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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아날로그 원도심 여행] 삶의 그리움이 묻어있는 골목, 마산 창동
[아날로그 원도심 여행] 삶의 그리움이 묻어있는 골목, 마산 창동
  • 조아영 기자
  • 승인 2018.11.02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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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조각가가 노래하고 사랑했던 고장
추억과 예술이 모인 타래, 창동예술촌
소박한 매력을 지닌 가고파 꼬부랑길 벽화마을까지
마산의 원도심인 창동 일대는 현재 예술촌으로 거듭났다. 사진 / 조아영 기자
마산의 원도심인 창동 일대는 현재 예술촌으로 거듭났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여행스케치=창원]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던 거리와 언제나 불을 밝히고 있던 상가. 그 속에는 갓 고등학교에 입학해 설레는 마음으로 빳빳한 새 교재를 사는 학생들과 빵집에서 두 볼을 붉히며 첫 데이트를 하던 젊은 연인이 있었다. 많은 이들의, 어쩌면 당신의 추억이 피어났을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은 이제 새로운 모습으로 여행자들에게 다가선다.

1990년대를 배경으로 삼은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는 ‘마산 가시나’나정(고아라 분)과 가족, 친구들의 서울살이를 다룬 작품이다. 삶과 사람, 야무진 경상도 사투리가 녹아있는 드라마는 기성세대는 물론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이들에게도 큰 인기를 얻었다.

1994년,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을 것이다. 한때 경남 최대 도시였던 ‘마산시’가 제 이름을 잃게 될 줄은. 1970년대 마산자유무역지역이 조성되며 분주했던 도시는 2010년 창원시와 통합하면서 마산회원구와 마산합포구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이제 중심 번화가에서 한 발짝 비켜선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 일대는 추억과 예술이 담긴 예술촌으로 거듭났다.

옛 전화번호가 쓰인 가게. 창동 일대에서는 수십 년간 운영해온 가게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옛 전화번호가 쓰인 가게. 창동에서는 수십 년간 운영해온 가게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원색으로 꾸민 담벼락과 오래된 가게, 예술가들의 작업실은 이채로운 조화를 이룬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원색으로 꾸민 담벼락과 오래된 가게, 예술가들의 작업실은 이채로운 조화를 이룬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창동 골목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시가 쓰여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창동 골목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시가 쓰여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창동 아지매 따라 예술촌 한 바퀴
‘창동 아지매’라는 명찰을 달고 골목 곳곳을 안내하는 김경년 창원시도시재생지원센터 팀장은 “골목은 사람의 인생과도 닮았다”며 “창동이 ‘경남의 명동’이라 불리며 어느 도시보다 화려했던 시절, 나 역시 청년기를 이곳에서 보냈고, 첫 데이트, 칵테일, 에스컬레이터 등 첫 순간을 경험하며 도시의 세월과 함께한 셈”이라고 말한다.

추억 보따리를 주섬주섬 풀어 들려주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과거 골목 일대 모습이 선하게 보이는 듯하다. 

머쓱한 이방인을 반기듯 ‘보고싶엇소’라는 청록색 팻말이 달린 작은 터널을 지나 꼬불꼬불 미로 같은 길을 따라가 본다. ‘창동예술촌’으로 거듭난 골목은 원색으로 옷을 갈아입은 담벼락과 유리문에 옛 전화번호가 쓰인 오래된 의상실,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함께 자리해 이채로운 조화를 이룬다.

과거와 현재가 만난 곳, 시간여행이라는 흔한 표현을 굳이 빌리지 않아도 세월을 헤아려볼 수 있는 골목에는 지난 시대가 고여 있다.

창동의 세 개 '당' 중 하나인 서점 학문당. 사진 / 조아영 기자
창동의 세 개 '당' 중 하나인 서점 학문당. 사진 / 조아영 기자
문신 예술 골목에 자리한 조각가 문신의 자화상. 사진 / 조아영 기자
문신 예술 골목에 자리한 조각가 문신의 자화상. 사진 / 조아영 기자
문신의 '채화' 등 다양한 작품과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문신의 '채화' 등 다양한 작품과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수십 년간 한 자리를 지켜온 가게를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김경년 팀장은 “마산 사람들은 창동에 세 개의 당이 있다고 말한다”며 “지금은 사라진 시민극장 맞은편에 있는 서점 학문당은 만남의 장소 역할을 했고, 시골에서 소를 팔아 반지를 맞추러 갔던 금은방 황금당과 미팅 장소로 인기가 많았던 빵집 고려당이 바로 그것”이라고 설명한다. 

