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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여름여행]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림책 읽어주는 동네 여행, '부여 송정 그림책마을'
[여름여행]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림책 읽어주는 동네 여행, '부여 송정 그림책마을'
  • 김샛별 기자
  • 승인 2018.07.04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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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맞이 외갓집에 놀러간 느낌 물씬 풍기는 여행지
그림책 읽어주는 마을, 송정 그림책마을. 사진 / 김샛별 기자
송정 그림책마을은 벽화마을로, 동화책 속 장면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여행스케치=부여] 부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약 한 시간 정도, 금강이 있는 서천 방향으로 310번 시내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부여 구경을 하다 보면 드디어 종점에 도착한다.

부여보다는 서천군과 가까운 이 마을 의 버스정류장 이름은 ‘그림책 정거장’. 그림책 한 장을 넘기듯, 그림책 마을로 한 걸음 걸어가본다.

붉은 벽돌담에 고동색 나무벽으로 지어진 ‘그림책 정거장’은 첫인상부터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느낌을 물씬 풍긴다. 그림책 정거장 뒤로 한 아름이 넘는 큰 나무가 서있고 그 나무그늘 아래 평상이 놓여 있다.

평상 옆에는 그림책을 읽어주는 할머니 조형물이 있어 이곳이 어떤 마을인지 짐작케 한다. 초록 논길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송정 그림마을’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는 벽화가 반긴다.

마늘, 양파, 고추, 콩, 참깨 같은 작물을 가꾸는 작은 밭들이 집과 집 사이, 노는 땅 없이 꽉 들어차있는 송정마을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농촌 풍경을 지녔다. 하지만 돌담길 사이사이 재밌는 동화 벽화들이 숨어 있어 걷는 재미가 있다.

<강아지똥>을 그려놓은 벽화. 사진 / 김샛별 기자

1996년 출간되어 만화영화로도 만들어진 동화 <강아지똥>이 그려진 벽화 앞에 서자 엄마·아빠가 동화책을 읽어주던 옛 추억이 새록새록 돋는다.

돌담길 따라선 밭의 농작물과 꽃이 그려진 벽화가 나란히 그려져 있고, 동네에 함께 사는 말, 소, 돼지, 염소도 마치 브레멘 음악대처럼 그려져 있다. ‘끙’이라 적힌 문이 궁금해 열어보니 그 옛날 푸세식 화장실이 있어 웃음이 풋 하고 난다.

“부여 최초의 벽화마을”이라고 뿌듯한 얼굴을 하는 박남순 송정마을 노인회장은 벽화만 보지 말고 송정리에서 보고 가야 하는 8경도 보고 가라 일러준다. 

310번 버스의 종점이자 송정 그림책마을 입구가 되는 그림책정거장. 사진 / 김샛별 기자
송정리8경 중 3경에 해당하는 송정야학당. 사진 / 김샛별 기자

송정리8경을 함께 보는 이야기투어
빼어난 볼거리는 아닐지라도, 송정리에 왔으면 동네 사람들이 자랑하는 8경은 보고 가야 한다. 청룡, 도토리나무, 야학당, 잣나무, 흙집, 우물터와 원두막, 송정저수지가 그것.

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동네 한 바퀴를 돌면서 자연스럽게 만나볼 수 있다. 8경 중에서도 1경과 3경은 알고 보면 더 의미가 깊다.

1경 ‘청룡’은 그림책 정거장이 있는 부근을 일컫는다. 지금은 개간한 논이 드넓게 펼쳐져 있지만, 옛날엔 푸른 소나무가 냇둑을 따라 나 있어 푸른 용꼬리 같았다 하여 ‘청룡’이라 이름 붙은 곳이다.

예부터 마을 대소사를 논할 때 이곳에 모여 의논하고, 큰 명절에는 음식을 나눠 먹고, 축제 때는 큰 나무들에 줄을 묶어 그네를 뛰며 놀았다.

그림책정거장 뒤편을 일컬어 '청룡'이라 부른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송정리8경 중 하나인 송정저수지와 얼마 전 완공된 출렁다리. 사진 / 김샛별 기자

좀 더 걷다 보면 마을의 자랑이자 3경인 송정야학당이 보인다. 한눈에 봐도 오래되어 보이는 이 건물은 1925년에 지어져 오랫동안 마을 교육을 맡았다. 부여에서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야학당 건물이기도 하다.

누구나 쉽게 올 수 있도록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야학당에 대해 박남순 회장은 “우리 마을의 자랑이 이 야학당”이라며 “마을 부자가 땅을 내놓고, 사람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지은 뒤로 마을 사람들은 물론 다른 마을에서도 여기서 배우러 왔다”고 설명한다.

자신도 이곳에서 교육을 받았었다는 그는 “가을까진 농사짓고, 추수를 하고 나면 11월부터 1월까지 석 달 동안 저녁마다 가서 공부를 배웠다”고 회상한다.

지금도 그때 지었던 그 모습 그대로인 야학당 안에는 1920년대 것부터 특히 근현대 시대 물건들이 그대로 있다. 새마을운동 때 보급 받은 칠판, 그 당시 사용했던 교과서 등 먼지 쌓여 있는 마을문고(책장)는 긴 세월 마을의 역사를 대변한다.

