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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10월호
손장원 <달이 내린 산기슭>의 배경지, 영월과 단양
손장원 <달이 내린 산기슭>의 배경지, 영월과 단양
  • 서찬휘 여행작가
  • 승인 2018.08.03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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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물이 품은 애절한 이야기를 찾아
노산대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여행스케치=영월, 단양] 산과 물이 깊숙이 자리한 곳에는 늘 가슴 아린 이야기가 있다. 탁 트인 곳에서 풀어 놓을 수 없을 어떤 마음들을 조용히 감싸 안아주기 때문일까.

산에서 시작한 이야기를 좇아 만화책을 들고 달려간 이번 여행지는 강원도 영월, 그리고 그 곁의 충청북도 단양이다.

세상 어떤 만화에 그 나름의 개성이 없으랴만, <달이 내린 산기슭>은 그중에서도 굉장히 독특한 만화다.

다른 무엇도 아닌 ‘지층’을 주 소재로 삼고 있다는 점, 그것을 의인화해 등장시키고 있다는 점, 작가 본인이 지층을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은 인물이라는 점이 그러하다.

<달이 내린 산기슭>은 작가가 실제로 연구했던 지층 가운데 하나인 ‘흥월리층’을 소재로 삼은 만화다.

독특한 힐링 만화, <달이 내린 산기슭>
작품의 주인공은 지질학자 ‘오원경’. 전국의 산을 돌며 화석을 캐 팔기도 하는 지질학 박사다. 원경은 거의 10년 만에 들른 어떤 곳에서 문자 그대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만난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은 길옆의 암석층 노두를 때리고, 십 년 감수한 표정으로 낙석을 치워볼까 하던 원경의 뒤로 갑자기 한 소녀의 형체가 공중에 나타난다.

소녀는 영문을 알 수 없어 하며 다시 바위 속으로 스며들어 가려 하지만, 어째서인지 들어갈 수가 없다.

흥월리 입구임을 나타내는 표석.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작중 월리와 원경이 처음 만나는 장소, 단양 어상천면의 노두.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원경은 소녀가 돌이나 바위에 깃든 정령인 줄 알았으나 정작 소녀는 자신을 이 일대 지층인 흥월리층의 정령이라고 소개한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오원경은 이유를 알아차렸다.

소녀가 본래 깃들어 있어야 할 ‘흥월리층’이란 지층은 10년 전 조사를 통해 영월층군으로 대체되었고, 흥월리층이라는 이름은 사라졌기 때문. 비록 인위적인 구분이긴 하나 이름을 잃은 지층의 정령에게 돌아갈 곳은 없는 셈이다.

미안한 마음이 든 원경에게 정령은 오히려 쾌활한 표정으로 이렇게 된 이상 놀러 다녀야겠다고 말한다. “너, 안내해라!”

‘지층의 정령’에 ‘산신령’까지 등장하고, 지층과 화석 등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 튀어나오지만, 이 만화는 이러한 점들에 강세를 넣지 않는다.

등장인물 어느 누구도 악당이 아니고, 작품을 아우르는 감성은 시종일관 따스함을 잃지 않으며 누구 하나 상처 입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독자가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을 수 있는 건 시작부터 ‘월리’의 수명이 시한부라는 점을 밝혀 놓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기까지 독자를 데려가는 작가의 솜씨가 실로 쫄깃하다.

한데 막상 현실에서 그 흥월리층을 없애는 논문을 쓴 당사자가 바로 작품을 그린 작가 본인이라는 점을 알고 보면 복선을 층층이 꼬아놓은 추리물을 보는 것만큼의 충격을 접할 수 있다. 작가의 페르소나가 작중 오원경이기에 더욱 그렇다.

<달이 내린 산기슭> 단행본. 왼쪽이 원래 나온 흑백판, 오른쪽이 컬러판이다. 이후 분량은 웹에서만 볼 수 있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Tip 손장원 작가의 장편 데뷔작 <달이 내린 산기슭>은 본래 학산문화사 9회 통합공모전에 우수상으로 당선된 <산>의 장편판으로 청소년지 <찬스 플러스>에 연재된 출판만화였다.