세 개의 ‘당’ 중 하나인 학문당 서점 건물을 등지고 서면 마산 출신 조각가 문신을 재조명하는 문신 예술 골목이 나타난다. 마산의 예술사와 추억을 재현한 ‘마산예술 흔적 골목’, 예술인과 예술 상인이 머무는 테마 예술상업 골목 ‘에꼴드 창동 골목’과 더불어 여행자들의 눈길을 끄는 조붓한 골목이다. 골목 곳곳에 문신의 자화상과 채화 등의 작품이 그려져 있으며, 설명이 담긴 패널이 붙어 있어 이해를 돕는다.

Info 창동예술촌
주소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서6길 24

상상길에는 외국인 2만3000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상상길에는 외국인 2만3000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상상길. 사진 / 조아영 기자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상상길. 사진 / 조아영 기자

골목에 새겨진 수많은 이름들
창동예술촌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거리는 단연 상상길이다. 널찍하게 트인 통행로 양옆으로 상가가 다닥다닥 들어선 이곳은 여느 번화가와 비슷한 인상을 주지만, 바닥 블록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독특한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낯선 외국어로 쓰인 이름이 칸칸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캠페인 ‘Write Your Name in Korea(당신의 이름을 한국에 새겨보세요)’의 일환으로 한국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들의 신청을 받아 2만3000명의 이름을 새긴 것. 상상길을 방문했을 때, 자신의 이름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블록 옆에 알파벳과 숫자를 병기해놓았다.

상상길을 지나 좁게 난 골목을 파고들어 본다. 하얀 외관이 인상적인 창동아트센터 맞은편에는 작은 전시관 하나가 있다. 창동 거리를 10여 분쯤 걷다 보면 마주치게 되는 이름, 이선관(1942~2005) 시인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공간이다.

시인이 생전에 머물며 집필 활동을 이어간 창동에는 작은 전시관이 마련되어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시인이 생전에 머물며 집필 활동을 이어간 창동에는 작은 전시관이 마련되어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이선관 시인의 작품과 유품을 살펴볼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이선관 시인의 작품과 유품을 살펴볼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뇌성마비로 평생 육체적 장애를 안고 살았던 시인은 자신의 장애를 시로 승화시킨 인물이다. 첫 시집 <기형의 노래>를 시작으로 민주, 생태, 통일을 이야기한 시인은 <마산, 그 창동의 허새비>라는 시를 통해 고향 마산과 창동을 죽어서도 영원히 사랑하리라고 노래한다. 그에게 창작의 현장이었던 창동 골목 한편에는 유품을 볼 수 있는 전시관과 소박한 시비가 자리한다.

거리에서는 과거의 이름을 기억하는 ‘맨홀 뚜껑’도 발견할 수 있다. 창원시와 통합하기 전 만들어진 뚜껑에는 ‘마산시’라는 글씨와 당시 시화였던 장미가 활짝 핀 모습으로 도드라지게 새겨져 있다. 묵직한 맨홀 뚜껑만은 시대를 거쳐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마산시'라는 이름과 당시 시화 장미가 새겨진 맨홀 뚜껑. 사진 / 조아영 기자
'마산시'라는 이름과 당시 시화인 장미가 새겨진 맨홀 뚜껑. 사진 / 조아영 기자

Tip 창원시도시재생지원센터
마산에 대한 생생한 ‘이바구(이야기)’를 들으며 골목을 살펴보고 싶다면 창원시도시재생지원센터의 문을 두드려보자. 6개의 골목투어 코스가 마련되어 있으며, 투어 전 미리 유선상으로 문의하면 마을활동가와 함께 길을 걸을 수 있다. 
주소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거리길 24

직접 쑨 팥으로 만든 빵이 유명한 빵집 고려당. 사진 / 조아영 기자
직접 쑨 팥으로 만든 빵이 유명한 빵집 고려당. 사진 / 조아영 기자
부림시장에서는 맛있는 먹거리를 즐길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부림시장에서는 맛있는 분식을 즐길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국민 간식 떡볶이와 인기몰이 중인 '소떡소떡'이 군침을 삼키게 한다. 사진 / 조아영 기자
국민 간식 떡볶이와 인기몰이 중인 '소떡소떡'이 군침을 삼키게 한다. 사진 / 조아영 기자

부림시장을 거쳐 꼬부랑꼬부랑 벽화마을로
골목을 누비며 허기를 느낄 찰나, 마산의 대표 빵집이라는 고려당이 보인다. 가게 안에 들어서자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노릇노릇 잘 구워진 빵들이 사이좋게 진열되어 있다. 직접 쑨 팥으로 만든 빵이 입소문을 타면서 60년대부터 손님이 끊이질 않았던 이곳은 수십 년이 흐른 지금, ‘마산의 명과’가 되어 여전히 맛난 빵과 추억을 굽고 있다. 

