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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철의 나라 함안, 아라가야의 찬란한 흔적을 따라가다
철의 나라 함안, 아라가야의 찬란한 흔적을 따라가다
  • 조아영 기자
  • 승인 2018.06.07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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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산 고분군에서 함안박물관까지
아라가야의 역사 속으로 향하는 첫걸음, 말이산 고분군. 사진제공 / 함안군청

[여행스케치=함안] 한반도 남쪽 낙동강 유역에는 독자적인 문화를 가진 철의 나라 가야가 있었다. 562년 대가야가 멸망하면서 신라에 흡수되어 자취를 감추었지만, 기원전부터 수백 년간 이룬 역사는 15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아라가야의 숨결이 묻어나는 고장, 경남 함안에 다녀왔다.

‘아라가야’, 유성음으로 이루어진 이름을 소리 내어 읽으면 부드러움 속에 감춰진 강인함이 배어나는 듯하다. 함안을 도읍으로 삼았던 아라가야는 고령의 대가야, 김해의 금관가야보다 비교적 낯설지만 가야 연맹의 주축이었고, 성대한 고분군을 남긴 나라다.

우수한 토기ㆍ철기 제작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백제ㆍ신라ㆍ일본 등과의 외교 활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아라가야의 역사 속으로 향하는 첫걸음은 대표 유적지인 말이산 고분군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말이산 고분군 안내판. 사진 / 조아영 기자
야자매트 길이 조성되어 있어 편하게 둘러볼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고대 왕국이 박제된 말이산 고분군
말이산 고분군으로 가는 길은 함안박물관 좌측으로 난 길과 함안군청에서 아라공원을 거쳐 오르는 길 두 가지로 나뉜다. 편안한 길을 찾는다면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함안박물관 근처에서 출발하기를 권한다. 

야자 매트로 조성된 둘레길을 따라 말이산을 오르면 능선을 따라 솟아난 고분들이 보인다. 고분이 자리한 말이산은 ‘머리산’의 음을 빌어 붙여진 한자 이름으로 ‘우두머리의 산’즉, ‘왕의 무덤이 있는 산’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옛 아라가야의 왕과 귀족이 잠들어있는 고분은 구릉의 정상과 가지 능선에 줄지어 서 있어 마치 ‘산 위의 산’처럼 보인다. 

우정희 함안군 문화관광해설사는 “말이산 고분군은 우리나라에서 경북 고령의 지산동 고분군 다음으로 가장 규모가 큰 고분군”이라며 “호수(숫자)를 붙여 관리 중인 고분은 총 37기지만 발굴되지 않은 고분을 더하면 약 1000기 이상으로 추정된다”라고 말한다.

봉분 사이를 걷다 마주하는 4호분은 그 규모부터 남다르다. 높이가 아파트 3층과 맞먹는 4호분은 37기 중 가장 크며,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 의해 첫 번째로 발굴된 고분이기도 하다.

도굴에 가까운 발굴 조사였지만, 수레바퀴 토기를 비롯해 말 장신구 등 가야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이 다량 출토되는 결과를 낳았다. 문헌상으로만 존재했던 아라가야인들의 생활상과 그들의 문화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말이산 고분군에 관해 설명 중인 우정희 함안군 문화관광해설사. 사진 / 조아영 기자
함안의 고분군 및 산성의 위치와 규모를 보여주는 모형. 함안박물관 내에서 관람할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흔히 ‘승자의 기록’이라 일컬어지는 역사. 그 때문인지 가야를 칭하는 수식어는 막연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거대한 말이산 고분군을 둘러보고 나면 강국 사이에서 치열하게 살아남아 위세를 떨친 한 나라의 모습이 그려진다.

현재 고분군에서는 아라가야의 역사가 새롭게 쓰이고 있다. 지난 5월 학계 전문가와 일반인, 학생 등 500여 명을 대상으로 5-1호분 발굴 조사 과정을 공개했고, 그 과정에서 완전한 형태의 제례 관련 유물매납갱(유물을 묻어놓은 구덩이)이 최초로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하반기에 진행될 발굴 조사 현장 역시 대규모로 공개할 예정이며, 멀게만 느껴졌던 역사를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어 많은 이들의 기대를 모은다.

Info 말이산 고분군
주소
경남 함안군 가야읍 도항ㆍ말산리 일원
문의 055-580-2321 

Tip 함안 말이산 고분군 발굴 현장 견학 일정은 현장 상황에 따라 추후 안내될 예정이다. 현장 견학에 참가하고 싶다면 먼저 함안군청 문화재유산담당(055-580-2321)으로 문의 후 방문하는 것이 좋다.

우연과 우연이 만들어낸 드라마, 역사가 되다
“저짝에 공사하는 데 있다 아입니꺼, 땅 파다 보니까 이상한 철 쪼가리가 보이던데예?”

1992년 6월 6일 현충일, 함안의 한 아파트 배수로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된 철 조각. 그것은 국내에서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말갑옷의 일부분이었다.

막연히 존재하리라고만 생각했던,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나 확인할 수 있었던 유물이 아라가야의 땅에 묻혀있었던 것이다. 

