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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한옥마을 “주민들의 생존권을 보호해주세요”
북촌 한옥마을 “주민들의 생존권을 보호해주세요”
  • 유인용 기자
  • 승인 2018.05.18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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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 소음‧노상방뇨는 일상…잠옷 차림 사진 찍히기도
북촌마을운영위원회에서 한옥마을 골목에 걸어놓은 현수막들. 사진 / 유인용 기자

“새벽부터 오는 관광객 주민은 쉬고 싶다”
“관광버스 매연 속에 주민은 숨 막힌다”

최근 서울 북촌 한옥마을의 골목에 붙은 현수막 내용이다. 북촌 한옥마을이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주민들은 현수막뿐 아니라 지난달 말부터는 매주 주말 집회를 열며 거리로 나서고 있다.

북촌마을운영위원회에서 한옥마을 골목에 걸어놓은 현수막들. 사진 / 유인용 기자

서울시 외래 관광객 1051만 시대
휴일이 되면 북촌 한옥마을은 골목골목마다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한복을 입고 마을 이곳저곳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관광객들 중에는 외국인이 절반 이상이다. 넘쳐나는 외국인 관광객들로 인해 북촌 주민들의 불편함도 날로 늘고 있다.

서울시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해 서울을 방문한 외래 관광객은 1051만명에 달한다. 북촌 한옥마을 인근의 삼청동 및 인사동은 이들이 3번째로 많이 찾은 관광지였다. 1위와 2위는 각각 명동과 N서울타워가 차지했다. 역사 관련 관광지중에서는 4대 고궁에 이어 북촌 한옥마을이 2위였다.

600년의 역사를 가진 북촌 한옥마을은 지난 2001년 서울시의 ‘북촌 마을 가꾸기’ 사업이 진행되면서 관광지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서울 시내에서 가깝고 경복궁, 명동 등 다른 관광지로의 연계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북촌 한옥마을은 내국인들뿐 아니라 외래 관광객들에게도 서울을 대표하는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북촌 한옥마을 내 메인 거리에 관광객들의 소음 자제를 부탁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 / 유인용 기자

지난주 한옥마을을 방문한 프랑스인 관광객 로익 조프레 씨는 “마을 전체가 한옥으로 구성돼 매우 인상적이다”라며 “서울 내에서도 한국의 전통적 분위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북촌 한옥마을인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친구와 함께 북촌을 찾은 대학생 조민주 씨는 “북촌은 분위기가 색다른 곳이라 데이트 코스로 종종 찾게 된다”며 “서울 시내에서 가까워 접근성이 좋다는 점도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소음부터 쓰레기까지…대문 잠깐 열자 중국인 관광객 ‘우르르’
하지만 때를 가리지 않고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인해 주민들의 생활 스트레스가 고착화되면서 불편함을 호소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도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북촌에서 37년째 살고 있다는 70대 김 씨는 “방문객 대부분은 외국인들인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돌아다니는 통에 낮잠은커녕 밤에도 잠을 잘 못 이룬다”며 “집 앞에 쓰레기가 쌓여있을 때도 있고 노상방뇨를 목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북촌 한옥마을 골목에서 관광객들이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 유인용 기자

50년 이상을 북촌에서 살아온 북촌마을위원회 회원 김연주 씨는 “대학생 딸이 화단에 물을 주러 저녁에 대문을 잠깐 연 적이 있는데 문이 열리자마자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 수십여 명이 집으로 물밀 듯이 들어왔다”며 “잠옷 차림의 딸과 집 안을 마구잡이로 촬영해대는 바람에 정신이 없어 제대로 대응도 못했고, 이후 딸은 관광객들이 무섭다며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잠자리를 준비하는 늦은 시각에 마을을 둘러보며 큰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있고 개인 가정집에 딸린 외부 화장실을 공용 화장실처럼 사용하는 관광객도 있다”며 “한옥 대부분이 나무로 지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담배꽁초를 아무데나 버려 화재의 위험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참다못한 한 주민이 담벼락에 ‘We can not live. We suffer from tourists(우리는 관광객들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라고 쓴 종이를 붙여 놓았다. 그러자 다음날 종이에 한 외국인 관광객의 댓글이 달렸다. ‘It's your problem(그건 당신들 문제일 뿐)’

북촌마을위원회에서 관광객들로 인해 불편을 겪고 있다는 내용을 영어로 제작한 현수막(위)과 주민이 영어로 써 붙인 종이에 외국인 관광객이 달아놓은 댓글(아래). 사진 / 유인용 기자

관광객 의식 개선 위한 해결법 있어야
주민들의 민원이 지속되자 종로구청에서는 3년 전부터 북촌 한옥마을 내 ‘정숙 관광’ 캠페인을 진행해오고 있다. 구청에 소속된 어르신들이 ‘쉿! 조용히 해주세요’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정해진 시간마다 지정 자리에 서 있거나 관광객들의 소음, 쓰레기 무단 투기, 메가폰, 몰래 촬영 등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플랜카드를 골목 곳곳에 걸어놓는 등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것이 주민들의 지적이다.

한 주민은 “어르신들이 피켓을 들고 있으니 관광객들이 보고 ‘조용히 하자’ 하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한다”며 “하지만 그때뿐이고 돌아서면 다시 시끄러워진다”고 말했다.

북촌 골목 곳곳에서는 정숙 관광을 당부하는 피켓을 볼 수 있다(사진 오른쪽). 피켓을 들고 있는 어르신 대부분은 북촌 주민들이다. 사진 / 유인용 기자

서울시와 종로구청 관계자는 “주민 불편 사항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며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아직 모색 중에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문제 해결을 위해선 어떤 방법이 있을까.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도 외래 관광객들에 의해 현지 거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 사례가 있다.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외래 관광객은 무려 2869만명. 일본의 대표 관광 도시인 교토에서는 관광객들로 인해 주민들의 일상생활 피해가 심각해지자 시에서 관광 매너 팸플릿을 제작해 관광객들에게 배포하고 있다.

일본 교토시에서는 관광객들로 인해 주민들이 피해를 입자 관광 매너 팸플릿을 제작해 외래 관광객들에게 배부하고 있다. 사진 제공 / 교토시관광청

해당 팸플릿에는 화장실 깨끗하게 사용하기, 쓰레기 버리지 않기 등의 기본 에티켓을 비롯해 다다미에 오르기 전 신발 벗기, 사찰 입장 전 선글라스와 모자 벗기 등 일본 문화와 관련된 관광 에티켓도 함께 명시돼 있다. 픽토그램이 함께 있어 그림만 보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북촌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짜낸 해결 방안 또한 교토시의 사례와 비슷하다. 관광객들의 의식 개선을 위해 조치를 취하자는 것이다. 교토시의 관광 매너 팸플릿처럼 한옥마을을 관광하기 전 알아두면 좋을 에티켓들을 정리해 목걸이로 만들어서 관광객들에게 배부하는 것 등이다.

북촌마을위원회 회원 김연주 씨는 “시나 구청에 문제 제기를 하면 건축 규제 완화나 인센티브 지급 등을 해결 방안으로 제시하는데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라며 “주민들의 생활권이 보장되는 범위 내에서 관광객과 주민들이 공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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