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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10월호
고운 '문학'의 향기가 스미다, 대구문학로드
고운 '문학'의 향기가 스미다, 대구문학로드
  • 조아영 기자
  • 승인 2018.09.04 1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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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이야기가 피어난 향촌동 · 북성로 골목
1930년대 대구 서문로 거리 풍경. 현재 대구는 근대사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도시가 되었다. 사진제공 / 대구문학관

[여행스케치=대구] 빛바랜 책이 그리워지는 계절, 가을이 다가온다. 아끼는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듯 대구 향촌동 골목을 천천히 걷다 보면 곳곳에 남은 근대 문인(文人)들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대구 근대 문인들의 자취를 따라 해설사와 함께 걷는 프로그램 ‘대구문학로드’는 대구역 근처 향촌동 북성로 일대를 돌아보는 세 개의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이상화ㆍ이장희 생가 등 근대문학이 움트기 시작한 시절을 되짚어 보는 태동길, 6.25 전쟁 전후 문학과 문인들이 활동하던 거리를 살펴보는 교류길, 한일극장 등 1980년대까지의 흔적을 돌아보는 공감길이다.

그중 전국 각지에서 대구로 피난 온 문인들이 활발히 소통하며 작품을 발표했던 1950년대와 그들이 머문 공간을 들여다볼 수 있는 교류길을 걷고 왔다.

그 시절 대구가 아니었던들 어디서
길을 나서기 전, 대구에서 활동한 문인들과 근대문학의 흐름을 알고 싶다면 대구문학관을 먼저 둘러봐야 한다. 대구문학로드의 시작점이기도 한 대구문학관은 지하철 중앙로역에서 도보 5분 남짓 거리에 자리한다.

건물 1, 2층은 근대 향촌동의 모습을 담은 전시문화공간 향촌문화관으로 쓰이며, 문학관을 둘러보려면 3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대구문학관은 대구 근대문학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사진 / 조아영 기자

문학관 입구에 들어서면 3층 천장을 관통하는 커다란 조형물이 눈길을 잡아끈다. 바투 다가가 살펴보니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나가는 죽순 모양새를 하고 있다.

마디마다 이육사, 현진건, 이윤수 등 대구에서 활동했던 걸출한 문인의 초상과 작품이 새겨져 있어 이곳의 정체성을 짐작게 한다. 죽순 조형물 뒤편에 자리한 흰 벽은 이장희의 시 <봄은 고양이로다>, 현진건의 소설 <술 권하는 사회> 등 작품 속 구절들로 그득하게 채워져 있다.

근대 문인들의 초상과 작품이 담겨있는 '죽순' 조형물. 사진 / 조아영 기자
조형물 뒤편의 흰 벽은 이장희 <봄은 고양이로다>, 현진건 <운수 좋은 날> 등 당대 문인들의 작품 속 구절로 채워져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작가와의 동행’ 섹션에 들어서면 세트장처럼 꾸며진 다방과 문인들의 실루엣을 담은 조형물이 보인다. 그 곁에는 문학과 인생, 대구에 대해 작가들이 남긴 말을 말풍선 형태로 조성해놓았다.

‘대구가 아니었던들 각박한 피란살이를 어떻게 지냈을까?’라고 쓰인 최정희의 <회상곡> 속 애틋한 문장이 마음을 쿡 찌른다.

대구는 6.25 전쟁 당시 비교적 피해가 적었던 지역으로 수많은 이들이 고향을 떠나 피난 왔던 곳이다. 대구 출신 예술가는 물론 이곳에 모인 문인들은 함께 예술을 논하고 작품을 발표했다.

해방의 기쁨을 짧게 누린 뒤 전쟁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까지, 많은 이들을 품었던 대구는 그 시절 예술과 근대사가 고스란히 녹아든 도시가 되었다.

작가와의 동행 섹션에서는 그 시절 다방 조형물과 문인들이 남긴 말을 볼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시인들의 이야기가 담긴 말풍선 조형물. 사진 / 조아영 기자

서양화가 이인성이 열었던 대구 최초 다방 ‘아루스’ 조형물을 지나면 대구문학의 결을 살펴볼 수 있는 아카이브가 자리한다.

대구에서 활동한 문인들의 사진과 일대기가 시대별로 구성되어 있어 찬찬히 둘러보기 좋다. 또한, 윤복진의 가사에 작곡가 박태준이 음을 붙이고, 이인성의 판화로 표지를 장식한 <물새 발자욱> 동요곡집 등 보석 같은 문헌들이 함께 보존되어 있다.

