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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냉면 열전②] 4대를 이어가는 서울 함흥냉면 전문점, 오장동 흥남집
[냉면 열전②] 4대를 이어가는 서울 함흥냉면 전문점, 오장동 흥남집
  • 유인용 기자
  • 승인 2018.06.28 1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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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 ‘농마국수’가 ‘함흥냉면’이 되기까지
<편집자 주> 냉면의 계절 여름이 왔다. 이에 <여행스케치> 편집부는 전국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특색있는 냉면을 소개한다. 

[여행스케치=서울] 이북 냉면계에는 이른바 ‘평냉파’와 ‘함냉파’가 있다. 슴슴한 국물의 평양냉면과 매콤한 양념의 함흥냉면으로 취향이 갈리는 것. 간이 세고 자극적인 맛을 좋아한다면 당신은 아마도 ‘함냉파’다. 쫄깃한 검은빛 면발 위에 빨간 고명을 올린 함흥냉면은 그 비주얼부터 침샘을 자극한다.

서울에서 제대로 된 함흥냉면을 맛보려면 서울 오장동을 찾길 권한다. 이북에서 넘어온 피난민들이 정착한 마을이었던 오장동에는 이북 음식점도 발달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은 과거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오장동 흥남집’은 지난 1953년 개업 이래 지금까지 변함없는 맛의 함흥냉면을 만들어 오고 있는 함흥냉면 전문점이다.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쫄깃한 면발 위에 빨간 고명이 올라간 함흥냉면. 사진 / 유인용 기자

1953년부터 한결 같은 맛, 오장동 흥남집
오장동 흥남집의 1대 대표인 노용언 할머니는 함경남도 함흥 출신이다. 흥남철수 때 거제도로 피난을 내려온 노 할머니는 부산을 거쳐 서울로 올라와 오장동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가계를 위해 1953년 문을 연 식당이 오장동 흥남집이다. 흥남집의 역사는 올해로 65년째.

노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며느리인 권기순 씨가 가게를 물려받았고 지금은 아들인 윤재순 대표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윤 대표의 아들 또한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 실습 중에 있다. 4대 째 맛을 이어가는 유서 깊은 식당이다.

권기순 씨의 동생인 권이학 이사는 “주방장과 직원들도 오래 일하는 경우가 많아 식당 개업 때와 지금의 냉면 맛이 거의 변함이 없다”며 “직원으로 들어왔다가 여기서 만나 결혼하고 아직도 함께 하는 직원들도 여럿”이라고 말한다.

오장동 흥남집의 2대 대표인 권기순 씨. 사진 / 유인용 기자

까만 면발 위에 빨간 고명
오장동 흥남집의 대표 메뉴는 ‘회비빔냉면’이다. 말 그대로 비빔냉면 위에 회가 올라간 모양새인데 회는 날것이 아니라 염장한 홍어를 양념한 것이다. 흔히 우리가 ‘함흥냉면’이라고 부르는 냉면이다.

회비빔냉면을 주문하니 검은색 면발 위에 빨간 고명과 달걀 반쪽, 채 썬 오이를 얹은 냉면이 나온다. 특이한 점은 일반적인 비빔냉면과 달리 국물이 자작하게 고여 있다는 것. 살짝 찍어 먹어보니 일반적인 육수와 다른 짭짤한 맛이다. 오장동 흥남집만의 맛의 비결, 간장 양념이다.

권 이사는 “보통 함흥냉면은 국물 없이 고명만 얹어 나오기 마련인데 오장동 흥남집에선 면을 그릇에 담기 전 간장에 빠르게 비벼내 맛을 더한다”며 “면을 고구마 전분으로 반죽해 아주 쫀쫀한데 간장 양념이 면이 잘 풀리도록 도와주는 역할도 한다”고 설명한다.

