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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제주] 거상 혹은 의인이라 불린 여인, 김만덕의 자취를 따라 걷다
[제주] 거상 혹은 의인이라 불린 여인, 김만덕의 자취를 따라 걷다
  • 조아영 기자
  • 승인 2018.10.02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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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관덕정에서 김만덕기념관을 거쳐 모충사까지
김만덕은 조선 후기 막대한 부를 쌓았고, 그 부로 굶주린 이들을 도운 인물이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여행스케치=제주] 조선 후기 제주도에 ‘거상(巨商)’ 또는 ‘의인(義人)’이라 불리던 이가 있었다. 비록 섬을 벗어날 수 없는 처지였지만, 넓은 혜안으로 부와 명예를 쌓았고 어려운 이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베푼 사람. 김만덕(1739~1812)의 자취를 따라 제주 도심을 누비고 왔다.

제주 여인 김만덕은 상인들의 물건을 위탁받아 파는 ‘객주’를 운영하며 제주도 물품과 육지 물품을 교역하는 유통업을 통해 부를 이룬 인물이다. 잇따른 흉년으로 제주에 기근이 지속될 때 자신의 전 재산을 굶주린 백성에게 쾌척했으며, 그로 인해 제 이름 석 자를 역사에 아로새겼다.

‘만덕 할망’을 만나러 가는 길
김만덕의 생애를 따라가는 여정은 관덕정에서 첫걸음을 뗀다. 으레 서울에서 시민들이 모이는 장소로 광화문 광장을 꼽는 것처럼 관덕정은 제주 사람들에게 화합의 장소 역할을 했고, 광장에는 큰 시장이 서기도 했다.

몇 해간 지속된 흉년으로 많은 백성이 굶어 죽어가던 때, 이곳에 가마솥을 걸어 죽을 쑤고, 그들을 먹여 살린 인물이 바로 김만덕이다. 

때는 정조 18년, 1794년의 흉년을 일컫는 ‘갑인년 흉년’은 극심한 흉년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될 정도로 참혹했다. 강한 바람에 기와가 날아가고, 돌이 제멋대로 굴러다니며 쑥대밭이 된 제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한 쌀 5000석을 실은 배 12척 중 5척이 난파되는 사고가 일어난다.

김만덕기념관 전시실에는 참혹했던 흉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옛 제주 백성들이 모이는 장소였던 관덕정. 사진 / 조아영 기자
관덕정(좌)과 제주목 관아 입구(우). 사진 / 조아영 기자

<정조실록>에는 ‘이즈음 제주 백성 3분의 1이 굶어 죽었다’는 기록이 실려 있다. 이때 김만덕은 쌀 500여 석을 사들여 수천 명의 백성을 살린다. 

황진이 제주특별자치도 문화관광해설사는 “만덕이 없었다면 후대 제주 사람인 내가 없었을 수도 있다”며 “‘여자로 나느니 쉐로 나주(여자로 태어나느니, 소로 태어나는 것이 낫다)’라는 말까지 떠돌던 시대에 자신의 힘으로 부를 쌓아 백성을 살렸고, 사대부들은 물론 왕에게 칭송을 받은 점이 놀라울 따름”이라고 말한다. 

김만덕이 관기(궁중 또는 관청에 속하여 가무ㆍ기악 등을 하던 기생)의 수양딸로 지내며 생활했던 제주목 관아는 관덕정 북쪽에 자리한다. 제주목 관아는 탐라국 이래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제주의 정치ㆍ행정은 물론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온 곳이다.

현재 관덕정과 제주목 관아에서 김만덕의 자취를 살펴보기는 힘들지만, 제주의 옛 얼굴을 간직한 이곳을 천천히 산책하며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끽해보는 것도 좋다. 

Info 관덕정
주소
제주 제주시 관덕로 19

Info 제주목 관아
입장료 성인 1500원, 청소년ㆍ군인 800원, 어린이 400원
운영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주소 제주 제주시 관덕로7길 13

평생 여인이 아닌 상인으로 살아왔수다
김만덕의 생애를 조금 더 찬찬히 들여다보기 위해 관덕정에서 도보 15분 남짓 거리에 자리한 김만덕기념관으로 향한다. 김만덕의 삶 이야기를 담은 3층 상설전시실에서는 ‘나눔’을 비롯해 그의 삶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도전’이다. 

양인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어 고아가 됐던 만덕. 이를 가엾게 여긴 관기가 그를 수양딸로 삼고, 기적(妓籍)에 이름을 올리며 기생 신분이 되었다. 만덕은 한때 제주에서 가장 유명한 기생으로 이름을 떨쳤지만, 양인 신분을 되찾기 위해 관가에 탄원을 넣어 신분 회복에 성공한다. 

김만덕의 생애를 살펴보고 그의 나눔 · 도전정신을 기릴 수 있는 김만덕기념관. 사진 / 조아영 기자
임금 정조와 영의정 채제공 등이 남긴 김만덕에 대한 기록을 모은 공간. 사진 / 조아영 기자
김만덕기념관 3층 전시실에서는 김만덕이 교역했던 물품과 객주에 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그 후에는 곧바로 제주와 육지를 잇는 통로였던 건입 포구에 객주를 열어 유통업을 시작한다. 말총, 미역, 전복, 귤 등 제주의 특산품과 제주에서 귀한 육지의 물건을 교역하는 식이었다.

