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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10월호
유시진의 만화 <온>, 작품 속 ‘C시’를 만나다
유시진의 만화 <온>, 작품 속 ‘C시’를 만나다
  • 서찬휘 여행작가
  • 승인 2018.06.29 18: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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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과 낭만 뒤, 고요함을 품은 강의 도시
작중 모델이 된 아파트에서 소양1교와 소양강을 내려다 본 풍경. 오른쪽에 소양2교도 보인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여행스케치=춘천] 어떤 곳은 이름 자체가 아련한 추억이다. 주말과 방학이면 젊은 연인은 물론 먹을거리와 마실 거리를 잔뜩 짊어진 대학생들로 북적이던 기차, 선로만큼이나 오래되어 세련미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서 더 많은 추억이 쌓이던 기차역….

서울에서 멀지않은 곳에 펼쳐지는 맑은 물과 숲 덕에 가벼운 주머니를 털어 삼삼오오 모인 젊음이 넘쳐나던 경춘선의 끝자락. 유시진의 만화 <온>과 함께 다녀온 곳, 바로 춘천이다.

과거와 현재의 교차, 유시진의 만화 <온>
춘천을 몇 차례 오가긴 했지만 두 발로 천천히 음미하며 다닌 기억이 적다. 그럼에도 ‘춘천’했을 때 막연히 호감이 들었던 까닭은 춘천이라는 이름이 지닌 느낌 때문이기도 하겠거니와, 이번에 꺼내 든 작품 <온> 때문이기도 하다.

작중 ‘C시’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도시가 바로 이 춘천이다.

만화 <온>은 <마니>, <쿨핫>, <그린빌에서 만나요> 등을 그린 만화가 유시진의 2003년 작품이다. 판타지 소설가이자 얼마 전 C시로 이사해 살고 있던 주인공 하제경은 서울에서 열린 출판사 송년회에 갔다가 잠시 들른 서점에서 송년회에서 스쳐 지나간 일러스트레이터 이사현이 그린 그림책을 만난다. 

유시진의 만화 <온>.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모르던 사이였고 그의 책을 사야 할 이유도 딱히 없었지만 하제경은 책을 사게 됐고 내용을 읽으며 그만 눈물을 쏟고 만다.

이유 모를 눈물, 그리고 책을 쓰고 그린 저자 이사현을 향해 알 수 없는 끌림을 느낀 하제경은 마침 같은 C시에 살고 있다는 이사현의 집을 무작정 찾아간다. 뜬금없는 만남과 썰렁한 분위기. 하지만 둘은 어느덧 오랜 지기처럼 만남을 이어간다.

두 남성 간의 알 수 없는 끌림과 기묘한 관계에 대한 묘사는 출간된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긴장감과 재미를 느끼게 하지만, 작중 하제경의 신작 소설과 현실을 교차해 진행되던 이야기가 실은 주인공들의 과거와 현재였음을 드러내는 구성은 특정 감상조차도 잊게 만드는 몰입감을 선사한다.

Tip 유시진 작가는 1992년 순정만화잡지 <댕기> 공모전 당선작 <지난 봄 이야기>로 데뷔했다. 섬세한 감정 묘사, 밀도 높고 짜임새와 깊이를 갖춘 이야기로 많은 마니아층을 형성한 명실상부 1990년대 한국 순정만화 계의 대표 주자다.

그중 <온>은 2003년 시공사의 격월간지 <오후>에서 연재되다 잡지 휴간 이후 웹 연재를 거쳐 총 3권 분량의 애장판 단행본으로 출간돼 있어 온라인 서점 등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1~2권 6000원, 3권 7000원.

여름의 활기와 겨울의 적막함, 춘천의 두 얼굴
작중 두 주인공은 같은 C시에 산다. C시는 작중에서 주인공 하제경이 ‘서울에서 두 시간 거리’인 곳으로 고른 도시다.

그는 집에서 독립하고 싶었고, 조용한 곳에서 한동안 일에 집중하고 싶었으며, 자금 사정이 그다지 풍족하지 않았다. 조건에 맞춰 고르다보니 하제경이 살게 된 곳은 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아파트였다.

작품을 읽으며 방안에서 바라보는 강의 풍경이 궁금해진다. 서울에서라면 웬만한 돈으로는 꿈도 못 꾸는 이 풍경이 보이는 공간은 대체 어디일까.

