졌고, 생김새는 낙지와 비슷하지만 몸집은 작다. 우리나라 서해와 남해에 걸쳐 넓게 분포하지만, 상대적으로 서식밀도가 높은 서해에서 더 유명하다.

서해 어민들 춤추게 하는 봄날의 주꾸미
봄철 주꾸미를 만나기 좋은 장소는 대천항에 있는 보령수협 현포동위판장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젊은 시절 추억 하나쯤은 떠올려질 대천해수욕장에서 조금 북쪽에 자리한 대천항은 원산도와 삽시도 등을 오가는 대천연안여객선터미널이 있어 보령 섬 여행의 거점이기도 하다.

대천항 등대가 서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향하면 현포동위판장을 마주할 수 있다. 항구 규모에 비해서는 위판장 규모가 작게 느껴지지만 활어위판장과 선어위판장이 따로 구분되어 있을 정도로 넓다.

현포동위판장이 있는 대천항으로 다양한 수산물을 실은 어선이 오가고 있다. 사진 / 노규엽 기자
활어위판장에서 주꾸미를 비롯한 싱싱한 활어들을 위판하는 장면. 사진 / 노규엽 기자

“현포동위판장은 다양한 보령 수산물들이 모이는 곳이에요. 봄만 해도 주꾸미를 시작으로 꽃게, 문치가자미, 넙치 등의 활어류와 키조개를 비롯한 조개류도 위판된답니다.”

현포동위판장에서 수산자원 조사를 하는 정소희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조사원은 주꾸미를 어획하는 어선이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고 알려준다.

“작은 어선들은 주낙에 피뿔고동(일명 ‘소라’)을 매달아서 주꾸미를 낚아요. 반면 큰 어선들은 바닥을 끄는 그물로 이동 중인 주꾸미를 다른 어종들과 함께 잡는답니다.”

이는 주꾸미가 모래 바닥이나 자갈밭에 살면서 바위틈이나 풀숲에 알을 낳는 습성을 지녔기 때문. 산란기에는 소라 안에 알을 낳기 위해 들어갔다가 어획되는 것이다.

서해의 봄을 알리는 주인공 주꾸미가 모이는 곳은 당연히 활어위판장이다. 부둣가에 어선이 닿으면 주꾸미가 가득 담긴 통이 크레인으로 들려 위판장으로 옮겨지고, 계근(무게 달기)을 한 후 약 3kg 단위로 망에 담겨 수조에 들어간다. 주꾸미를 비롯한 여러 활어들이 어느 정도 모이면 종소리가 울리며 위판이 시작되고 경매사와 중매인들이 순식간에 위판을 진행한다.

“주꾸미 물량이 많을 때도 있고 적을 때도 있지만, 아침 8시면 첫 위판을 시작해요. 이후로도 추가로 물량이 들어오면 정해진 시간에 맞춰 위판을 진행하지만, 보통은 오전 물량이 가장 많답니다.”

제철 주꾸미 어획에 대한 논란
‘봄 주꾸미, 가을 낙지’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봄에는 주꾸미, 가을에는 낙지를 먹어야 한다는 의미다. 지친 소도 일으킨다고 알려진 낙지의 효능처럼 타우린과 DHA가 풍부하고 자양강장효능이 비슷한 주꾸미도 제철에 먹어야 한다는 뜻에서 관용구처럼 쓰이게 된 말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아무래도 주꾸미가 품고 있는 알맛이 독특해서 봄이 제철이라고 알려졌지만, 어떤 사람들은 가을 주꾸미가 살이 연해서 더 맛있다고 해요. 봄에 알을 품은 주꾸미는 다 큰 성인이지만, 가을 주꾸미는 봄에 태어나 어느 정도 자란 어린 개체거든요.”

'봄 주꾸미, 가을 낙지'라는 말이 있지만, 주꾸미는 봄과 가을에 모두 인기가 높다. 사진 / 노규엽 기자

봄 주꾸미라 해서 타우린이나 DHA 등 지닌 성분이 더 많다는 근거도 없다고 한다. 오히려 산란을 위해 모든 영양분을 알에 집중할 때이니 주꾸미 자체의 영양함량은 낮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을 주꾸미를 제철로 치는 미식가들도 많다고 한다. 배낚시로 주꾸미를 낚는 낚시꾼들도 가을에 더 몰린다고. 정 조사원은 “가을에 배낚시로 어획하는 양이 어마어마해서 어촌 생계를 위협할 정도라는 이야기도 있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항간에서는 봄에 어민들이 알배기를 많이 잡고, 가을에는 낚시꾼들이 이듬해 봄에 알을 품을 개체들을 잡아버리니 조만간 주꾸미 씨가 마를 것이라는 말도 떠돈다. 그래서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에서는 ‘주꾸미 플랫폼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주꾸미 산란장 및 서식장을 조성해 인공적으로 키운 다음, 적절한 시기에 어린 개체들을 방류해 종자 수를 늘리는 사업이다. 정소희 조사원은 “사업의 효과인지 작년 어획량이 재작년에 비해서는 확실히 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올해에는 5월 11일부터 8월 31일까지 주꾸미 자원 회복을 위한 금어기도 신설되었다. 산란 직전의 알밴 주꾸미와 막 부화된 어린 주꾸미들의 어획을 막아 산란기와 성육기에 있는 주꾸미들을 보호하려는 노력이다.

서해 어민들을 수입에 큰 영향을 미치는 주꾸미인 만큼 개체수 보존에 대한 노력도 필요하다. 사진 / 노규엽 기자

봄철 주꾸미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
현포동위판장 뒤편으로 작은 난전과 해산물 식당들이 줄지어 있어 주꾸미를 비롯한 보령 수산물을 맛볼 수 있지만, 시장 구경과 미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대천연안여객선터미널 인근에 있는 대천항 수산시장이 정답이다. 주꾸미뿐 아니라 대게, 광어, 멍게 등 수산물들과 소라, 가리비, 키조개 등도 모두 맛볼 수 있는 보령 수산물의 천국이다.

1층에서 수산물을 구입한 후, 2층 식당에서 양념값을 지불하면 원하는 방식으로 다양하게 즐길 수도 있으니 더욱 좋다. 흥정을 잘하면 주꾸미 샤브샤브에 육수를 낼 조개를 덤으로 얹어주는 인심도 살아있다.

대천항 수산시장에는 보령의 다양한 어종들을 만날 수 있는 수산물 천국이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샤브샤브 방식으로 잘 익힌 주꾸미는 구수한 내장과 짭조름한 먹물이 맛의 앙상블을 만들어낸다. 사진 / 노규엽 기자

“가장 간편한 방법이라서인지 모르겠지만 보령에서는 주꾸미를 샤브샤브로 많이 먹어요. 빨갛게 양념을 한 주꾸미볶음도 빠질 수 없습니다. 포장이나 택배를 이용해 집에 가져가서 삼겹살과 함께 구워먹거나 쭈삼불고기로 먹는 것도 별미 중에 별미죠.”

열을 가해 익히면 하얀 알들이 뭉쳐져 마치 쌀밥처럼 보이는 알배기 주꾸미는 매년 3~4월에만 만날 수 있는 특식이다. 잘 익힌 주꾸미 머리를 가위로 살살 잘라 입안에 넣으면 고소한 알과 구수한 내장, 짭조름한 먹물이 맛의 앙상블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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