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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수난과 영광 어린 천주교 성지순례, 영광순교자기념성당
수난과 영광 어린 천주교 성지순례, 영광순교자기념성당
  • 김샛별 기자
  • 승인 2018.07.31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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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기념관과 '십자가의 길' 걸으며 조용히 마음을 달래는 여행
본당 설립 80주년을 맞아 작년 순교자 기념관을 개관한 영광순교자기념성당 전경. 사진 / 김샛별 기자

[여행스케치=영광] 1937년 설립된 영광성당의 역사는 올해로 81년째다.

하지만 1801년 신유박해 시기에 영광에서 이화백, 양반 오씨 두 명의 순교자가 있었던 것을 보면 천주교 신앙공동체(신자들이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것)가 설립된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이전임을 알 수 있다.

이 두 명을 포함해 총 여섯 명의 박해 받은 순교자가 있는 영광성당은 지난해 본당 설립 80주년을 맞아 순교자기념관을 개관했다.

영광성당 입구에는 영광순교자들을 상징하는 '순교자 기념문'이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영광성당 정문 앞의 석장승. 이곳이 과거 순교터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영광(靈光), 성스러운 빛을 위한 순교의 길
성당에 들어서기 전, 칼 모양을 한 문주(문 양쪽에 세운 기둥)가 인상적이다. 그 문주를 연결한 가로보(가로로 걸친보) 위에는 십자 순교자상이 있다.

조선시대 죄인의 목에 씌우는 칼과 십자가를 조합한 형상이다. 조선 천주교의 역사는 신유, 기해, 병인박해 등으로 많은 순교자를 배출했다.

나영주 루카 영광순교자기념성당 현양회장은 1783년, 북경에서 이승훈이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들어오며 한국천주교회의 역사가 시작된다”며 “창설 직후 전주의 유항검, 진산의 윤지충, 무장의 최여겸이 전라도 각지로 복음을 전파시키며 영광에도 전래되었다”고 설명한다.

천주교 신앙공동체가 형성된 후 1801년, 신유박해로 최여겸 마티아로부터 교리와 세례를 받은 이화백과 양반 오 씨가 영광에서 참수된다.

나영주 현양회장은 지금의 영광순교자기념성당 정문 50m 앞을 당시의 참수터로 추정한다. 그는 “옛 우시장 터인 이곳은 장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이고, 개울가가 있는 등 참수터의 요건을 모두 갖췄다”며 1832년(순조 32)에 부정한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석장승을 이곳에 세운 것도 순교터였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순교자기념관 내부의 스테인드 글라스 대작, <핏빛 사랑으로 진복을 사신 영광의 순교자들>. 사진 / 김샛별 기자
순교자기념관 내부는 성인들의 초상화와 각종 조각작품, 옛 성물, 목각 예수 성심상 등이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최태화 릿다의 <십자가 신비 속의 그리스도>(좌)와 임정임 글라라의 <죽음 앞에 선 영광의 순교자들>(우). 사진 / 김샛별 기자

빛과 유리로 그려낸 영광의 성인들
순교자기념관은 영광의 여섯 명의 순교자와 세 명의 유배자(이종집, 남조이, 홍순희), 초기교회 신자 두 명(윤종백, 김득겸)을 기리는 공간이다.

영광에서 신유박해 때 순교한 이화백과 양반 오씨, 영광 출신으로 전주에서 처형당한 이우집과 최일안, 병인박해 때 공주와 나주에서 순교한 김치명과 유문보 바오로가 영광의 순교자들이다.

이러한 영광 천주교 박해의 역사와 영광의 순교자들을 기념성당 내 스테인드 글라스 대작으로 만나볼 수 있다.

<핏빛 사랑으로 진복(眞福)을 사신 영광(靈光)의 순교자들>이라는 양단철 하상 바오로의 작품이다. 가로 1m, 세로 2.5m, 12폭(12m)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신유박해와 병인박해 시기에 순교한 영광출신 및 거주 순교자들과 당대 신자 둘의 모습과 삶을 빛과 유리에 담았다.

작품 안의 청기와는 1960년대 영광성당 감실 장식을 본뜬 것이며, 한 폭마다 각 성인의 삶을 집약할 수 있는 상징물이 조화롭게 펼쳐져 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섬세한 유리화에 빛이 투영되는 순간,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만든 작품에서 느껴지는 영감과 마음이 아스라이 잡힐 듯 하다.

영광 순교자들을 위한 시를 지으신 이해인 수녀의 <핏빛 사랑으로>가 적힌 비. 사진 / 김샛별 기자
14처 기도를 드리는 '십자가의 길'. 사진 / 김샛별 기자

성당 문을 나서면 왼쪽에 “작은 풀잎들도 순교자들의 눈물을 기억하는 거룩한 이 땅에서 새로운 그리움으로 님들의 이름을 불러봅니다”로 시작하는 이해인 수녀의 <핏빛 사랑으로> 시비가 보인다.

시비를 감싸듯 순교자를 기리는 네 개의 비가 세워져 있다. 그 옆으로 ‘십자가의 길’이 성모동산에서부터 대성당 뒤쪽으로 발길을 붙잡는다.

십자가의 길은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바치는 기도를 위한 길. 예수그리스도가 사형선고를 받은 후,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 일어났던 14가지의 중요한 사건을 형상화한 동판이 간격을 두고 세워져 있어 각처를 지날 때마다 묵상하게 된다.

짧지만 거룩함이 느껴지는 그 길 끝에서 고개를 들면 기념성당 벽면에 커다란 십자가가 보인다. 투박하게 조각된 녹슨 청동 십자가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묵직하게 마음을 누른다.

<미니인터뷰>
“성지를 개발하고 2017년 본당설립 80주년을 맞아 순교자기념관을 마련한 후 종교를 떠나 많은 이들이 영광성당을 찾아옵니다”
송홍철 루카 영광순교자기념성당 주임신부는 “영광은 불교 도래지, 천주교 순교지, 원불교 발생지, 기독교 순교지로서 깊은 의미를 자체적으로 갖고 있는데, 이런 지역이 흔치 않다”고 서두를 꺼냈다.
그는 영광성당에 들러 순교자 기념관 내부의 영광 순교자 여섯 분의 순교 장면과 신앙을 담아놓은 스테인드 글라스 대작을 본 뒤, 순교자를 기리는 이해인 수녀의 시비를 읽으며 ‘십자가의 길’을 둘러본다면, 영광의 천주교 역사를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 권했다.
송홍철 주임신부는 “천주교 신자에겐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깊게 새기는 의미 있는 시간이며, 다른 종교의 순례자들 역시 종교적 진리와 신념을 위해 한 목숨을 기꺼이 바치는 이들을 기리며 종교를 떠나 서로간의 이해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 여행을 통해 삶을 더 정화시켜주고 풍요롭게 한다면, 은혜로운 일”이라고 했다.
그는 앞으로 많은 이들이 성스러운 땅, 영광에서 영육간의 참된 쉼의 기회를 갖길 바랐다.

Info 영광순교자기념성당
주소
전남 영광군 영광읍 중앙로2길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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