작품에서 하제경의 집 앞 풍경은 각종 신화와 설화, 작품 속에서 현계와 이계의 경계로 묘사되곤 하는 ‘강’이 널찍하게 펼쳐지며 적막한 인상을 풍긴다. 게다가 작품 속 계절은 겨울이어서 한없이 조용한 느낌이다.

이에 대해 유시진은 2006년 4월 서면 인터뷰를 통해 ‘(춘천은)따뜻할 때 가면 대학생들도 많아서 나름대로 복작거리는 곳이지만, 저는 주로 겨울에 갔기 때문에 사람 없고 깨끗하고 적막한 분위기에 나름대로 감명 받았습니다’라고 말한다.

어쩌면 이런 이중적인 모습을 모두 갖춘 것이 춘천의 매력이 아닐까싶다.

남단에서 본 소양1교. 차량은 이쪽에서 일방통행으로 진입해 들어간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북단에서 본 소양 1교 입구.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춘천은 가자면 갈 곳이 참 많은 곳이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작품 도입부와 후반부에서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하는 하제경의 집을 먼저 찾아가 보기로 했다. 작중 묘사에 기초해 찾아낸 곳은 바로 소양1교와 그 끝자락에 자리한 한 아파트다.

하제경의 집, 소양1교와 그 앞 아파트
소양1교는 춘천 시내를 지나 소양강 상류 방향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었다. 다리를 마주하고 나서 처음 든 생각은 말 그대로 ‘정말 낡고 좁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일제강점기 후반으로 접어들던 1933년 건설되어 올해로 여든 다섯 해를 보낸 다리다.

폭이 얼마나 좁냐면, 고작 1차로에 인도가 가까스로 조성돼 있는 수준이다. 6.25전쟁 당시만 해도 소양강을 건널 수 있는 유일한 다리였던 탓에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원래 설치되어 있던 난간은 성인 남성 무릎 정도 높이로 낮아 위에 철제 난간을 부설해 놓았다. 그렇지만 마음만 먹으면 난간을 타고 넘어 강 아래로 뛰어내리기 딱 좋은 높이인지라 난간에는 곳곳에 자살 만류용 문구와 상담용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이 난간을 발판 삼아 서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을 보면 간담이 서늘해진다.

<온>에서 하제경네 집으로 설정된 아파트의 모델이 된 곳. 소양1교 끝자락에 서 있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낮은 난간 탓에 자살자가 많아 자살 방지를 위한 문구들이 난간에 적혀 있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이 다리는 소양강 상류와 소양강댐 방향으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좌회전만 가능한 일방통행인지라 반대편으로 돌아가려면 아파트 앞 도로를 통해 새로 지은 소양2교 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현대에 남은 과거의 흔적은 그 자체로 묘한 풍경을 자아내고, 그 때문인지 작중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가 겹쳐 보이는 기분이 든다. 다리 끝자락에는 이 다리를 배경으로 삼은 하창수 작가의 소설 <숨막힘>이 짤막하게 소개돼 있었다.

작품 속에서 하제경이 보는 풍경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다리 끝에 선 아파트로 가야 한다. 다리 좌우로 아파트가 세 단지나 서 있지만 그 가운데 다리 통행방향으로 볼 때 끝자락 바로 왼편에 서 있는 첫 번째 단지가 각도 상 맞다.

강을 접한 쪽은 12층. 아파트를 오르니 작품 속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건너편의 봉의산과 아래 건물들까지 볼 수 있다.

강폭이 한강만큼은 아니어도 300m는 족히 넘는지라 유유히 그 자리를 지배했을 고요함이 함께하고 있다. 널따란 강폭 사이를 흐르는 풍부한 수량 역시 번잡한 생각을 잊게 하는 묘미가 있다.

작품의 드라마는 바로 이 풍경에서 시작되어 강을 건너 춘천 변두리 즈음에 있을 이사현의 집으로, 나아가 작중 나단(하제경)과 사미르(이사현)가 관계한 이계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만화 속 이야기가 자아내는 기묘한 정취를 만나고 싶다면 바로 이곳에서부터 걸음을 시작해 봄 직하다.

