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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봄 여행주간] 강을 끼고 걷는 꽃길, '금강 길' 여행
[봄 여행주간] 강을 끼고 걷는 꽃길, '금강 길' 여행
  • 신정일 객원기자
  • 승인 2018.05.08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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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꽃 향기에 취하는 금강 벼룻길과 무릉도원 길
금강을 따라 걷는 '금강 길'. 사진 / 신정일 객원기자

[여행스케치=무주] 봄날 걸으면 가장 좋은 길은 어디일까? 저마다 좋아하는 길의 기준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걷다 보면 길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서 경탄에 경탄을 거듭하는 길이 있다.

그 아름다운 정경을 만나기 위해 일 년 내내 애타게 기다리다가 4월 셋째 주말쯤 가는 곳이 있다. 그 길이 무주의 비단처럼 흐르는 ‘금강 길’이고 그래서 지은 길 이름이 ‘무릉도원 길’이다.

강이며, 길이며, 산자락에, 야생 복사꽃, 조팝꽃, 그리고 벚꽃들이 무리지어 피어서, 어디가 강이고,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산인지를 모르는 곳, 그래서 그곳으로 간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금강 변에 약 25km의 길이 있다.

그 중 금강 벼룻길을 골라 걸어도 좋고, 금강 벼룻길과 무릉도원 길을 모두 걸어도 좋다.

길을 걷는 내내 꽃이 피어 있어 눈이 즐겁다. 사진 / 신정일 객원기자

울창한 나무숲과 마을들을 지나는 벼룻길
연둣빛으로 물드는 강이 있고, 흐르는 강물 소리가 가슴팍을 적시고 지나가는 강변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시간이 멈추는 자리, ‘금강 벼룻길’과 ‘무릉도원 길’이 펼쳐진다.

무주군 부남면 소재지, 대소교 아래로 강물은 세차게 흐르고, 강을 따라 걷는 길은 평화롭고 고즈넉하다. 복사꽃, 사과꽃이 흐드러지게 핀 과수원을 지나 나무숲이 울창한 금강 벼룻길에 접어든다.

깎아지른 듯한 벼랑을 정으로 쪼아 만든 벼룻길이 문경의 관갑천잔도나 창녕의 개벼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곳 부남면 금강 변에 있는 것이다. 벼리(벼랑) 아래는 새파란 강물이 유장하게 흐르고 버드나무와 철쭉이 무리지어 피어 있는 이 길을 걸어본 사람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강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그 지난한 삶을, 이렇게 가파른 벼랑에 길을 내야만 살 수 있었던 그 질곡의 삶과, 그 삶에서 피어난 인간 세상의 기쁨과 슬픔을 말이다.

그림 같은 벼룻길을 앞서간 사람들이 마치 그림처럼 휘돌아가고 멀리 보이는 상사바위는 상사병에 걸린 처녀가 굿을 해도 낫지 않아 이 바위에서 몸을 던져 죽었다는 슬픈 사연을 안고 있다. 또 이곳에는 사모관대를 쓴 것 같은 신랑바위와 마치 족두리를 쓴 것처럼 보이는 각시바위가 마주보고 있어 운치를 더한다. 각시바위를 뚫어서 만들어진 굴을 통과하며 바라본 강 건너 마을은 금강 상류에 둘러싸여 있어 마치 봉황의 집처럼 보인다는 봉길(鳳吉)리다.

봉소라고도 부르는 이 마을에서 봄에 물드는 강변을 따라가다 만나는 마을이 대치 또는 한티라고도 불리는 밤소마을이다. 임진왜란 때 흩어졌던 사람들이 한데 모여 마을을 이루었기 때문에 한치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한치마을은 한 폭의 그림이고, 문득 산허리로 하얀 구름이 서둘러 올라간다. 상굴교를 지나며 강가에 늘어선 미루나무 아래를 흐르는 강물 빛은 더욱 푸르다. 굴바우라고 불리어 ‘굴암리’라고 지어진 상굴암·하굴암을 지나며 강은 드넓고, 새터 마을을 벗어나자 멀리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로 차들이 질주한다. 술암교 아래로 강물은 유장하게 흐르고 건너편에 기암괴석들이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일찍 핀 벚꽃들이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길을 지나니 무주군 무주읍 용포리에 이른다.

벚꽃과 복사꽃(좌)은 떨어져도 '꽃길'의 아름다움(우)을 뽐낸다. 사진 / 신정일 객원기자

아름다움의 클라이막스, 무릉도원 길
가당천, 상류천, 남대천 모두가 이곳에서 금강에 합류하기 때문에 여러 굽이가 된 강물이 마치 꿈틀거리는 용과 같다하여 이름조차 용포인 이곳에서 강은 저렇듯 한갓진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이곳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다리를 건너 잠두마을로 가는 길이고 다리를 건너지 않으면 옛 시절 신작로 길을 따라 숲이 우거진 ‘무릉도원 길’이다. 강은 이곳에서 더없이 아름답다.

