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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10월호
[여행 레시피] 그 바다엔 슬픔, 그 바다에 다시 핀 희망꽃…고흥 섬 여행
[여행 레시피] 그 바다엔 슬픔, 그 바다에 다시 핀 희망꽃…고흥 섬 여행
  • 황소영 객원기자
  • 승인 2018.08.10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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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로 연결된 소록도와 거금도
멀리서 바라본 거금대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여행스케치=고흥] 남쪽 바다를 똑같이 나누어 가졌는데도 동쪽의 남해와 서쪽의 남해는 조금씩 다르다. 서쪽의 남해는 동쪽의 남해보다 예스럽고 투박하지만 그래서 더 정겹고 한적한 여행이 가능하다.

그 옛날 이 섬에 수용된 한센병 환자의 수는 약 6천명에 달했다. 일제 강점기엔 조선총독부 지휘 하에 남쪽 작은 섬 소록도에 ‘나요양소’, ‘자혜의원’이 세워졌고, 전국 각지의 한센인들은 이 섬으로 강제 송치됐다.

지금도 섬 전체는 국립소록도병원의 관리구역이지만, 2009년 소록대교가 정식 개통한 이래 고흥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가 되었다. 비극적인 현장을 방문하는 것 또한 여행의 일부인 ‘다크투어’의 하나이리라.

그러나 여행객과 주민이 마주할 일은 거의 없다. 주민들은 중앙리 등 7개 마을에 분산 거주중인데, 주차장에서부터 통행을 제한하며, 도보 관람만 가능하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소록도에 도착한 순간부터 떠나는 날까지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세마비'라 불리는 공적비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안내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소록도, 슬픔에서 희망으로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개방된 중앙공원은 황금편백, 후박나무, 종려나무, 치자나무 등을 비롯한 100여 종의 관상수가 울창한 숲으로, 한센병 환자들이 강제로 동원되어 피와 땀으로 조성한 곳이다.

공원으로 향하는 보행자 전용 데크로 들어서면 사진을 함께 실은 안내판이 제일 먼저 반긴다. 왼쪽엔 까까머리 아이들이, 맞은편엔 한복을 입은 어른들이 두 줄로 길게 늘어선 흑백사진이다. 감염을 우려해 한센인의 자녀를 부모와 분리해 보육했고, 한 달에 한 번 일정한 간격을 두고 떨어져, 사진에서처럼 눈으로만 서로를 볼 수 있었다.

‘탄식의 장소’라고 하여 ‘수탄장’으로 불렸는데, 아무리 달려도 만날 수 없는 평행선처럼 소록도의 피붙이들은 그렇게 같은 섬에 살면서도 눈으로 서로를 보듬을 뿐 결코 안아줄 순 없었다.

보행로는 제비선창이 있던 바다를 따라 이어진다. 등 뒤로 좀 전에 건너온 소록대교가 보이고, 바다 저쪽에 감금실로 사용되었던 붉은 벽돌건물이 보인다.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67호인 소록도 감금실. 남과 북으로 나뉜 두 건물이 회랑으로 연결된 H자형 형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데크 끝엔 처참하게 학살된 한센인 84명을 기리는 ‘애한의 추모비’가 있다. 일제 치하에 세워진 검시실은 해부실로도 불리는데, 소록도의 한센인들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사망 후엔 이곳에서 해부를 당한 후 화장됐다.

교도소 역할을 했던 감금실은 인권 탄압의 상징물로도 불린다. 이 섬에 수용된 환자들은 병원장의 판단 하에 자유를 박탈당하고 징벌을 받았으며, 출감 시엔 예외 없이 정관 절제 수술을 받았다. 모두 일제 강점기 때의 일이다.

푸른 눈의 간호사, 마리안느와 마가렛
중앙공원 초입엔 ‘세마비’로도 불리는 공적비가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파견된 세 명의 간호사 마리안느, 마가렛, 마리아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선물한 공적비다.

한국에 온 지 8년, 오스트리아로 물리치료 기관을 알아보러 갔던 마리아는 유방암 판정을 받아 투병생활을 했고,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소록도에서 40여 년간 간호사로 일했다.