하지만 단행본 1권 출간 이후 출판사가 연재 중단을 선언하고 2권 역시 출판 불가 통보를 했는데, 작가가 이 작품을 포털 도전 만화가, 웹툰 리그 등에 올리면서 다시금 화제에 올랐다.

이후 2013년 미디어다음 만화속세상에서 정식 연재를 시작해 ‘웹툰’으로 독자들을 만나게 됐다. 이런 우여곡절로 <달이 내린 산기슭>은 단행본 1권만 흑백판과 컬러판 두 권이 나오고 이후 분량부터는 웹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작품이 됐지만, 작가가 끝까지 독자와의 끈을 놓지 않고 완결을 지었다는 점 자체가 훌륭하다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지금도 다음 웹툰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흥월리와 흥월리층을 찾아가다
원경과 함께 작중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녀 ‘월리’는 ‘흥월리층’의 정령이다. 흥월리는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에 자리하고 있는 지역명으로, 흥월리층은 작가가 논문으로 이 지층명을 없애기 전까지 영월과 단양 사이에 걸쳐 있는 지층 가운데 하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월리의 이름을 따온 흥월리는 지금은 사라진 지층의 표식지라는 점을 빼면 뛰어난 볼거리가 많은 곳은 아니다. 다만 등장인물 이름의 출처(?)를 확인한다는 기분으로 둘러보기로 했다.

흥월리를 소개하는 안내판.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마을에 서 있는 안내판에 따르면 흥월리는 태화산 자락에 자리한 곳으로 본래 영월군 남면에 속해 있었으나 1973년 7월 행정구역 개편 당시 영월읍으로 편입된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달골, 큰골, 장승개 등 부락 이름에 우리 이름이 많이 남아 있는 게 특징이다.

흥월리층이라는 지층명을 사라지게 한 연구의 대상지이자 작중 월리와 원경의 첫 만남 장소인 단양 어상천면은 수박이 특산품인지 입구마다 수박 조형물이 있다.

역시 작중에서 위치가 정확히 묘사되지는 않으나 중요한 키워드가 둘 보인다. 하나는 519번 국도. 또 다른 하나는 삼거리. 다시 말해 어상천면을 통과하는 519번 국도변에서 갈림길이 나오는 지점이 <달이 내린 산기슭> 첫 화 주요 장면에 나오는 그곳이라는 이야기다.

이를 토대로 찾아낸 곳의 주소는 충북 단양군 어상천면 심곡리 산11-3. 심곡삼거리 근처에 자리한 노두다.

작중에서는 안전망 없이 도로변 바로 옆에 노두가 있었고 벼락이 떨어지며 길가에 낙석이 널리는 묘사가 있지만 작가의 논문이 발표된 지는 17년, 작품이 발표된 지도 벌써 5년이 지났으니 시차를 고려하면 될 듯하다.

실제로는 안전망이 설치되어 있어 안전하다. 작중 묘사에 등장하는 버스 정류장도 삼거리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단종의 무덤인 영월 장릉. 곁에는 아내의 무덤가에 있던 소나무, 산 능선 아래엔 자기에게 충의를 보이며 희생당한 신하들의 위패가 함께 하니 지금은 외롭지 않을 듯도 싶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천연기념물 제349호인 관음송. 수령은 약 600년 정도이며,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들었다는 뜻에서 볼 관(觀), 소리 음(音)을 써서 관음송으로 부른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단종의 자취를 따라가는 여정
작품과는 관계가 없지만, 영월에 서린 단종의 이야기는 문득 짧고 조용히 사라져간 만화 속 월리를 떠올리게 만든다.

할아버지 세종과 아버지 문종에게서 물려받은 영특함이 돋보였던 소년 임금의 최후는 지금 봐도 애절함과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단종이 잠든 장릉이 무덤 모양을 갖춘 건 죽은 지 59년만인 1516년(중종 11년)이고, 임금으로 복위되어 왕릉이 된 건 무려 241년 뒤인 1698년(숙종 24년)이다.