강 건너 저편 마을은 모양이 누에머리같이 보인다 하여 누구머리 혹은 잠두라고 부르는 마을이다. 저 마을에는 어떤 사람이 살다 갔으며, 어떤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을까? 저 멀리 낮게 놓인 저 다리는 어떤 사람들이 다녔던 다리일까? 그리고 그 위에 크게 더 크게 겹겹이 놓인 저 다리로 쌩쌩거리며 가는 자동차들은 어디로 가는 차들일까?

금강 위에 세워진 다리들을 보며 걷는다. 사진 / 신정일 객원기자

여러 생각들이 이끄는 대로, 강변길을 걷다 보면 마치 불이 붙은 듯 피어난 야생복사꽃이 마음을 붙잡는다. 길가에선 만개한 벚꽃이 바람이 불자 우수수 떨어진다. 그 꽃잎에 마음 속에선 농익은 꽃향기가 가슴을 휘젓고 지나간다. 이 강변을 한 번이라도 보고 걸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쉽게 기억에서 지우지 못한다.

천천히 벚나무 우거진 길을 걷다가 눈앞을 보니 산천이 연둣빛으로 곱게 치장하고, 강에는 다리 하나가 불어오른 강물에 금세라도 잠길 듯 걸려 있다. 바로 그 위에는 지방도가 지나는 잠두 1교와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인 잠두교 등 세 개의 다리가 마치 다리 박물관처럼 놓여 있다. 세월의 흐름 속에, 세상의 변화 속에 건설된 다리 아래를 흐르는 강물이 흐르고 흘러 바다로 가듯이 우리들의 인생도 쉬지 않고 흘러갈 것이다.

길목에 피어난 으름꽃. 사진 / 신정일 객원기자

“스스로 봄을 찾아 나섬이 늦은 것을
슬퍼하며 봄꽃 빨리 핌을 한탄한들 무엇 하리.
광풍에 붉고 아름다운 꽃잎 떨어지고
푸른 잎은 그림자를 치우며 과실만이 가지에 가득하네.”

당나라 시인 두목의 <탄화(歎花)>라는 시를 떠올린다. 머물러 있는 것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으며, 오면 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 지나는 것을 한탄만 할까. 아쉬움, 슬픔, 그리움도 모두 끌어안고 길을 바라본다. 멀리 흐릿한 나무들이 조금 있으면 푸른 잎들로 무성할 것이다. 그 사이 어느덧 봄꽃이 지면서 가버릴 봄, 그 봄이 가는 소리가 들리는 길을 따라 걷는다. 몇 십 년 전만해도 길가에 있었다던 옹기점터와 주막은 사라져 버리고 지금은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자동차들만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으니.

굽이굽이 강이 가는 대로 따라 걷는다. 사진 / 신정일 객원기자

남대천이 금강으로 접어드는 곳에서
번질가 여울 밑 큰 다리 아래로 가람여울, 뱃여울이 겹쳐 흐르고 옥녀가 띠를 두르고 베 짜는 형국이라는 요대마을을 지난다. 1942년에 만들었다는 용포 큰 다리는 새로 만든 용포대교에 밀려 앉아있다. 용포대교를 지나자 아름답고 고즈넉한 옛길에 접어들고, 제비꽃, 애기똥풀, 노랑괴불주머니꽃 등 들꽃들과 자줏빛 으름꽃들의 향기가 온 산천에 가득하다.

한참을 내려가자 남대천이 금강으로 접어드는 지점에 이른다. 두 개의 물머리가 만나 두물머리나 양수리라고 부르는 이곳에서 금강으로 합류하는 내(川)가 남대천이다. 남쪽으로 흐르는 내라는 남대천은 무주군 무풍면 덕지리 대덕산 기슭에서 발원하여 서북쪽으로 흘러온 내가 설천과 합하며 남대천이 되고, 무주읍 오산리에서 버드내를 합한 뒤 무주읍 대차리에서 금강과 합류한다.

남대천에서 멀리 보이는 무주는 전라도에서 가장 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 군으로 충청도와 경상도에 맞닿아 있다. 강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사과 과수원 아래로 강물은 여울져 흐르고, 금산군 부리면 방우리와 무주읍 대차리 사이 서면 나루터 낮은 다리에 이른다.

부남에서 대차리까지 걸어 온 25km에 이르는 금강 무릉도원 길. 그 길을 꿈속을 거닐 듯 걸어왔다. 걸어오면서 저절로 경탄이 나오는 길, 감성이 풍부한 사람들은 저절로 시인이 되고, 어린이가 되고, 신선이 된다. 그러한 순간이야말로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맛볼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이 아닐까?

남대천을 받아들인 금강은 더욱 더 넓어진 채 충남 금산군 부리면 방우리를 향해 흐른다. 헌걸차게 흐르는 강물소리 속에 ‘돌아보니 봄바람에 하나같이 꽃’이라는 시구절과 ‘미인은 간곳 없고 도화만이 휘날리더라’라는 최호의 시 한 소절이 바람결에 스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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