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냉면 열전①] 평안도 사람들이 먹던 바로 그 평양냉면, 인천 경인면옥
[냉면 열전①] 평안도 사람들이 먹던 바로 그 평양냉면, 인천 경인면옥
  • 노규엽 기자
  • 승인 2018.06.19 11: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조 평양보다 더 유명했던 인천 냉면의 역사
1800년대 말, 인천 개항과 함께 인천 평양냉면의 역사도 시작되었다. 사진 / 노규엽 기자
<편집자 주>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평양냉면을 대접하면서 전 국민의 관심이 냉면에 집중됐다. 이에 여행스케치는 냉면의 계절 여름을 맞아 평양냉면을 비롯한 북한이 원조인 냉면들과 남한 냉면들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한다.

[여행스케치=인천] 인천의 평양냉면은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면서 역사가 시작되었다. ‘인천 드림’을 꿈꾸며 팔도 전역 사람들이 인천으로 모였고, 그 중 평안도 사람들이 인천에 식당을 차리고 평양냉면을 만들어 팔았다는 것. 1955년 인천지역 언론인 故고일 씨가 펴낸 <인천 석금>에는 ‘냉면은 평양이 원조라고 하지만, 인천 것을 못 따랐다’는 구절이 있을 정도로 평양냉면은 인천에서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한다. 현재는 인천에 평양냉면 전문점이 거의 사라졌으나, 1946년 오픈한 경인면옥이 인천 평양냉면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근 70년간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경인면옥
경인면옥은 지하철 1호선 동인천역에서 도보 약 10분 거리인 신포국제시장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기와집에서부터 시작했다는 역사와 달리 지금은 현대화된 빌딩 1,2층에 자리 잡고 있지만, ‘경인면옥 SINCE 1946’이라 적힌 간판과 ‘경인식당’이 적힌 간판 두 개에서 반세기 넘은 역사를 읽을 수 있다.

“원래 경인식당은 이 자리에서 주막처럼 장국밥을 팔던 식당이었습니다. 그곳을 제 할아버지가 인수하셔서 평양냉면을 메뉴에 추가하셨죠. 지금은 장국밥이 메뉴에서 사라지고 평양냉면이 주 메뉴가 되었지만, 나머지 메뉴들은 40년대부터 계속 이어오고 있습니다.”

경인면옥 내부에 걸려있는 옛 신포동 일대를 촬영한 사진. 노란 원 안에서 경인식당 간판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 노규엽 기자
경인면옥 정면과 측면에 걸린 두 개의 간판을 보면 반세기 넘은 역사를 엿볼 수 있다. 사진 / 노규엽 기자

할아버지 대부터 3대째 경인면옥을 이어오고 있는 함종욱 대표는 경인면옥의 역사가 서울에서 시작했다고 말한다. 평안도 태생인 할아버지 삼형제 중 큰할아버지가 1944년에 서울로 내려와 종로 YMCA 뒷골목에 평양냉면 전문점을 열었다는 것. 당시 평양냉면 인기가 높아서 종로 식당이 줄을 서서 먹는 ‘대박집’이 되었다고 한다. 장사가 잘 되자 큰할아버지의 두 동생도 각기 다른 지역에 평양냉면 전문점을 오픈했고, 그중 함종욱 대표의 할아버지인 셋째 함용복 씨가 1946년에 인천에 자리를 잡으며 경인식당을 평양냉면 전문점으로 바꾼 것이다. 그 명맥이 아버지 함원봉 씨를 거쳐 현재 함종욱 대표까지 이어지고 있다.

평양냉면은 배달음식이었다?
앞서 인천 평양냉면에 관한 글귀가 있었던 <인천 석금>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에도 인천에 있던 평양냉면 전문점에 일본인들이 많이 먹으러 왔다고 적혀있고, 스무 그릇 이상이나 되는 냉면을 긴 목판에 싣고 서울까지 배달하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함종욱 대표는 “서구 복장을 하고 다니던 서울 멋쟁이(신사 또는 하이칼라라고도 표현)들이 ‘난 이런 곳에서만 먹는다’고 스스로를 과시하기 위해 배달 주문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서울에도 평양냉면 전문점이 있었겠지만 개항기 때 유명한 평양냉면 전문점들은 인천에 있었기에 벌어진 일이었을 것”이라 들려준다.

