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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잘생겼다! 서울20] ‘손끝’에서 피워낸 역사,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잘생겼다! 서울20] ‘손끝’에서 피워낸 역사,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 조아영 기자
  • 승인 2018.05.17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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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제 산업의 어제와 오늘을 마주하다
※ ‘잘생겼다! 서울20’은 옛것을 허물고 새로 짓는 것이 아닌 기억과 가치를 되살린 20곳을 엄선해 선정한 서울 명소 20곳이다. 1960년대부터 우리나라 봉제 산업을 꽃피운 창신동에 문을 연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은 봉제 산업의 역사와 현재를 보여주고, 미래를 제시하는 공간으로 '잘생겼다! 서울20'에 선정되었다.
 
원단을 실어 나르는 오토바이는 어느새 창신동의 풍경 속에 녹아들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골목을 걷다 보면 '미싱사', '시다'를 구한다는 문구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여행스케치=서울] 지하철 동대문역에 내려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면 원단을 실어 나르는 오토바이 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다세대주택 앞 하수구는 스팀다리미가 내뿜는 수증기로 자욱하고, 건물 유리창마다 붙은 ‘미싱사’, ‘하청’을 구한다는 문구가 시선을 잡아끈다.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라는 80년대 민중가요 <사계>의 후렴구가 절로 떠오르는 창신동 봉제거리는 여전히 드르륵드르륵 바삐 돌아가는 재봉틀 소리로 가득하다. 

50여 년간 이어진 삶의 현장, 그 끝자락에는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이 있다. 지역 특성과 가치를 되살린 서울 명소 '잘생겼다! 서울20'에 선정되면서 개관 전부터 화제를 모은 곳이다.

창신동 봉제거리 골목에 들어선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사진 / 조아영 기자

실과 바늘,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고 소통을 피우다
창신동은 ‘유례가 없는 동네’라는 별명이 붙은 곳이다. 아침에 원단이 들어가면 하루가 채 저물기도 전에 옷 한 벌이 ‘뚝딱’ 완성돼 나왔기 때문이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공장에서 손끝을 찔리고 찢기며 쉴 틈 없이 일했던 노동자들로 인해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나라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봉제 역사를 조망하고, 그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이 창신동 골목에 둥지를 튼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이음피움’이라는 이름에는 실과 바늘이 천을 이어 옷이 되듯, 사람 사이를 잇고 소통과 공감을 피운다는 뜻을 담았다.

관람은 지하 1층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지하 1층은 인포메이션과 봉제작업을 체험할 수 있는 봉제작업실이 마련되어 있으며, 1․2층은 봉제 관련 자료와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으로, 3층은 봉제장인을 소개하는 기념관으로 꾸며놓았다.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지하 1층. 사진 / 조아영 기자
봉제작업실에서는 오버로크, 기계자수 등 다양한 봉제 체험을 진행한다. 사진 / 조아영 기자
봉제 관련 서적을 열람할 수 있는 1층 봉제자료실. 사진 / 조아영 기자
봉제인의 인터뷰 영상을 담은 봉제인 구술 아카이브. 사진 / 조아영 기자

1층 봉제자료실은 월간 <봉제기술> 등 봉제 관련 서적과 봉제인들의 목소리로 기록한 ‘봉제인 구술 아카이브’를 볼 수 있는 공간이다. 태블릿 PC를 함께 비치해두어 원하는 영상을 선택해 자유롭게 시청할 수 있다.

봉제인 구술 아카이브 구성에 힘을 보탠 한상민 한국패션봉제아카데미 교육원장은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을 통해 우리나라 봉제 산업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봉제’의 가치를 다시금 상기할 수 있었으면 한다”며, “앞으로 사람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유도하고, 봉제 산업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말한다.

“동대문의 반짝거림이 여기까지 들어오지는 않죠”
봉제자료실을 둘러보고 나서 2층 봉제역사관으로 올라가면 벽면을 빼곡히 채운 380여 개 액자가 방문자를 깜짝 놀라게 한다. 

분홍색 액자에는 국내외 봉제 잡지에 실렸던 광고 이미지가, 밤색 액자에는 창신동의 이야기, 파란색 액자에는 현재까지 발명된 봉제 관련 기계 이야기가 담겨 있다.

