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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간판 없는 카페, 호텔 산수화, 커피사 마리아, 잔, 클래직...을지로에 자리잡은 사연
간판 없는 카페, 호텔 산수화, 커피사 마리아, 잔, 클래직...을지로에 자리잡은 사연
  • 김샛별 기자
  • 승인 2018.06.14 16: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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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은 이미 가는 그 동네, 을지로 카페
을지로 3가 주변의 간판없는 카페들. 그래픽 제작 / 김연선 디자이너

[여행스케치=서울] 대세는 다시 을지로다. 한동안 홍대와 상수동이 핫플레이스였다면, 요즘 아는 사람은 을지로로 간다.

저녁이면 거리엔 테이블이 펼쳐져 노가리에 맥주를 마시는 일명 ‘노가리호프 골목’이, 인쇄골목과 조명거리에는 간판 없는 ‘수상한 공간’들이 생기고 있다.

을지로는 저녁이면 테이블이 펼쳐지고, 노가리에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사진 / 조용식 기자

평범한 것도 아닌 허름하고 낡아 보이는 건물 2층, 4층에 카페들이 숨은 까닭은 아무래도 저렴한 임대료 덕분. 하나둘 떠난 인쇄소 자리에 젊은 예술가들이 작업실을 구하고, 카페를 열게 된 것.

그 친구의 친구가 또다시 빈자리를 찾아 들어오고, 그 분위기에 매료된 청년 상인들이 카페를 열며 지금의 을지로 카페거리가 생겨났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허름한 을지로 건물 꼭대기층에 자리 잡으며 생긴 또하나의 특징은 바로 간판이 없다는 것. 간판 없이도 알음알음 찾는 카페들의 매력을 소개한다.

간판이 따로 없어 찾아가려고 해도 찾기 쉽지 않은 호텔수선화 입구. 사진 / 김샛별 기자
오래된 호텔 리셉션 같은 분위기의 '호텔수선화' 카운터. 사진 / 김샛별 기자

‘간판 없는 가게’로 유명해진 ‘호텔수선화’
빨간 락커로 삼각형 세 개가 포개져 있는 낙서 같은 지표 하나가 전부인 ‘호텔수선화’는 낡은 건물 4층에 자리한 카페. 이름은 ‘호텔’이지만 카페 겸 바(bar)다.

오래된 건물엔 엘리베이터도 없다. 올라가는 계단 난간 역시 요즘엔 보기 힘든 고동색 목제 난간으로 검게 손 때가 묻은 흔적과 페인트칠이 벗겨져 있는 것이 지난 세월을 설명해준다.

4층 회색 철제문에는 간단하게 ‘호텔수선화’라는 이름만 적혀 있어 더욱 의심을 키운다. 그러나 문을 열면 딴세상이 펼쳐진다.

카페 이름처럼, 빈티지한 호텔 리셉션처럼 꾸며놓은 카운터와 천장에 달린 꽃무늬 천으로 쌓인 조명은 촌스러운 듯 멋스러운 듯 그야말로 힙 그 자체. 골조를 훤히 드러내는 내부 벽과 바닥의 분위기와 섞여 호텔수선화만의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

원혜림 호텔수선화 대표는 “임시로 세워둔 작은 합판이 전부였는데 오히려 ‘간판 없는 카페’로 유명해졌다”고 설명한다.

호텔수선화 내 주얼리 디자이너 원혜림씨의 작업 공간. 사진 / 김샛별 기자

그런데 유독 을지로에 ‘수상한’, ‘간판 없는 카페’들이 많이 생긴 이유가 궁금하다. ‘간판 없는 카페’의 대표 격이 된 원혜림 대표는 “작업하는 이들이 을지로에 들어오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카페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설명한다.

카운터 옆, 판잣집 오두막 같은 형태의 공간은 실제 디자이너의 작업실로 사용되는 공간이다. 쥬얼리 디자이너가 주인이다 보니, 호텔수선화는 카페이자 바이면서 동시에 이곳을 찾는 이들의 작업공간이 되고, 전시와 공연도 틈틈이 진행된다.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교류활동도 이뤄진다. 현재 호텔수선화는 ‘FRICCA TITS’ 외부 디자이너 전시가 진행 중이며, 그의 의류들도 함께 선보이고 있다.

그는 “제가 좋아하고 재밌어 하는 걸 주로 전시한다”며 “이곳을 찾는 분들도 ‘여기서 또 재미 있는 거 하는 구나, 가보자’ 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꽃무늬 천으로 덮힌 조명과 로고를 락커로 칠한 테이블이 분위기를 더한다. 사진 / 김샛별 기자
호텔수선화의 대표 메뉴인 밀크티와 베리베리에이드, 샌드위치. 사진 / 김샛별 기자

디자이너 작업실이 있는 공간이지만 카페로서의 호텔수선화 역시 매력적이다. 오랜 시간 냉침해 만드는 밀크티는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

