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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민족의 성산 백두산 천지 가는 길
민족의 성산 백두산 천지 가는 길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이사장
  • 승인 2018.09.21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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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중 20일만 허락되는 백두산 천지
맑게 개인 백두산 천지.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이사장

[여행스케치=서울] 2018년 9월 20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민족의 성산 백두산 정상인 장군봉에 올라 맞잡은 두 손을 들어 올리는 장면을 보며 가슴 한편으로 뜨거움과 뭉클함이 느껴졌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2003년 9월 30일 ‘개천절 민족공동행사를 위한 방북단’의 일원으로 중국이 아닌 북한 쪽에서 백두산에 올랐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수유리의 통일교육원에서 통일교육을 받아야만 방북이 허용됐다.

“본인은 개천절 민족공동행사를 위한 방북(2003. 9.30~10.4)시 방북 승인 조건 및 다음 사항을 성실히 준수할 것을 확약합니다. 승인 받는 방북목적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며,…… 이에 대한 책임을 본인이 감수한다.”

평양 시내를 거니는 평양 시민들의 모습.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이사장
평양 순안공항의 전경.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이사장

오전 8시 45분, 인천공항에서 고려항공에 올라탄 뒤 빨간 옷을 입고 상냥한 미소로 “어서 오십시요. 반갑습니다”라는 북측 스튜어디스의 인사를 받으며 기내에 들어섰다.

그제야 북측으로 가는 직항노선인 고려항공 1호기에 탔다는 것이 실감났다. “나에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고향의 봄이 기내에 울려퍼졌고, 그 노래 소리에 마음은 설레기 시작했다. 얼마나 오랜 세월 이 날을 기다렸던가.

대동강, 청천강 뿐만이 아니라 압록강, 두만강을 발원지에서 하구까지 걷고서 해남에서 서울까지, 서울에서 의주까지 서울에서 백두산까지, 서울에서 철원 지나 금강산을 돌아다보고 나진까지 걸어 가는 것이 나의 오랜 바람이었다.

지금은 걷는 대신 고려항공 비행기에 몸을 실었지만, 평양, 백두산, 묘향산과 구월산을 거쳐 돌아올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

“담배를 피우지 마시오, 박 띠(안전띠)를 매시오”라고 쓰여 진 문구를 보며 나는 금세부터 달라진 풍경을 실감했다. 그뿐 아니다. 순안공항의 트랩에 서서 공항 청사 중앙에 걸린 젊은 시절의 김일성의 초상화가 이곳이 북녘 땅이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평양시내로 가면서 안내원이 내게 물었다. “남측에선 지금도 북측사람들이 머리에 두개 뿔이 달렸다고 생각합니까?” 나는 정색을 하고 아니라고 답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평양 대동강의 모습.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이사장
백두산으로 가는 길.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이사장
삼지연으로 가는 길의 모습.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이사장

순안공항에서 삼지연으로
10월 2일. 평양 답사를 마치고, 백두산으로 가는 날이었다. 날은 어둡고 어둠이 가시지 않은 호텔 앞 광장에 밤사이 내린 비가 후줄근했다. 백두산 오르는 길이 만만하지 않을 것 같았다.

드디어 버스는 출발하였고, 대동강을 건너 평양 시내를 거쳐 비 내린 땅이 평평하다는 뜻을 지닌 평양의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내리는 비속에 떠나는 이 여정의 끝 지점 백두산 천지 부근에도 비가 내릴까? 내가 설레어 백두산을 향해 온 몸을 다해가는 것처럼 백두산이나 북녘의 산천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지금 백두산으로 가는 길 앞에 서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으랴. 이렇듯 가슴 설레며 기다리는 모든 것들이 이처럼 슬프고 외롭고 기쁘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드디어 비행기는 힘차게 약진을 시작하고 다시 하늘은 구름의 바다다. 햇살 아래 비행기가 떠 있고 비행기 아래 솜이불처럼 구름들이 가려있으며, 가끔씩 벗어난 구름 사이로 산천이 빼꼼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산과 산이 겹겹이 포개진 그 사이로 실핏줄 같은 강이 흐르고 벌써 북녘의 산은 노란 단풍의 일색이다. 삼수갑산을 지나 삼지연 부근에 접어들며 땅은 드넓다.

삼지연 제2연못은 물이 맑아 안이 투명히 보일 정도다.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이사장
천리 천평, 개마고원의 겨울 모습. 사진제공 / 권태균 사진작가.
백두산 개마고원의 모습.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이사장

노오란 이깔나무와 사스레나무, 가문비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는 삼지연 공항에 내렸다. 삼지연 공항은 활주로 하나의 작은 공항으로, 흡사 열차가 머무는 역사를 연상시킨다.