이 외에도 오백 살이 넘는 도토리나무와 아랫뜸 사람들이 사용했던 우물터, 마을 공동농장이 있는 원두막 등도 쉬엄쉬엄 산책하며 벽화와 함께 둘러보기 좋다. 

마을 입구에 자리하고 있어 동네 주민들의 쉼터이기도 한 그림책마을 찻집. 사진 / 김샛별 기자
원하는 자리에 앉아 여러 그림책들을 읽을 수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할머니·할아버지가 읽어주는 직접 쓰고 그린 그림책
송정마을은 마을 어른 스물 세 분이 직접 자신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동화책 작가들이라서 더 특별하다.

노인정에서 함께 그리던 것을 모아 2016년, 2017년 벌써 두 번의 전시회도 서울 인사동에서 가졌다. 기성 작가들의 그림책과 비교하면 선도 이야기도 투박하지만, 그 투박함에서 진솔한 삶의 얼굴이 드러난다.

송정 그림책마을에서는 동네에 놀러온 이들을 특별하게 맞아준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직접 쓰고 그린 그림책을 그림책마을 찻집에서 읽어주는 것.

스물 세 권의 마을 동화책은 물론, 각종 그림책들이 책장에 가득 꽂혀 있는 그림책마을 찻집에서는 창가에 앉거나 바닥에 누워 혼자 책을 읽을 수도 있다.

박춘자 할머니가 쓰고 그린 <할머니와 꽃밭>은 과수원을 하며 복숭아, 배, 사과, 앵두 등을 기르며 꽃도 기른 이야기. 사랑초 그림 위에 ‘사랑을 하면 누구나 바보가 대지요’라는 틀린 맞춤법을 삐뚤빼뚤 직접 써놓은 글씨에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박남순 송정마을 노인회장이 직접 쓰고 그린 <호두나무와 청설모 그리고 나>. 사진 / 김샛별 기자
박춘자 할머니가 쓰고 그린 <할머니와 꽃밭>. 사진 / 김샛별 기자

할머니가 꽃만 보니 질투가 났는지 남편이 화분을 데굴데굴 굴려버려 논두렁에 화분을 주우러 갔단 이야기를 상상하면 웃음이 터진다.

마을에서 직접 기른 차와 꽃, 열매 등을 이용한 차 한 잔과 함께 그림책을 읽는 재미도 있지만 미리 전화 예약 후 방문하면 마을 어른들이 직접 자신이 만든 그림책을 투박하지만 재치 있는 말투로 읽어주어 더욱 재밌는 추억을 만들 수 있다.

어떤 이야기에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거대한 역사 속에서 살아낸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청룡의 미루나무를 베어다가 송정야학당 마루를 깔았다는 이야기, 지금은 저수지 안에 잠긴 동네인 마차실에 대한 추억을 그리는 이야기 등이 그렇다.

어떤 이야기에는 평생 흙과 더불어 고된 농사일을 하며 자식을 키우고 삶의 지혜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담겨 있고, 또다른 그림책엔 한평생 살아온 송정마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평범한 농촌마을로 보였던 송정마을에 굽이굽이 곡절 많았던 이야기 한보따리가 풀어지면, 오늘의 추억도 또다른 이야기로 남는다.

송정 그림책마을에서는 미리 예약 후 방문하면 정성스레 준비한 '할머니 도시락'을 맛볼 수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송정 그림책마을 찻집은 마을에서 나는 식재료를 활용해 마을 부녀회가 직접 운영한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정자나무 아래 돗자리 깔고 도시락 까먹기
그림책마을 찻집에서는 미리 사전예약 하면, 마을 부녀회에서 직접 싸준 도시락이 포함된 ‘차 바구니’를 준다.

손수 만든 바구니 안에는 비엔나소시지가 올라간 주먹밥부터 버섯, 피망, 멸치 등이 쏙쏙 박혀 있는 주먹밥과 그날 그날 신선한 과일들, 직접 기른 꽃이나 작물로 만든 차에 얼음을 동동 띄운 물병이 담겨 있다.

소나무와 정자나무가 많다고 해 ‘송정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은 마을엔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쉴 곳도 많다. 명당은 역시 오두막이다.

옛날 원두막처럼 초가지붕에 마루가 높게 올려진 원두막에 오르면 찻집은 물론 저 아래 청룡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송정리8경 중 하나이자 마을 전망대, 쉼터 역할을 하는 오두막. 사진 / 김샛별 기자

원두막 주변은 마을 공동 농장으로, 이곳에서 나는 꽃과 열매(생강, 대추, 모과, 오미자차와 맨드라미, 감국, 도라지꽃, 연잎 등)로 그림책 찻집의 차를 만든다고.

한 입 크기의 동글동글한 주먹밥을 입 안에 앙 넣어 꼭꼭 씹어 먹으면, 더운 여름이라도 어느새 시원한 바람에 땀이 식는다. 스스스 나뭇잎들이 바람결에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구경하는 논밭 풍경에 마음이 정겨워진다.

Info 송정 그림책마을 찻집
이용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메뉴 건강차(생강차, 모과차, 도라지차) 3500원, 꽃차 4000원, 아이들음료(호두나무 쉐이크, 자색고구마라떼) 4000원, 모시가래떡구이+조청 3000원, 할머니 도시락(사전예약) 7000원
주소 충청남도 부여군 양화면 양화북로222번길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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