서양화가 이인성이 운영했던 다방 '아루스'. 사진 / 조아영 기자
대구 문학의 흐름을 쉽게 살펴볼 수 있는 아카이브. 사진 / 조아영 기자
명예의 전당은 대구 문학을 빛낸 문인을 기리는 공간이다. 사진 / 조아영 기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 조형물이 눈길을 끄는 곳은 대구 문학을 빛낸 세 명의 문인을 기리는 ‘명예의 전당’이다. 빙허 현진건, 상화 이상화, 고월 이장희. 그들의 생애를 반추하며 작품 속 구절을 곱씹다 보면 아득히 멀어보이던 시대로 차차 다가서는 느낌이 든다.

Info 대구문학관
운영시간 오전 9시~오후 7시(11~3월은 오후 6시 까지)
입장료 무료
주소 대구 중구 중앙대로 449 3, 4층

Info 대구문학로드
투어 10일 전까지 대구문학관 홈페이지를 통해 참가 신청을 하면 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길을 걸을 수 있다. 자율 코스인 태동길을 제외하고 교류길과 공감길은 대구문학관에서 출발하며, 각 1시간 30분에서 2시간가량 소요된다. 정기투어(매주 주말 오전 10시)는 최소 5명 이상 신청 시 진행하며 10명 이상의 단체 및 기관은 수시로 해설을 진행한다.

다방이 즐비했던 거리, ‘살롱’이 되다
문학관을 둘러보고 나서 근대 문인들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는 교류길을 걷기 위해 북성로 일대로 발걸음을 넓혀본다.

과거 '꽃자리다방'에서는 시인 구상의 <초토의 시>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사진 / 조아영 기자
꽃자리다방에 얽힌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꽃자리, 백조, 모나미…. 곳곳에 다양한 상호를 단 다방이 들어섰던 골목. 문인들은 이곳에 모여 찻잔을 사이에 둔 채 문학과 시대에 대한 뜨거운 이야기를 나눴고, 책이 출판되면 기념회를 열기도 했다.

그 시절 다방은 단순히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아닌, 예술가들의 모임 장소이자 토론의 장이었던 ‘살롱’문화가 스며있었다.

현재 다방이 있던 자리는 대부분 다른 건물로 쓰이거나 터만 남아있어 아쉬움을 자아낸다. 하지만 단 한 곳, 꽃자리다방만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구상의 시집 <초토의 시> 출판기념회가 열렸던 이 다방은 카페로 변모해 명맥을 이어왔다. 현재 카페는 운영을 중단한 상태지만,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만으로 반갑고 기쁘게 느껴진다.

모나미다방 터 곁에는 독립서점 '더폴락'이 자리한다. 사진 / 조아영 기자
1951년 모나미다방에서 열린 이효상의 <바다> 출판기념회 현장. 당시 다방은 문인들의 모임 장소이자 토론의 장이었다. 사진제공 / 대구문학관

이효상의 <바다>, 신동집의 <제2의 서시> 출판기념회가 열렸던 모나미다방 터 곁에서는 새로운 문학의 흐름을 찾아볼 수 있다. 대구의 첫 독립서점, ‘더폴락’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폴락은 출판사를 통해 발간된 원고가 아닌, 개인 혹은 단체가 자체적으로 집필한 독립출판물을 만나볼 수 있는 서점이다. 개성 있는 책과 더불어 협업 중인 소셜 마켓의 다양한 물품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교류길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장소는 거리의 끝자락, 서문로교회 선교교육관이 자리한 곳이다. 남영선 대구광역시 문화관광해설사는 “이곳에는 시인 이윤수가 운영하던 시계방(명금당)이 있었다”며 “해방 이후 최초의 문학 동인지 <죽순>이 발간된 곳”이라 말한다.

해방 이후 최초의 문학 동인지 <죽순> 창간호 표지. 사진제공 / 대구문학관

<죽순>은 1946년 창간호를 시작으로 총 12권이 발간되었으며, 박목월, 이효상 등 60여 명의 문인이 작품을 실었다.

문인들의 행적을 따라 이곳저곳 누비고 나면 평범해 보였던 거리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시인과 소설가,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북적였던 향촌동 북성로. 골목과 터는 여전히 문학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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