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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봄 여행주간] 백제불교의 원류, 간다라의 흔적이 남아 있는 영광 인문학 여행
[봄 여행주간] 백제불교의 원류, 간다라의 흔적이 남아 있는 영광 인문학 여행
  • 김샛별 기자
  • 승인 2018.04.30 1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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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불교 최초도래지와 불갑사에서 헤아려보는 풍경의 깊이
백수해안도로와 법성포가 만나는 곳에 위치해 천혜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백제불교 최초도래지. 사진 / 김샛별 기자
백제불교의 원류, 간다라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탑원. 사진 / 김샛별 기자

[여행스케치=영광] ‘법성포’ 하면 굴비를 가장 먼저 떠올릴지 모르지만 ‘법성포’라는 지명에는 다른 최초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법(法)’은 불교, ‘성(聖)’은 성인으로, 마라난타 존자를 가리킨다. A.D 384년, 인도승 마라난타가 중국을 거쳐 법성포에 이르러 백제불교가 시작된 곳이 바로 법성포다.

영광의 명소 중 하나인 백수해안도로를 따라 법성포로 이어지는 하천에 다다르면, 건너편으로 거대한 사면대불이 보인다. 그 옆으론 우리나라에선 보기 어려운 이국적인 모양의 사원이 궁금증을 자아낸다.

23.7m 높이의 사면대불상이 자리한 이곳이 바로 백제불교가 최초로 전래된 곳이라 하여 ‘백제불교 최초도래지’라 불리는 곳이다.

만다라광장에 심어진 보리수나무, 계단 끝에는 사면대불이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부용루에서 내려다 본 백제불교 최초도래지 전경. 사진 / 김샛별 기자

다채로운 불교 미술의 원류, 간다라의 흔적
보통 사찰에 가기 위해 일주문을 지나는 것과 달리 백제불교 최초도래지는 입구부터 남다르다. 크고 작은 돌들을 쌓아올린 정문은 둥그스름한 사발을 엎어놓고, 그 위에 작은 뚜껑을 올려놓은 것처럼 마무리 되어 있다.

어색하기만 한 정문을 지나면 왼쪽으로 동일한 양식으로 지어진 간다라 유물관과 탑원이 시선을 잡아끈다.

간다라 건축 양식이 왜 법성포에 지어졌는가에 대해 박해자 영광군 문화관광해설사는 “백제에 불교를 최초로 전한 마라난타 존자가 간다라에서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각각 시기는 다르지만 중국에서 불교를 전래 받은 고구려와 신라와 달리 백제는 인도승인 마라난타 존자를 통해 서기 384년(침류왕) 때 불교를 전래 받아 완전히 다른 양식으로 받아들였다.

간다라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간다라 유물전시관. 사진 / 김샛별 기자
그리스의 헬레니즘 양식에 영향을 받은 2~6세기 간다라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간다라 유물전시관에 들어서면 영상과 자료들을 통해 마라난타 존자가 어떻게 법성포에 오게 되었는지 그 역사와 간다라 양식에 대해 상세히 알 수 있다.

또한 스와트, 페샤와르, 탁실라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간다라 불교문화는 물론 실제 2~6세기경 소조불상불두들과 전각 등 석조 문화재들이 있어 간다라 양식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박해자 해설사는 “간다라 유물전시관의 유물들은 모두 파키스탄 대사관의 협력을 얻어 건너온 진귀한 것들”이라며 “불상들은 깊은 눈, 날카롭고 긴 코, 얇은 입술과 갸름한 얼굴 등 서구적인 용모로 조각되어 있으며, 가운처럼 어깨를 덮고 흘러내리는 옷의 주름 표현 역시 그리스‧로마의 조각상들을 연상케 한다. 이는 1~3세기경 인도 불교문화와 그리스 헬레니즘이 합쳐진 간다라 미술 양식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Info 백제불교 최초도래지
주소 전남 영광군 법성면 백제문화로 203 (법성면)

만다라 광장에서 108개의 계단이 놓인 곳에 자리하고 있는 부용루. 사진 / 김샛별 기자
부처님의 족적을 형상화한 '불족적'(좌)과 부용루에 조각된 석조 중 고행하는 석가모니(우). 사진 / 김샛별 기자

석장이 그려낸 석가모니 일대기
간다라 유물전시관을 빠져나오면, 108개의 계단이 보이고, 그 시작점에 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루시고 첫발을 내디디신 곳을 의미하듯 발자국 모양이 찍힌 ‘불족적’이 있고, 그 끝에 사면대불이 있다. 1108번뇌를 하나하나 녹이며 108개의 계단을 올라 부처님과의 만남에 이르는 것이다.

