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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냉면 열전④] 그 시절 ‘아바이’의 추억 담긴 명태회냉면, 속초 단천면옥
[냉면 열전④] 그 시절 ‘아바이’의 추억 담긴 명태회냉면, 속초 단천면옥
  • 유인용 기자
  • 승인 2018.06.29 1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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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때 유입된 실향민들이 고향 그리며 만든 명태회냉면
<편집자 주> 냉면의 계절 여름이 왔다. 이에 <여행스케치> 편집부는 전국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특색있는 냉면을 소개한다. 

[여행스케치=속초] 강원도 속초에는 ‘명태회냉면’이라는 독특한 음식이 있다. 염장한 명태를 빨간 고명으로 만들어 얹어 먹는 것으로 함흥냉면과 흡사한 모양새다. 명태회냉면은 그 뿌리가 함경도에 있다는 점에서도 함흥냉면과 비슷하다.

6.25 전쟁 때 피난민들이 대거 유입됐던 속초에는 피난민들이 삶의 터전을 꾸렸던 아바이마을 등 실향민의 자취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명태회냉면 또한 그 흔적 중 하나다.

속초 명태회냉면에는 명태 고명이 올라간다. 사진 / 유인용 기자

아바이마을 ‘단천집’부터 온고지신의 마음으로 
속초 단천면옥의 김지훈 대표는 명태회냉면을 3대째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김 대표의 조부모인 고 김인주‧윤복자 부부는 함경도 단천에서 속초로 피난을 내려왔다가 아바이마을에 정착했다. 아바이는 ‘아버지’의 함경도 사투리다. 부부는 지난 1978년, 고향 지명을 딴 식당인 ‘단천집’ 운영을 시작하며 네 자녀를 키웠다.

이후 김지훈 대표의 부친인 김강석 씨가 속초 시내에 현재의 단천면옥을 열고 운영하다 김 대표에게 이어진 것. 아바이마을의 단천집은 현재 ‘단천식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김 대표의 고모가 운영 중에 있다.

으레 전통 깊은 식당에서는 그 식당의 역사와 변함없는 맛을 강조하기 마련이지만 김 대표는 온고지신의 정신을 강조한다.

“냉면은 조미료가 많이 들어가는 음식 중 하나예요. 조미료를 줄이고 보다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들기 위해 항상 연구하죠. 제가 식당 운영을 시작한 이래 냉면 맛이 같았던 적은 단 한 해도 없습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냉면 맛은 조금씩 달라지겠지만 그만큼 보다 건강하고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죠.”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반죽은 뜨거운 물을 붓고 익반죽을 해야 한다. 최근엔 기계를 사용하는 곳이 많지만 단천면옥은 아직도 손으로 하는 익반죽을 고집한다. 사진 / 유인용 기자

다만 한 가지 고수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면을 반죽하는 방법이다. 면의 주 성분인 고구마 전분 가루는 점성이 없어 반죽이 되지 않기 때문에 뜨거운 물로 반죽하거나 기계의 힘을 빌어야 한다.

요즘 식당에서는 대부분 기계로 반죽을 하지만 단천면옥에서는 아직도 펄펄 끓인 물을 전분 가루 위에 붓고 맨손으로 치대는 익반죽을 고집한다. ‘기계로 반죽한 면은 손맛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다.

지금은 김지훈 대표가 바통을 이어받아 매일 아침마다 전분을 반죽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반죽은 쫄깃한 면발이 되어 그날 바로 손님상에 오른다.

김지훈 대표의 부친인 김강석 전 대표의 손. 30년 간 익반죽을 해온 그의 손에는 온통 굳은살이 박여 있다. 사진 / 유인용 기자

차가운 육수 붓고 쫀득한 명태 얹어 한 젓가락
고구마 전분으로 만들어내 검은 빛이 나고 찰기가 있는 면, 생선을 원재료로 한 빨간 고명. 명태회냉면은 그 모양새가 함흥냉면과 흡사하다. 김지훈 대표에 따르면 명태회냉면은 함흥냉면과 같은 맥락에 있는 음식이다.

“할아버지 고향인 함경도에선 감자 전분으로 만든 면을 동치미 국물에 말거나 가자미 고명을 얹어 드셨다고 해요. 보통 ‘농마국수’라고 부르는 음식이죠. 그런데 당시 남쪽엔 고구마가 흔하다보니 반죽을 전분 가루로 하게 된 거예요. 또 그 당시 속초 앞바다에선 명태가 잘 잡혔으니 명태 고명을 만들어 얹으면서 지금의 명태회냉면이 만들어진 거죠. 이북에선 담백한 맛에 가까웠다고 하는데 이곳에선 자극적이고 매운 맛을 좋아하다보니 간이 센 음식으로 변한 게 아닐까 싶어요.”

명태회냉면은 차가운 육수와 함께 나온다. 냉면의 감칠맛을 더하는 이 육수를 그릇에 양껏 붓고 설탕과 겨자, 양념장을 넣어 비빈다. 달걀은 흰자를 먼저 먹고 노른자는 국물에 풀어 함께 비벼 먹는다. 따뜻한 육수에 노른자를 풀어 식사 후 마시는 함흥냉면과 비슷한 방식이다. 달걀노른자가 냉면의 매운맛을 중화해주고 속을 달래는 역할을 한다.

고명으로 올라가는 명태는 3일 간 염장한 후 양념에 버무려 1주일 간 저온 숙성한다. 사진 / 유인용 기자

한편 면 위에 올라간 명태 고명엔 생각보다 많은 정성이 들어간다. 먼저 뼈를 발라낸 명태를 한입 크기로 썰고 위에 소금을 뿌려 3일 간 염장을 한다. 이후 식초에 6시간 정도 익힌 뒤 직접 담근 매실액과 여러 양념장을 넣고 버무려 1주일 정도 저온 숙성한다. 이렇게 잘 숙성된 고명은 식감이 쫀득쫀득하고 부드럽게 씹힌다.

실향민의 애환 달래는 명태회냉면
단천면옥은 여름이 제일 바쁘지만 설이나 추석에도 손님들이 북새통을 이룬다. 북쪽에 가족을 두고 온 실향민 1세대들이 명절이면 일부러 속초를 찾아와 명태회냉면을 먹곤 하기 때문. 

김강석 씨는 “아버지께서는 명절마다 고향 이야기를 하며 눈물짓곤 하셨는데 결국 고향 땅을 밟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셨다”며 “명절에 아버님 연배의 손님들이 명태회냉면을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면 특히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난다”고 말했다.

속초 명태회냉면은 차가운 육수를 부어 먹는다. 사진 / 유인용 기자

손님들이 명태회냉면과 함께 가장 즐겨 찾는 메뉴는 아바이순대다. 대창 안에 찹쌀, 선지, 시래기 등으로 속을 꽉 차게 넣은 아바이순대는 이북에선 명절 차례상에 오르기도 했다. 돼지고기를 넣어 부드럽게 쪄낸 단천면옥의 아바이순대는 매콤한 명태회냉면과 궁합도 잘 맞는다.

“냉면이나 순대가 단순한 음식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맛, 또 누군가에겐 부모님에 대한 추억의 맛일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한 그릇도 더욱 정성을 들여 대접하려고 합니다.”

Info 단천면옥
메뉴 명태회냉면 8000원, 물냉면 8000원, 아바이순대 1만1000원, 오징어순대 1만2000원, 수육 1만8000원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8시 (둘째‧넷째 수요일 휴무)
주소 강원 속초시 소평로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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