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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영화 속 여행지] 영화 '변산' 속으로 떠난 전북 ‘부안’ 여행
[영화 속 여행지] 영화 '변산' 속으로 떠난 전북 ‘부안’ 여행
  • 송인경 여행작가
  • 승인 2018.10.22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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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문득 떠나고 싶을 때가 있지?”
붉고 화려한 꽃이 하늘에 피어나듯 밤이 찾아온 채석강의 풍경은 황홀하다. 사진 / 송인경 여행작가

[여행스케치=부안] ‘너, 문득 떠나고 싶을 때가 있지?’로 시작하는 안도현 시인의 ‘모항으로 가는 길’. 모항이 자리하고 있는 변산은 동쪽을 제외한 삼면이 바다와 맞닿아 있는 반도이다. 그러하다 보니 흔히 바다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변산은 바다와 산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곳이다.

지난 7월 개봉한 영화 <변산> 역시 변산을 주 무대로 삼는 작품이다. 발렛 파킹,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유명 래퍼를 꿈꾸며 살아가던 주인공 학수(박정민 분). 그런 그에게 어느 날 한통의 전화가 걸려오고, 건달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고향인 전북 부안군 변산으로 향한다.

기존 미디어 속 모습과 다른 점이 있다면 따뜻한 감성을 더함으로써 변산이라는 지역을 새롭게 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요즘. 그 따뜻함이 그리워 변산으로 향했다.

영화 <변산> 속으로 떠나다
변산행이 처음인 나의 첫 여정은 부안 시내. 도시의 편의성과 시골의 정겨움이 공존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 학수와 친구들이 거닐었던 장소이기도 한 이곳에서 영화의 흔적 찾기에 나섰다.

부안 시내에는 특별한 이정표가 있다. 거리 곳곳에 설치된 계류시설(흐르는 시냇물)이다. 졸졸 흐르는 물길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새 동네 이곳저곳을 살펴볼 수 있다.

부안 시내 젊음의 거리. 사진 / 송인경 여행작가

영화 속 학수와 선미(김고은 분)가 거닐었던 ‘물의 거리’를 비롯해 ‘젊음의 거리’, ‘에너지테마거리’ 모두 물길이 놓여 있다. 이 물길을 따라 걷다 보면 학수의 첫사랑이자, 선미가 질투하는 대상이었던 동창 미경(신현빈 분)의 피아노학원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영화 속 모습 그대로의 가게 또한 영화 <변산>의 촬영지였다고 기재되어 있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예상 밖의 상황이 펼쳐진다. 익숙한 듯 낯선 모습.

기분 좋아지는 색감의 실내는 피아노 선율처럼 기분 좋은 울림을 주기에 충분하지만 영화 속 피아노가 놓여있던 자리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식탁이 놓여 있다. 어찌된 일인가 물었더니 식당이었던 이곳에서 피아노학원 장면을 촬영 한 것이란다.

영화 속 모습 그대로 자리한 가게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사진 / 송인경 여행작가
영화 <변산> 촬영지였던 식당 '소우' 외경. 사진 / 송인경 여행작가
식당 '소우' 실내. 사진 / 송인경 여행작가

테이블을 모두 뺀 후 피아노를 들여놓고, 인테리어는 원래 상태 그대로 촬영했다는 것이 이곳 주인의 자랑 아닌 자랑이었다. 그만큼 아기자기한 인테리어가 보는 이의 기분까지 좋게 만들어주는 곳이다.