다른 곳에선 찾아 보기 어려운 민트 밀크티와 초콜릿차이 밀크티는 호텔수선화에서 디자인한 특별한 통에 넣어 판매한다. 하루에 판매하는 양이 정해져 있어 늦게 가면 맛보기 어려운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Info 호텔수선화
메뉴
패션후르츠 에이드 6000원, 초콜릿 차이 밀크티·민트 밀크티 7000원
주소 서울 중구 충무로7길 17 4층

스티커로 붙어 있는 간판(?)이 전부인 '커피사마리아'. 사진 / 김샛별 기자

‘커피사’와 그림 그리는 ‘마리아’가 함께, ‘커피사 마리아’
작업실과 카페가 결합된 을지로 카페 중 하나가 ‘커피사마리아’다. 카페사와 그림을 그리는 마리아가 함께 쓰는 공간인 ‘커피사마리아’는 카페 정중앙에 있는 작은 화실 공간이 매력적인 카페.

‘커피사 마리아’는 그래서 초록색 ‘커피사’와 연보라색 ‘마리아’라는 스티커가 곧 간판이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샛골목 안쪽에 손바닥만한 작은 현수막이 나풀거려 들어가 보면, 인쇄집들이 있는 건물 3층으로 오라는 스티커가 작게 붙어 있다.

빛이 쏟아지듯 드는 커피사마리아 내부. 사진 / 김샛별 기자
브루잉 커피를 팔고 있는 커피사. 사진 / 김샛별 기자

붉은 카펫과 두꺼운 남색 암막커튼이 인상적인 ‘커피사마리아’는 커다란 창이 양옆으로 나있어 빛이 쏟아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한쪽에는 마치 교실에 온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테이블과 의자가 있고, 반대편에는 영화관 의자가 놓여 있다.

카페 한가운데는 ‘마리아’의 작업공간. 빈티지한 커다란 나무 책상과 미술학원에서 볼법한 트레이에 쌓여 있는 미술도구들, 작업 중인 그림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벽에 붙어 있는 '마리아'의 그림들. 사진 / 김샛별 기자
'마리아'의 그림(좌)과 카페 가운데에 자리한 '마리아'의 작업공간(우). 사진 / 김샛별 기자

카운터와 벽은 그의 갤러리다. 마음에 드는 작품을 구매할 수 있고, 달력이나 엽서, 티셔츠와 에코백 등 그의 그림으로 만든 제품 구매도 가능하다. 드로잉 수업을 신청하고 방문하면 그림 수업도 참여가 가능하다.

‘커피사 마리아’의 특징은 브루잉 커피만 판매한다는 점. 드립커피와 콜드브루, 콜드브루 라떼·바닐라가 커피 메뉴의 전부다. 티 메뉴 역시 단출하다. 그러나 수제자몽청이나 라벤더 밀크티 등 시간을 들여 만드는 메뉴라는 것이 공통된 특징.

장시간에 걸쳐 완성되는 음료와 50년대 멋쟁이 골목이었던 을지로를 생각하면 이보다 잘 어울리는 메뉴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Info 커피사 마리아
메뉴
드립커피·콜드브루 5000원, 자몽쌕쌕·마리아(라벤더 밀크티) 6000원
주소 서울 중구 을지로16길 5-1 3층

골뱅이 골목에 있는 카페 '잔'의 작은 입간판. 사진 / 김샛별 기자

당신과 나, 우리의 인연 ‘잔’
을지로 ‘호텔수선화’와 ‘커피사 마리아’가 생기는데 톡톡히 일조한 이가 있다. 익선동 한옥마을을 ‘핫’하게 만든 주인공인 카페 ‘식물’ 대표인 루이스 박이다.

‘식물’은 카페나 음식점이 전무하던 익선동에 3년 전, 처음 들어선 카페로 ‘식물’이 입소문을 타며 지금의 힙한 익선동이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을지로 카페 ‘잔’의 대표인 그는 ‘호텔수선화’와 ‘커피사 마리아’에도 디렉팅 및 조언을 준 인물이기도 하다.

골뱅이골목에 자리한 ‘잔’은 역시나 간판 없이 호프집들 사이에 있는 터라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같은 자리만 몇 번째 맴돌게 된다.

취향에 맞는 잔을 골라 마시는 컨셉의 '잔'. 사진 / 김샛별 기자
'잔'의 대표 메뉴, 베트남 연유 커피. 사진 / 김샛별 기자

‘잔’은 이름처럼, 손님이 직접 마음에 드는 잔을 택하고, 그곳에 커피를 따라 마시는 독특한 컨셉으로 유명해졌다.

루이스 박은 “손끝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뿐 아니라 나와 사물 사이에도 인연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한다.

카페 곳곳 찻장에는 런던 유학시절부터 지금까지 보이는 대로 모으기 시작한 잔들이 빼곡하다. 이 중에서 취향에 맞는 잔을 골라 카운터로 가져가 주문하면, 그곳에 음료를 담아준다.

‘잔’의 대표 메뉴는 베트남 연유커피. 베트남에서 ‘카페쓰어다’라 불리는 이 커피는, 연유와 에스프레소를 섞어 마시는 것으로 우리나라의 달달한 믹스커피 같은 맛이다.