기왕 온 춘천 조금 더 맛보기
약 300m 길이의 다리를 천천히 왕복하며 소양강을 감상하고, 주변의 분위기를 살피다 보니 어느덧 두 시간 정도가 지났다. 도시 변두리의 작은 집 정도로 묘사된 이사현의 집을 찾기엔 정보가 부족해 아쉬웠으나, 작품 속에 묘사된 춘천의 풍경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시내에 있는 소양강 처녀상보다 노래 가사에는 더 부합하지 않나 생각된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먼 발치에서 본 소양강 전경.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기왕 강을 보러 왔으니 강의 끝도 보고 싶어 고민 없이 달려간 소양강댐에서는 갖가지 조형물과 시내에 자리한 소양강 처녀상과는 다르게 생긴 동상을 볼 수 있었다.

소양강 처녀상보다 노래의 정서에 들어맞는 모양새의 동상이 소양강댐 쪽에 둘이나 서 있어 흥미롭다. 이들 동상 크기는 딱 사람 키만 하다.

소양강댐을 둘러본 후에는 허기를 달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춘천하면 단연 떠오르는 두 음식은 막국수와 닭갈비인데, 그중에서도 막국수의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인 춘천 막국수 체험 박물관에 방문했다.

춘천 막국수 체험 박물관에서 메밀면을 뽑아 보았다. 사람이 아예 틀에 올라 온 무게를 실어 눌러 메밀면을 뽑던 조선말 기산 김준근의 풍속화 속 풍경이 단번에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양념을 버무린 막국수.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tvN 프로그램 <알쓸신잡>에도 등장해 유명세를 얻었으며, 재미와 맛을 동시에 챙길 수 있는 곳이다.

박물관 1층 전시관에서는 막국수의 원료인 메밀 생장과정, 과거 막국수 제조과정, 막국수의 유래 등을 살펴볼 수 있으며, 박물관의 백미인 2층 체험장에서는 직접 막국수를 만들어보고 시식할 수 있다.

주 체험 대상인 아이들 입맛에 맞춰 반죽 속 메밀은 6할 정도 들어가지만, 춘천 사람들은 메밀 본연의 맛을 느끼기 위해 일부러 안 쫄깃한 면을 만드는 식당을 찾아다닌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또한, 원래 막국수는 겨울에 동치미 국물을 부어 먹던 음식이며, 메밀이 찬 성질을 지니고 있어 더위를 식히기에도 그만이다.

근처에 자리한 스카이워크는 조금 특별한 사연이 있다. 끝자락에서 보이는 쏘가리 조형물 <자연의 생명> 때문이다.

춘천스카이워크 풍경. 2천 원을 내면 지역 내에서 통용되는 상품권을 준다. 덧신을 신고 들어가야 하는 점이 이채롭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자연의 생명>이라는 이름이 붙은 쏘가리 조형물. 다소 쌩둥맞아 보였으나 거치돼 있는 폐 교각의 연원을 알고 보면 또 의미가 달라 보인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조형물을 받치고 있는 받침대는 일제강점기 후반 대륙침략용 에너지원으로 화천댐을 짓기 위해 춘천역에서 화천까지 건설자재를 실어 나르던 케이블카 교각이라고 한다.

얽힌 역사를 알고 나서 보면 다소 생뚱맞아 보이던 조형물이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구경을 마치고 나오는 길, 때마침 근처 산기슭에 있는 삼운사에서 종소리가 들려왔고 너른 강가에 비치는 저녁노을과 초여름 청명하게 퍼지는 절의 종소리가 차 한 잔의 여유를 절로 생각나게 했다.

강과 강 위의 작은 다리 하나를 보기 위해 달려왔지만 짧은 시간 동안에 그 외의 풍경도 소소하게 챙길 수 있었던 이번 춘천 여행의 마지막.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가다 보니 저만치에 옛 풍경을 간직한 채 새 길들 사이에 묻혀 가는 강촌이 보인다. 대학 시절, MT를 왔던 기억과 그라피티가 가득한 강촌역 옛 풍경이 떠오른다.

춘천은 이렇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과거와 현재의 대비를 보여주며 만화 속 기묘한 이야기를 상기시키는 매력적인 도시로 남았다.

Info 춘천 막국수 체험 박물관
운영시간 오전 9시~오후 6시(2층 체험관은 오전 10시~오후 5시, 월요일ㆍ명절 당일 휴무)
입장료 성인 1000원, 청소년ㆍ군인 700원, 어린이 500원(2층 체험료 별도)
주소 강원 춘천시 신북읍 신북로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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