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아산 여행] 스스로 치유하며,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봉곡사 천년의 숲길
[아산 여행] 스스로 치유하며,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봉곡사 천년의 숲길
  • 조용식 기자
  • 승인 2018.09.05 19: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사의 아픔을 품은 숲길을 따라 걷다
하늘을 향해 뻗은 소나무들이 반겨주는 봉곡사 천년의 숲길. 사진 / 조용식 기자

[여행스케치=아산] 깊게 팬 상처의 흔적은 80여 년 전의 일이다. 상처의 깊이를 들여다보니 당시의 고통이 상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치유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아산 봉곡사 천년의 숲길.

가을바람과 적당히 가리어진 나무 그늘, 그리고 청량감이 느껴지는 그 길을 걸으며 아픔의 역사를 가슴에 새겨본다.

새벽 6시, 봉곡사 주차장에 도착한 후 바로 보이는 봉곡사 이정표를 지나 천년의 숲길로 들어선다. 황토색으로 칠해진 아스팔트를 따라 하늘을 향해 쭉 뻗어 오른 소나무들이 청량한 공기를 전해주며 반긴다. 일출의 기운을 내려 받는 소나무들은 더욱 선명하게 붉은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천년의 숲길 옆으로 간절한 소망을 빌며 쌓은 두 개의 돌탑과 여러 개의 작은 탑들이 눈에 들어온다. 자유롭게 뻗은 가지들 사이로 붉은 속살을 보이는 적송 군락이 주는 자연의 경이로움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아쉽게도 시선은 소나무의 밑동으로 떨어지게 된다.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상처… 80여 년이 지나도 그대로
깊게 팬 V자 형태의 상처가 선명하게 보인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해상봉쇄 작전으로 휘발유와 항공유의 조달이 어렵게 된 일제가 군사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송진을 채취한 흔적이다.

일제강점기 시대라 대부분의 소나무를 무분별하게 벌목하여 빼앗아갔지만, 봉곡사의 소나무들은 소유주가 사찰이었기 때문에 벌목할 수 없었다. 그래서 70여 그루의 소나무 밑동에 상처를 내어 송진을 채취해 간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상처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적송. 사진 / 조용식 기자
봉곡사 가는 길에 만나는 돌탑. 사진 / 조용식 기자
갈림길을 알리는 이정표. 사진 / 조용식 기자

상처가 난 일부 소나무들은 시멘트로 메운 흔적과 여전히 송진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 80여 년이 지나도록 그 깊은 상처를 그대로 드러내는 적송들을 볼 때마다 아픔의 역사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적송 군락이 활기찬 모습으로 펼쳐지는 구간을 지나니 어린 동자승이 길을 걷는 사진과 함께 포토존 구역임을 알리는 표지판을 만난다.

길 중앙에는 발자국 표시까지 동판으로 새겨놓아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갈 수 있게 해 두었다. 봉곡사 방향으로 계속 걸어가니 삼거리와 함께 이정표가 보인다. 봉수산임도, 봉곡사, 오돌개 마을로 갈라지는 갈림길이다.

깊은 골짜기에 자리해 그윽하고 오묘한 정취가 있는 봉곡사
가운데 길을 따라 봉곡사로 향한다. 오른쪽으로는 봉수산 정상, 오형재 고개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봉곡사는 다산 정약용(1762~1836)이 10여 일 기거하며 이익의 사상과 문집을 정리하는 강연회가 열렸던 장소다.

다산 정약용이 쓴 <서암강학기(西巖講學記)>를 보면 당시 봉곡사 일대의 풍경을 알 수 있다.

‘봉곡사는 온양의 서쪽(당시의 행정구역상)에 있다. 그 남쪽에는 광덕산(廣德山)이요, 그 서쪽에는 천방산(千方山)이다. 산이 높은 데다 첩첩이 쌓인 봉우리에 우거진 숲, 깊은 골짜기가 그윽하고 오묘하여 구경할 만하였다. 새벽마다 일어나 여러 벗들과 함께 개울물로 나가서 얼음을 두들겨 물을 움켜쥐어 얼굴을 씻고 양치질을 하였다. 저녁이 되면 여러 벗과 함께 산등성이로 올라가 산책하며 주변을 조망하였다. 안개와 구름이 뒤엉키면 산 기운이 더욱 아름다웠다.’ - <신정일의 신 택리지>에서 발췌

봉수산 임도. 사진 / 조용식 기자
아담한 분위기의 봉곡사. 사진 / 조용식 기자
봉곡사는 향각전과 대웅전, 물건을 보관하는 고방이 그대로 남아 있다. 사진은 대웅전 전경. 사진 / 조용식 기자

봉곡사는 신라 진성여왕 원년(887)에 도선국사가 지은 절로 산 위에 있는 배틀바위의 전설에 따라 돌 석(石) 자를 붙여 ‘석암사’로 불리다 조선 정조 18년(1794)에 산의 봉이 양쪽 날개를 펼치고 나는 것과 같다 하여 ‘봉곡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대웅전과 고방이 있는 아담한 분위기의 봉곡사 샘터에서 물 한 모금을 축이고 다시 봉수산임도로 향한다.

길을 걷는 나그네의 말동무가 되어주는 나비들
널찍한 봉수산임도를 따라 초입에 보이는 정자를 지나니, 길 양옆에 있던 나비들이 날아오른다. 임도를 걷는 내내 날개짓을 하며 날아오르는 나비들을 만나니 마치 말동무를 만난 기분이다.

봉수산 정상과 임도(각흘고개)로 빠지는 갈림길에서 임도를 택했다. 가슴 속까지 시원함을 느끼는 공기를 마시며 구불구불 펼쳐진 임도를 따라 하염없이 길을 걷는다.

다시 봉수산 등산로 갈림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다 보면 유곡리 마을에 이르게 되는데, 두 개의 보호수를 마주하게 된다.

하나는 둘레가 3.5m인 소나무로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어있으며, 또 다른 소나무는 전북 고창 선운사의 장사송처럼 8~10개의 가지가 사방으로 펼쳐져 큰 우산 모양을 한 것이 특이하다.

두 소나무 모두 수령이 450년이라 적혀있으나 지정한 연도가 1989년이므로 이제는 480년을 지켜온 보호수가 된다.

480년 수령의 소나무 보호수. 사진 / 조용식 기자
마을길 옆의 밤나무. 사진 / 조용식 기자
느릅실 마을의 풍경. 사진 / 조용식 기자

임도에서 유곡리 마을길을 따라 내려가는 풍경은 아스팔트를 걷는 것만 뺀다면 온전한 시골의 풍경을 담아가기 좋은 곳이다. 길가에 떨어진 밤송이와 실개천을 살리기 위한 마을 주민들의 노력이 보이는 플래카드, 그리고 무르익어가는 벼 이삭의 풍경이 눈에 선하게 들어온다.

한적한 시골 마을의 풍경을 뒤로하고 느릅실 마을(유곡3리) 입구에 이르면 정류장에서 19번 버스를 타고 천년의 숲길과 봉수산임도를 벗어나게 된다.

소나무 숲길 사이로 해가 지는 풍경. 사진 / 조용식 기자

Info 봉곡사
봉곡사는 향각전과 대웅전,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인 고방이 남아 있다. 주차장에서 사찰에 이르는 700m의 울창한 소나무 숲길인 ‘천년의 숲길’을 따라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소 충남 아산시 송악면 도송로632번길 138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