이곳의 또 다른 비밀은 이 가게 자체에 있다. 시아버지 때부터 시작해 현재까지도 주인이 살고 있다는 이 집은 올해로 90년 정도 된 곳으로, 한쪽은 식당으로 한쪽은 여전히 주인이 머물고 있는 집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본 가정 분위기가 풍겨오는 독특한 모습에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의 사진 찍기 명소가 된지 오래다. 주인 역시 개인적인 공간이지만 기분 좋게 여행객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영화 촬영으로 인해 바뀐 유일한 인테리어라는 장식장. 현재는 이준익 감독을 비롯한 출연 배우들의 사인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사진 / 송인경 여행작가
식당 창문을 통해 보이는 바깥 풍경. 사진 / 송인경 여행작가
식당 '소우' 음식. 사진 / 송인경 여행작가

식당이니 만큼 음식을 맛보지 않고 그냥 갈 순 없는 법.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은 잡지에서 봤음직한 예쁜 비주얼로 눈길을 끌었다. 흔히 음식은 눈으로 한번, 입으로 또 한 번 먹는 것이라 했던가. 그 모든 맛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음식이었다.

Info 소우
주소 전북 부안군 부안읍 군청길 7-4

걷기 좋은 전나무 숲길과 내소사
부안엔 이 가을을 만끽하며 걷기에 좋은 곳이 있다. 여행객을 반기며 인사하듯 양옆으로 늘어선 전나무숲길. 한국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길에 단골로 오르내리는 곳이다. 가을 날씨를 만끽하며 걷다보면 그 끝엔 천년고찰 내소사가 자리하고 있다.

전나무 숲길을 걷다보면 끝자락에 자리한 내소사를 만날 수 있다. 사진 / 송인경 여행작가
부안 내소사 전경. 사진 / 송인경 여행작가

첫 번째 문인 일주문을 시작으로 부처의 나라로 나아가기 전 몸과 마음에 남은 작은 악귀마저 없애주는 역할을 한다는 천왕문, 속세와 구별되는 부처의 세계에 들어선다는 것을 의미하는 봉래루. 이렇게 삼문을 지나면 비로소 대웅보전을 만날 수 있다.

대웅보전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사찰건축물이자 못을 쓰지 않고 나무토막을 깎아 끼워 맞춘 건물로도 유명하다.

내소사엔 사찰의 평온한 분위기를 만끽하기에 좋은 장소가 있다. 대웅보전 바로 앞에 위치한 봉래루. 삼문 중 하나이자 누각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현재는 내소사를 찾은 이들이 사찰을 둘러본 후 잠시 쉬어가는 곳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봉래루는 사찰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기기에 좋은 장소다. 사진 / 송인경 여행작가
내소사 입구에 자리한 연못. 사진 / 송인경 여행작가

사람들의 발길을 멈춰 세우는 내소사의 또 다른 명물은 수령 천여 년의 당산나무이다. 사찰과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자 애환을 함께하는 상징적인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내소사를 뒤로 하고 돌아서기 아쉽다면 MBC 드라마 <대장금>이 촬영됐던 장소에서 추억의 사진 한 장을 남겨보는 것도 좋다.

Info 내소사
주소 전북 부안군 진서면 내소사로 243

잔잔하고 포근한 어머니 품 같은 작당마을
내소사에서 나와 도로를 달리다 재미난 명칭을 보고 예정에도 없던 곳으로 향한다. 이름하여 ‘작당마을’. ‘뭘 작당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들어선 마을은 소박하고 아늑했다.

지형이 까치집 모양과 같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내 눈엔 그냥 작아서 더 정감 가는 어촌마을로만 보였다. 가만히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니 떠오르는 문장이 있었다.

‘내 고향은 폐항.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밖에 없네.‘

영화 <변산>에 자주 등장하는 문장이다. 주인공 학수가 학창시절 썼던 시인데, 짧은 이 두 문장이 왜 그리도 가슴에 남는지 모르겠다. 왠지 모를 애잔함을 주는 말이다.