마침 저만치에서 무덤을 지키듯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의 이름이 ‘정령송’이었는데, 단종의 비 정순왕후의 무덤인 사릉에서 옮겨온 소나무라 한다.

장릉 근처의 마을 길에는 단종의 원통한 죽음을 소재로 민간에 형성됐던 ‘도깨비 설화’를 조형물로 세워놓은 공원이 있다.

한 노인이 꿈속에서 나무를 하러 갔다가 단종이 잠든 자리를 지키는 도깨비를 만나게 되고, 깜짝 놀라 도망치다 뒤를 돌아보니 도깨비들이 방망이를 치켜들고 상대편의 혹을 떼어내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노인이 사람들에게 꿈 이야기를 전한 후부터 마을 사람들은 농한기가 되면 도깨비 탈을 만들어 쓰고 혹 떼기 놀이를 즐기면서 장릉을 수호하는 도깨비들의 노고를 기렸다고 한다.

장릉 옆 보덕사길에는 단종의 시신 수습에서 복위에 이르는 과정을 무덤을 지키는 도깨비 설화와 함께 소개하는 조형물들이 서 있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애절한 내용임에도 도깨비들의 익살스러운 표정이 재미를 준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재치 있게 재현된 조형물들은 단종로에서 보덕사길로 꺾어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보리밭 1교와 그 주변에 배치되어 있다.

장릉을 둘러보고 나서 단종의 첫 유배지인 청령포로 발걸음을 옮겼다. 청령포에는 떠나온 궁을 향한 그리움으로 쌓았다는 돌탑 망향탑과 궁이 있는 방향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는 노산대가 있다. 단종은 지세가 험하고 강으로 둘러싸여 있는 이곳을 ‘육지고도(陸地孤島)’라 표현했다고 전해진다.

청령포에는 지금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단종이 한양 땅을 그리며 쌓았다는 망향탑.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단종이 최후를 맞이한 관풍헌.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단종이 최후를 맞이한 관풍헌은 일부가 공사 중이어서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단종의 시신이 강에 유기되고 후환이 두려워 아무도 거두지 못하던 걸 당시 영월 호장이던 엄흥도가 수습해 현재 장릉 자리에 몰래 묻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린 느낌이 든다.

Info 영월 장릉
운영시간 오전 9시~오후 6시(입장마감 오후 5시)
주소 강원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

Info 청령포
운영시간 오전 9시~오후 6시(입장마감 오후 5시)
주소 강원 영월군 남면 광천리 산67-1

‘한반도 지형’에서 지질 공부를 하다
단종 유적을 살펴보고 나서는 물이 굽어 흐르며 우리나라 땅 모양을 띠어 유명해진 ‘한반도 지형’을 찾았다. 도착하고 나니 이곳이 ‘강원고생대지질공원’의 일부로서 교육용 안내판 시설들이 조성돼 있음을 발견해 내심 쾌재를 불렀다.

지층이 형성되는 과정과 이곳의 주성분인 석회암 분포에 관한 내용, 그리고 한반도 지형 저편의 석회암 광산과 시멘트 공장에 관한 이야기까지 충실하게 담은 안내판이 인상적이었다.

그야말로 한반도 모양을 띤 땅.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한반도지형으로 가는 길에는 다음과 같은 안내판이 있어 간단한 지질학 지식을 접할 수 있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지층명이 그러하듯 자연이 형성한 풍경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인간이지만, 그럼에도 장대하게 펼쳐진 우리나라 모양의 땅덩이를 보니 기묘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우연한 선택이었으나 그야말로 <달이 내린 산기슭>을 주제로 한 여행을 지질학적으로 완성(?)하는 결과 아니었나 싶다.

봉래산 별마로천문대에서 바라본 운해.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Tip 영월 여행에서 놓칠 수 없는 장면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별마로천문대에서 해 뜨기 직전 볼 수 있는 운해(雲海)다. 찰나의 순간에만 만날 수 있는 절경은 그야말로 넋을 잃게 만든다. 자동차로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급경사의 연속이어서 안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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