한 시간의 차이를 두고 평양에서 삼지연으로 도착했을 뿐인데, 가을에서 겨울로 바뀌어 있었다. 추위를 느낀 사람들은 벗어둔 윗도리를 걸치고 중무장을 했다.

해발 1500m, 노오란 낙엽송, 아니 이깔나무 숲 사이를 헤치고 43km쯤을 가면 그리운 천지에 닿을 것이다.

명색이 포장도로인데도 낡을 대로 낡아 버스는 털털거리며 달렸다. ‘산불조심’ 안내판 사이로 백두산 30km 지점을 지날 쯤, 다행스럽게 날이 맑아 왔다.

이깔나무, 사스레나무, 가문비나무 군락이 끝나면서 나무 한그루 없는 고원이 펼쳐진다. 이름하여 천리 천평, 즉 개마고원이다.

단군이 처음 나라를 열었다는 천리 천평엔 바람이 드세다. 나무 한그루 자랄 수 없는 땅에 화산폭발 당시 내렸다는 거므티티한 자갈들이 쌓여있고, 백두산 13km 푯말을 보며 백두다리를 건넌다.

홍안의 인민군이 얼굴이 파래진 채 지키고 서 있는 백두산 비를 지나 백두역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천지까지 2km 거리를 삭도로 이동한다.

백두역에서 삭도를 타고 천지까지 이동한다. 사진은 백두역의 모습.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이사장
구름이 걷힌 맑은 천지를 볼수 있는 날은 1년 중 손꼽을 정도다.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이사장

백두역 안내원인 김승철(운흥군 출신)씨와 사진을 찍으며 ‘언제까지 천지를 볼 수 있느냐’고 묻자 이곳 백두역은 10월 10일까지만 운행한다고 말한다.

‘어쩌면 천지를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실 날 같은 희망을 안고 올라간 천지의 바람은 매섭고 천지라는 표지석만 보일 뿐 그 푸른 천지의 위용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곳 백두산 천지는 백두산 천지는 하루에도 열 두 번씩 변덕을 부려 알 수가 없읍네다. 백두산은 특히 해돋이가 좋은데 심장을 달구고 손과 발을 얼궈 봐야 그 진면목을 느낄 수가 있습네다.”

천지는 1년 중 20일도 채 개지 않기로 유명하다.

“백두산의 천지는 지금으로부터 약 백만 년 전에 화산이 폭발한 사화산이 아닌 휴화산으로 백두온천의 물이 82도에서 74도를 기록합니다. 백두산 천지에는 원래 물고기가 없었는데, 84년에 위대한 김일성 원수님께서 산천어를 넣은 뒤로 몇 년 전에는 길이 84cm에 무게가 7㎏가 나가는 산천어를 잡았습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화산호수인 천지에 산천어가 사는 것에는 숨은 이야기가 있다. 북한 어류학자들이 참붕어, 버들치 등의 어류를 인공적으로 넣었으나 천지에 잘 적응해가며 자라는 물고기는 산천어인 것이다.

백두산 천지찾은 남북정상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내외의 모습. 사진제공 / 청와대

백두산 밀영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우리민족의 성산인 백두산에는 오랜 세월 수많은 사건이 일어났었다. 특히 외교 문제는 현재까지 이어진다.

백두산 영유권을 두고 한․중 대립은 복잡하다. 1948년 정권 수립 이후 북한은 중국과 수차례에 걸쳐 국경조약을 맺었다.

1962년 '조중변계조약'을 맺었고, 이후 2년에 걸친 국경 조사를 거쳐 1964년 베이징에서 양국이 '조중변계의정서'를 맺었고, 북한과 중국은 백두산과 천지의 소유권을 나눴다.

백두산의 남동부는 북한에, 북서부는 중국에 귀속됐고, 천지의 54.5%는 북한의, 45.5%는 중국의 관할이 됐다.

총 16개의 백두산 봉우리 중 9개가 북한령이다. 언제 이 아홉 개의 봉우리를 두 발로 걸어볼 수 있을까. 그땐 맑은 천지를 볼 수 있을 것인가.

창도역 안내원인 강복희씨와 사진을 찍고 아쉬운 마음으로 삭도를 다시 탄다. 백두산 아래 내려가는 길은 김정일의 출생지라는 백두산 밀영 쪽이다.

사리문 폭포에서 압록강의 한 지류는 시작되고 그 아래 평평하게 펼쳐진 사스레나무 숲 부근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었다

그 때로부터 15년이 지난 뒤 문재인 대통령과 남측 사람들이 백두산을 올라서 푸른 천지를 보는 모습을 보니, 감개가 무량하다.

나는 언제쯤 다시 천지를 만날 수 있을 것인가? 눈이 부시고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삼지연 부근에서 일 년 열두 달 사계절을 다 보며 살고자했던 그 소원을 이룰 수 있을까? 곧 그 길이 열릴 것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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