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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10월호
[여행 레시피]덕유산과 지리산 사이, 영남의 대표적 양반 고을 함양
[여행 레시피]덕유산과 지리산 사이, 영남의 대표적 양반 고을 함양
  • 황소영 객원기자
  • 승인 2018.10.31 1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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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부터 이어진 인공림, 상림과
조선시대의 정갈한 고택...
유럽을 뚝 떼어온 듯한 풍경을 가진 와이너리까지 즐기는 함양 여행
영남의 대표적 선비마을이자 조성 성리학의 대가인 일두 정여창의 고향인 함양 개평마을의 전경.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영남의 대표적 선비마을이자 조성 성리학의 대가인 일두 정여창의 고향인 함양 개평마을의 전경.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여행스케치=함양]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쓴 유홍준 교수는 이곳 함양 편에서 "함양과 산청의 답사를 고작해서 3박 4일로 잡아놓고는 그곳의 모든 유적을 죄다 섭렵할 생각을 갖는다는 것은 우리 땅의 넓이만 생각하고 깊이를 생각지 않은 발상이며 국토에 대한 능멸 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지리산둘레길로 대표되는 트레킹과 높고 험한 산행은 차치하더라도 벽송사 영각사 금대암 등의 고찰과 거연정~농월정을 잇는 화림동계곡(선비문화탐방로), 남계서원과 청계서원 등등 함양엔 보고 먹고 만나야 할 것이 참 많다.

함양, 그중에서도 개평마을은 근래 종영한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여파로 찾는 이가 부쩍 많아진 곳이다. 김갑수, 김국진 등이 출연한 예능 <시골빵집>도 이 마을에서 촬영했다. 처음 가볼 곳은 그래서 개평마을이다.

개평마을, 정갈한 집이 주는 편안함
남계천 주변에 위치한다고 하여 '개들' 또는 '개화대'라고도 불리는 개평은 그 지형이 댓잎 네 개가 붙어 있는 개(介)자 모양과 같아서 지어진 이름이다. 유홍준 교수의 표현대로라면 "댓잎 한 줄기는 마을이 되고 한 줄기는 방풍 언덕이 되어 언덕마루마다 노송이 줄을 이은 것이 퍽 운치 있고 격조가 높아" 보이는 동네이기도 하다.

영남의 대표적 선비마을이자 조선 성리학의 대가인 일두 정여창의 고향이기도 한 이곳엔 현재 일두고택을 필두로 노참판댁 고가, 풍천노씨 대종가, 하동정씨 고가, 오담고택 등 100여 호의 집들이 남아있다.

마을 입구 안내판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흙을 섞어 세운 돌담이 여행자를 맞는다. 골목 바닥엔 넓적한 박석이 깔렸는데, 주인이나 손님이 말을 타고 올 때 하인들이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란다. 말과 하인이 떠난 지금엔 따각따각 구두소리와 돌길에 묻힌 둔탁한 운동화 소리, 재잘대는 여행객의 달뜬 목소리가 담장을 넘나든다.

하동 정씨 대대로 전수된 500년 전통의 솔송주.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하동 정씨 대대로 전수된 500년 전통의 솔송주.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골목 정면에 보이는 솔송주 문학관.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골목 정면에 보이는 솔송주 문학관.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골목 정면에 '솔송주 문화관'이 보인다. 솔송주(경남무형문화재 35호)는 하동 정씨 집안 대대로 시어머니에게서 며느리로 전수된 500년 전통의 술로 현재는 박흥선 명인의 손에서 빚어진다. 13도의 솔송주와 40도의 담술은 무료 시음이 가능하다. 내어놓은 두 잔 중 도수가 낮은 솔송주를 살포시 머금어본다. 솔바람이 불어와 입안에 잠시 머물다 사라진 기분이다.

문화관 옆에 자리한 솔송주 고택.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문화관 옆에 자리한 솔송주 고택.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솔송주 고택과 일두 고택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이웃해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솔송주 고택과 일두 고택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이웃해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문화관 옆은 솔송주 고택이다. 집은 비었지만, 누구나 돌아볼 수 있게 개방돼 있다. 소쿠리에 담긴 주홍빛 감과 붉게 벌어진 석류알에 투명한 초겨울 햇살이 부딪혀 떨어진다. 이 댁 옆이 일두고택(중요민속문화재 제186호)이다. 정확히는 일두가 타계한지 백 년 후쯤 그가 살던 터전에 새로 지은 집이다.