시기는 다르지만 평양냉면 배달은 함 대표의 기억 속에도 존재한다. 서울까지는 아니었지만 경인면옥도 인천 내 지역에서는 배달을 했다는 것. 배달원을 따로 고용할 정도였고, 그들은 목판에 냉면 그릇을 싣고 양손에는 육수가 든 주전자를 들고 다녔다고 한다. 마치 지금 우리들이 짜장면을 배달시키는 것처럼, 당시 평양냉면의 대중성이 상당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경인면옥 내부에 걸려있는 옛 사진들 중 한 장. 배달원들의 모습이 찍혀있다. 사진 / 노규엽 기자
1층에는 테이블이 6~7개 정도 있지만, 2층에도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사진 / 노규엽 기자

그토록 인기가 높았던 인천의 평양냉면이었지만 ‘어려운 시기’를 겪는 사이 한 집, 두 집씩 사라졌다. 함 대표는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경인면옥 근처에 평양냉면 전문점이 많았다”면서 “90년대 즈음부터 (간이 센 걸 좋아하는)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개발된 함흥냉면이 인기를 얻으며 평양냉면 전문점들이 어려움을 겪었다”고 회상한다. 다른 집들과 마찬가지로 경인면옥도 힘든 시기였으나, 3대를 이어온 단골손님들 덕분에 버텼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지금은 남북정상회담 이후로 큰 호황을 맞고 있다. 함 대표는 “TV로 회담을 보면서도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손님들이 엄청나게 찾아와서 정신을 못 차렸다”며 “지금도 준비를 한다고 하지만 점심시간을 조금 넘기면 재료가 떨어져 판매하지 못하는 날이 있다”고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평안도 출신의 할아버지로부터 3대째 이어온 평양냉면이 회담을 계기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으며 명맥을 계속 이을 수 있게 됐으니, 이는 평양냉면 마니아들에게도 희소식임에 틀림없다.

‘밍밍하고 슴슴한’ 평양냉면, 맛의 다름으로 인정해야
일반적인 평양냉면의 정의는 메밀로 만든 면에 차가운 육수를 부어먹는 것이다.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이 맛 평가에서 중요시 삼는 것도 바로 면과 육수다. 특히, 육수에 의미를 많이 두는데, 고기로 우려낸 국물과 동치미 국물을 배합하는 비율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인면옥의 평양냉면에는 동치미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옛날에는 냉면이 겨울 음식이었으니 겨울 김치인 동치미를 사용하는 게 당연했죠. 1970년대까지는 저희도 동치미를 육수에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동치미가 겨울에는 괜찮지만 여름에는 관리를 잘못하면 텁텁한 맛이 생기는 단점이 있거든요. 그래서 고기 육수로만 맛을 내는 방법을 선택했죠.”

3대째 경인면옥을 잇고 있는 함종욱 대표의 모습. 사진 / 노규엽 기자
함 대표는 "고기 육수로만 맛을 내는 경인면옥의 냉면이 여타 평양냉면들에 비해 간이 강한 편"이라고 말한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세상의 모든 음식이 그렇듯이, 세월이 흐르며 주변 환경과 당대 사람들의 입맛에 따라 레시피가 조금씩 달라지기 마련이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아버지가 꿩을 구하면 꿩 육수를 추가하기도 했다”는 함종욱 대표의 말처럼, 이제는 꿩을 구하기가 어려우니 소고기로만 육수를 만들고 맛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는 동치미 국물을 빼는 등 변화를 준 것이다. 그에 따르면 평양냉면이라는 이름을 유지할 수 있는 근거는 메밀로 면을 만들고 고기로 낸 육수를 사용하는 점만 지키면 된다. 평양냉면이라는 음식의 기원에 따르면 이는 당연한 일이다.

“평양냉면은 원래 평안도 지역 사람들이 집에서 먹는 가정식입니다. 집집마다 만드는 방법이 다르고 맛도 달랐죠. 그 중 몇몇이 집에서 먹던 방식으로 식당을 차렸고, 그 중 여러 사람들의 입맛에 맞은 식당이 유명세를 탄 거죠. 경인면옥도 제 할아버지 집안에서 먹던 냉면을 재현한 겁니다. 모든 평양냉면은 소고기와 꿩을 이용해 육수를 만든다는 기본만 같을 뿐, 나머지는 집안 따라 가게 따라 다른 것이 당연한 거죠.”

평안도 평양냉면 3대째를 잇고 있는 함 대표는 평양냉면 마니아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맛 평가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다. 바로 함 대표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식당을 이끌었던 할머니께서 생전에 남기신 말씀이다.

“할머니께서는 평양냉면은 집집마다 맛이 다르니 여러 냉면집들을 돌아다니며 먹어보는 게 평양냉면을 즐기는 방법이라고 하셨죠. 그리고 본인이 가장 마음에 드는 맛을 찾아내면 그곳 단골이 된다는 겁니다. 평양냉면 맛에 대해서는 옳고 그름을 따질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셨죠.”

그래서 경인면옥의 평양냉면이 입에 맞지 않는다고 평하는 사람에게 “다른 집에서는 입에 맞을 수 있으니 속단하지 마시고 꼭 다른 곳도 맛보시라고 권한다”는 함 대표. 그의 말에 평양냉면을 이해하는 방법이 담겨 있다.

Info 경인면옥
메뉴 평양물냉면 9000원, 녹두지지미 1만원, 손찐만두 7000원, 냉면세트(녹두지지미(小)+냉면 선택) 1만4000원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9시(화요일이 평일인 경우 오후 3시까지)
브레이크 타임 오후 3시~오후 4시30분(주말 및 공휴일은 오후 4시~오후 5시)
주소 인천 중구 신포로 46번길 38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