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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신정일의 1300리 낙동강 걷기] 퇴계오솔길을 걸으며 안동이 배출한 인물들을 만나다
[신정일의 1300리 낙동강 걷기] 퇴계오솔길을 걸으며 안동이 배출한 인물들을 만나다
  • 신정일 객원기자
  • 승인 2018.07.30 1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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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안동팔경’ 가송협에서 안동댐으로 이어지는 길
청량산을 뒤로 한 낙동강은 안동으로 접어든다. 사진 / 신정일 객원기자
편집자 주
평생을 산천을 걸으며 보낸 ‘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신정일 대표는 낙동강을 세 번째 걷는다. 지난 2001년 9월, 517km의 낙동강을 걸었으며, 그로부터 여덟 해가 훌쩍 지난 2008년 60여 명과 함께 이 길을 걸었다. 다시 10년이 흐른 지난 2월부터 1년간의 일정으로 ‘우리 땅 걷기’ 회원 90여 명과 함께 ‘낙동강 1300리 길’을 걷고 있다. ‘신정일의 1300리 낙동강 걷기’라는 제목으로 낙동강 걷기의 시작부터 끝까지의 여정을 연재한다. 

[여행스케치=안동] ‘어서 오십시오. 선비의 고장 안동입니다’
태백에서 시작된 낙동강이 봉화를 지나 안동에 접어든다. 청량산을 뒤로 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 강을 따라 도산서원으로 향한다. 이 길은 우리나라 철학사에 길이 남을 철학자의 길, ‘퇴계 오솔길’이다.

안동팔경과 함께 하는 퇴계 오솔길
가송리(佳松里)에 접어들면 낙동강이 숨겨놓은 경치가 펼쳐지며 정신이 아찔해진다. 가송협이라고 부르는 절경이다. 강 건너 깎아지른 듯한 단애(斷崖) 아래 한가롭게 자리 잡고 있는 정자가 눈길을 끈다. 고산정(孤山亭)이라는 이름의 정자로, 조선 중기의 학자면서 퇴계 이황(李滉ㆍ1501~1570)의 제자인 금난수(琴蘭秀ㆍ1530∼1599)가 지은 것이다.

금난수는 명종 19년(1564) 예안(안동의 옛 지명)에 ‘성재’라는 정자를 짓고 학문에 전념하다가, 예안현의 명승지 가운데 한 곳인 이곳 가송협에 고산정을 짓고 ‘일등정자’라고 불렀다. 안동팔경(安東八景) 중의 한 곳으로 알려진 이곳에 퇴계 선생을 비롯해 많은 선비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았고, 지금도 정자에는 퇴계 선생의 시와 금난수 선생의 시 등이 남아있다.

절경을 보여주는 가송협 부근을 흐르고 있는 낙동강. 사진 / 신정일 객원기자
을미재로 향하는 길. 을미재에는 농암 이현보 선생의 유적지가 조성되어 있다. 사진 / 신정일 객원기자

가송협의 아름다움을 흠뻑 즐기고 다시 길을 나선다. 굽이쳐 흐르는 강을 따라 내려간 곳, 을미재에는 농암 이현보 선생의 유적지가 조성되어 있다. 그는 연산군 때 죽을 지경에 처했다가 간신히 살아난 인물이다. 그 후 고향에 돌아온 그는 농암(聾岩) 위의 바위에 부모가 노는 곳으로 애일당(愛日堂)을 짓고, 농암이라 스스로 호를 지었다. 애일당 옆에는 명농당(明農堂)을 짓고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歸去來) 그림을 벽에 그리고서 스스로 즐기었다고 한다.

이제 낙동강을 따라 퇴계 오솔길이 이어진다. 녹음 무성한 산기슭을 따라 길은 끊어질 듯 이어지고, 강물은 더 없이 푸르게 흘러간다. 백운지교에서 바라본 강 건너 개목마을은 낙동강이 마을 앞에 이르러 목처럼 잘록하게 되어있기 때문에 개목(포창)이라 부른다. 백운지 마을에서 다리를 건너 강 길을 따라 내려가면 단사마을에 이르고, 그 앞에 단사협(丹砂峽)이라고 부르는 병풍바위가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낙동강과 퇴계오솔길. 사진 / 신정일 객원기자
농암 이현보 선생 관련 유적지인 궁구당. 사진 / 신정일 객원기자

안동이 배출한 독립투사, 이육사 시인
원천교에 이르러 지나온 강을 돌아보면 강물은 천천히 흘러오고 다리를 건너면 원천리에 들어선다. 고개를 넘어 원촌마을에 이르면 이육사의 생가 터와 시비가 세워져 있다.

내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중략)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청포도의 시인 이육사(李陸史ㆍ1904~1944)는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원록 또는 원삼이었고 아호가 육사였는데, 육사는 대구형무소 수감번호 二六四에서 사용하였다.