전국의 향교와 서원에서 존경받던 일두 정여창이 타계한지 백년 뒤에 지어진 일두 고택.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전국의 향교와 서원에서 존경받던 일두 정여창이 타계한지 백년 뒤에 지어진 일두 고택.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전국의 향교와 서원에서 존경받던 일두 정여창은 권력보단 학문에 전념한 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이름을 딴 집은 솟을대문, 사랑채, 중문을 들어서 안채, 별당 등으로 구성됐으며, 이곳에 머무는 손님이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주인의 세심함이 곳곳에 묻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종암교 너머엔 '일두선생산책로'가 있다. 몇 걸음만 올라서도 개평마을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둘러본 집은 몇 곳 안 되는데, 여기서 바라본 개평의 집들은 사극의 한 장면처럼 무수하다. 100년에서 400년까지, 가문의 역사를 고스란히 얹은 집들이다. 중간중간 여행자를 위한 카페와 식당도 있다. 문이 닫히거나 공사 중인 고택을 피해 마을 입구로 돌아온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림, 상림
함양의 또 다른 볼거리 중 하나인 천연기념물 제154호로 지정된 상림은 신라 진성여왕 때 함양(천령) 태수로 있던 최치원이 조성한 숲으로 우리나라에선 가장 오래된 인공림이다. 당시 함양읍을 관통하던 위천수 때문에 홍수 피해가 빈번하자 둑을 쌓아 물줄기를 돌리고, 강둑에 나무를 심어 가꾼 것이 천년을 이어져 내려왔다.

나무 빼곡한 상림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공원 입구의 연리목이다. 보통은 뿌리가 다른 같은 종의 나무가 맞닿아 하나인 것처럼 자라는데, 상림의 연리목은 종이 다른 느티나무와 개서어나무가 함께 자란다.

함화루라는 누각도 있다. 남쪽 읍성에 있던 망악루를 일제강점기 때 이곳에 옮겨온 것이다. 이은리 석불, 사운정, 화수정, 역사인물공원, 물레방아, 또 최근에 지은 천년교까지 축구장 두 개를 합한 것보다도 더 큰 이 숲은 찬찬히 걷고 살펴도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깊고 넓다.

함화루는 남쪽 읍성에 있던 망악루가 일제강점기때 옮겨오면서 바뀐 이름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함화루는 남쪽 읍성에 있던 망악루가 일제강점기때 옮겨오면서 바뀐 이름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여름에 장관인 연꽃은 진즉에 졌고, 숲을 온통 물들인 단풍과 발끝에 밟히던 낙엽도 떠났지만 앙상한 가지마다 눈이 쌓이는 계절엔 또 그만큼의 다른 아름다움으로 방문객을 맞는다. 상림은 여전히 천 년의 흐름을 간직한 채 지역주민과 여행객을 위해 곧고 깊게 겨울을 보낸다.

하미앙두레마을, 함양 속의 작은 유럽
평지에 위치한 개평마을과 상림과는 달리 큰 도로를 벗어나 좁은 길로 올라선다. 이 길 끝에 무엇이 있긴 한 걸까, 고개를 갸웃댈 때쯤 하미앙두레마을이 반갑게 팔을 벌린다. 이름은 마을이지만 포도보다 칼슘이 10배쯤 많다는 산머루를 이용해 와인을 만드는 와인 밸리(와이너리)다. 예약을 하면 비누, 화장품, 쿠키, 시계 만들기 등의 체험을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누구에게나 개방돼 편하게 산책할 수 있다.

유럽의 한쪽을 뚝 떼어 옮겨놓은 것처럼 느껴지는 하미앙 와인 밸리.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유럽의 한쪽을 뚝 떼어 옮겨놓은 것처럼 느껴지는 하미앙 와인 밸리.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하미안 와인밸리에서는 사전예약을 하면 와인 족욕을 체험 할 수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하미앙 와인밸리에서는 사전예약을 하지 않아도 와인 족욕을 체험 할 수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주차장 옆 홍보관을 나와 와인동굴로 들어선다. 차곡차곡 쌓인 짙은 색의 와인병과 가지런한 오크통을 지나면 전시장을 거쳐 카페로 길이 이어진다. 개평마을에서 고택 비빔밥을 먹을 수 있다면, 하미앙에선 와인을 곁들인 돈가스와 피자, 소시지 등을 맛볼 수 있다. 따로 시음도 가능하다.

어둑한 숙성실에선 시큼 달큼한 산머루 냄새가 난다. 마시지 않아도 취한 것처럼 기분이 오묘하다. 하미앙은 마치 유럽의 한쪽을 뚝 떼어 옮겨놓은 것처럼 이국적이다. 지리산을 코앞에 둔 전형적인 산악도시이자 선비고을에서 만나는 색다른 경험이다.

마천면으로 통하는 구불구불 굽이치는 지안재.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마천면으로 통하는 구불구불 굽이치는 지안재.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하미앙 근처엔 마천면으로 통하는 지안재가 있다. 모든 것이 곧고 빨라지는 세상이지만 구불구불 굽이진 도로는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시간이 된다면 지안재를 넘어보는 것도 괜찮다.

함양이든 함양이 아니든 이미 다녀온 장소라도 다음에 또 들르면 새롭게 보인다. 같은 풍경도 계절과 날씨와 동행에 따라 와 닿는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꾸 보아야 살갑고 따스하다. 이 계절의 쓸쓸한 풍경은 봄과 여름과 가을이면 더 예쁘고 환한 모습으로 여행객을 품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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