작은 유리잔에 카페쓰어다를 추출하는 도구인 베트남 핀이 얹어지고, 연유 위로 한 방울씩 커피가 떨어진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3층 테라스 공간. 사진 / 김샛별 기자
루프탑이 있는 '잔'은 오후 7시 이후면 커피 주문은 마감하고, 술과 안주만 주문 가능하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잔’을 형상화한 스테인드글라스와 옛날식 축음기형 나팔스피커 등 촌스러운 듯 묘하게 잘 어울리는 빈티지한 분위기도 좋지만, 3층 테라스와 한 층 더 계단을 올라가면 있는 루프탑은 ‘잔’을 찾는 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공간.

잠시지만 나와 인연이 닿은 잔을 고르고, 을지로의 경치를 감상하다 보면, 10분은 금방이다. 진하게 내려진 에스프레소와 달콤한 연유를 잘 섞어 마시면 입 안에 감도는 단맛이 꼭 지친 일상의 단맛처럼 느껴진다.

Info 잔
메뉴
아메리카노 4500원, 베트남 연유커피 6000원
주소 서울 중구 을지로3가 349-1 3층

간판 없는 다른 을지로 카페들처럼, 클래직 역시 작은 입간판이 전부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인생 프사' 건지고, '맛'까지 담아낸, 클래직
지난 3월 오픈한 을지로 신상카페 중 하나인 클래직은 을지로 인쇄골목 끝, 금속제품(메달, 뱃지 등)을 제작하는 업체들이 즐비한 거리에 있는 카페다.

2층 카페 맞은편에도 금속제품을 만드는 업체가 자리하고 있어 입구에 섰을 때까지도 카페가 맞나 싶을 정도. 유리로 된 미닫이문에 매직으로 ‘Clazic’이라 적어놓은 것이 전부인 이 카페의 독특한 감성은 방문하지 않으면 설명하기 어렵다.

특히 청록색 커튼과 거울, 액자와 조명 등이 있는 공간은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을 ‘인생 프사(프로필 사진)’로 담기 좋아 포토존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청록색 커튼을 배경으로 독특한 소품을 배치해 클래직의 포토존(?)이 되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모던하고 깔끔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테이블. 사진 / 김샛별 기자

내부 숨은 공간은 어둑어둑한 바깥과 달리 올화이트로 꾸며진 공간. 마치 작업 중인 것 같은 이젤 위에 놓인 작품과 쌓여 있는 시집, 보라색 석고상과 붓 등이 인상적이다.

계절마다 분위기가 변화하는 인테리어 역시 클래직의 특징. 하지만 느낌 있는 인테리어만으로 소개하기에는 아쉽다. 클래직은 카페 본연의 성격에 무엇보다 충실하기 때문.

깊고 진한 커피향을 느낄 수 있는 기본 메뉴인 아메리카노와 플랫 화이트와 더불어 시나몬스틱으로 휘휘 저어 마시는 시나몬 플랫 화이트는 커피에서 시나몬 향이 솔솔 나며 특유의 향과 맛을 더한다.

여름 시즌 메뉴로 개발한 청량과 바질 아이스티 등은 시원하게 마시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메뉴. 약간의 와인이 들어가는 와인소다는 직접 김새롬 클래직 대표가 와인소스를 만든 것.

음료에 들어가는 시럽을 포함해 디저트는 모두 클래직에서 만든다. 사진 / 김샛별 기자
대표 음료인 시나몬 플랫화이트와 와인소다, 디저트 메뉴인 '드라이 팽 드미'. 사진 / 김샛별 기자

음료뿐 아니라 디저트 메뉴 역시 정성이 가득하다. 특히 ‘드라이 팽 드미’는 꼭 추천하고 싶은 메뉴다. 호밀빵 위에 와인 콩포트(과일을 설탕에 조린 요리)와 제철과일, 크림, 살라미가 어우러진 디저트로 직접 만든 콩포트와 크림치즈가 단짠단짠을 완성시킨다.

호텔조리학을 공부했던 김새롬 클래직 대표의 고집이 음료 하나, 디저트 하나에서 강하게 묻어난다.

김 대표는 “클래직도 마찬가지지만, 다른 동네의 카페거리와 달리 을지로는 주인의 개성이 묻어나는 곳이 많다”며 “마치 전시회를 보러가는 것처럼, 서로 다른 개성의 카페들이 공존하는 공간이 을지로”라고 말했다.

Info 클래직
메뉴 시나몬 플랫 화이트 5500원, 와인소다 6500원, 드라이 팽 드미 8000원
주소 서울 중구 마른내로 62-1 2F

시계 방향순으로 건물 외벽 작은 스티커가 전부인 'george'와 플랫화이트, 서울라이트와 세투. 사진 / 김샛별 기자

이 외에도 분카샤, george, the edge, 서울라이트, 백두강산, 물결 등 간판 없는 을지로 카페는 제각각 독특한 분위기를 뽐내는 중이다.

직접 가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간판 없는 수상한 카페들이 궁금하다면 지금 을지로 골목 구석구석을 살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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