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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아산 여행] 다섯 그루 보호수가 있는 공세리 성당, 그리고 공세리 공감마을
[아산 여행] 다섯 그루 보호수가 있는 공세리 성당, 그리고 공세리 공감마을
  • 김샛별 기자
  • 승인 2018.08.23 1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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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나무들이 아름드리 성당을 둘러싸 만들어낸 서정적인 풍경
2005년 한국관광공사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성당으로 선정한 공세리성당. 사진 / 김샛별 기자

[여행스케치=아산] 공세리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한 갈래 길. 약 100m 정도만 걸으면 보이는 공세리 성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로 손꼽힌다.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다 보면 붉은 벽돌과 회벽돌로 지어진 본당이 울창한 나뭇가지 사이로 빼꼼 보일랑 말랑 하다. 고딕과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을 보호하듯 감싸고 있는 것은 오래된 나무들이다. 

공세리성당 피정의 집 입구에 있는 보호수. 사진 / 김샛별 기자
붉은색과 회색벽돌이 어우러진 고딕 양식의 공세리성당. 사진 / 김샛별 기자

나무가 그려내는 풍경, 공세리 성당
공세리 성당이 지어진 것은 1894년. 올해로 지어진지 125년이 되었다. 프랑스에서 온 에밀 드비드 신부가 직접 본당과 사제관을 설계하고 공사한 것이 공세리 성당의 시작이다.

성당 입구에는 수령 250~300년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가 오는 이들을 반긴다. 세월의 흐름만큼이나 노쇠해 지금은 치료를 받고 있는 보호수다.

성당 주변에는 역사의 증인과도 같은 고목들이 즐비하다. 길을 따라 올라가면, 흰 성모마리아상과 본당 사이에 위치한 커다란 팽나무가 경사진 곳에 잘도 버티고 섰다. 두 번째로 만나게 되는 보호수다.

20m가 넘는 팽나무는 뿌리부가 돌출되어 있어 기묘하면서도 강인한 느낌을 주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순교인들 떠올리게 한다. 팽나무를 돌아난 길엔 신유·병인박해 때 아산지역 출신 순교자 32명의 순교자 묘지가 있다.

본당 옆에 자리한 수령 약 380년 된 느티나무 보호수. 사진 / 김샛별 기자
공세리성당 뒤편으로 나있는 십자가의 길. 사진 / 김샛별 기자

본당 뒤로 이어지는 작은 숲길은 ‘십자가의 길’이다.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길로, 사형선고로 시작해 십자가를 지고 죽음을 맞아 묻히는 과정을 14처에 담았다.

길을 걷는 동안 만나는 조각상 앞에는 가만히 앉아 묵상할 수 있는 디딤돌이 길가에 나있다. 양옆으로 심어진 나무들은 울창히 자라 마치 기도하는 손처럼 나뭇잎과 가지들이 맞닿아 있다.

시원한 그늘을 걷다 보면 나뭇잎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바람은 어느 새 걷는 이의 마음까지 만져주고 간다.

공세리성당의 역사와 내포 지방의 천주교 박해 및 순교성지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박물관. 사진 / 김샛별 기자
박물관 뒤편의 쌍둥이 느티나무(좌)와 피나무(우). 사진 / 김샛별 기자
공세리성당은 이 지역에서 순교한 32분의 순교자들을 모시고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마을에도, 순교자들에게도 안녕을 기원하는 거목
아산의 순교와 공세리 성당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박물관 뒤편에는 보호수 두 그루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세 그루인데, 하나의 보호수는 같은 위치에 나란히 두 그루가 서있어서 쌍둥이 느티나무이고, 다른 하나는 피나무다.

쌍둥이 느티나무는 그늘 아래 쉬기 좋은 장소였던 듯, 넙적한 돌이 마치 의자처럼 앉기 좋게 놓여 있다.

교우들이 성당에 와 쉬면서 좌담하던 장소가 되어주었다는 이 쌍둥이 느티나무 앞 표석에는 ‘순교자 헌양탑 뒤에서 수많은 박해와 고난 속에도 신앙을 지켜냈던 순교자들의 영혼을 말없이 지켜보며 그 순교자들의 영혼을 시원한 그늘로 감싸안으며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함께하고 있는 것만 같다’고 적혀 있다.

