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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조선의 고갱, 천재 화가 이인성을 기억하다... <건들바위>, <해당화> 등 대구 거리 곳곳이 미술관
조선의 고갱, 천재 화가 이인성을 기억하다... <건들바위>, <해당화> 등 대구 거리 곳곳이 미술관
  • 조아영 기자
  • 승인 2018.06.22 1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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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이천동 테마거리와 산격동 사과나무거리
대구 남구 이천동 테마거리에 새롭게 조성된 이인성 타일 벽화. 사진 / 조아영 기자

[여행스케치=대구]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서양화가, 이인성(1912~1950).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우리나라의 하늘과 땅, 자연과 사람을 감각적인 색채와 치밀한 구도로 그려내 ‘천재 화가’라 불린 인물이다. 그가 머물며 작품 활동을 펼쳤던 대구는 거리 곳곳이 미술관이 되었다.

대구 지하철 3호선 건들바위역에서 3분 남짓, 이천동 대봉교회 뒤편 골목으로 걸음을 옮기면 주택가 담벼락을 배경 삼아 작은 갤러리가 펼쳐진다.

화가 이인성의 작품을 타일에 옮겨 벽화로 조성한 것으로 이인성의 연표와 함께 <건들바위> 연작(아침햇살ㆍ눈 오는 날), <해당화>, <정원>, <사과나무>, <빨간 옷을 입은 소녀>, <멜빵 바지 입은 소녀> 등 총 10점의 다채로운 작품이 나란히 이어진다.

이인성의 대표작인 해당화. 사진 / 조아영 기자

그중에서도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해당화>라는 작품이다. 1944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작품으로 손꼽히는 이인성의 대표작이다.

짙게 깔린 먹구름, 그 아래에서 일렁이는 푸른 바다와 붉게 만발한 해당화. 그 곁에 앉아 정면을 물끄러미 응시하는 여인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애틋함을 자아낸다.

높이 2m가 넘는 원작을 담벼락에 그대로 옮기지는 못했지만, 타일 벽화를 통해 작품에 어린 서정성을 충분히 헤아려볼 수 있다.

이인성의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이천동 테마거리 담벼락. 사진 / 조아영 기자

곽인희 대구 이인성 기념사업회 위원장은 “조선의 고갱이라 불리는 이인성 화백의 작품이 이천동 테마거리 내 타일 벽화로 새롭게 탄생했다”며 “보존이 용이한 타일로 작품을 재현해 오랫동안 변함없이 감상할 수 있으며, 벽화 맞은편에는 봉산문화거리 정비 사업 중 훼손되었던 이 화백의 기념비를 다시 세워 더욱 의미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기념비에는 이곳이 ‘1929년 이인성의 <건들바위> 연작이 창작된 곳’이라는 설명이 새겨져 있어 그의 행적을 가늠해볼 수 있다.

벽화 맞은편 거리에는 이인성 기념비가 세워졌다. 사진 / 조아영 기자
테마거리에서는 건들바위를 그린 작품 <건들바위> 연작을 볼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건들바위는 하천의 침식작용으로 생긴 퇴적암으로,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불안해 보여 건들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 전해진다.

현재는 개발로 인해 물길 대신 도로가 트였지만, 과거에는 바위 앞으로 맑고 깊은 냇물이 흘러 수려한 경치를 자랑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풍경을 이인성의 수묵화 <건들바위> 연작에서 엿볼 수 있다.

작품 속 건들바위는 테마거리에서 도보로 약 5분 거리에 자리한다. 건들바위 주변으로 건들바위 역사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산책을 겸해 함께 둘러보기 좋다.

<건들바위> 연작 속 건들바위. 사진 / 조아영 기자
이천동 테마거리 인근에 자리한 건들바위 역사공원. 사진 / 조아영 기자

또한, 안내판에는 건들바위 앞으로 흘렀던 대구천, 중생대 백악기에 퇴적된 대구층, 건들바위에 얽힌 이야기가 담겨있다.

화가의 흔적을 따라가는 발길은 중구에 자리한 계산성당으로 이어진다. 1898년에 본당이 세워진 계산성당은 대구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며, 쌍탑이 아름다운 성당으로도 유명하다. 대구 중구 골목투어 제2코스에도 포함돼 수많은 여행자의 발걸음이 머무는 곳이다.

아름다운 성당으로 이름난 계산성당. 사진 / 조아영 기자
이인성 나무는 계산성당에서 만날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성당 옆 등나무 벤치 근처에 떡 하니 서 있는 감나무 한 그루가 시선을 잡아끈다. 이 나무의 이름은 바로 ‘이인성 나무’. 이인성의 1930년대 작품 <계산동 성당>에 크게 그려진 나무에 그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한 세기가 넘도록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나무를 마주하면 화가가 살았던 근대와 현재가 맞닿아 있는 것처럼 가까이 느껴진다.

울창한 감나무 앞에는 이인성 나무에 관한 이야기와 작품 <계산동 성당>이 담긴 안내판이 서 있어 방문객의 이해를 돕는다. 나무 뒤쪽에는 등나무 벤치가 마련되어 있어 더위를 피하며 잠시 쉬어가기도 좋다.

이인성 나무와 그의 작품 <계산동 성당>을 소개하는 안내판. 사진 / 조아영 기자

한편, 화가의 작품을 담은 또 다른 거리도 있다. 북구 산격 2동에 자리한 ‘이인성 사과나무 거리’는 낙후된 담벼락에 이인성의 작품을 그려 넣고, 그의 어린 시절을 모티브로 형상화한 ‘사과를 그리는 소년상’을 조성한 곳이다.

이인성 사과나무거리는 대구 북구 산격동에 자리해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이인성의 자화상. 사진 / 조아영 기자

벽화 작업은 에덴아파트에 거주 중인 주민과 청소년들이 힘을 보태 완성했으며, 담벼락에는 그의 작품 <사과나무>, <가을 어느 날>, <카이유>, <노란 옷을 입은 여인> 등이 그려져 있다. 이천동 테마거리 내 이인성 타일 벽화에 포함되지 않은 작품도 있어 새로운 작품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산격동과 이인성의 인연은 그의 작품과 글에서 읽어낼 수 있다.

<조선화단의 X광선>(1935)이라는 글에서 어느 일요일 ‘산격동이라는 곳’에서 하루 종일 기쁜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술회했으며, 산격동을 배경으로 한 수채화 <촌락의 풍경>이라는 작품은 세계아동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받기에 이른다. 이후 수차례 특선과 입선을 거듭 수상하며 작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노란 옷을 입은 여인>을 그린 담벼락. 사진 / 조아영 기자
산격동에서 그림을 그리던 이인성의 어린 시절을 형상화한 동상. 사진 / 조아영 기자

억압받던 일제강점기, 가난한 집안 형편, 그림 그리는 것을 반대했던 아버지. 어린 이인성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사과나무가 많았던 작은 동네로 바삐 걸음을 옮겨야 했다.

그를 기리는 거리를 둘러보고 나면 소박한 풍경 속에서 붓을 쥐고 꿈을 그리기 시작한 소년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Info 이천동 테마거리
주소 대구 남구 이천로28길 일원(대봉교회 뒤편 골목)

Info 이인성 사과나무거리
주소 대구 북구 산격2동(산격에덴3차아파트 담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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