그들이 속한 오스트리아 부인회는 1958년부터 수십 년간 우리나라의 교육과 의료사업 등에 무려 96억 원을 지원했다.

중앙공원 초입에서 사진을 남기는 방문객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소록도 성당으로 가는 길은 울창한 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환자의 고름을 직접 짜낼 만큼 헌신적이었던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주민들의 위생과 영양을 위해 본국에 꾸준한 후원을 요청했고, 스스로도 병원 업무와 환자 치료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들의 도움은 종교를 차별하지 않았고, 있는 자와 없는 자를 구분하지 않았다. 정작 본인들이 늙고 병들었을 땐 낯선 고향으로 조용히 떠났다. 40년 세월을 고스란히 이 섬에 바쳤지만 결코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였다.

한센인들이 노동력 착취를 당했던 벽돌공장 터엔 십자가와 성모상이 있다. 여행 온 이들이 무릎을 꿇고 그 앞에 앉아 기도를 한다.

한센병은 전염되지도, 부모를 통해 유전되지도 않는다. 설령 걸렸다 해도 완치 가능한 병이 되었다. 소록도 역시 뭍과 연결돼 누구나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섬이다.

사슴을 닮은 이 섬은 과거의 눈물을 가슴 깊이 묻고 투명한 햇살에 예쁘게 반짝인다. 일본과 대만 등지에서 가져온 나무들도 소록도의 뭉게구름과 어울려 한껏 더 키를 높였다. 소록도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는 섬이다.

거금도 해안일주 도로변의 혜빈공방카페.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주인장이 직접 만든 공예작품을 구입할 수 있으며, 창밖으로 바다가 보인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파도와 바람의 섬, 거금도
거금도는 소록도와 다리로 연결된 금산면의 섬이다. 어둡고 좁은 소록터널을 벗어나면 짙푸른 바다와 그 위에 드리운 거금대교가 나온다. 소록대교보다 두 배쯤 긴 데다 국내 최초로 차와 자전거가 함께 달릴 수 있는 복층 구조로 이루어졌다.

다리를 건너면 우측으로 거금휴게소가 나온다. 휴게소 건물보다 눈에 띄는 건 하늘을 향해 손을 뻗은 대형 조형물 <꿈을 품다>이다. 나선형 계단을 올라서면 금방 건너온 거금대교와 그 옆에 밤톨처럼 솟은 대화도와 소화도가 보인다. 이순신과 조선 수군이 왜선 50여 척을 격퇴한 일을 기념하는 ‘절이도해전승전탑’도 있다.

섬은 해안일주도로로 연결됐다. 목적지를 따로 정하지 않아도 좋다. 도로 옆 안내판을 보다 마음이 동하는 곳에 멈춰 선다. 오천몽돌해변이다.

새하얀 포말을 일으킨 파도는 멀리서부터 달려와 동그란 돌들을 껴안고 다시 먼 바다로 사라졌다. 파도가 달아날 때마다 돌들은 샤글샤글, 큰소리로 웃었다. 파도에서 멀찍이 떨어져 한참동안 그 소리를 듣는다. 바람 부는 바다엔 오직 파도 소리뿐이다.

오천몽돌해변에 새하얀 포말이 일고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익금해수욕장은 수심이 얕고 경사가 완만해 피서지로 유명하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모래해변인 익금해수욕장은 푸른 바다와 은빛 모래, 시원한 송림, 또 수심이 얕고 경사가 완만해 여름 피서지로 인기가 높다. 달빛이 백사장과 제법 어울려 야경이 아름다운 바다로도 꼽힌다. 여행 온 아이들은 뜨겁게 달궈진 모래에서 뒹굴었다.

익금의 바다는 뜨거운 태양을 머리에 이고, 이글이글 불탔다. 그 불이 꺼지면 섬은 여름을 버리고 가을로 떠날 채비를 한다. 그때쯤 달은 이런저런 추억에 잠 못 드는 이를 달래며 더욱 빛을 낼지도 모를 일이다.

해안일주도로의 나머지를 돌아 섬을 벗어난다. 거금도를 등지고, 소록도를 등지고, 길은 남쪽의 끝에서 뭍의 북쪽을 향해 힘차게 꿈틀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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