홍승균 온양문화원 이사는 “실은 표석의 내용과는 반대”라며 “두 그루의 느티나무 아래 순교자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순교자 헌양탑을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피나무는 목재로 사용하기 좋고, 껍질·열매·잎 모두 인간에게 유용해 쓸모 많은 나무라 이 정도의 크기로 살아남기 힘들다”며 “수령 서른쯤에 공세리 성당이 들어서서 지금껏 잘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총 다섯 그루의 보호수가 있는 공세리 성당에서 가장 수령이 오래된 나무는 베네딕토관과 본당 사이에 있는 느티나무다. 약 380년된 이 나무는 120년 전에 옮겨 심어졌다. 1894년 공세리 성당의 설립 이후 본당 건립을 위해 지금의 자리로부터 약 3m 옮겨진 것.

이 느티나무는 마을의 당산나무로 숭배 받아왔던 나무다. 공세리 성당의 본당이 있는 자리는 옛날 ‘침해당’이라는 제당이 있어 배들의 무사항해와 풍년을 기원했다.

언덕에 자리잡은 성당 아래로 지금은 마을에 도로가 나고, 논밭이 있는 자리는 조선시대까지 큰 배가 드나들 만큼 바닷물이 들어찼던 곳이었다. 종교는 달라도 기도처에서 기원하는 마음은 같으리라.

조선 중기 조창이 있었던 터. 사진 / 김샛별 기자
아이들을 위해 조성된 마을 내 팽나무 도서관. 사진 / 김샛별 기자

공세 창고가 있던 공세리 마을
공세리 성당에서 마을로 내려오면 공세(貢稅)창고인 곶고지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작은 마을은 에둘러 걸어도 길이 한두개이기 때문이다.

공세리는 공세지라고도 불렸다. 충청도 서해지역의 관문이었던 이곳은 공세창이 세워졌고, 40군데가 넘는 고을로부터 쌀이 모이고, 80칸이 넘는 창고에 쌀을 보관하였기 때문.

세곡으로 모여진 이 쌀들은 800석을 실을 수 있는 조운선 15척에 나눠 실은 뒤, 한양으로 실어날랐다.

지금은 삼도해운판관비가 서있는 자리가 조선시대에 세금으로 받아들인 곡식을 저장하였던 공진창이 있던 곳이다.

본래 창고지 앞과 도로변에 돌을 쌓아 올린 석축 일대에 흩어져 있던 6개의 비를 한 데 모아두었다. 가장 오래된 것이 1649년(인조27), 최근의 것이 1708년(숙종34)의 것.

버스 정류장은 마을의 오랜 팽나무 쉼터에 자리 잡고 있고, 그 앞으로는 팽나무 도서관이 있다. 성당에서 내준 작은 부지에 마을 아이들을 위한 두 칸짜리 간이 도서관을 지은 것이다.

마을에 그려져 있는 벽화. 사진 / 김샛별 기자
팽나무 쉼터(좌)와 아산 최고의 회화나무 보호수(우). 사진 / 김샛별 기자·홍승균 온양문화원 이사

이곳을 지나 마을 수협에 붙어 있는 공세리성당의 그림, 담장 벽화에 그려진 그림들을 구경하다면 어느새 아산 최고(最古)의 보호수인 회화나무를 만날 수 있다.

이 나무는 수령이 700년이 넘은 나무지만 오래된 나무에 대한 예우랄 것 없이 덜렁 마을 어른들이 쉬었다 가는 간이 의자가 놓여 있을 뿐이다.

마을을 둘러보고 지친 걸음으로 앉았던 곳에서 고개를 들어 여기저기로 뻗어나간 나뭇가지와 그 사이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본다.

여기저기 수술 흔적이 남아 있는 회화나무가 올해도 열매를 맺고, 겨울을 버텨내 내년 봄, 또 다시 푸릇해지는 것을 상상하면 푸릇한 기운이 다시 발걸음을 내딛게 한다.

Info 공세리 성당
주소 충남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성당길 10 공세리성당
문의 041-533-8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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