작당마을로 가는 길. 사진 / 송인경 여행작가
작은 마을을 담은 듯한 잔잔하고 고요한 바다. 사진 / 송인경 여행작가

그런데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니 이 문장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산은 가난해서 보여줄게 노을밖에 없다고 했는데 내가 본 산도, 바다도 정말 멋졌기 때문이다. 이 소박한 어촌마을조차도 잔잔한 여운을 주는 곳이니 말이다. 이런 생각에 잠겨 있다 보니 문득 궁금한 점이 생겼다. 왜 ‘내 고향은 폐항’이라고 표현한 것일까?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작가의 고향인 변산엔 서해안의 주요 어항 중 하나였던 ‘줄포’라는 포구가 있었다. 하지만 어획량 감소와 교통 발달 등의 이유로 폐항이 됐고, 이밖에도 부안에는 새만금 방조제로 인해 바닷물이 막히면서 기능을 상실해 폐항된 곳도 있다. 그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담담하면서도 쓸쓸하게, 또 누군가에게는 애잔하고도 서글프게 보였을 것이다.

Info 작당마을(마을회관)
주소 전북 부안군 진서면 작당길 17-2

강이라 불리는 바다, 적벽강과 채석강
누군가는 이렇게도 표현했다. 부안에 와서 ‘채석강’과 ‘적벽강’을 보지 않은 것은 파리에 가서 에펠탑을 보지 않는 것과 같다고 말이다. 도대체 뭐가 그리 특별한 것일까 하는 궁금증과 기대감을 갖게 하는 장소였다.

서해안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는 적벽강. 사진 / 송인경 여행작가
해 질 무렵 채석강의 풍경. 사진 / 송인경 여행작가

‘채석강’과 ‘적벽강’은 명칭에 ‘江(강 강)’이 붙었지만 실제는 ‘강’이 아닌 ‘바다’다. 변산반도에서 서해 쪽으로 가장 많이 돌출된 지역을 뜻하기 때문에 더 정확히는 해안절벽과 바다를 아우르는 곳이다. 그렇다면 왜 ‘江’이라 했던 것일까?

채석강은 당나라의 시인 이태백이 강물에 비친 달에 반해 뛰어 들었다는 중국의 채석강과 비슷하게 생겼다 하여 이름 붙여진 것이고, 적벽강 역시 시인 소동파가 노닐던 중국의 적벽강과 풍경이 흡사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것이라 한다.

아름다운 풍경 속엔 풋풋한 청춘의 모습도 자리하고 있다. 영화 <변산>에서도 주인공 학수와 선미를 비롯한 친구들의 가장 순수했던 시절이 이곳과 함께 한다. 그들이 있던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바다를 바라봤다. 잔잔하고 고요함 속에 서서히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적벽강과 채석강은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퇴적암층으로 다양한 암석과 지질구조를 관찰할 수 있는 지질명소이기도 하다. 사진은 적벽강. 사진 / 송인경 여행작가
채석강에서 마주하는 노을은 영화 <변산>과 겹쳐 보여 또 다른 인상을 자아낸다. 사진 / 송인경 여행작가

부안에서는 밤을 알리는 신호가 참으로 낭만적이다. 파란 하늘이 붉은빛으로 서서히 물들면 밤이 찾아오고 있다는 신호다. 이 신호에 맞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람들은 일제히 한 곳을 응시한다. 자신을 향하는 시선이 부끄러운 듯 노을은 더 붉게 타오르고 사람들은 눈과 마음에, 또 사진에 그 모습을 담기에 분주해진다.

그때 나에겐 영화 <변산> 속 주인공 학수가 지은 시구(詩句)가 떠올랐다. 보여줄 건 노을밖에 없다고 소박하게 말했지만 여자주인공 선미를 이른바 ‘노을 마니아’로 만든 그 노을이 아닌가. 노을을 처음 본 것도 아니건만 부안에서 마주한 노을은 나에게도 특별하게 느껴졌다.

“내가 ‘노을 마니아’라고 했지. 나한테 노을을 발견시켜준 사람이 바로 너야. 이 동네에서 태어나 살면서 수도 없이 봐온 노을인데 난 노을이 그런 건지는 그때 처음 알았어. 장엄하면서도 이쁘고, 이쁘면서도 슬프고, 슬픈 것이 저리 고울 수만 있다면 더 이상 슬픔이 아니겠다…“
- 영화 <변산> 주인공 선미의 대사 中

Info 적벽강
주소 전북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산35-28

Info 채석강
주소 전북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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