본격적으로 냉면을 먹기에 앞서 권 이사가 ‘제대로 먹는 법’을 일러준다. 먼저 달걀을 건져 따뜻한 육수가 든 컵에 옮겨 놓는다. 그리고 면 위에 설탕을 취향껏 뿌려 면에 설탕이 녹아들도록 한다. 그 위에 식초와 겨자를 두르고 한 번 비벼준 뒤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똑 떨어뜨려 먹는다.

오장동 흥남집의 회비빔냉면에는 홍어 고명이 올라간다. 사진 / 유인용 기자

처음엔 설탕이 스며든 면이 달달하게 입을 감싸는 듯 하더니 매콤한 양념장이 치고 들어온다. 고구마 전분 면의 쫄깃한 식감을 입안에서 즐기다가 목 뒤로 넘기고 나면 고소한 참기름 향이 혀에 남는다. 잘 염장된 홍어 고명은 냄새가 나지 않고 홍어 특유의 식감이 일품이다.

면을 다 먹고 나서는 육수에 담가놓아 따뜻하게 데워진 달걀을 흰자만 건져 먹는다. 노른자는 육수에 푼 뒤 냉면그릇에 부어 휘휘 저어 마신다.

권 이사는 “냉면으로 차가워진 뱃속을 따뜻한 달걀과 육수가 마무리해주는 격”이라며 “녹두 지짐이와 함께 먹으면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다”고 귀띔한다.

자작하게 고인 간장 양념은 감칠맛을 더하고 면이 잘 비벼질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한다. 사진 / 유인용 기자

함흥에는 함흥냉면이 없다?
함흥에서 즐겨 먹을 것만 같은 이름과 달리 사실 함흥에는 함흥냉면이 없다. 그럼 왜 함흥냉면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이북에서는 감자가 많이 나 녹말가루로 면을 뽑아서 국물에 말거나 고명을 얹어 ‘농마국수’라는 것을 만들어 먹었어요. 이 농마국수 중 빨간 고명을 얹어 맵게 먹었던 함경도식 국수가 지금 함흥냉면의 시초죠. 북쪽에서는 가자미가 흔해 주로 가자미 고명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당시 남쪽에선 명태나 홍어가 더 많이 잡혔어요. 또 감자보다 고구마가 흔했죠. 그래서 고구마 전분으로 면을 반죽하고 홍어나 명태 고명을 얹은 형태의 냉면이 만들어 진겁니다. 지역 특성에 따라 재료가 바뀐 것일 뿐 어떤 형태가 원조 함흥냉면인지 따질 필요가 없어요.”

권 이사는 "과거 홍어 고명은 굉장히 매웠는데 최근엔 사람들 입맞에 맞춰 매운맛을 덜었다"고 말한다. 사진 / 유인용 기자

지금의 냉면은 여름을 대표하는 음식이지만 사실 함경도 국수는 겨울에 더 많이 찾는 음식이었다고 한다. 남쪽보다 훨씬 매서운 북쪽의 겨울, 뜨끈하게 데운 아랫목에 앉아 아주 매운 고명을 얹은 국수와 함께 뜨거운 육수, 갓 부쳐낸 녹두 지짐이를 곁들여 먹으면 땀이 뚝뚝 흘렀다. 매운맛의 함경도식 국수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한 음식 중 하나였던 것.

함흥에는 함흥냉면이 없다지만 함흥냉면에는 외로운 타지에서 살 수 밖에 없었던 실향민들의 애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투영돼 있다. 어쩌면 함흥냉면의 면이 그토록 찰진 이유는 그런 상황에서도 가족 부양을 위해 끈덕지게 살 수 밖에 없던 실향민들의 모습이 녹아 있기 때문은 아닐까.

오장동 흥남집의 외부 모습. 사진 / 유인용 기자

Info 오장동 흥남집
메뉴 회비빔냉면, 고기비빔냉면, 섞임냉면, 물냉면 각 1만원, 수육 2만원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8시30분 (둘째, 넷째 수요일 휴무)
주소 서울 중구 마른내로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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