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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당진 여행] 걸으며 만나는 농경문화, 당진 합덕 방죽길
[당진 여행] 걸으며 만나는 농경문화, 당진 합덕 방죽길
  • 김샛별 기자
  • 승인 2018.07.31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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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역사가 연꽃과 함께 너울거리는 길
지금은 제방만 남은 합덕 방죽길. 사진 / 김샛별 기자

[여행스케치=당진] 매일 밥을 먹고, 여행길에 펼쳐진 논을 봐도 도시의 아이들에게 농경문화란 어렴풋하기만 하다.

농사를 짓기 위해 힘들게 저수지를 만들고, 그 저수지가 어떻게 농경에 이용되었는지 아이와 함께 걷다 보면 역사는 물론 지역 문화의 풍경이 어느새 그려진다.

예부터 당진은 손꼽히는 곡창 지대 중 하나였다. 맛좋은 쌀이 그냥 나지 않는다. 봄에는 파종해 모내기를 하고, 여름에는 잡초를 제거하고, 가을에는 추수를 해야 한다.

각 시기별로 해야 하는 농사일의 고됨도 고됨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물이다. 가뭄이 들면 한 해 농사를 망친다. 물을 가두어두었다 가뭄에도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고르게 쌀을 생산하는 비결이다.

당진 합덕제는 조선시대 3대 저수지 중 하나로, 당진 6개 마을에 물을 댔던 커다란 저수지다. 예당저수지가 생긴 후, 논으로 개간해 지금은 제방만 남아 있다.

김제 벽골제, 수원 축만제에 이어 세 번째로 세계관개시설물 유산에 등재된 합덕제의 역사와 가치에 대해 잘 알기 위해서는 합덕수리민속박물관을 먼저 향하는 것이 좋다.

한국 수리 시설의 역사를 알 수 있는 합덕수리민속박물관. 사진 / 김샛별 기자
실제 당진 시민들이 사용한 농경 기구들을 기증 받아 전시해놓았다. 사진 / 김샛별 기자

합덕방죽과 농경문화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합덕수리민속박물관
합덕수리민속박물관은 합덕제를 중심으로 한국 수리 시설의 역사 등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제방의 길이만 해도 약 1771m, 둘레 9000m로 조선시대 제방(제언)들 중 길이가 가장 길다. 수문만 해도 8개, 관개지역도 동서 4km, 남북 2.5km로 최대 300만평을 관개했을 정도로 규모가 큰 합덕제를 만드는 것만 해도 만만찮은 일.

옛 합덕제의 크기를 짐작해볼 수 있도록 미니어처로 만들어두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합덕수리민속박물관에는 합덕제를 만드는 것을 과정별로 설명해 이해를 돕는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제1전시실인 수리문화관에서 합덕방죽의 축조과정을 미니어처로 만들어두어 이해를 돕는다.

0.7~1.5km나 되는 넓은 하천 계곡의 끝부분을 막고, 3단계에 걸친 1차 축조를 시작으로 5차 축조로 완성되어 공학적으로 우수한 구조임을 보여준다.

이영화 당진시 문화관광해설사는 “김제 벽골제처럼 직선이 아닌 사행천처럼 구불구불 굴곡이 심하게 지어져 있고, 제방 내부는 특이하게 마치 석성을 쌓듯 직육면체로 다듬은 돌을 수직으로 축조해 견고하다”고 설명한다.

또한 그는 “수직 말뚝을 지반에 일정한 간격으로 박는 무리말뚝공법으로 지어 쉽게 무너지는 것을 방지한 것도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박물관에서는 수리(水利), 즉 물을 이용하는 여러 농경문화 유산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 수 있다.

살포, 가래, 맞두레는 물론 수레바퀴를 발로 밟아 돌려 도랑에 많은 양의 물을 길어 올리는 수리기구인 무자위(수차) 등 당진 시민들이 사용했던 실제 기구들이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다. 

농경문화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조성한 합덕농촌테마공원. 사진 / 김샛별 기자
농업과 관련한 기구는 물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어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박물관 밖을 나오면, 박물관과 합덕성당까지 가는 구간에 합덕농촌테마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예전에 사용되었던 농기구들을 직접 보고, 만져볼 수 있는 전통농업문화체험터가 마련되어 있다.