2층 봉제역사관 전경. 사진 / 조아영 기자

그중에서도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창신동과 관련된 전시물이다. 김재원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책임디자이너는 “창신동의 봉제 산업을 이야기할 때 열악했던 노동환경을 빼놓을 수 없다”며 “그 당시 노동환경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다락 구조”라 말한다.

다락 구조는 동선을 최소화하고, 더 많은 노동자를 수용하기 위해 건물 한 층을 절반으로 나눈 것을 말한다. 아래층에서 옷감을 재단하면 위층 다락에서 봉제공과 보조원이 재봉틀로 옷감을 이어 옷을 만들었다고 한다. 

무리하게 공간을 나눈 탓에 다락의 높이는 터무니없이 낮았고, 노동자는 거의 기어 다니다시피 움직여야 했다.

당시 평화시장 재단사였던 전태일 열사가 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지도 함께 볼 수 있다.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쉬고 싶다는 바람이 적힌 경력 3년 ‘시다(보조원)’의 설문조사지에는 그 시절 노동자의 고달픈 삶이 뚝뚝 묻어난다.

봉제 산업을 꽃피운 동네, 창신동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전태일 열사의 사진과 당시 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했던 설문조사지. 사진 / 조아영 기자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인터렉션 영상으로 관람할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전시장 한편에는 손때 묻은 낡은 재봉틀 한 대와 길쭉한 모니터가 마련되어 있다. 재봉틀 바퀴를 돌리면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은 영상이 재생되며, 단순한 옷 한 벌에도 수많은 이들의 노고가 어려 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봉제장인 명예의 전당, 테라스·카페도 문 열어
3층은 하나의 벽면을 봉제 마스터 10인에 선정된 이들의 흑백 프로필 사진과 경력, 인터뷰 등을 실은 패널로 구성한 봉제 마스터 기념관이다. 

30~40년간 현직에 종사하며 재단, 패턴, 재봉, 샘플 등 자신의 전문분야를 닦은 ‘봉제장인’들의 명예의 전당인 셈이다.

'봉제 마스터'에 선정된 10인의 프로필. 사진 / 조아영 기자
봉제 마스터의 작업물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재단판, 노루발, 초크 등 봉제 마스터가 사용했던 물품을 기증받아 구성한 패널. 사진 / 조아영 기자

또한, 봉제 관련 기계는 시대에 따라 교체되기도 하지만 가위만은 수십 년간 봉제인과 함께 한다는 점에서 착안해 그들이 사용했던 가위도 함께 전시해두었다. 

사람들의 생김새가 모두 다른 것처럼 장인들의 손에 머물렀던 가위 역시 손잡이에 천이 덧대어져 있거나, 끝이 닳아있는 등 제각기 다른 모양새가 인상적이다.

봉제 마스터들의 작업물은 현장에서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 천장 중앙에 프레스 장치를 설치해 그들이 만든 옷을 빙글빙글 돌아가게 만든 것. 

라이더 자켓, 언밸런스 스커트, 셔츠 원피스 등 다양한 옷에는 각각 장인들의 손글씨로 쓰인 이름표가 붙어 있어 신뢰를 안겨준다. 실제로 봉제 마스터의 옷을 구입 할 수 있는지 묻는 관람객도 많다고 한다.

창신동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아담한 셀프카페. 사진 / 조아영 기자
4층 테라스에서 창신동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테라스와 셀프카페로 구성된 4층 바느질 카페는 창신동의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공간이다. 

봉제 산업과 그에 얽힌 역사를 살펴보고 나서 이 동네를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면 감회가 새롭다. 수많은 봉제인들이 바늘에 손끝이 찔리고 찢기며 피워낸 역사, 이제 지속적인 관심으로 이어나갈 차례다.

Info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관람료
무료
관람시간 화~일 오전 10시~오후 6시(매주 월요일 휴관)
주소 서울 종로구 창신4가길 26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이 자리한 인근 골목은 살아있는 박물관이 되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골목 곳곳에서 봉제 관련 패널을 볼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봉제 산업의 현장이 담긴 골목 풍경. 사진 / 조아영 기자

Info 창신동 봉제거리 박물관
지하철 1‧4호선 동대문역 1번 출구로 나와 왼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창신동 봉제거리 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현재에도 봉제공장이 활발히 운영되는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인근 골목 일대를 일컫는 것으로, 봉제인의 삶터와 곳곳에 설치된 봉제 관련 패널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주소 서울 종로구 창신2동 647번지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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