족장부터 사면대불로 향하는 계단 가운데엔 부용루라는 이름이 붙은 법랑이 있다. 부용루 벽면에는 석가모니의 탄생부터 열반에 들기까지의 과정이 석조물로 표현되어 있다.

박해자 해설사는 “2007년 석장(석공예가)으로서는 최초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재순 장인의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살가죽이 겨우 들러붙어 있는 갈비뼈, 움푹하게 꺼진 눈과 뱃가죽, 뼈 위로 드러난 핏줄… 고행하는 석가모니 석조물은 그 역시 특히나 애를 먹었은 것이라고 한다.

석가모니의 고통과 그를 조각한 석장의 고행과 같은 작품을 볼 수 있는 이곳은 백제불교 최초도래지를 한눈에 담아보기 좋은 전망 명소이기도 하다.

마라난타 존자가 타고 온 배 모양으로 조성된 나무데크와 반짝이는 햇살이 반사되어 아름답게 흐르는 강물, 바람이 부는대로 흔들리는 보리수나무 한 그루와 그 밑에 핀 튤립들이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대웅전 지붕 가운데 툭 튀어나와 있는 스투파가 남방불교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서쪽을 향해 배치되어 있는 대웅전 삼불상의 배치 역시 독특하다. 사진 / 김샛별 기자

마라난타 존자가 창건한 불갑사
풍랑을 이겨내고 법성포에 도달한 마라난타 존자는 왜 법성포구 근처가 아닌 내륙에 불갑사를 지었을까. 불갑사 주지인 만당스님은 “지금의 법성포보다 구법성포의 물길은 훨씬 더 안쪽에 있었다”며 “또한 백성들이 많이 올 수 있는 자리를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현상은 무수한 원인과 조건이 상호 관계해 성립한다는 불교의 인연설(연기설)처럼, 마라난타 존자가 법성포에 도착하고, 불갑사의 자리를 본 것 역시 인연으로 나타난 결과일 것이다.

불갑사 대웅전에는 백제불교 최초도래지에서 본 간다라 양식을 확인할 수 있는 독특한 양식 세 가지가 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지붕 한가운데에 툭 튀어나와 있는 스투파다.

부처의 사리를 봉인하는 일종의 사리탑으로, 태국을 비롯한 남방불교권에서 보이는 양식이다. 일반적으로 살창에 창호지를 바른 것과 달리 불갑사 대웅전의 정문은 소슬꽃무늬와 보리수문양, 보상화문의 문양을 조각하고 화려한 색감을 자랑한다.

마지막 한 가지는 대웅전에 모셔진 삼불상의 배치다.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다른 사찰들과 달리 불갑사의 대웅전은 출입문이 정면과 우측면을 모두 사용하며,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만당스님은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공주 마곡사 하대웅전도 똑같이 측면으로 모셔져 있지만 완전히 의미가 다르다”고 말한다.

“무량수전은 주전불이 미타전으로 서방 극락정토에 미타불이 있기 때문에 서쪽에 모신 것이지만 불갑사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이 주전불이며 부처님이 앉아 계신 자리가 북쪽이고, 바라보고 계신 곳이 남쪽”이라며 “이는 남방불교의 양식”이라고 설명한다.

불갑사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간다라 양식과 최초로 불교가 전래된 상징성 때문에 불교 신자들이 성지순례 하듯 찾는 이들도 많다.

Info 불갑사
주소 전남 영광군 불갑면 불갑사로 450
문의 061-352-8097

불갑사 주지스님인 만당스님과의 차담. 사진 / 김샛별 기자
템플스테이 참가시, 타종체험을 해볼 수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소란한 마음을 내려놓는 시간
우리나라 최대의 꽃무릇 군락지로도 유명한 불갑사는 일주문을 지나 꾸며놓은 상사화 공원을 산책하는 일도, 곳곳에 암자와 함께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불갑산 등산으로도 유명하다.

흔히 아는 붉은 꽃무릇은 상사화의 한 종류로, 진노랑상사화‧위도상사화‧제주상사화 등 8종류의 상사화가 7~9월까지 돌아가며 꽃을 피워 아름다움을 더한다.