또한 농업에 매우 중요한 날짜와 시간, 그리고 날씨와 천문 등과 관계된 천문시계·해시계·자격루·측우기·풍기대·옛기상관측기구 등이 있어 박물관 밖에서 유익한 체험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

옛 저수지는 모두 논으로 개간되어 합덕 방죽길은 논밭을 걷는 길이 되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연으로 가득 덮인 못과 논밭을 지나는 방죽길
충청도 방언으로 ‘웅덩이’를 ‘방죽’이라 한다. 방죽은 원래 파거나, 둑으로 둘러막은 못을 뜻하는 말. 합덕 방죽길은 말 그대로 웅덩이길, 못길이다.

박물관 앞으로 백련과 홍련이 피어 있는 두 개의 못 둘레를 작게 걸을 수도 있지만, 기왕이면 방죽 자체를 걸어보길 권한다.

차 한 대가 지나갈 법한 길은 지금에야 좁게 느껴지지만, 7-80년대만 해도 마을버스가 지나던 길이었다.

1771m의 제방을 사람들이 직접 흙을 쌓고, 다져 만들었다 생각하면 걷는 동안 그 길이와 넓이에 다시금 놀라게 된다.

합덕수리민속박물관에서 합덕성당을 지나 크게 돌아 걷는 방죽길은 박물관에서 본대로 심심한 직선이 아닌 구불구불한 흙길이다.

합덕제가 중수될 때마다 그 기록을 적어놓았던 중수비. 사진 / 김샛별 기자

넓게 펼쳐진 논을 보며 걷다 보면, 밭 언덕바지에 8개의 중수비가 삐뚤빼뚤하게 서 있다.

1800년 이후 합덕제 중수를 기록한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비를 모아놓은 것으로, 이 중 정조 24년(1800) 봄에 건립한 연제중수비가 가장 오래된 비로 확인된다.

이영화 해설사는 “합덕제가 언제 축조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확실치 않다”며 “삼한 시대에 축조되어 있었다는 삼국 시대 축조설과 견훤과 왕건이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군마에게 공급할 물을 개발하고자 만든 것을 후삼국통일 후 주민들이 보강해 저수지로 활용했다는 설 두 가지가 전해진다”고 설명했다.

길을 걷는 동안 중수비 외에도 옛 합덕제에서 각 마을로 났던 수문(물길) 중 하나인 ‘왜목’도 찾아볼 수 있다.

합덕제는 8개의 수문이 있었는데, 모두 사라지고 현재 가장 최근(7-80년대 추정)에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왜목’만이 남아 있어 여전히 이 근방의 물길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다시 박물관 앞에 다다르면, 옛 합덕제(합덕제는 연이 가득 덮여 있어 연지·연호·연제라고도 불렸다)를 떠올리게 하는 연꽃이 핀 풍경이 반긴다.

두 개의 연못을 복원해 홍련과 백련을 볼 수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길에는 합덕성당도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사진 / 김샛별 기자

7월 중순 즈음부터 동시에 피어나는 홍련과 달리 백련은 7월부터 9월까지 하나둘 수줍게 제각각 꽃을 피운다.

홍련이 피어 있는 못에는 멸종위기 야생 생물인 금개구리와 수원청개구리가 살고 있다. 울음주머니가 없는 금개구리는 짧은 휘파람을 부는 듯한 소리가 특징.

유독 작은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그보다 더 높고 느린 템포로 우는 수원청개구리 소리도 함께 들려와 아이들에게 특별한 기억을 더해준다.

Info 합덕수리민속박물관
이용시간
오전 9시~오후 6시(월요일 휴무)
이용요금 무료
주소 충남 당진시 합덕읍 덕평로 379-9 합덕수리민속박물관

TIP
길 중간중간 물고기 모양 안에 ‘ㅂㄱㄴㅅㄹㄱ(버그네순례길)’이라 적힌 나무 팻말이 보인다. 방죽길이 버그네순례길의 일부이기 때문.

솔뫼성지부터 합덕성당, 신리성지까지 이르는 18km의 순례길 중 2km 구간이 방죽길이다. 백제부흥군길과도 연계되어 있어 길을 잇고 싶다면 원하는 쪽으로 더 걸어도 좋다.

한편, 방죽길은 2km 내외의 짧은 거리지만, 나무 그늘이 무성한 길이 아니므로 모자나 양산 등을 챙겨가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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