많은 시세차익을 남기며 관가에도 물품을 공급하게 되었고, 자신의 배까지 소유하면서 제주 최고의 거상이자 여성 CEO로 자리매김했다.

전시실 중앙에 자리한 종합영상관에 들어서면 만덕의 일대기를 그린 애니메이션 영상이 재생된다. 그의 도전과 나눔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주요 대사 역시 생생한 제주어로 구성되어 더욱 흥미롭다.

종합영상관에서는 만덕의 일대기를 담은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기념관 창문에는 '만덕 할망'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김현주 김만덕기념관 학예사는 “김만덕은 전 재산으로 많은 이들을 도와 ‘나눔’을 상징하는 인물이면서도 남성 중심 사회였던 조선시대에 여성으로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도전적인 사람”이라고 말한다.

탐라에서 자라 금강산을 유람한 여인
추자도를 발판삼아 해남, 강진, 공주, 천안을 지나 한양을 거쳐 금강산에 이르기까지. 만덕의 또 다른 도전은 제주 도민은 육지에 갈 수 없다는 법(출륙금지령)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150년 가까이 발이 묶여있던 제주 여인들에게 희망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정조는 김만덕의 업적을 치하하기 위해 ‘의녀반수’라는 벼슬을 내리고, 소원을 묻는다. 자신은 결혼하지 않아 자식도 없고, 바랄 것이 없다며 마다하던 만덕은 재차 묻는 임금에게 금강산 구경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정조는 흔쾌히 그 소원을 들어주며 모든 관공서가 만덕에게 편의를 봐주도록 지시한다. 

금강산 유람에 얽힌 이야기가 담겨 있는 전시실 말미. 사진 / 조아영 기자

전시실 말미 부분에는 김만덕의 금강산 유람에 얽힌 이야기가 마련되어 있다. 한반도 모양 패널 위로는 그의 여정이 촘촘하게 그려져 있어 거침없이 길을 나서는 그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제주에서 자라 한라산 백록담 물을 마시고, 금강산까지 구경한 만덕을 두고 영의정 채제공은 “온 천하의 사내들 중에서 이런 복을 누린 자가 있을까”라는 말을 남긴다.

한편, 기념관 근처에는 김만덕이 운영하던 객주를 재현한 김만덕객주가 자리한다. 8동의 초가 중 왼쪽 4동은 제주도 대형 민가 형식을 따라 구들방, 부엌, 창고 등으로 구성된 관람동, 오른편 4동은 식사를 할 수 있는 주막동으로 나뉘어 있다.

김만덕기념관 근처에 자리한 김만덕객주. 사진 / 조아영 기자
관람동에서는 옛 제주 사람들의 생활 양식을 살펴볼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객주 내에 자리한 김만덕 표준영정. 사진 / 조아영 기자

관람동에는 김만덕 영정을 비롯해 옛 제주 사람들이 식사를 하던 챗방, 부엌살림을 하던 정지간 등이 실감 나게 재현되어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주막동에서는 해물파전, 몸국, 막걸리 등을 판매하고 있어 식사하기 좋지만, 과하게 음주를 즐기거나 술에 취해 고성방가와 욕설을 하는 이들이 많아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한다. 

옛 ‘주막’ 분위기를 즐기는 곳이 아닌 엄연히 김만덕의 자취를 담고 있는 ‘객주’라는 역사적 공간에서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는 것이 의아할 정도다. 무작정 막걸리와 분위기에 취한 이들로 북적인다면 ‘김만덕객주’는 앞으로 어떤 얼굴로 기억될지 아쉬운 마음이 든다.

객주를 둘러보고 나서 약 1.7km가량 떨어진 사라봉 기슭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이곳에는 의병과 항일 투쟁가, 그리고 김만덕의 넋을 기리는 사당인 모충사가 있다. 사당에 들어서면 나무와 꽃이 그득한 풍경이 펼쳐지고, 청량한 풀내음이 코끝을 간질인다. 

사라봉 기슭 모충사에 자리한 김만덕 묘탑. 사진 / 조아영 기자
김만덕 묘비는 소박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중앙에 자리한 의병항쟁 기념탑을 지나 오른쪽 길을 파고들면 높이가 20m에 달하는 김만덕 묘탑이 보인다. 꼿꼿하게 선 새하얀 묘탑은 압도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면서도 만덕과 닮아 보인다.

묘탑 맞은편, 제주 도심을 굽어보는 자리에는 김만덕의 묘비와 ‘은광연세(恩光衍世, 은혜의 빛이 온 세상에 퍼진다)’라 쓰인 간판석이 소박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Info 김만덕기념관
운영시간
오전 9시~오후 6시(월요일ㆍ신정ㆍ명절 휴무)
관람료 무료
주소 제주 제주시 산지로 7

Info 김만덕객주
운영시간
오전 11시~오후 10시(첫째ㆍ셋째 주 월요일 휴무)
주소 제주 제주시 임향로 68

Info 모충사
주소 제주 제주시 건입동 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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