이육사는 1925년에 형 원기, 아우 원유와 함께 대구에서 의열단에 가입하였고, 1927년에는 장진홍이 주도한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대구 형무소에 투옥되었다. 그 후로도 이육사는 1929년 광주학생운동과 1930년 대구 격문사건에 연루되어 모두 17차례에 걸쳐 옥고를 치렀다. 중국을 자주 왕래하면서 독립운동을 하던 이육사는 1943년 가을 잠시 서울에 와 있던 중 일본 관헌에서 붙잡혀 북경으로 송치된 후 1944년 1월 북경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안동이 배출한 또 한 명의 인물, 이육사 시인의 집터. 사진 / 신정일 객원기자

그의 작품집은 그가 죽은 후인 1946년 그의 아우 원조에 의하여 서울 출판사에서 육사 시집이 초간본이 발간되었다. 대표작으로는 <청포도>, <황혼>, <절정>, <광야> 등이 있고 1968년 그의 시비가 안동에 건립되었다.

도산서원에서 퇴계 선생을 만나다
고개를 넘어 토계마을에 이른다. 토계리(土溪里)는 본래 예안군 희둥면의 지역으로서 토계라 하였는데, 명종 원년(1546)에 이황이 벼슬을 사직한 후 돌아온 곳이다. 이황은 양진암(養眞庵)을 세우고 토계를 퇴계(退溪)로 고치는 동시에, 자기의 호를 삼았다.

아랫 토계에 있는 퇴계 이황 묘소를 지나 도산서원(陶山書院)으로 향한다. 강 길을 따라서 한발 한발 걷다보면 나무숲이 무성한 자리에 도산서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도산서원의 전신은 도산서당이었다. 도산서당(陶山書堂)은 토계리 680번지에 있는데 명종 15년(1560)에 퇴계 이황이 공조참판(工曹參判)의 벼슬을 내놓고 도산에다 서당을 세워서 도산서당이라 하였다.

토계마을에서 퇴계 이황 선생 묘소가 있다. 사진 / 신정일 객원기자
도산서원 내, 보물 제210호로 지정되어 있는 전교당. 사진 / 신정일 객원기자

그리고 그가 죽은 후, 4년 만에 고향사람들이 도산서당 뒤에 서원을 짓기 시작해 선조 7년(1574)에 완공된다. 그 다음 해에 사액(賜額)을 받게 되는데, ‘도산서원’ 넉 자는 선조가 명하여 조선 중기의 명필 석봉(石峯) 한호(韓濩)가 썼고 뒤에 퇴계의 제자 월천(月川) 조목(趙穆)을 추배하였다. 조선 유학사에 한 획을 그은 이황. 그 당시의 학자들은 “북두칠성과 같은 자리에 있다”고 평가했으며 학봉 김성일은 “하늘에서 빛나는 해나 별과 같은 분”이라고 말했다 한다.

한편, 서원 뒤에 있는 상덕사(尙德祠)는 보물 제211호로, 앞에 있는 전교당(典敎堂)은 보물 제210호로 지정되어 있다.

서원을 나와 낙동강을 보면 강 가운데에 작은 집 한 채가 있다. 시사단(試士壇)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곳은 경상도 사람들의 맺히고 맺힌 한을 풀어줬던 곳이다.

조선 임금 중에 재임기간이 가장 길었던 영조가 즉위했을 당시, 정치적 위협을 느낀 소론의 강경파들이 난을 일으켰다. 무신년에 일어난 반란이라고 해서 무신란 또는 이인좌의 난으로 부르는 일이다. 1728년에 일어난 반란은 한 달 여 만에 소탕되었지만, 당시 경상도 총책을 맡았던 정희량으로 인해 60여 년 동안 경상도 선비들은 과거보는 일이 금지되었다.

이인좌의 난 이후, 60여 년만에 치러진 과거시험을 기념하여 쌓은 시사단 모습. 사진 / 신정일 객원기자

오랜 세월이 지난 1792년 3월에야 정조 임금이 영남사림을 위해 도산서원 앞에서 과대인 별시를 베풀었다. 시사단은 그러한 사실을 기념하여 단을 쌓고 정자를 세운 곳이다. 그 당시 응시자가 7800명에 이르렀기 때문에 도산서원에서 시험을 보지 못하고 강변에서 과거를 보았다는데, 답안지를 제출한 사람이 3632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도산서원을 빠져나가는 길에 안동호가 내려다보이는 천광운영대가 있다. 주변 풍광이 수려하여 퇴계 선생이 즐겨 산책했다는 곳이다. 사람은 나고 백년도 못 사는데, 강물은 세세토록 흐르고 흘러서 오늘에 이르렀다. 퇴계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다가 피곤하면 흐르는 강물에 탁족을 하던 강은 이제 안동댐이 되어, 흐름을 잊은 채 흘러서 안동에 도달할 것이다. 흐르는 강을 따라 흘러갈 생각에 잠겨 거니는 사이 해가 뉘엿뉘엿 서산에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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