아라가야의 철기 문화와 국방력을 짐작해볼 수 있는 말갑옷. 사진 / 조아영 기자
말갑옷 뿐만 아니라 다양한 말갖춤새가 발굴되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포클레인 날에 찍혀 훼손된 부분도 있었지만, 급히 공사를 중단한 덕에 말갑옷의 원형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총 900장 이상의 작은 철판을 가죽끈으로 연결하여 만든 말갑옷은 말의 몸통과 목 부위를 완벽하게 감쌀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더불어 말이산 6호분, 8호분에서는 말투구 등 다양한 말갖춤새가 출토되어 아라가야의 다채로운 철기 문화와 국방력, 철갑기병(갑옷을 입힌 말을 타는 무장 병사)의 실존 여부까지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발굴 성과는 국내는 물론 동아시아 역사학자들의 이목을 단번에 집중시켰다.

아라가야가 품은 드라마틱한 사연은 이뿐만이 아니다. 우정희 해설사는 “독특한 무늬로 주목받는 불꽃무늬 토기, 수레바퀴 토기 외에 최근 25호분에서 발굴된 굽다리등잔은 화려한 문화를 짐작해볼 수 있는 희귀 유물”이라며 “일제강점기에 고분이 파헤쳐진 이후 수많은 도굴꾼이 드나들었지만 부러진 돌 사이에 숨어있던 굽다리등잔은 이제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고 말한다.

아라가야와 함안의 자취를 담은 공간
이처럼 번성했던 아라가야의 역사와 고분군ㆍ함안 전역에서 출토된 유물을 살펴보려면 함안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2층 제3전시실은 아라가야 시대의 유물ㆍ유적이 전시된 공간으로 아라가야인들이 쓴 역사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전시실 중앙에 자리한 굽다리등잔은 단연 화려한 모양새로 눈길을 끈다. 굽다리 위에 일곱 개의 등잔이 원을 이루며 붙어있는 형태로, 어두운 실내를 밝히는데 사용된 조명용 토기로 추정된다.

아라가야를 대표하는 또 다른 유물 불꽃무늬 토기는 굽다리 부분에 불꽃처럼 생긴 독특한 구멍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불꽃무늬의 형태에 따라 시기를 구분할 수 있으며, 제례용ㆍ조명용 토기설이 제기되고 있다.

아라가야 대표 유물 불꽃무늬 토기를 형상화한 외관이 인상적인 함안박물관. 사진 / 조아영 기자
화려한 모양새로 이목을 끄는 굽다리등잔. 사진 / 조아영 기자
불꽃무늬 토기는 일본 긴키 지방에서도 발굴되어 당시 외교 관계를 짐작게 한다. 사진 / 조아영 기자

한편, 박물관에는 아라가야를 넘어 함안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공간 또한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아라가야 이전, 선사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함안의 역사를 시대별로 관람하고 싶다면 제1전시실을 둘러보는 것이 좋다. 제2전시실은 시기별 무덤 형태 모형을 전시해놓아 고분 문화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보여준다. 

아라가야 멸망 이후의 함안 역사와 함안의 문화재, 세시풍속 등은 제4ㆍ5전시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제5전시실은 함안 화천농악, 낙화놀이 등 함안 전통문화를 디오라마로 생생하게 재현해놓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디오라마로 생생하게 재현된 함안 화천농악. 사진 / 조아영 기자
수백 년 만에 꽃을 피운 아라홍련. 사진제공 / 함안군청

함안박물관에는 또 다른 시대를 기억하는 ‘꽃’도 있다. 2009년,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 성산산성에서 발견된 씨앗을 시작으로 분홍빛 연꽃을 피워낸 ‘아라홍련’이 그 주인공이다.

과학 분석결과 700년 전 고려 시대의 씨앗으로 밝혀진 아라홍련은 함안박물관 곳곳에 자리한 시배지에서 매년 6~8월경 꽃망울을 틔운다. 

아라홍련을 보면 조그마한 씨앗이 어떻게 그리 긴 세월을 껴안았을까 싶다가도 규모는 작지만 찬란한 문화를 이룬 아라가야와 겹쳐 보여 마음이 애틋해져 온다.

수백 년 만에 제 모습을 드러낸 아라홍련처럼, 교과서에 채 몇 줄 실리지 않았던 아라가야의 역사는 지금 함안에서 다시 피어나고 있다.

방문객들이 함안박물관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Info 함안박물관
이용요금
무료
이용시간 오전 9시~오후 6시(11~2월은 오후 5시까지, 매주 월요일 휴관)
주소 경남 함안군 가야읍 고분길 153-31
문의 055-580-3901 

Tip 오는 7월 21일, 9월 15일에는 오후 7시부터 ‘함안의 달빛, 함안의 유산’이라는 야간 행사가 열린다. 행사에 참여하면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함안박물관 및 말이산 고분군 둘레를 걸으며 풍성한 역사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또한, 함안 화천농악, 아라가야 고취대 공연이 진행되어 옛 아라가야의 정취와 함안의 전통문화를 동시에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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