근처에는 국민 간식 떡볶이로 소문난 부림시장 먹자골목이 자리한다. 가게마다 물 떡볶이와 고추장 떡볶이라는 두 종류의 떡볶이를 판매하는데, 물 떡볶이는 국물이 자박하며 고추장 떡볶이는 국물이 거의 없는 메뉴다. 

언덕배기에 자리한 가고파 꼬부랑길 벽화마을로 가는 길. 사진 / 조아영 기자
언덕배기에 자리한 가고파 꼬부랑길 벽화마을로 가는 길. 사진 / 조아영 기자
주민들의 삶터와 어우러진 벽화는 소박한 매력을 지녔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주민들의 삶터와 어우러진 벽화는 소박한 매력을 지녔다. 사진 / 조아영 기자

든든하게 식사를 하고 나서는 가고파 꼬부랑길 벽화마을로 걸음을 옮겨본다. 가파른 언덕배기에 있어 걷다 보면 허리가 절로 굽어져 꼬부랑길이 되었다는 이 마을은 투박한 계단마저 알록달록 무지갯빛 옷을 입고 있다.

장미꽃, 마산 앞바다, 동물, 물지게 등 다채로운 그림으로 치장한 동네는 걷는 내내 즐겁다. 실제 주민들의 삶터와 벽화가 어우러져 만드는 풍경은 그 자체로 정겹다. 

마을 꼭대기 즈음에 올라 구경하는 내내 꼬부랑해졌던 허리를 쭈욱 펴본다. 어느새 탁 트인 시야, 저 멀리 마산항 전경이 보인다. 가까이 보이는 시가지는 복작복작 분주하고, 멀찍이 떨어진 바다는 잔잔히 일렁인다.

Info 부림시장
주소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3.15대로 352

Info 가고파 꼬부랑길 벽화마을
주소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성호서7길 15-8

세계적인 조각가가 사랑한 고향, 마산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 태어나 자란 곳을 의미하는 단어 ‘고향’의 또 다른 의미다. 세계적인 조각가이자 회화 작가였던 문신(1923~1995)에게 마산은 그런 곳이었다. 

유년기를 마산에서 보낸 그는 해외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면서도 늘 마산을 그리워했다. 영구 귀국 후에는 가고파 꼬부랑길 벽화마을 곁 추산동 언덕에 터를 잡고 미술관 건립에 몰두했다. 미술관의 문을 열기까지 꼬박 15년이 흘렀고, 그는 개관 1주년을 앞둔 채 타계했다.

문신의 작품과 예술세계를 면밀히 살펴볼 수 있는 전시관. 사진 / 조아영 기자
문신의 작품과 예술세계를 면밀히 살펴볼 수 있는 전시관. 사진 / 조아영 기자
야외 전시장 바닥에 깔린 돌까지 문신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야외 전시장 바닥에 깔린 돌까지 문신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사진 / 조아영 기자
화가이자 문신의 동반자였던 최성숙 문신미술관 관장. 사진 / 조아영 기자
화가이자 문신의 동반자였던 최성숙 문신미술관 관장. 사진 / 조아영 기자

박효진 문신미술관 학예사는 “문신 선생은 6.25전쟁 발발 전부터 미술관을 짓기 위해 인부 두 명과 함께 공사를 시작하셨다”며 “정원에는 당시 미술관의 초석이었던 화강암이 남아있다”고 말한다. 전시관부터 야외 전시장까지 구석구석 그의 손끝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는 미술관은 문신의 또 다른 작품이 되었다. 현재 문신미술관은 ‘사랑하는 고향에 미술관을 바치고 싶다’는 작가의 유언에 따라 2003년 시에 기증되어 시립미술관으로 운영 중이다.

화가면서 문신의 예술 세계를 깊이 헤아린 아내였던 최성숙 문신미술관 관장은 “문신 선생은 늘 가슴 찡해 하며 푸른 마산 앞바다를 이야기했다”며 “나 역시 마산이 고향같이 좋고, 바다도 좋고, 소박해서 좋다”고 말한다. 문신미술관은 내년 3월 20일까지 최성숙 관장과 문신, 두 작가의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회고전 <문신과 최성숙의 만남 40년-예술과 일상>을 개최한다.

Info 문신미술관
운영시간
오전 9시~오후 6시(매주 월요일ㆍ명절 휴관)
입장료 어른 500원, 대학생ㆍ청소년ㆍ어린이 200원, 65세 이상ㆍ유아 무료
주소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문신길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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