8종류의 상사화는 물론, 불갑산과 숲에 대해 알 수 있는 숲박물관이 일주문 너머에 있어 이해를 돕는다. 사진 / 김샛별 기자

불갑사 관광안내소의 김민선 영광군 문화관광해설사는 “상사화는 뿌리에 독이 있어 불화를 그리거나 단청을 색칠할 때 물감과 함께 섞어 쓰면 방충에 효과가 좋다”며 “목조 건물이 많은 사찰에 방충효과를 더해줘 절 주변에 많이 볼 수 있으며, 절꽃이라 불리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조금 더 영광의 불교가 도래한 풍경의 깊이를 헤아려보기엔 짧게나마 템플스테이로 하루, 이틀 묵어보는 것도 좋다. 단순히 불교 사원을 방문한 것 이상의 불교의 전통과 문화를 통해 ‘나’를 돌아보기 좋은 시간이 되어준다.

불갑사에서는 스님과의 차담, 숲길 명상, 108배, 불화 그리기, 소금 만다라 등 다양한 체험을 진행하며, 본 기자도 하룻밤 묵으며 직접 체험을 해보았다.

세필붓으로 불화를 따라 그리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며 집중력이 높아진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소란한 마음을 잠재우기엔 불화그리기만한 게 없다. 요즘 유행하는 컬러링북(색칠하는 책)과는 또다른 매력이 있다. 가느다란 세필붓을 먹물에 적셔 아미타불을 따라 그리다보면 이런저런 생각들은 사라지고, 어느새 붓 끝에 집중하는 명상적 상태가 된다.

스님의 저녁 예불 소리에 맞춰 한 번 절을 하고, 일어나 염주 하나를 줄에 꿴다. 그렇게 108번을 반복한다. 익숙하지 않은 동작과 반복되는 움직임 탓에 몸이 무거워질수록 마음은 오히려 가벼워만 진다.

108개의 번뇌를 가라앉히고 싶은 염원을 담은 108개의 염주를 모두 꿰면 그 마음을 단단히 가져가려 매듭을 묶어 완성한다. 코 끝에 맴도는 향 냄새를 맡으며 완성한 염주를 한 알, 한 알 굴려 호흡을 가다듬는다.

도심에서 보기 힘든 달과 별이 환히 보이는 불갑사의 밤. 사진 / 김샛별 기자

산사의 밤은 조금 일찍 찾아든다. 도시의 밤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어둡기만 한, 군데군데 가로등 몇 개만 겨우 켜져 있을 뿐인데도 밝게만 느껴진다. 어둠이 내려앉은 사찰은 또다른 고즈넉한 사색의 시간으로 우리를 이끈다.

가만히 앉아 명상을 끝내고 나면, 차분하게 경내를 걷는 발자국처럼 꾹꾹 생각을 한 번 더 마음에 다진다. 가만 고개를 올려다보면 손톱처럼 가느다란 달과 그 옆으로 하나둘 눈에 익어갈수록 별이 반짝인다.

저 멀리서 저녁 예불을 외는 스님의 목탁소리가 자장가처럼 토닥이고, 풍요로운 빈 마음이 근심 없이 꿈나라로 우리를 인도한다.

아침 공양을 마치면 스님과 차담을 나눈다. 따뜻한 차 한 잔에 속에 든 이야기가 절로 나온다. 사찰이나 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묻다 슬쩍 삶의 고민도 얹어 묻는다.

그는 “삶의 정답은 없다”며 “질문을 하고, 답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더 알게 되는 시간”이라고 우문에 현답한다.

경내 주위를 왕복하며 걷는 포행 역시 숲길 명상이자 운동법이다. 사진 / 김샛별 기자
불갑사 일주문을 지나 꾸며진 상사화 공원에는 일 년에 한 번 여는 '느린 우체통'이 있어 '나'에게 편지를 쓸 수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하나의 체험을 마치면 마루에 앉아 쉬기도 하고, 대웅전 안에 앉아 홀로 명상을 하거나 경내를 포행하며 일상에 비하면 다소 심심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그 심심한 시간은 어쩌면 잃어버렸던 것, 다시 되돌아봐야만 했던 것, 내가 가야할 곳을 보게 한다.

짧다면 짧은 1박 2일, 질문의 답은 찾지 못했어도 질문을 통해 내가 무엇을 고민하는가에 대해서는 알 수 있었던 시간. 일 년 후 내게 도착할 나에게 쓰는 편지를 쓰는 것을 마지막으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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